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치이고 저리 갈라진 ‘친노 현주소’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적 “우리가 동지가?!”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서 친노(친 노무현)의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어제의 ‘동지’였던 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때 정치개혁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친노’가 몰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노의 비참한 현주소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25일 국회서 열린 ‘제5회 노무현 대통령 기념 학술심포지엄’서 토론자로 나선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친노계의 좌장격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을 객석 맨 앞줄에 앉혀두고 친노계를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친노, 기득권 집단?
변해도 너무 변했다

이날 강 교수는 친노계로 분류되는 김현 의원의 세월호 유가족 대리기사 폭행 연루 사건 등을 언급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말했는데 지금 친노는 그 정신은 사라지고 권력을 누리는 기득권집단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또 대부분 강경파로 분류되는 친노계 의원들을 겨냥해 “나만 재선하면 된다는 생각에 운동권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며 “노 전 대통령이 성공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가 끝난 후 문 의원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 동의한다”는 짤막한 답변만 남긴 채 쓸쓸히 퇴장했다. 몰락한 친노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야권 정치인들에게 친노라는 간판은 한때 최고의 명예이자 정치적 프리미엄이었다. 친노는 정치개혁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선거에 나선 야권 후보들은 앞 다퉈 노 전 대통령과 자신의 친분을 과시했다.

당 분란의 주범? 당 내부서도 성토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강경파 낙인

유권자들은 친노라는 간판만 보고도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기꺼이 내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친노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급속히 변하고 있다. 친노라는 정치적 프리미엄은 극복해야 할 정치적 핸디캡으로 변했다.

이를 방증하듯 요즘 언론서 친노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수식어가 ‘강경파’다. 친노 강경파는 정치권서 명사처럼 굳어졌다. 강 교수의 지적처럼 친노가 운동권적 사고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정국을 거치면서는 새누리당과 보수언론뿐만 아니라 야권 내에서조차 친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끓기 시작했다. 이처럼 친노세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면서 친노계로 분류되던 의원들은 과연 친노라는 배지를 계속 달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7·30 재보선서 친노계로 분류되는 서갑원 전 의원이 야권의 텃밭인 호남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하는 이변이 연출되자 친노진영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이를 방증하듯 최근 들어 일부 의원들은 자신을 친노로 분류하는 언론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은 친노가 아니라며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계파분류는 무 자르듯 명확하지가 않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노 전 대통령의 인기가 크게 오르자 스스로 친노라고 칭하고 다니던 인사들이 친노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해지자 이제 와서 친노의 명찰을 떼어 내려 한다는 것이다.


친노명찰 뗄까?
친노는 고민 중

이 대목에선 새정치연합 조경태 의원의 “현재 친노는 친노가 아니라 매노(賣盧)”라는 비판이 뼈있게 다가온다. 조 의원은 비노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노 전 대통령후보 정책보좌역,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한 원조친노다. 조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따라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뒤 지난 17대 총선에서 부산 사하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조 의원은 과거 <일요시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현재 친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친노가 아니라 매노”라며 “노 전 대통령을 팔아서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조 의원은 또 “진정한 친노라면 노 전 대통령이 어려울 때 옆에 있어줘야 했다”며 “자기들이 유리하면 내세웠다가 불리하면 없다고 하는 것이 그 자체가 기회주의적인 작태”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친노색을 벗어 던지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노력을 ‘배신’이라고 평가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친노의 분화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친노계가 언젠가는 해야 할 홀로서기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언제까지 노 전 대통령의 인기와 정치적 자산에만 의지해 정치를 할 것인가? 계파주의를 청산하자며 친노 이미지를 청산하려는 사람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친노 프레임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세력에는 한때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중심에 있다. 이들은 노무현정부 시절 각각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과 왼팔로 불렸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안 지사는 2007년 대선에서 야권이 압도적인 표차로 패배하자 친노는 ‘폐족(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 전 지사도 최근 국회를 찾아 “중간층이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만큼 합리적이며 구체적인 정책이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라며 선명성 강화를 주장하고 있는 친노 강경파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두 사람과 결을 같이 하는 당내 인사들은 친노라는 명찰에 집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등 현대정치사를 좌지우지했던 계파들도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정계은퇴와 함께 자연스럽게 소멸됐다.

또 노무현이란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친노라는 계파가 유지된다면 내부의 분란은 어쩌면 당연하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나면서 정치권에서는 친노의 역사적 소임이 끝났다는 지적도 있다.

때문에 친노 꼬리표를 떼어내고 독자행보를 걷고자 하는 안 지사의 행보에 대해 ‘매우 영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반증하듯 문 의원이 주춤하는 사이 새정치연합 내에서 안 지사의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은 무섭게 상승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작 원조친노는 변화를 꾀하며 친노색깔을 지워가는 동안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친노간판에 기대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려는 구태의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 프리미엄?
정치적 핸디캡!

이 같은 친노의 현주소와 맞물리면서 안 지사는 단숨에 '친노 분화론'의 주인공이 됐다. 문 의원을 중심으로 단단히 뭉쳐 있던 친노계가 문재인계와 안희정계로 나눠지고 있다는 것이 친노 분화론의 핵심이다. 친노인사들 사이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안희정 카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 대선에서 무려 48%의 지지를 얻은 문 의원을 무시하긴 어렵지만 NLL대화록 공개 사태부터 세월호 동조단식, 이상돈 교수 영입 파동까지 문 의원이 보여준 미숙한 정치력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게 된 당내 인사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반작용으로 안 지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지난 대선에서 문 의원을 도왔던 이해찬 의원이 안 지사를 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 의원은 세종시가 지역구로 안 지사와 같은 충청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소문까지 떠돌면서 친노가 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줄을 잇게 된 것이다.

친노색 벗고 독자행보 가능할까?
적자생존 치열한 경쟁서 밀린 친노


충청권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해 각종 선거에서 충청권이 선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되면서 충청권에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안 지사의 주가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또 이렇게 민감한 때에 안 지사와 이광재 전 지사는 우연히도 같은 날 국회를 찾아 더욱 정치권의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친노계가 당내 최대 계파의 지위를 이미 잃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친노의 수장격인 문재인 의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친노가 최대 계파라는 말은 동의할 수 없다”며 “(당내 친노 의원이) 몇명 안 된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새정치연합 내에서 범친노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80여명에 달하지만 문재인계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들은 전해철, 박남춘, 김현, 윤후덕, 노영민, 윤호중, 홍영표, 김광진, 정청래 등 1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 외에 범친노계의 일체감은 이미 많이 엷어졌다는 분석이다.

범친노로 분류됐던 인사들 중 정세균계와 민평련 등은 이미 친노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까지 있다. 문 의원이 이끄는 친노계와 정세균 의원이 이끄는 정세균계는 차기 당권을 놓고 정면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친노의 분화
"한판 붙자!"

또 문 의원의 핵심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언제까지나 문 의원의 곁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과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두 사람이 정권의 탄압을 받는 등 힘든 시기에도 끝까지 곁을 지켰지만, 문재인계 중 그런 절개를 가진 인물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지금은 문 의원의 곁을 지키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도 과연 문 의원이 대권후보 자격이 있는 인물인지 헷갈려 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에 들어온 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문 의원이 차기 대권에 도전한다고 해도 얼마나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문 의원마저 정치권서 밀려난다면 친노라는 정치적 계파는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란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적자생존(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이 살아남음)의 법칙이 통용되는 정치 생태계서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고 노 전 대통령의 자산에만 의지해왔던 친노의 몰락은 어쩌면 당연하다”며 “친노가 부활하기 위해선 뼈를 깎는 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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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