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전대 출마 문재인-박지원 아킬레스건 해부

누가 당권 잡아도 치명적 약점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2·8 전당대회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른바 빅2로 불리는 문재인-박지원 의원 간의 경쟁도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따라서 레이스가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두 후보에 대한 검증의 강도 역시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두 후보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미리 살펴봤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2·8 전당대회(이하 전대)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달 30일까지 후보 등록을 진행한 결과 문재인, 박지원, 조경태, 이인영, 박주선 의원 등 5명의 현역의원이 당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아킬레스건
먼저 찔러야

전대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이른바 빅2로 분류되는 문재인-박지원 의원 간의 신경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양측은 지난 1월1일 진행된 광주 무등산 등반 일정을 두고 새해 첫날부터 옥신각신했다.

박 의원 측은 자신들이 먼저 잡아놓은 일정을 문 의원 측이 따라했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문 의원 측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이처럼 전대가 초반부터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어 후반으로 갈수록 양 후보에 대한 검증 강도도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그렇다면 두 후보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무엇일까? 우선 문 의원의 경우는 각종 선거 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문 의원에게 노 전 대통령은 가장 큰 자산이자 가장 큰 부채다. 노무현정부에서의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양산, 부동산 가격 폭등 등 이른바 ‘실정 책임론’은 지난 대선에서도 문 의원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아직까지도 노무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 의원이 노무현정부의 과오를 극복하기는커녕 반복할 것이란 논리였다.

문재인, 등 돌린 호남민심이 문제
박지원, 노회한 강경이미지 걸림돌

특히 문 의원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일하면서 대북송금 특검을 막지 못했던 것은 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호남의 표심을 얻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전대 과정에서 상대 후보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되짚으며 공략할 가능성이 크다. 박지원 의원은 대북송금 특검으로 감옥까지 갔다 온 당사자이기도 하다. 


노무현정부가 각종 인사에서 호남인사들을 소외시켰다는 호남홀대론 또한 문 의원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심지어 문 의원은 지난 2006년 부산지역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부산 출신인데 부산시민들이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이른바 부산정권론을 주장해 호남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친노(친노무현)계의 강경파 이미지도 문 의원에겐 부담이다. 그동안 친노계 인사들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 과정 등에서 새정치연합의 강경 투쟁을 주도해왔다. 따라서 국민들 사이에서는 친노계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친노계의 수장격인 문 의원이 당권을 잡으면 표 확장성의 한계가 드러나 결코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승리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친노패권주의
호남패권주의

이미 친노계는 새정치연합의 주요 당직을 대부분 장악해 친노 패권주의 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비노진영에서는 당 대표까지 친노계가 차지할 경우 당을 깨야 한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해산으로 불거진 종북 논란에서도 문 의원은 자유롭지 못하다.

문 의원은 이번 통진당 해산의 단초가 된 이석기 의원의 사면에 상당부분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지난 2013년 “이석기 의원에 대한 사면에 대해 법무부가 반대하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특별가석방을 밀어붙였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문 의원이었다.

하지만 문 의원 측은 “가석방은 법무부에 설치된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결정 하는 것”이라며 “민정수석이 개개인을 넣는다든지 뺀다든지 이렇게 관여할 여지는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문 의원은 통진당 해산 재판 과정에서도 통진당 해산을 공개적으로 반대해 종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 의원의 좌충우돌 리더십도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문 의원은 지난 2013년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의혹이 불거지자 아예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주장했다.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외교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국익에 해를 끼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문 의원은 이를 밀어붙였다.


이에 대해 안철수 의원은 “두고두고 국익을 해칠 것”이라며 대화록 공개를 주도한 문 의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게다가 대화록 공개는 곧 사초실종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고 새정치연합은 역풍을 맞아야했다.

