박근혜, '김무성 왕따' 노림수

아직은 '박근혜 시대'…하극상 용납 못해?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7·14전당대회 참패 이후 정중동 행보를 이어왔던 친박계가 최근 대대적 '김무성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공교롭게도 친박계의 공세는 지난해 연말 박 대통령과 친박계 핵심인사 7인의 비밀회동 이후 본격화됐다. 이는 박 대통령이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당청관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배제하고 친박계를 중심으로 당에 대한 친정체제 구축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사 7인(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서청원 최고위원, 정갑윤 국회부의장, 김태환·서상기·안홍준·유기준 의원)이 지난달 19일 비밀회동을 가진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날은 박 대통령의 대선승리 2주년 기념일이자, 헌법재판소가 사상최초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한 역사적인(?) 날이다.

박 대통령·친박계
수상한 비밀회동

박 대통령이 친박계 의원들만 따로 불러 회동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는 '정윤회 문건 파문'에 따른 국정 쇄신책, 공무원연금개혁 법안 처리,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경제 살리기, 기업인 가석방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폭넓은 얘기가 오고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이 확실한 자기편인 친박계를 중심으로 당에 대한 친정체제 구축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식적 당청관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김무성 대표와 그의 측근들은 한 명도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박 대통령으로선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김 대표가 장악한 당도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움직일 조짐을 보이고 있던 터였다. 박 대통령이 '믿을맨'인 친박계를 통해 당을 다잡아, 집권 3년차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할 법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사흘 뒤 서청원 최고위원이 김 대표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의 여의도연구원장 임명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며 김 대표를 향한 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박 이사장은 지난 총선 당시 '국민생각'을 창당, 새누리당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인사들과 친이계 일부 인사들을 받아들여 보수를 분열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던 인사다.

특히 박 이사장은 2005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시절 당시 박근혜 대표의 행정도시법(세종시) 찬성에 반발해 의원직을 사퇴하고 탈당했다. 때문에 친박계에선 박 이사장을 박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하극상을 일으킨 문제인사이자, 배신자로 보고 있다.

7인 '비밀회동' 후 대대적 '김무성 때리기'
반환점, 당 친정체제 강화…믿을 건 친박뿐?

며칠 뒤에는 박 대통령의 신년인사회 초청자 명단에 당3역(원내대표·정책위의장·사무총장) 중 한 명인 이군현 사무총장의 이름이 빠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총장은 친이(친이명박)계 출신으로, 현재는 친무(친김무성)계로도 분류되는 인사다.
 

당시 이 총장보다 당 서열이 낮은 친박계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명단에 포함돼 김 대표가 "천지분간을 못하는 사람들"이라며 소관부서인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청와대 측은 "실무과정 중에 빚어진 일"이라며 "완성되지 않은 명단이 건너간 것이고, 정식 초청 명단에는 이 총장이 포함돼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완성되지 않은 명단'이라는 해명은 청와대의 우선순위에 이 총장보다 김 수석부대표가 우위에 있다는 뜻과 다름 아니어서 설득력이 약하다.

나아가 지난달 30일에는 친박계 의원들의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소속 의원 35명이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송년모임을 열고 김 대표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노골적으로 쏟아냈다.


이 자리에서 유기준 의원은 "선명하지 못한 당청관계, 국민 역량과 관심을 분산시키는 개헌 논쟁, 당직 인사권을 사유화하는 모습 등 갈 길 먼 정부와 우리 여당의 발목을 잡는 일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의) 득표율은 29.6%였는데, 지금 당을 운영하는 데 있어 당 대표의 모습은 92%를 '득템'(수확이란 뜻의 인터넷 은어)한 것 같다는 목소리가 많다"며 "당청은 한배를 탄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전례 없이 당청관계가 삐거덕거리고 금 가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외에도 이날 참석자들은 김 대표를 향해 "당직 인사를 제멋대로 한다" "당을 사당화하고 있다" "그동안 발언을 자제했는데 이제부터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등의 거친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진다. 심지어 여권 안팎에서는 친박계 의원 송년회 일정이 당초 전날 저녁이었지만, 김 대표와 측근 의원 10여명이 기자들과의 송년 오찬을 30일로 잡아 이를 견제하기 위해 날짜를 일부러 옮겼다는 말까지 나왔다.

