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①사생결단 박근혜 '골드문 플랜'

"추석민심 잡아야 정국주도권도 잡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한 국회의 파행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이 기간 정부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면 향후 국정운영과정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추석민심을 잡기 위해 구상하고 있는 이른바 ‘골드문(Gold Moon) 플랜’은 무엇일까?

추석 여론은 민심의 바로미터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추석민심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한 국회의 공전이 길어지면서 여야 모두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세월호 정국을 벗어날 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선물 무엇?
민심 움직일까?

현재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세월호 정국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야 간 대립이 길어진다면 책임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추석민심을 잡기 위해 어떠한 선물 보따리를 준비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민생행보를 강화하며 꽉 막힌 세월호 정국의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전통시장과 수해지역 등을 잇달아 방문하는 민생행보로 세월호특별법 통과에만 매달리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산적한 주요 현안을 내팽개치고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무책임한 태도는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이 그동안의 장외투쟁에서 항상 빈손으로 국회에 복귀했다는 점을 상기하며 ‘제 풀에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민생행보 강화, 야권 따돌리기?
사정태풍, 세월호 이슈 잠재울까?


새누리당 내부에선 “이번 기회에 툭하면 장외로 나가는 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는 강경론도 힘을 얻고 있다. 여권이 이 같은 강공을 펼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여론이 여권에 좀 더 유리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KBS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정치연합이 장외투쟁을 중단하고 국회에 등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70%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세월호특별법 논란이 길어지며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는 정부여당의 논리는 중소상공인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새정치연합을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추석연휴를 맞이해 민생행보의 일환으로 직접 봉사활동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추석연휴에도 유일한 공식일정으로 양로원 방문을 택한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서울 강동구 고덕동 서울시립고덕양로원을 찾아 노년층 유권자들을 만나 민심을 청취하고 가족 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한가위를 보내는 노인들을 위로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봉사활동은 논란의 여지가 적고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된다.

엇갈린 전망
박근혜의 선택은?


반대로 박 대통령이 추석을 맞아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야권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조차 박 대통령이 대화에 나서길 요구하는 상황에서 침묵이 너무 길어지면 박 대통령이 정치실종에 대한 책임론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장외투쟁에 침묵으로 일관하다 추석을 앞두고는 여야 대표와 3자회담을 실시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도 박 대통령이 여야 대표와의 3자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의 대화제의를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당내에서 박 대통령이 유족과 만나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어 박 대통령이 추석을 전후해 세월호 유족과 직접 만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이 당장 수사권, 기소권 보장을 유족들에게 약속하진 못하더라도 대통령이 유족과 직접 대화에 나선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꽉 막힌 정국을 돌파할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지율이다. 추석민심이 정부여당 책임론에 쏠린다면 박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겠지만,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정부 여당의 지지율이 오름세를 지속한다면 야권이 더 이상 장외투쟁을 지속할 명분이 없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달 29일 민생법안 조속처리를 촉구하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최근엔 보수진영의 SNS를 활용한 여론전이 빛을 발하고 있다. 과거 진보진영의 놀이터로 불렸던 SNS에서 보수진영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던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이른바 폐쇄형 SNS인 카카오톡을 이용해 보수진영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최근 ‘유언비어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도 결국 SNS여론전에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여론 변화와 관계없이 국회 공전이 길어질수록 박 대통령의 부담도 커지는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여당의 양보가 이뤄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현재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당 몫의 특검 2명을 유가족이 추천한 후보군에서 뽑거나, 추천권 자체를 야당과 유족에 넘기되 조사 범위를 한정하는 방식 등 다양한 중재안이 논의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과 직접 대화에 나서기 어렵다면 방송출연 등을 통해 터닝 포인트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박 대통령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혀왔던 불통 논란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불통 논란을 피하기 위해 추석 전후로 기자회견을 개최하거나 가벼운 대담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 이미지 쇄신을 꾀하는 것도 괜찮은 정국돌파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추석연휴에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마련된 KBS의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시낭송과 합창 등을 했다. 방송에서 보여준 이 전 대통령 부부의 모습은 광우병 쇠고기 촛불 파동 이후 크게 훼손된 이미지를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의 승부수는 역시 ‘정책’이라는 분석이다. 올해에도 박근혜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실패한다면 민심이반현상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적으로는 추석경기를 띄우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추석민심을 크게 좌우할 물가안정과 관련해서는 이미 과일·채소·생선 등 추석 성수품을 중심으로 관리에 나선 상태다. 이와 동시에 정부여당이 추석을 맞아 국민들의 이목을 끌만한 새로운 대형 정책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

대형정책 있을까?
경제 살아날까?

현재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각종 정책을 추진하며 경제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효과가 미비하다는 평가다. 최 부총리의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으로 부동산 경기가 어느 정도 살아나고 있지만 이 효과는 수도권 지역에만 국한되고 있어 문제다.


