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안철수 '권토중래' 시나리오

'그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몰라'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세월호 정국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을 겪으며 창당 후 최대위기를 맞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복귀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난 7·30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 전면에서 물러난 안 전 대표는 불과 두 달여 만에 다시 당 전면에 나서게 될까? 와신상담(臥薪嘗膽) 복귀를 노리는 안 전 대표의 권토중래(捲土重來) 시나리오를 <일요시사>가 미리 들여다봤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정치입문 1년여 만에 제1야당의 당대표 자리를 꿰찼고, 한때는 유력 대권주자로서 박근혜 대통령보다도 지지율이 높았다. 지금은 비록 지난 7·30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 전면에서 물러나 있지만 정치권에서 그의 권토중래(※어떤 일에 실패한 뒤 다시 힘을 쌓아 돌아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두 달 만에 복귀?
망설이는 안철수

문제는 그 시기와 방법. 그런데 세월호 정국으로 자중지란을 겪으며 창당 후 최대위기를 맞고 있는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안 전 대표의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 전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은 지 불과 두 달여 만이다.

안 전 대표의 복귀를 요구하는 쪽은 세월호 정국에서 강경파들과 각을 세웠던 중도파 의원들이다. 이들은 현재 각 계파 수장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범친노(친노무현)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도파의 이익을 대변할 중량감 있는 인사는 안 전 대표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특히 안 전 대표의 비대위 참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안 전 대표를 당내 중도파의 수장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다.

비대위 참여 거절한 진짜 속내는 무엇
좌절의 시간 접고 복귀 플랜 가동하나


현재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중도온건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약 30여명 정도. 당내 세력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이었던 안 전 대표로서는 단숨에 현역의원 30여명을 거느리는 계파의 수장이 될 수 있는 솔깃한 제안이다.

그런데 정작 안 전 대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직전 당 대표로서 7·30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고, 중도파들의 요구에 따라 비대위원직을 맡게 된다면 특정 계파를 사실상 대변하게 돼 당내 계파주의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며 중도온건파의 비대위 참여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비대위 참여는 안 전 대표가 과거 당 대표 시절 ‘계파 패권주의를 해소하겠다’고 한 선언을 스스로 깨는 모양새라 매우 민감한 문제다.

하지만 일각에선 안 전 대표가 비대위 참여를 망설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 새정치연합의 위기는 간판만 바꿔 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선거 때마다 진보 진영 간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새정치연합은 계파 간 이해관계가 실타래보다 더 복잡하게 꼬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등판하는 것은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생명만 더 깎아먹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숨에 계파수장?
실패하면 쪽박

실제로 새정치연합의 계파갈등은 ‘DJ가 살아 돌아와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새정치연합은 그동안 크고 작은 이합집산을 계속 해오다보니 각 계파별 이질감이 클 수밖에 없다. 또 당권이 바뀔 때마다 당의 말단 당직자까지 변경될 정도로 계파별 이해관계도 크게 엇갈린다. 계파 없는 정당은 없다지만 새정치연합의 계파갈등은 타 정당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골이 깊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 대표가 비대위에 참여한다고 해도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 전 대표는 어떤 방식으로의 권토중래를 계획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전 대표는 새정치연합의 주가가 바닥을 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 새정치연합으로 차기 총선을 치르는 것은 자살행위다. 당 지지율은 창당 후 최저치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지지기반인 진보진영은 물론이고, 호남에서조차 새정치연합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결국 마지막엔 당이 구원투수로 안 전 대표를 호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굳이 차기 전당대회에 출마해 이전투구를 하는 것보단 현재 정치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나 당이 자신에게 구조를 요청하기를 기다린다는 전략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비록 미숙한 정치력으로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지만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안 전 대표만큼 대중적 지지를 받아본 정치인이 누가 있나? 게다가 그의 새정치는 여전히 상징성이 있다. 당이 지금보다 더 위기에 몰리면 정말 뼈를 깎는 심정으로 그에게 전권을 주면서 그가 제시하는 정치혁신안을 모두 수용하고 새정치를 해보라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내다봤다.

특히 이 같은 기대감은 당내에서 중도노선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우클릭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안 전 대표의 숨겨진 멘토로 알려진 새정치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은 “앞으로 야당이 가야 할 길은 중도우파”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내에서 중도노선을 대표하는 인물은 바로 안 전 대표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당무복귀로 급한 불을 끄긴 했지만 여의도 주변에선 야권발 정계개편 가능성도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을 통해 권토중래를 노릴 것이란 시나리오다. 중도파 사이에서는 안 전 대표가 비대위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중도파가 차기 총선 공천경쟁에서 밀리게 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당 안팎의 비대위 참여 요구에도 요지부동하고 있다. 때문에 안 전 대표가 딴 생각을 품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특정 계파가 당권을 잡더라도 다른 계파가 곧바로 흔들기를 시작해 어느 쪽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다. 지난 10년동안 새정치연합의 지도부는 무려 28번이나 교체됐다. 따라서 안 전 대표가 최후의 카드로 신당 창당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안 대표가 굳이 신당 창당 움직임을 먼저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차기 총선을 앞두고 분당, 당명 변경 등 큰 파도가 한 번 몰아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안 전 대표가 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큰 파도 기다리는 중?
물살 잘 탈 수 있을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이번 비대위를 통해 새정치연합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는 것 같다”며 “투자자로서 폭락하는 주식을 굳이 사들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안 전 대표가 우선 김한길 전 대표 등 대리인을 내세워 당내 기반을 닦고 복귀를 노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안 전 대표는 비대위 참여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 전 대표는 현재 비대위 참여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대표와 발을 맞췄던 전병헌 전 원내대표도 최근 “(재보선 참패에) 책임지는 자세는 (비대위에) 함께하는 것에 있다”고 김 전 대표의 비대위 참여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번 비대위는 차기 당권 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차기 당권은 차기 총선은 물론이고 대권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안 전 대표가 책임론을 내세우며 언제까지 외면할 수만은 없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내실 다지기?
신당 창당으로 마지막 도박?


지난 7·30재보선을 계기로 안 전 대표와 김 전 대표의 사이가 완전히 멀어졌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원내에 세가 없고 당무경험이 없는 안 전 대표에게는 김 전 대표가 꼭 필요하고, 김 전 대표에게도 안철수와 새정치라는 상징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안 전 대표가 당 전면에 다시 복귀하게 된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그 옆엔 김 전 대표가 함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 전 대표가 지금 당장 일희일비하는 성급한 움직임을 보일 게 아니라 좀 더 멀리 내다보고 내실을 쌓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안 전 대표가 당장) 조직과 세력을 만들 것이 아니고 오히려 비전을 좀 더 내용 있게 만드는 쪽이 좋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지난 넉 달간 당 대표를 역임하며 안 전 대표는 정치적 역량의 부족함을 노출한 것이 사실이다. 당장 다음 대선에만 집착하며 허둥대다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 전 대표가 정치에 입문한지 아직 2년이 채 안된 ‘정치초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새정치의 내용을 좀 더 구체성 있게 정립하고 자신과 정말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차근차근 모아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실 다지기로
다시 부활할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초선의원으로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야만 한다”며 “안 전 대표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안 전 대표의 이미지 정치는 한계가 있고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조금씩 성과를 낸다면 국민들의 마음을 분명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끝으로 “안 전 대표가 재보선 패배 이후 정치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처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상품성과 가능성은 여전히 충분하다. 단 4개월의 실패로 그의 정치생명이 모두 끝났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안 전 대표가 정치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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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