부글부글 김무성
당무감사로 반격?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 대표는 "민주주의는 원래 그런 것"이라며 "(친박계의) 그런 말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하고 오해에서 생긴 이야기는 잘 이해시켜주는 노력을 하겠다"고 공식적 대응을 자제했다.다만 비밀회동에 대해서는 "우리 박 대통령이 다 좋은데 소통이 부족하다고 다들 지적했지 않았느냐"며 "그렇게라도 만나 소통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의원과 그런 형식의 소통을 많이 해주시길 바란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김 대표가 강하게 반발할 경우 집권여당과 청와대가 직접 충돌하는 모양새로 비춰져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대표 주변에서는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비박(비박근혜)계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친박계 핵심들만 불러 박 대통령이 비공개 회동을 했다는 것은 자칫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지금 여러 가지 상황들이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김 대표가 수십 차례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며 "사당화 논란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한 측근 의원은 "김 대표가 대응을 자제하고 있어 당장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친박계가 계속해서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긴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 반격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양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올해 현역 의원이 당협위원장(옛 지구당)을 맡고 있는 지역에 대한 당무감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통상 당무감사는 전국단위의 선거를 앞두고 조직 상황을 점검하고 당협위원장 교체 여부를 결정짓는 기초 작업이다. 때문에 '살생부'에 비유되기도 한다.

친박 역습에 비박계도 반격 카드 만지작
'친박 대 비박' 권력투쟁 화약고 수두룩

지난해 이군현 사무총장은 246개 당협 중 위원장 공석 지역 12곳과 원외 지역 97곳 등 총 109개 당협을 감사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을 고려해 원내 당협에 대해서는 당무감사를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당무감사에 예외는 없다"며 "새해에는 원내에 대한 당무감사도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내 계파 간 싸움으로 비춰질 것을 염려해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친박계가 계속 자극해올 경우 맞불작전식으로 원내 당협에 대한 당무감사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앞서 친박계 홍문종 의원이 사무총장으로 재임할 당시 40명 안팎에 달하는 당협위원장 대다수가 친박계로 교체된 바 있다.
 

당무감사와 여의도연구원장 자리는 연계된 측면이 있다. 김 대표가 "공천권을 내려놓고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당협위원장의 교체와 직결된 당무감사와 여론조사 등 공천개혁의 근거를 책임지는 여의도연구원장의 자리는 매우 중요하다.

친박계가 박 이사장의 여의도연구원장 임명을 반대하는 이유는 차기 총선에서의 생존권과도 연결된 문제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친박계의 거센 반발 속 김 대표가 박 이사장의 임명을 강행할지 여부는 양측 갈등의 수위를 정하는 척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휘발성 큰 화약고 다수
여 권력투쟁 지속될 듯

이런 가운데 양측의 격돌은 올해 더 잦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우선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으로 발생한 4월 재보선이 친박계와 비박계 전면전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야권의 지역에서 치러지는 재보선임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패할 경우 친박계는 '김무성 책임론'을 내세우며 지도부 교체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유승민·이주영 의원간 2파전으로 압축된 5월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양측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당초 유 의원과 이 의원 모두 친박으로 분류됐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에 대한 잦은 쓴소리로 탈박(탈박근혜)계로 분류되고 있는 가운데 당 사무총장 고사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었던 김 대표와도 지난해 말 화해하며 관계를 회복했다.


반면 이 의원은 친박계 송년회에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친박계 쪽 줄을 확실히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외에도 당직자 인사, 개헌 논의 등 휘발성이 큰 화약고가 널려 있어 여당의 권력투쟁은 올해 내내 정치권의 주요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석현 국회부의장의 쓴소리
"새누리, 부부싸움도 정도껏 해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당 비대위원 겸임)이 지난달 31일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이 김무성 대표를 대대적으로 비판한 것과 관련해 "부부싸움도 정도껏 해야지 이웃이 잠도 못 잘 정도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 부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현 정권이 들어선지 2년도 안 됐는데 국민 보기에 집안싸움이 도를 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청와대는 비선실세, 측근갈등으로 밤을 새우고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 싸움에 날이 저물고 있다"며 "집권세력의 집안싸움은 집안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은 불안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야당이 보기에도 민망한데 국민의 심정은 어떻겠냐"며 "집권세력이 안정감을 줘야 안정하고 경제심리도 호전된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자중자애하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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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