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일촉즉발 정윤회 게이트> ⑥역대 비선실세 스캔들

정권마다 트러블메이커 꼭 있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정치권이 이른바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으로 시끄럽다. 정치권 인사들은 “마치 데자뷰를 보는 느낌”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정권 때마다 비선실세 개입 의혹이 불거졌고, 당사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다 결국엔 모두 감옥에 갔다. 반복됐던 역대 비선실세 스캔들을 살펴봤다.

정치권이 이른바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으로 대혼란에 빠졌다. 이번 파동으로 다른 이슈들은 모두 묻혀버리다시피 했다. 청와대는 전혀 사실무근의 이야기라며 선을 그었지만 정윤회씨를 둘러싼 의혹들은 오히려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정치권 인사들은 “마치 데자뷰를 보는 느낌”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역대 정권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정권의 막후 실세들이 있었다. 이 막후 실세들은 공식 직책도 없이 각종 인사와 이권에 개입했고, 결국 심각한 비리와 연결되면서 정권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데자뷰 보는 느낌"

군부독재 시절에는 정권 자체의 정당성이 결여됐기 때문에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1987년 직선제 이후 탄생한 역대 정권들도 하나같이 측근이나 친·인척 관리에는 실패했다. 우선 노태우정부 때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인척인 박철언 전 의원이 무소불위의 힘과 영향력을 행사했다.

박 전 의원은 영부인 김옥숙 여사의 사촌 동생이다. 박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는 먼 친인척 간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친분이 있었다. 검사 출신인 박 전 의원은 전두환정권에서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일하다 노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청와대 정책보좌관을 거쳐 정무장관을 지냈다.

하지만 그의 권력은 직책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1988년에 치른 13대 총선에서는 자신이 만든 사조직인 월계수 회원들을 대거 국회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당시 이권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죄다 박 전 의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이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1년6개월간 복역을 해야만 했다. 김영삼정부의 비선실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였다. 그는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김씨는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이후 국정운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했다. 정부 요직과 청와대에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대거 진출시켰다.

오죽하면 당시 정치권에서는 “청와대보다 김현철에게 줄을 서는 게 더 빠르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그러다 결국 한보사태가 터지면서 김씨는 대통령 재임 기간 그 아들이 구속된 첫 사례가 됐다. 이 일로 1999년 구속됐던 김씨는 그해 광복절에 사면·복권됐지만 5년 뒤인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다시 구속 기소됐다.

2004년 검찰 조사 중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김씨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중 송곳으로 자신의 배를 5차례 찌르며 자해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김씨가 자해 과정에서 고작 1cm의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막상 죽기는 싫었던 것 아니냐”며 김씨를 비꼬았다.

'소통령' 김현철부터 '봉하대군' 노건평까지
몰래 뒤에서 돈 챙기다 정권 몰락 가속화


한보사태와 김씨의 구속을 거치면서 김영삼 정권은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렸다. 김씨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당시 반공식적으로 일했던 나는 결코 숨어 다니지 않았다”면서 정윤회씨 논란과 자신은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대중정권의 비선실세는 이른바 ‘홍삼 트리오’로 불렸던 홍일, 홍업, 홍걸 삼형제였다.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승승장구하던 3형제는 각각 다양한 비리 혐의에 휘말리면서 김대중정권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냈다.

특히 차남 홍업씨의 위세는 대단했다. 김대중정권에서 홍업씨의 별명은 ‘100% 해결사’였다. 뭐든 부탁만 하면 100% 해결이 된다는 뜻이었다. 결국 홍업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중인 지난 2002년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에 관련돼 구속됐다. 특히 홍업씨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베란다에서 약 10억원의 수표를 쌓아뒀다가 발각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홍업씨는 다소 허름한 아파트에 거주했는데 그 아파트에 거주했던 것이 모두 위장이 아니었냐는 비판이 나왔다. 게다가 홍업씨는 구속 수감 중 우울증 등 건강문제를 이유로 수차례 형집행정지를 연장하다 노무현정부 때인 지난 2005년 대통령 특별사면 조치로 ‘특혜시비’ 끝에 가석방 됐다.

노무현정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가 비선실세로 떠올랐다. 그 시절 건평씨는 ‘봉하대군’으로 불렸다. 정권 출범 이후 건평씨와 관련된 인사 개입 잡음이 계속 이어졌다. 오죽하면 노 전 대통령이 “순진한 형을 이용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경고를 했을 정도다.

건평씨는 대통령 친인척비리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되었으나 출석하지 않아 벌금 200만원에 약식 기소되기도 했다. 이렇듯 비선실세 의혹으로 시끄럽던 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의 임기 중 당시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으로부터 사장직을 연임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건평씨는 이명박정부 출범 직후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개입해 29억여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국 구속됐다.

이명박정부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위세를 떨쳤다. 이 전 부의장의 별명은 ‘영일대군’이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전 부의장을 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며 ‘만사형통(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 전 부의장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

이명박정부 출범 초기 이 전 부의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인사의 이력서를 검토하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잡혔는데 이 전 부의장이 이력서를 검토했던 그 인물은 얼마 후 교육부 차관 자리에 올랐다. 이때부터 이명박정부의 인사는 이 전 부의장이 다 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해 이 전 부의장의 위세는 날로 대단해졌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비선실세라는 의혹에 대해 철저히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유명한 일화도 있다. 이명박정부 시절 정치권 인사들이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하자 청와대 인사들이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 이 전 부의장을 통해 해결해야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제도 손봐야


그런데 정작 이 전 부의장을 찾아가면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왜 나를 찾아와서 그러느냐”고 핀잔을 줬다고 한다. 이 전 부의장은 이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 등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1년2개월 동안이나 수감생활을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매 정권 때마다 반복되는 비선실세 논란에 대해 “권력이 지나치게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고 국정 운영이 불투명한 우리나라 정치 제도 때문”이라며 “현 제도를 본질적으로 손 보지 않으면 이 같은 비선실세 논란은 다음 정권에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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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