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문재인 플랜 가동 막전막후

내년 전당대회는 사실상 '문 대표' 즉위식?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내년 전당대회는 사실상 문재인 의원의 당 대표 즉위식으로 끝날 것이다.” 차기 전당대회를 둘러싼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계파갈등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당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는 친노진영이 내년 전당대회를 사실상 문 의원의 당 대표 즉위식으로 만들려 한다는 것이 비노진영의 불만이다. 왜 이런 불만이 나오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친노진영의 문재인 대표 옹립 플랜 막전막후를 살펴봤다.

“내년 전당대회는 무척 시시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의원의 지지도가 높은데 당 지도부를 장악한 친노(친노무현)계가 자꾸 문 의원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당대회를 끌어가려고 한다. 전당대회가 마치 문 의원을 당 대표로 옹립하기 위한 요식행위로 변질되고 있는 듯하다.”

플랜 가동
눈 뜨고 당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꺼낸 이야기다. 내년 2월8일에 열릴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정치연합 내부의 계파갈등이 점점 더 심각해져가고 있다. 차기 전당대회의 승자는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쥐락펴락할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 차기 전당대회 승패는 더 나아가 차기 대권경쟁과도 직결되어 있다. 새정치연합 내 모든 의원들의 시선이 차기 전당대회로 쏠리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비노(비노무현)진영에선 이미 차기 전당대회에서 공정한 대결은 불가능해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 지도부를 장악한 친노진영이 문 의원을 당 대표로 옹립하기 위한 플랜을 가동시켰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치권의 분위기를 반증하듯 지난 18일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한 언론사 기자의 “중립이 맞느냐?”는 돌직구 질문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해당 기자는 이날 문 위원장에게 “노무현정부에서 비서실장을 했는데,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은근슬쩍 친노 편을 든다는 말이 있다. 비대위원장으로서 중립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문 위원장은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정치권의 평가는 다르다. 실제로 이날 문 위원장은 ‘친노의 패권적 성향이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 “오히려 친노를 배제하려는 것이 또 하나의 계파주의”라며 시종일관 친노를 적극 두둔해 눈길을 끌었다.

문-문 합작, 노골적인 편들기? 
비노계, 분당까지 거론하며 반발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문 위원장의 행보는 누가 봐도 친노 편들기였다. 비대위가 출범하자마자 친노 진영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모바일 투표에 대해 “그것만큼 공정한 게 어디 있냐”며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대권 주자인 문 의원은 전당대회에 출마해선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 당의 당원이라면 누구나 (전당대회에) 나올 수 있다”고 말하는 등 노골적인 문재인 편들기 행보로 눈총을 받았다. 정치권에서는 문문(문희상-문재인) 합작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문 위원장의 취임 이후 친노진영은 빠르게 당을 장악해 가고 있다. 계파청산은커녕 당내 계파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부족국가냐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나름 계파 안배에 신경을 썼다는 비대위 조차 친노 일색이다. 비노그룹은 비대위의 친노 편향성 문제를 지적하며 추가 인선을 요구했지만 문 위원장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비노계로 분류되는 정동영 상임고문은 지난 13일 친노계를 겨냥해 “특정 계파가 당을 장악하면 100% 신당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호남의 민심”이라는 폭탄 발언까지 했다.

범친노그룹이 당 지도부를 완벽하게 장악하자 문재인 옹립 플랜에는 더욱 속도가 붙었다. 문 위원장은 문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적극 옹호하며 ‘문재인 호위무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비노진영에선 “차기 대권주자가 당권을 잡을 경우 대선경선을 의식해 자파 인물들을 차기 총선에서 대거 공천하려 할 수 있다”며 문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문 위원장은 “자기가 불리하니까 누구를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괜히 일을 만드는 것”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비노계에선 ‘왜 비대위원장이 그런데 깊이 관여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골적인 편들기
“중립 맞아?”

평소 관리형 비대위원장이란 평가를 받아온 문 위원장이 당내 최대의 쟁점인 ‘대권-당권 분리론’ 논란에 대해 이처럼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 당헌에는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은 대선 1년 전에 당 대표직을 사퇴하게 하는 등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게 하는 조항들이 있는데 문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해 준 셈이다.


