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1호’ 공학박사 정국용의 작심토로

“10년간의 피와 땀 강탈당했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자유'를 꿈꾸며 대한민국에 온 탈북인 출신 1호 공학박사가 있다. 그는 탈북인들의 대한민국 정착을 위해 국내 유일한 직업학교를 세우고 지난 5년간 지원해왔다. 절반이 넘는 시간을 무급으로 일했고, 국군포로 보상으로 나온 부친의 집마저 담보로 잡히는 등 자신을 내놓고 일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직업학교마저 뺏길 지경에 처해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국용 한국입체교육정보원장. 6·25전쟁 때 부친이 포로로 잡히면서 원치 않게 북한에서 태어난 그는 '남조선괴뢰군포로의 자녀'라 불리며 갖은 차별 속에서도 청신광산금속대학에서 컴퓨터이론을 전공할 정도로 배움과 재능의 꿈을 키웠다. 그런 그가 '자유'를 위해 한국에 온 건 지난 2000년이다.

3년 급여 2700만원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에서 한국의 IT 기술에 놀란 정 원장은 야간에는 폴리텍1대학 자동차시스템학과에서 학문을 이어갔고, 주간에는 백석대학원 목회학과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서울과학기술대 대학원에 입학에 공학석사학위를 받았고 한세대학교에서 공학박사과정을 이수하며 북한이탈주민 1호 공학 박사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0년 입국부터 2009년 박사논문까지 정 원장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은 '언어장벽'이었다. 북한에서 똑같은 과정을 5년간 배우고 왔음에도 쓰는 언어가 달라 소용 없었기 때문. 그래서 그는 북한이탈주민만을 위한 전문교육기관을 만들기로 다짐했다.

정 원장이 노동부 직업훈련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인의 회사에서 일 하던 2009년 5월 T세무법인 소속의 한국인 S모씨가 찾아와 '직업학교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미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인맥이 넓어 대기업이나 지자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3D활용 교육을 하면 연수익 몇십 억대를 벌 수 있다는 말과 함께였다. 제안을 받아들인 정 원장은 북한이탈주민 직업능력개발교육 약정을 체결, 서울 응암에 '한국입체교육정보원'을 설립하고 노동부 지정 승인을 받게 됐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 수익은 발생되지 않았다. S씨는 폐업을 선언했고, 정 원장은 서울 구로로 한국입체교육정보원을 이동하여 다시 노동부로부터 직업학교로 승인받아 운영을 시작했다. 정 원장은 일체의 자금관리와 노무관리를, S씨는 세무회계업무를 담당키로 했다.

운영은 어려워져만 갔다. 북한이탈주민만을 위한 직업학교가 선례가 없었던 터라 노동부 예산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 원장의 무료 봉사는 2009년 8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 북한이탈주민에게 무료로 강의 해주고, 컴퓨터를 구매해줬다. 지금까지 정 원장이 무료로 수리해준 컴퓨터만 600대에 이른다.

2010년 4월, 앞선 2009년 7월 설립한 '새터민 직업능력 개발원'이라는 비영리법인이 통일부 산하 교육기간으로 인정받으면서 통일부로부터 예산 1700만원을 지원받았다. 급한 불은 껐지만 역부족이었다. 1년 뒤인 2011년 6월이 돼서야 통일부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승인 허가되면서 1억600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지원금은 건물보증금 6000만원, 1년간 월세 월 275만원씩 리스장비구입자금 7700만원으로 구성됐다. 건물보증금과 월세는 통일부에서 바로 건물주에게 전달되고 리스장비구입자금은 7달에 걸쳐 매달 1100만원씩 정 원장을 거쳐 리스업체에 전달되는 식이다.

북한이탈주민 위한 직업학교 분해 위기
정부 지원금 증발…소송 피의자로 몰려

S씨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T세무법인 모 지사 내에 리스업체를 설립하고 정 원장의 한국입체교육정보원에 장비 리스를 담당하기로 했다.

"일단 컴퓨터 70대, 빔프로젝트 3대, 서버 1대, 노트북 10대 등 7700만원어치의 장비를 구입하고 세팅을 해놓으면 실사 후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통일부 측의 말을 듣고 정 원장은 S씨에게 리스장비구입을 요청했다.

정 원장에 따르면 S씨는 정 원장이 기존 보유하던 22대의 컴퓨터를 새것처럼 만들라고 지시하는 한편 키보드·마우스가 없는 저가사양의 컴퓨터 30대와 본체 빈케이스 18개, 중고 빔프로젝트 3대를 보내면서 통일부의 실사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정 원장은 '통일부의 예산이 들어오면 새것으로 사주겠지'라는 생각에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통일부의 실사가 끝났다.
 


7개월 뒤 7700만원의 통일부 지원자금이 정 원장을 거쳐 S씨 소유 리스업체에 넘겨졌다. 하지만 새 장비 구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직업학교는 입소문을 타면서 학생들이 끊임없이 늘어났고, 후원금만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정 원장은 국군 포로였던 부친이 보상금으로 구입한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기에 이르렀다. 정 원장은 그 돈으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북한이탈주민들의 교육을 이어나갔다. 지방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운영했고, 점심 식사까지 제공했다. 그뿐이었다. 수입은 여전히 없었고 직업학교는 다시 재정난에 빠졌다.

결국 정 원장은 S씨와 T세무법인의 횡포를 통일부에 보고하고 직업학교의 상위 법인인 '한민족문화복지진흥원' 이사에게도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통일부와 한민족문화복지진흥원의 감사가 시작됐지만 정 원장의 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S씨가 횡령을 한 것은 맞지만 통일부는 정 원장과 약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책임은 정 원장이 져야한다는 게 통일부의 감사결과였다. S씨는 정 원장을 "무급으로 일하기로 했는데 급여를 가져갔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정 원장과 S씨가 체결한 약정서 어디에도 무급으로 일하겠다는 문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정 원장이 지난 3년간 받은 급여는 2700만원. 연봉이 900만원이었다는 얘기다.

S씨가 정 원장을 횡령으로 고발하게 된 배경에는 규칙적이지 않은 급여 수급에 있다. 정 원장은 그간 직원 월급과 관리 운영비용을 지불하고 남은 금액을 자신의 급여로 챙겼다. 어떤 날은 20만원, 또 어떤 날은 70만원이었다. 남은 돈이 없어 급여를 가져가지 못한 달도 부지기수였다.

무료봉사의 대가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과 2심에서 정 원장의 횡령혐의가 인정됐고, 현재 상고 중이다. 이밖에도 정 원장은 명예훼손, 모욕,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정 원장은 "나만 없으면 통일부 지원을 받는 직업학교가 T세무법인 소유가 된다"며 "S씨와 T세무법인이 북한이탈주민이 세무회계와 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직업학교를 뺏으려고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원장이 운영하는 직업학교인 한국입체교육정보원은 사단법인 한민족문화복지진흥원 산하기관으로 한민족문화복지진흥원 회장이 T세무법인 모 지점장이다. 북한이탈주민이 북한이탈주민을 위해 세운 직업학교가 북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무법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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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