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인근에서 싱크홀(지반 침하로 생긴 구덩이)과 거대 동공(지하의 빈 공간)이 잇달아 발견돼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즉각 조사에 나선 서울시는 중간조사 결과로 지하철 9호선 공사가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잠정 결론을 내놨다. 감독소홀 책임은 외면하고 시공사인 삼성물산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양새다. 그러나 삼성물산이 수년전 서울시에 제출한 시공계획서에 공사구간 지반의 취약성과 공법, 동공의 존재 등에 대한 내용이 모두 담겨 있어 서울시가 위험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비를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 싱크홀과 동공이 잇달아 발견되며 주민들이 불안을 넘어 공포감에 휩싸이고 있다. 8월21일 기준으로 올해 송파구에서 발견된 싱크홀은 6개, 동공도 6개다. 멀쩡한 땅이 갑자기 꺼지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불안해하지 않을 국민들은 거의 없다. 특히 싱크홀 발생 현장 인근 주민들은 더욱 좌불안석인 상황이다.
싱크홀 공포 확산
송파구에서는 지난 6월29일 지름 0.6m, 깊이 0.1m의 미니 싱크홀이 발견된 이후 싱크홀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다음날에는 지름 0.5m, 깊이 0.05m 싱크홀이 발견됐고, 7월에도 지름 0.5m에 깊이가 각각 0.3m, 1m인 싱크홀 2개가 발견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싱크홀 규모가 작았지만 8월 들어서는 규모가 큰 싱크홀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지난 5일 석촌지하차도 입구에 지름 2.5m, 깊이가 10m나 되는 거대한 싱크홀이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18일까지 석촌지하차도 인근에서 길이가 80m나 되는 대형 동공을 포함해 7개의 싱크홀 또는 동공이 발견됐다.
21일에도 방이사거리 인도에서 가로 0.6m, 세로 2m, 깊이 1.5m 싱크홀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와 관련해조사에 나선 서울시는 지난 18일 중간 조사 결과로 석촌지하차도 주변에서 발견된 싱크홀과 동공은 지하철 9호선 터널공사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천석현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견된 싱크홀이 지하철 터널공사 노선을 따라 생긴 것으로 보아 지하철 터널공사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확한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 중으로 추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설명과 달리 시공사인 삼성물산 측이 2~3년 전 서울시에 제출한 시공계획서에 따르면 해당 공사구간 지반의 취약성과 공사기법, 심지어 일부 동공의 존재까지 모두 보고가 됐다. 이와 관련해 삼성물산 측은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책임소재 파악은 그 다음의 문제”라며 “우선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예정”이라고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수년 전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위험성을 알렸을 때는 시가 별다른 대책마련을 지시하지 않고 허가를 내줬다가 싱크홀·동공 문제가 불거지가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모양새여서 억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삼성물산, 수년전 공사구간 지반 취약성, 동공 존재 서울시 보고
서울시 대책 마련 전무…감독소홀 논란에도 책임은 시공사 전가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우리는 비용만 지불하게 되어있다”며 “계약상에 설계와 시공을 책임지는 건 삼성물산이다”라고 분명히 했다. 시공계획서 검토 등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시공계획서에 검토는 위탁업체인 감리회사가 판단했고 서울시는 승인을 내준 것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사전에 문제를 파악하고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다가 문제가 발생하자 시공사 탓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서울시에서 이뤄지는 공사의 관리·감독 책임은 기본적으로 시에 있기 때문에 위험성을 보고 받고도 대책 마련을 지시하지 않은 서울시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시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싱크홀 발생 지역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은 공포감 수준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방이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도로, 인도가 갑자기 푹 꺼지는 현상이 계속해서 발견되는데 무서워서 어디 돌아다니겠냐”며 “이러다 집도 꺼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수도권 주민 대다수가 최근 들어 잇달아 발견되는 싱크홀에 불안해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일 경기개발연구원이 공개한 ‘도시를 삼키는 싱크홀, 원인과 대책’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싱크홀의 불안감을 묻는 질문에 매우 불안 53.3%, 불안 41.7%로 답해 무려 95.2%의 주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 사회에 위협이 되는 재난으로 홍수 및 태풍(39.6%)에 이어 싱크홀이 29.9%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조사기간 : 8월14일, 조사대상 : 수도권 성인남녀 1000명, 조사방식 : 모바일 설문조사, 표준오차 : 95% 신뢰수준에 ±3.1%p)
이처럼 주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되자 서울시는 주민불안 해소를 위해 싱크홀 발생지점 인근 모든 건물에 균열, 기울기 등을 측정하는 계측기를 달고 특별계측기동반을 만들어 매일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시공된 연약지반 터널 주변의 지반을 이달까지 심층조사하고 석촌지하차도 구조물 안전진단 및 주변 지반 보강을 오는 9월까지 실시하기로 했다.
정치권 차원에서도 싱크홀에 대한 대책 마련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지난 21일 오후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갖고 싱크홀 예방과 처리를 위한 제도를 만들고 예산도 확보키로 했다. 또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싱크홀 태스크포스팀을 가동해 오는 11월 말까지 결과보고서를 내놓기로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조원철 교수는 “도시의 매립지역에선 전부 싱크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지하수 유동이 큰 곳은 싱크홀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하수 영향평가 등을 통해 싱크홀 발생 가능성을 미리 타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사고 전조?
대형사고 이전에는 관련 징후와 작은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미국 트래블러스 보험사 관리 감독자였던 하인리히가 저서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1931년)에서 소개한 ‘1:29:300 법칙(일명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산업재해가 발생해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다고 한다.
이는 각종 안전사고에도 적용되는 법칙으로 대형사고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관련 징후와 작은 사고가 나타난 후 발생하기 때문에 전조가 보일 때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면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작은 징후들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무시했을 경우에는 대형참사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싱크홀에 대한 철저한 원인규명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더 큰 싱크홀, 더 큰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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