이외에도 문 의원은 세월호 정국에선 돌연 유가족들과 동조단식을 시작해 정국을 더 꼬이게 만들었고, 이상돈 교수 영입 파문 과정에서는 거짓말 논란으로 상처를 입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문 의원이 손대는 일마다 상황이 악화된다며 문재인의 저주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문 의원 개인 차원의 비리 의혹도 있다. 대표적인 의혹은 문 의원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금융감독원 담당 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부산저축은행의 금감원 검사를 완화할 것을 청탁했다는 의혹이다. 이 같은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새누리당 이종혁 전 의원은 “문 의원의 청탁전화 이후 문 의원이 대표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부산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59억원의 사건을 수임했는데 이는 청탁 전화의 대가”라고 주장했다.

양 후보 모두 괴롭히는 종북 숙주론
상처뿐인 영광될까? 비주류의 반발

법무법인 부산은 곧바로 이 전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청탁 전화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 의원이 실제로 담당 국장에서 전화를 했던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기간 의혹이 제기됐었던 문 의원의 아들 특혜 채용 의혹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문 의원의 아들은 지난 2006년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 일반직 5급 공채에 합격했는데 서류제출 기한을 5일이나 넘겨서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공기업 5급 공채였지만 지원자는 문 의원의 아들 단 한 명뿐이었다. 이에 대해 권재철 당시 고용정보원장은 “신생기관이다 보니까 직원들이 인사행정을 잘 몰랐다. 특혜는 아니었지만 행정상의 미묘한 실수로 인해서 오해를 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권 원장은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노동비서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인물로 문 의원의 직속 부하 직원이었던 인물이다.

박지원 의원 역시 여러 가지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다. 일단 박 의원은 현재 각종 송사에 휘말려 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는 점은 치명적이다. 정치개혁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하필 비리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 당권을 잡는다면 새정치연합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 의원은 이미 불법대북송금사건으로 한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당시 박 의원은 현대 비자금 150억 수수혐의를 받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대북 불법송금과 대기업 자금 1억원 수수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외에도 박 의원은 유독 비리혐의로 자주 구설에 올랐었다.

각종 비리 구설
구태정치 우려

지난 2010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박 의원과 우윤근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진술이 있었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 중수부장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면서 법적 대응까지 나서겠다고 강력히 반발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건이 종결되면서 수사가 더이상 진행되지 않아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박 의원의 <중앙일보> 협박 사건도 다시 회자된다. 지난 1998년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을 맡고 있던 박 의원은 다짜고짜 <중앙일보> 사장실에 찾아가 ‘<중앙일보>가 김대중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한다’며 물컵을 바닥에 집어던지고 ‘이제 우리가 집권했는데 두고 보자’며 협박을 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중앙일보>는 ‘국민의 정부 언론탄압 진상을 밝힌다’는 제목으로 해당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중앙일보> 사장이 먼저 면담을 요청했으며 당시 분위기가 좋았다”면서 “물컵은 놓쳐서 탁자에 떨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의원의 노회한 이미지도 걸림돌이다. 박 의원은 1942년생으로 올해 만72세다. 새정치연합의 개혁을 이끌기에는 신선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문 의원에겐 호남의 친노 비토정서가 아킬레스건이라면 박 의원은 너무 호남색이 강한 것이 문제다.

호남에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그런 박 의원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이미 우윤근 원내대표가 호남에 지역구(전남 광양시구례군)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당 대표까지 호남에 지역구(전남 목포시)를 두고 있는 박 의원이 맡게 된다면 새정치연합의 ‘호남당’ 이미지가 고착화돼 차기 총선과 대선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선거 악영향
대안이 없다

통진당 해산으로 보수진영의 종북 공세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박 의원 역시 종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결정적인 약점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최근 박 의원을 북한 정권의 대변인 수준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의원은 그동안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현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때문”이라거나 “북한인권법을 저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북한의 3대 권력세습에 대해)북한에서는 그게 상식”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었다.


한편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전대가 양강구도로 치러지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미 많은 언론들이 이번 전대를 영남 대 호남, 노무현 대 김대중 등의 프레임으로 보도하고 있다”며 “누가 승리를 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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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