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손에 쥔 '여의도 X파일' 막전막후

여기서 밀리면 빈손 "갈 데까지 가보자"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검찰과 정치권이 제대로 한판 붙었다. 이미 현역의원 3명을 구속한 검찰은 정치권을 대상으로 한 전방위 수사를 더욱 확대하고 있고, 정치권은 검찰개혁을 부르짖으며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당장 새정치연합은 ‘야당탄압저지대책위’까지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가뜩이나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성추문으로 체면을 구긴 검찰은 이번만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여의도 X파일’을 들이밀며 맞불을 놓고 있다.

서초동과 여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7·30재보선이 끝나자마자 검찰의 칼끝은 정치권을 향했다. 벌써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현역의원의 수가 20명을 넘어섰다. 현역의원들이 이처럼 무더기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초강경 검찰
초강경 정치권

게다가 검찰이 최근 내사를 벌이고 있는 정치인들이 추가로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은 잔뜩 긴장한 모양새다. 지금은 내사단계지만 검찰은 이미 뇌물을 줬다는 진술과 자료를 확보한 상태로 곧 수사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여의도 X파일’이다.

덧붙여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대화록 유출 사건’ 등의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될 정치인의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치권의 이목이 서초동으로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검찰의 정치권 사정은 연례행사처럼 있어왔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인 검찰의 초강경 대응에 정치권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검찰은 지난달 19일 기습적으로 여야 의원 5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어 21일 의원들이 일제히 영장심사기일 연장을 신청하자 검사 3명과 수사관 40명을 국회로 보내 강제구인을 시도했다. 현직 국회의원에 대한 강제구인 시도는 10여년 만에 처음이었다.

'방탄국회' 열자 강제구인까지, 선공 날린 서초동
'감히 우리를 건드려?' 여의도, 검찰개혁안 만지작

검찰이 구인장 집행에 나서자 자신의 의원실에서 버티거나, 어디엔가 숨어 있던 의원들은 결국 자진출석을 약속하며 백기를 들고 말았다. 시쳇말로 의원들은 모양이 빠졌고, 이는 정치권이 검찰에 백기를 든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검찰이 이처럼 초강수를 둔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검찰 측은 이날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 국회 회기가 이어지면서 수사가 장기화될 수 있고, 세월호 참사 이후 관료조직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 인사들만 처벌하지 못할 경우 법집행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측은 자택에서 뭉칫돈이 발견된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의 해운비리 의혹과 철피아 비리 의혹에 연루된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 등 여당 의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어지자 이를 ‘물타기’ 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검찰이 이번에 유독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한 것을 놓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과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공연음란행위까지 충격적인 사건이 이어지면서 검찰에 쏠린 비판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기획수사는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검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정치권 비리를 내사해 왔는데 김수창 지검장 사태가 불거지면서 물타기를 당한 쪽은 오히려 우리”라며 “공들여 준비해온 수사가 폄훼당하고 있는 것이 화가 나고 가슴 아프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정치권 탄압?
검찰 탄압?