새정치연합 내부 경선 때마다 문제가 됐던 모바일투표제 도입 논란에 불을 붙인 것도 문 위원장이었다. 문 위원장은 지난 9월 비대위가 출범하자마자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바일투표제 재도입 가능성을 시사해 논란을 일으켰다.

모바일투표는 대리투표 등 각종 잡음을 일으키면서 지난해 초 문 위원장의 비대위 1기 시절 당헌·당규에서 삭제됐었다. 본인이 이끌던 비대위에서 없애버렸던 모바일투표제를 차기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 다시 들고 나왔으니 비노진영에선 문 위원장의 친노 편들기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모바일투표는 일반적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친노진영 후보들에게 유리하고, 당내 기반이 탄탄한 호남계 인사들에게 불리하다. 모바일투표는 지난 2012년 민주당 6·9전당대회 때 도입됐는데, 당시 김한길 의원은 대의원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모바일투표에서 친노계 이해찬 의원에게 져 전당대회에서 패했다. 

비노진영의 반발이 거세지자 문 위원장이 한 발 물러서긴 했지만 친노진영에선 여전히 모바일투표제 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어 향후 전당대회 룰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정면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문 위원장이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추진하고 있는 ‘온·오프라인 전당원배가운동’에 대한 뒷말도 무성하다. 기본적인 권리당원 확보는 정당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비노진영에서도 표면적으로는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비노진영에서는 모바일투표 도입이 어려워지자 친노진영이 모바일투표를 포기하고 전당원배가운동을 통해 조직에서 우위를 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문 위원장의 전당원배가운동 언급 이후 대표적인 친노인사인 문성근 국민의명령 상임운영위원장이 당원 가입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기울어진 운동장
해보나 마나?

문성근 위원장은 국민의명령 홈페이지에 차기 전당대회를 겨냥해 “‘시민참여형 네트워크 정당으로의 진화’를 주장하는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며 “투표권을 가지려면 입당하라”고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권리당원의 의결권이 일반당원보다 클 테니 당비를 내면 더 좋다. 권리당원 자격은 대개 ‘3개월 이상 당비를 낸 당원’이었다”고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문 의원은 지난 9월 국회에서 문성근 위원장과 ‘튼튼한 당, 국민네트워크정당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비노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전당대회를 겨냥한 ‘당원 급조하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노계에선 벌써부터 이번에 모집되는 권리당원에게는 전당대회 투표권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권 차지해야 대선경선까지 유리 
친노-범친노 연대 가능성도 부상

또 문희상 위원장은 비노계가 요구하고 있는 원트랙 경선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당대회 경선 방식은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한 번에 뽑는 원트랙 방식과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따로 선출하는 투트랙 방식으로 나뉜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투트랙 경선 방식을 택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원트랙 경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한꺼번에 뽑는 원트랙 방식은 계파 간 이합집산이 상대적으로 쉬워져 비주류들이 힘을 모아 최대 계파를 견제하는데 좀 더 유리하다. 비노계가 원트랙 경선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문 위원장은 “대체로 한번 만들어진 룰은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원트랙 방식을 반대하고 있다. 비노계 입장에선 문 위원장의 친노 편들기는 아닌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대표
이미 대세?

게다가 최근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문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친노계와 범친노계가 연대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어 비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당권주자 빅3 중 두 사람인 친노계 문 의원과 범친노계 정세균 의원이 연대한다면 문 의원의 전당대회 승리는 거의 확실시 된다.

정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당의장, 산업자원부장관을 지낸 인사다. 당권 도전론 부각 이후 문 의원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다보니 최근 새정치연합 내에선 막상 전당대회가 시작되면 비노계 의원들이 모두 후보직을 사퇴해 문 의원 혼자 출마할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질 것이 뻔한 승부에 누가 나서려고 하겠냐”며 “불공정한 전당대회 과정에 불만을 품고 출마하지 않을 수도 있고 총선을 1년 남짓 남겨두고 친노계에 밉보일까 봐 다들 안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문 위원장이 취임할 때부터 이미 문재인 당대표 만들기 작전은 시작됐던 셈”이라며 “전당대회에서 친노진영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물밑에서 야금야금 준비하고 있었는데 비노진영이 이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 이미 대세를 돌이키기엔 늦었다. 분당론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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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