따라서 비수도권 지역 주민들이 체감할 만한 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추석을 기점으로 정부여당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추진해온 국민행복주택 사업,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무상보육 및 교육 확대 등의 복지정책은 선심성 정책이라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박 대통령이 여야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 사정으로 꽉 막힌 정국을 돌파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홍원 총리가 세월호 참사 이후 밝힌 국가개조 구상에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것은 소위 관피아 척결이다. 관피아 척결을 위해 시작된 사정 태풍은 어느새 국회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현역 국회의원 5명이 소환조사를 받았고 이 중 3명이 구속 수감됐다. 현재 직간접적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현역 의원은 20명이 넘는다.

유족과의 대화, 가능성은 열려 있어
군·검 인적쇄신카드도 만지작만지작


사정 칼날을 앞세운 정부의 정면 돌파는 점점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만약 검찰이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게 된다면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야권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주장은 힘을 잃게 된다.

또 장외투쟁에 몰두하고 있는 야권은 사정 칼날 앞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적폐 청산에 올인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결국은 꽉 막힌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물타기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들려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추석을 전후해 청와대발 인적 쇄신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추석연휴는 박 대통령이 모처럼 자신의 생각을 조용히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사정 칼날
정국 돌파용?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수사 과정에서 여러 허점을 노출했던 검찰과 최근 윤 일병 사태로 집중포화를 맞은 군 인사들이 인적쇄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인적쇄신카드를 섣불리 꺼낼 경우 정부여당이 또 다시 인사청문회 늪에 빠질 가능성도 있어 박 대통령이 인적쇄신카드를 정국돌파용으로 쉽게 사용하진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더 우세하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추석을 기점으로 꽉 막힌 정국을 돌파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향후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며 “추석을 전후해 야권도 장외투쟁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만큼 추석은 세월호 정국을 돌파할 절호의 기회”라고 조언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역대 대통령 추석선물은?
대통령 선물 선정되면 '대박'


추석을 맞아 지인들에게 돌릴 선물을 준비하느라 고심하는 것은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국민정서에 반하는 고가의 선물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명색이 대통령이 보내는 선물인데 너무 값어치가 없어보여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 측은 심사숙고 끝에 명절선물을 선택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추석을 앞두고 사회 각계 주요 인사들과 독거노인 등 사회적 배려계층 등에게 국산 농산품인 횡성 육포와 밀양 대추, 가평 잣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올 추석선물은 지난해와 비교해 찹쌀이 빠지고 대추가 들어갔을 뿐 구성에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육포와 잣은 박 대통령이 과거 정치인 시절부터 측근과 지지자들에게 여러 차례 선물할 정도로 선호하는 품목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측은 “3가지 우리 농산물로 명절의 풍성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며 “우리 농축산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역대 대통령도 명절 때면 지인과 국민들에게 선물을 보냈다. 단골메뉴는 지역특산품이다. 우리 농어민과 축산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봉황이 새겨진 인삼’ 선물을 주로 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역대 대통령의 선물은 우리 농축산물 등 대중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 입문 초기부터 부친이 고향에서 올려 보내는 거제도산 멸치를 명절선물로 선택했다. 야당시절에는 한해 3000상자, 여당 대표가 된 이후엔 5000상자씩 추석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의 고향에서 기른 멸치’라는 그럴듯한 수식어가 붙어서 거제도산 멸치는 소위 ‘대통령 멸치’로 불리며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특정지역 생산물만을 줄기차게 명절선물로 보내는 것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선 부정적인 견해도 없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신토불이 농산물 선물
대통령 선물 선정 물밑로비전도 치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과 한과, 녹차를 자주 선택했다. 김 전 대통령이 보낸 ‘김’ 선물의 경우에는 고향 전남 신안에서 만든 특산물이었지만 녹차와 한과 등은 특정지역의 생산물을 고집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특이하게 선물을 받는 대상이나 구체적 인원을 철저히 대외비에 부쳤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을 공개할 경우 받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게 될 서운함을 고려한 탓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추석선물과 관련해 가장 큰 곤욕을 치른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자칫 명절선물이 유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아무에게도 추석선물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명절 때마다 안부인사와 함께 선물로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 한국의 전통문화인데 대통령이 이런 문화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감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또 명절특수를 기대했던 관련업계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선택이 자칫 공무원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쳐 서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고심 끝에 2006년 추석 때는 명절선물을 보냈지만, 컨테이너나 임시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집중호우 피해자와 소년소녀가장에게 차와 다기세트를 선물해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역화합을 위해 전국 8도 특산물을 고루 담아 보냈다.

한편 대통령의 선물로 선정되기 위한 물밑 로비전도 뜨겁다. 대통령의 선물목록에 한 번 올라가면 최고의 품질이란 소문이 퍼져 매출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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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