한편 새정치연합은 검찰의 이번 수사를 표적수사, 끼워넣기수사, 물타기수사라며 강력 반발하면서 검찰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죄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검찰이 기습작전하듯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강제구인을 시도한 것은 명백한 야당탄압이라며 ‘야당탄압저지대책위’까지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해당 대책위는 조정식 사무총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았고, 간사를 맡은 진성준 의원을 비롯해 김현미·김영록·진선미·박수현·박범계·전해철·정청래 의원이 참여한다. 당 법률위원장이자 원내대변인인 박범계 의원은 “검찰에 의한 야당 탄압에 결연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사실상 검찰에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검찰이 최근 수사에서 정치권의 쪼개기 후원금과 출판기념회를 불법정치자금 수집통로로 지목한 것을 놓고 벌집을 건드린 셈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오세훈법 시행 이후 쪼개기 후원금과 출판기념회를 통한 정치자금의 모금은 공공연히 허용되어왔던 문제인데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방식의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비리 정치인 명단에 오를 수 있다는 공포가 여의도 전체에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반응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유무죄 여부를 떠나서 정치인으로서는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치명적이다. 이런 일로 매스컴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나면 다음 선거에서 살아 돌아오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일단 여야 정치권은 바짝 엎드리면서도 속으로는 검찰 수사에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검찰에 유리하게 흘러가던 전투는 새정치연합 신계륜, 신학용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청구가 기각되면서 반전되기 시작했다. 일단 새누리당 박상은, 조현룡 의원과 새정치연합 김재윤 의원을 구속시키면서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지만, 야당탄압 주장에 대해 증거로 말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던 검찰의 체면은 구겨지고 말았다.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검찰은 입법로비 당사자인 김민성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이사장의 진술 외에는 별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새정치연합 소속 의원들 중 유일하게 구속된 김재윤 의원의 경우는 김 이사장과 김 의원이 만난 당일 김 의원의 보좌관이 국회 내부 ATM에서 계좌로 받은 돈을 입금하는 장면이 CCTV에 잡혀 구속이 결정됐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에 대해 ‘몸통’은 풀려나고 ‘깃털’은 구속됐다며 추가 수사의지를 불태우며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계획이지만 구속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새정치연합에선 검찰의 부실수사, 표적수사가 드러났다며 반발하고 있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야권이 체포동의안 통과를 거부할 명분이 생긴 데다가 김 이사장의 진술 외에는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안 속도?
정치권개혁 속도?

법원의 영장기각 이후 새정치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대한민국 검찰이 늘 정기국회를 앞두고 8월이면 연례행사처럼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야비한 장난을 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때문에 검찰이 섣부르게 정치권을 건드린 대가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검찰개혁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수사가 야당 탄압이 분명하다며 이미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우리를 잘못 건드린 것”이라며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이처럼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국민들이 검찰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정권의 하수인처럼 움직여온 검찰을 개혁할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죄 판결나도 비리명단 오르면 이미지 끝장
복수 다짐하지만 속으론 납작 엎드린 정치권

실제로 정치권이 쥐고 있는 패는 다양하다. 정치권이 검찰개혁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 검찰의 권한이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정치권에서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등을 법조계 외부 인사로 임명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개혁안이 관철된다면 검찰은 물론이고 법조계 전체가 무척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또 검사장을 절반으로 줄이고 고위급 검찰인사 임명 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케케묵은 갈등인 검경 수사권 문제에서도 정치권이 경찰의 손을 적극적으로 들어줄 가능성도 있다. 기소권의 독점으로 높은 도덕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검찰이 잇따라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거나 도덕적 해이현상을 보이면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이미 충분한 명분을 쌓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정치권은 검찰의 그간 비리를 다시 들춰내면서 검찰의 뼈를 깎는 쇄신책을 요구하고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최근 공연음란행위가 적발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해임되지 않고 스스로 사표를 쓰고 나가면서 별다른 제재 없이 공무원 연금을 받고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기도 했다. 일각에선 정치권과 검찰의 진흙탕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수사에 올인
판 커진 도박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검찰은 더욱 물러설 수 없게 됐다. 만약 이번 수사에서 다수의 정치인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된다면 검찰을 향한 비판여론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검찰 개혁안에 속도를 낼 명분을 얻게 된다.

반대로 검찰이 여야 정치인들의 비리의혹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들을 찾아낸다면 정치권의 검찰개혁 주장은 오히려 검찰탄압으로 둔갑하게 된다. 검찰이 이번 수사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같은 이유로 정치권 역시 당분간은 검찰 흔들기에 몰두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난데없이 벼랑 끝 승부를 펼치게 된 서초동과 여의도.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여의도 X파일을 쥐고 있는 서초동의 움직임에 여의도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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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