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일촉즉발 정윤회 게이트> ②후폭풍 시나리오 다섯 가지

박지만 비장의 히든카드 꺼낸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이른바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매일 같이 새로운 뉴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의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모든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긋고 진상규명의 책임을 모두 검찰에게 떠넘겼다. 검찰의 수사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수사결과에 따라 정국은 어떻게 요동치게 될까? 그 결과를 <일요시사>가 미리 예측해봤다.

이른바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의 당사자인 정윤회씨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반격과 역습이 이어지면서 진실공방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청와대 측은 모든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잠시만 눈을 떼도 이슈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언론에선 매일 같이 새로운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 일단 진상규명의 책임은 검찰이 모두 떠맡았다.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정국은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증거 나올까?
사건 덮을까?

우선 첫 번째 가능성은 검찰이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아무런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시킬 경우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검찰이 이번 수사를 통해 문건의 진상을 규명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박 대통령은 임기 초반이다. 앞으로도 검찰 인사를 최소한 두 번 이상 할 수 있다. 청와대가 이미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정한 만큼 검찰이 그 가이드라인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미 전례도 있다.

국정원 사건 수사를 맡았던 윤석열 수사팀장과 박형철 부팀장은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 좌천됐다. 정권에 부담을 주는 수사에 지나치게 열의를 쏟은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반대로 국정원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으로 비판을 받았던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여기자 성추행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에 발령됐다.


실제로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방점은 이미 문건 유출자 색출에 찍혀 있는 듯 하다.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청와대 내부 자료가 외부로 무단 유출된 중대범죄”라고 지적하자 검찰은 이에 화답하듯 문건 유출 건을 특수부에 따로 배당해 수사하게 했다.

덕분에 이번 사건은 이례적으로 ‘문건 유출’과 ‘명예훼손’ 부분으로 나눠 특수부와 형사1부가 동시에 수사를 하게 됐다. 그런데 유독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쪽은 문건 유출 부분을 맡고 있는 특수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임관혁)는 지난 3일 문건을 유출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박모 경정이 근무하는 서울 도봉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 노원구 소재 박 경정의 집, 박 경정 지인의 동대문구 소재 아파트 등 5~6곳을 압수수색했다.

이번 압수수색에는 검사와 수사관 30여명이 동원됐고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서류와 노트북 및 컴퓨터 하드디스크, 이동식 저장장치(USB) 등을 확보해 이미 분석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비선실세국정농단 진상조사단 단장은 “검찰 수사의 방향이 마치 정해져 있는 것처럼 ‘유출 건’에만 맞춰져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고 문건의 진위 규명은 제대로 돼가고 있지 않아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서 진위 우선?
유출 경위 우선?

만약 이런 식으로 계속 수사가 진행돼 검찰이 문건 유출자 색출에만 성공하고 문건의 진상규명에는 실패한다면 오히려 심각한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당장 야권에서는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본 후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지난해 국정을 1년 가까이 마비시켰던 국정원 사태와 똑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론의 변화도 심상치 않다. 정윤회 의혹이 터진 이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다소 의혹이 남아 있어도 눈을 감아줬지만 이번 사건도 그때처럼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면 심각한 민심이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은 정권 중반기에 이미 레임덕에 빠지게 되고 당에 대한 장악력도 약화돼 공무원연금개혁 등 박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해온 정국구상들은 모두 헝클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가 정말 떳떳하다면 청와대가 오히려 적극적인 대응으로 국민들의 오해를 푸는 방법도 있다. 검찰은 조만간 청와대에 문건 생산과 보고 과정 및 출력·복사 기록, 사무실 CCTV 영상 등 관련 자료를 넘겨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측도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의향을 밝혔지만 과연 청와대가 제출한 자료만으로 검찰이 진상을 규명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확실한 수사를 위해서는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이 불가피 하지만 지금까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적은 없다.

