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눈길을 끌 만한 보고서 하나를 내놨다. ‘박근혜 정치를 넘어서’다. 보고서에는 ‘박근혜 정치’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궁지에 몰린 야권의 자기반성 및 대응전략이 담겨 있다. 그 내용을 <일요시사>가 자세히 들여다봤다.
세월호 참사, 인사 참사, 공약 파기,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하나같이 정부와 여당에 치명상을 입힐 사안들이 줄줄이 터졌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견고한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대선 이후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며 지지율이 반토막 났다.
요지부동 당·정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지난달 20~24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과반이 넘는 50.3%,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율은 43.1%,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20.9%다(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2.0%p).
같은 기관의 지난 대선 직전(2012년12월10~16일) 조사에서는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율은 48.2%(문재인 후보와 양자대결 구도 조사), 새누리당은 46.4%,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42.0%였다(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1.2%p).
이러한 흐름은 역대 한국 정치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까지 ‘이회창 대세론’이 거셌을 때도 새누리당 지지율은 30%대였다. 현재의 독특한 정치지형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정책연구원의 이진복 연구위원이 최근 작성한 ‘박근혜 정치를 넘어서’라는 보고서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일정한 답이 담겨 있다. 우선 이 연구위원은 박 대통령의 정치전략을 ‘51%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세웠던 ‘100% 대한민국’은 집권 후 사라졌고, ‘우파 51% vs 좌파 49%’의 우파 우위 ‘두 개의 대한민국 전략’ 정치가 이뤄지며 박 대통령에 대한 ‘묻지마 지지자’와 ‘묻지마 혐오자’로 국민이 양분됐다는 얘기다.
이러한 ‘진영 정치’는 앞서 노무현 대통령도 실시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개폐,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놓고 선명한 진보 정치를 한 것이 대표적 예다. 하지만 그는 진보진영을 활성화시켜 일그러진 역사를 바꾸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평가가 많다.
민주정책연구원 민병두 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의 진영정치는 반대진영에 대해서는 ‘경제’와 ‘민생’이라고 하는 것을 갖다 붙이며 단점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둘 다 진영정치를 했지만 방식과 결과는 차이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정치를 넘어서’ 보고서 주목
냉철한 현실 진단 및 대응전략 제시
보고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박 대통령이 ‘뺄셈정치’가 아닌 ‘덧셈정치’로 자기편을 플러스하는 정치를 선택하고 있다고 호평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이 연구위원은 “전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분당과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친박(친박근혜)계 공천학살과 달리 박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최초로 인기 없는 전정부와 차별화를 하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보수지지층의 대단결을 유지하면서 불안한 중도층에게 안정감을 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높은 지지율의 든든한 배경이 됐다는 것이 이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심지어 그는 “새누리당을 단순한 보수정당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중도까지 장악한 중도보수정당으로 인식해야 한다. 동일하게 (지지율이) 50%에 가까운 대통령을 (야권 지지자들이) 경멸하는 것은 자기위안일 뿐, 현실감각이 마비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대통령의 실정을 폄훼하기보다 넘어설 만한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난 총선부터 시작해 새누리당이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승을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기는 보수의 ‘수권DNA’에 대한 분석도 주목된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비상시에 보수의 관성과 구태를 깨는 유연성 ▲고정지지층을 모욕하지도, 그렇다고 극단적 애국 세력에 끌려다니지도 않는 안정성 ▲계보를 불문하는 ‘최적·최강후보’ 공천 등이 새누리당 연전연승의 배경이다.
박 대통령의 통치수법에 대한 분석도 눈길을 끈다. 보고서는 박 대통령의 통치수법을 크게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첫째, 여론조사 정치다. 집권 초를 어떠한 개혁 드라이브도 없이 보내면서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낮아진 국민 기대수준에 맞춰 지지율을 관리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일례로 박 대통령은 두 번의 사과를 했는데 한번은 지지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초노령연금 후퇴였고, 다른 한번은 여론의 지탄을 받은 세월호 참사 관련 사과였다. 그러나 여론이 유리하게 돌아서자 얼굴을 바꿔 냉혹한 대처를 보였다.
둘째, 국가원수 정치다. 국가원수의 초당적 외교안보 이슈에 집중하고 행정수반으로서 당파적 내치 이슈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 하며, 국내 정치와 관련해서는 ‘민생 vs 정쟁’ 구도의 슬로건형 국가원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대형 사건들이 어김없이 터졌고, 불리한 국내 이슈에는 침묵하며 유체이탈 화법으로 정치권을 비판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셋째, 국면전환 정치다. 국가기관의 선거중립, 안전 대한민국 등 거대 단일이슈형 개혁과제가 부상하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으로는 좌·우파의 시끄러운 소수의 문화적 이슈로 왜곡하면서 이를 조용한 다수 국민들이 중시하는 민생이슈로 물타기하고, 미시적으로는 능수능란한 언론플레이와 권모술수로 신속한 국면전환을 한다는 것이다.
야 ‘상상속의 서민’ 대변
야당을 향한 날선 지적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야당이 강한 야당에 대한 고정관념, 선악 이분법에 입각해 진영 논리에 매몰됐다고 분석한다. 또한 부자와 서민을 제로섬 관계로 여기는 심리, 부자를 적대하고 중산층을 무시하는 행태를 꼬집으며 ‘상상속의 서민’을 대변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있는 그대로의 서민에 맞추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서민을 기준으로 당위 일변도로 나가면서 오히려 현실의 서민을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그 결과로 서민이 보수를 지지하고 잘 사는 강남좌파가 진보를 지지하는 패러독스가 만들어졌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보수를 지지하는 현실 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자기 혁신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야당의 대응 전략으로 ‘박근혜 정치’의 허점을 파고들 것을 주문한다. 국회 내에서 ‘신뢰의 정치’ ‘공감의 정치’ ‘진짜 국민제일의 정치’를 실현하고, 외적으로는 시민단체와 역할을 분담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해법을 제시하는 수권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뢰란 쌓기는 어렵고, 한 번 잃은 뒤에 다시 얻기는 더 어렵다. 새정치연합이 수권정당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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