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새누리당이 7·30재보선을 전후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외면하고 적당한 보상·지원으로 세월호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직 실종자 10명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고, 희생자 유족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 상황에서 '이제 그만 세월호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누리당의 행보에는 특정한 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새누리당의 태도가 7·30재보선을 전후해 확연히 바뀌고 있다. 당초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정한 처벌 입장을 밝혔지만, 밝혀진 것도 처벌받은 이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그만 세월호를 잊자'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지난달 24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주호영 정책위의장의 발언으로 분석된다.
새누리 말 바꾸기
당시 주 의장은 "(세월호 참사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다"라며 "(희생자 유가족 등에게) 세제 혜택이나 특별한 지원이 많은데, 우리의 기본입장은 천안함 피해자들보다 과잉배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19일 대국민 담화에서 언급한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 것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 등의 발언과 배치된다.
또한 김무성 대표가 7·30재보선 지원유세에서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없도록 당과 정부에서 철저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엄벌하겠다"고 외쳤던 것과도 어긋난다.
그러나 주 의장의 발언 이후 친박 핵심인사인 홍문종 의원도 박 대통령의 휴가기간인 지난달 29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세월호는 일종의 해상교통사고다"라고 재차 그 의미를 축소했다.
세월호 실종자 10명이 아직 차가운 바다 속 어딘가에 잠겨있고, 희생자 유족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 상황에서 나온 박 대통령의 휴가가 그 자체로 '이제 그만 세월호를 잊자'는 메시지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세월호 정국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박 대통령의 휴가는 그 자체로 당에 세월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박 대통령이 직접 약속한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서도 새누리당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원하는 수사권·기소권을 가진 특별법 제정 요구를 '전례가 없다'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 등의 이유를 대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후 7·30재보선에서 당초 패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1대 4로 대승을 거두자 새누리당의 입장은 한층 더 강경해졌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지난 1일 단식 농성에 들어간 희생자 유족들을 '노숙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세월호 정국에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여당이 앞장서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는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언은 새누리당의 세월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후에는 공공연하게 '세월호를 잊자'는 말이 터져 나왔다. 지난 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온 "세월호 정국 때문에 여러 가지가 막혀 답답하다"(이완구 원내대표) "세월호에 갇혀 민생과 서민이 어렵고 힘들고, 심하게 얘기하면 죽어 가는 것을 절대로 좌시해서는 안 된다"(이현재 정책위 부의장) 등이 대표적인 예다.
재보선 전후해 세월호 참사 관련 입장 변화
적당한 보상·지원으로 세월호 문제 덮을 듯
대통령 여름휴가…당에 '세월호 외면' 메시지?
특히 새누리당은 이날 김을동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세월호피해자지원특위'를 출범시켰다. 희생자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지만, 적당한 보상과 지원으로 세월호 문제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심지어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을 약속했던 김무성 대표는 지난 6일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해 진도에 체류 중인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에게 돌아와 정상업무에 복귀할 것을 당부했다.
세월호특별법 처리를 놓고는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요구하는 진상조사위 활동을 요구하는 희생자 유족의 안과 야당이 절충안으로 제시한 수사권을 담은 진사조사위 활동 안을 모두 거부했다.
결국 지난 7일 여야 원내대표가 극적으로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한 주요 내용에 합의했지만, 희생자 유족들과 야당의 의견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세월호특검을 수용하고, 진상조사위 구성에 유가족 3명이 참여하도록 한 것이 양보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지난 5월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부분이다.
결국 희생자 유족의 의견은 무시됐고, 새누리당이 주장했던 방식 그대로 세월호특별법이 합의된 것이다. 이에 송주명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은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진상조사 대상인 정부여당에게 조사의 주도권을 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400만명이 넘게 서명한 국민의 뜻과도 어긋나는 야합은 반드시 파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민여론도 희생자 유족들에게 더 우호적인 상황이다. 선거기간과 맞물린 지난달 29~31일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설치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53%로 과반을 넘었다. 반면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24%에 불과했다.
선거 이후인 지난 2~3일 '리서치뷰'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으로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50.9%로 과반이 넘었다. 여기에 '수사권만 부여해야 한다'가 19.1%로 수사권 부여에 대해 국민 10명 중 7명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여야가 합의한 '수사권·기소권 모두 미부여' 의견은 16.7%에 그쳤다.
외면은 오판
국민여론은 희생자 유족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무능과 부실이 만들어 낸 인재인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철저하게 밝혀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무려 304명의 생명이 억울하게 희생된 세월호 참사는 새누리당의 외면으로 덮어질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 민심이다.
한 희생자 유족 측 관계자는 "만약 새누리당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재보선 승리로 덮겠다는 판단을 했다면 큰 오판을 한 것"이라며 "이대로 덮기에는 세월호 참사는 너무 큰 사건이고, 반드시 진상이 밝혀져야 할 사건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