눈뜨면 새로운 의혹들 속속 부상
상황에 따라 '식물대통령' 우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특검 당시 법원은 청와대 경호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줬지만 청와대의 거부로 영내진입에 실패하기도 했다. 이번 수사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재현된다면 수사 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고 논란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청와대가 차라리 적극적인 대응으로 스스로 떳떳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허락하고 사무실 CCTV 영상 원본과 내부 통신 기록 등을 있는 그대로 검찰에 제출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사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쌓여 수사결과에 따라 정윤회씨가 국정에 관여한 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해도 야권은 쉽사리 국정조사나 특검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또 만약 검찰이 수사를 통해 정윤회씨가 국정운영에 개입한 바가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까지 찾게 되면 이번 사태는 완벽한 박 대통령의 승리로 끝을 맺게 된다.
 

자체 진상 조사단까지 꾸려 정윤회씨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요구했던 야권은 그야말로 머쓱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권 중반기 박 대통령의 행보에는 더욱 탄력이 붙게 된다.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해온 공무원연금 개혁 등 주요 사업들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야권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세월호 사태,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까지 3연패를 당한 셈이 돼 더 이상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사업들에 브레이크를 걸만한 동력이 남아 있지 않다.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야권이 강력하게 요구해오던 이른바 ‘사자방’ 국정조사 요구도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의외로 이번 사건이 의혹을 촉발시킨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승리로 끝날 수 있다고 예측하는 정치권 인사들도 상당히 많다. 조 전 비서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윤회 문건의 신빙성은 60% 이상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검찰 출신인 조 전 비서관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이런 자신감을 내비치진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근거 있는 자신감
숨겨둔 카드는?

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이 만들어내는 문건은 신빙성이 있지 않으면 생산될 수가 없는 구조라는 증언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조 전 비서관이 또 다른 의혹과 증거들을 제시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최근 정윤회 문건과 관련 “아직 1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문건을 보신 분의 말씀에 의거하면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것들 중)사생활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쪽에서도 막상 수사가 진행되면 사건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언론이 해당 사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아무리 청와대가 압박을 넣는다고 해도 수사 과정에서 발견되는 증거들까지 검찰이 일방적으로 덮고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일례로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의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도 김 전 대통령은 아들의 구속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나 검찰은 여론의 압박이 거세 청와대의 뜻을 거스를 수밖에 없었다.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후폭풍은 엄청날 것이다.

레임덕 시작? 정국 완전장악?
검찰 수사 결과에 관심 집중

이미 급진적인 정치권 관계자들은 의혹이 사실로 들어날 경우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을 정도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폭락하고 관련자들이 줄줄이 청와대를 떠나게 되면서 대대적인 청와대 내부인사 개편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다.

또 박근혜정부가 추진해 온 사업들도 줄줄이 위기를 맞고 흐지부지 되면서 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사실상 식물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은밀하게 차기 대권을 준비하고 있는 대권 잠룡들이 이때를 틈타 우후죽순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정국이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박 대통령의 동생이자 정씨와 권력다툼을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지만 EG회장이 직접 나설 수도 있다.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박 회장은 지인들에게 “정씨가 지난해 미행 사건에 대해 검찰에서 부인하면 내가 직접 나서서 반박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회장이 정씨와 관련해 할 말이 많다는 것이다. 박 회장이 가지고 있는 비장의 카드가 무엇이냐에 따라 수사 결과는 180도 달라질 수도 있다.


정국 대혼란?
초조한 대통령

일각에서는 조 전 비서관이 ‘정윤회 문건의 신빙성은 60% 이상’이라고 발언한 점에 착안해 검찰 수사 결과가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형태로 발표될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예를 들어 정윤회씨가 청와대 관계자들과 모임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었고 국정운영에 대한 개입도 없었다는 식이다.

검찰 수사 결과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여부가 어디까지 밝혀지느냐도 쟁점이다. 개입 정도에 따라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고,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과연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검찰의 수사는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검찰의 수사발표와 함께 정국은 어떻게 요동치게 될까? 온 국민의 시선이 검찰 수사에 쏠리고 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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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