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장 릴레이 대담>⑥ '대권행보 가속도' 홍준표 경남도지사

"결단 없는 정치는 무책임한 정치"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지방선거가 여야의 격전 끝에 절묘한 무승부로 끝이 났다. 여야 어느 쪽의 손도 확실하게 들어주지 않은 선거결과는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준엄한 경고장이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당선된 각 광역단체장들은 일제히 민선6기의 임기를 시작했다. 국민들이 보낸 경고장을 받아든 그들은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전국 신임 광역단체장들과의 릴레이 대담을 준비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무척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검사 출신인 홍 지사는 평검사 시절 자신에겐 그야말로 까마득한 상관인 고검장을 구속기소하는가 하면,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당시 대통령의 친형을 구속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광주지검으로 쫓겨났다가 급기야는 수사부서에서 아예 배제돼 검찰을 떠나야만 했다. 그만큼 홍 지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외골수였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한 후 홍 지사의 외골수적 성격은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됐다. 지난 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진주의료원 사태가 대표적이다. 홍 지사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당 내에서조차 홍 지사가 너무 독단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정작 홍 지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독단적이라는 비판에 ‘독단’이 아니라 ‘결단’이라고 항변한다.

홍 지사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통도 중요하지만 소통에 발목이 잡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결단 없는 무책임한 정치로는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재선에 성공하며 대권행보에 더욱 가속도가 붙은 홍 지사를 만나봤다.
다음은 홍 지사와의 일문일답. 
   
- 늦은 감은 있지만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홍 지사께서 계획하고 계신 민선6기 도정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입니까?
▲ 민선6기 도정에서 제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는 ‘경남미래 50년 사업’과 ‘서부권 대개발 사업’입니다. 경남은 과거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만든 기계산업과 조선산업으로 40년을 먹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한계에 직면해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합니다. ‘경남미래 50년 사업’을 통해 경남이 50년간 먹고 살 산업을 임기 내 완성하겠습니다. 아울러, 면적은 경남 전체의 절반이 넘지만 인구는 22%, GRDP는 17%에 불과한 서부경남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서부 대개발을 추진하겠습니다.

- 두 사업을 통해 앞으로 경남의 산업지도를 확 바꾸겠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입니까?
▲ 우선 18개 시군별 성장잠재력에 맞는 40개 전략사업을 발굴해낼 것입니다. 이미 전략사업 중 항공우주, 나노융합, 해양플랜트 3개 국가 산단은 지난 3월 정부에서 국가지원 특화산단으로 선정돼 임기 내 조성이 마무리될 것입니다. 또 진해 글로벌 테마파크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됩니다.

이를 통해 38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항공우주산업과 항노화 산업은 서부권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도청 서부청사를 조기에 건립하고 도 산하 일부 공공기관을 서부권으로 이전하겠습니다. 남부내륙고속철도와 함양-울산 간 고속도로를 조기에 완공해 산업인프라의 혁신을 이루겠습니다.

"진주의료원 사태, 독단 아닌 결단"
"복지 인색은 오해, 선택적 복지일 뿐" 


- 홍 지사께서는 지난해 폐원된 진주의료원 건물을 경남 서부청사로 전용하겠다고 밝히셨습니다.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복지부에서도 반대 의견을 내놨습니다. 진주의료원에 들어설 서부청사는 어느 정도 규모이며 어떻게 운영될 예정입니까?
▲ 서부청사는 지역 균형발전과 행정편의 개선을 위해 서부경남의 중추도시인 진주에 도청 기능 일부를 이전하는 사업입니다. 용역결과를 바탕으로 (구)진주의료원 리모델링을 위한 행정절차를 조속히 이행해 내년 하반기까지 서부청사를 개청토록 하겠습니다. 서부청사에는 본격적인 서부권 대개발을 위해 지역 산업과 연관이 많은 부서 3~4개국을 이전토록 할 계획입니다. 또 정무부지사를 서부부지사로 임명해 서부청사 실국의 결재권을 줄 것입니다.

-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로 홍 지사께서 복지에 너무 인색한 것 아니냐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경남 복지정책의 방향과 과제는 무엇입니까?
▲ 저는 생활이 어려운 서민들이 행복하고 체감할 수 있는 복지안전망을 확대하는 일에는 전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기보다는 생활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가 더 많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적 복지’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이는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맞춤형 복지’와 흐름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우리 도는 선택적 복지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금년도 복지예산으로 전체 예산의 35.7%인 2조3575억원을 투입했으며, 사상 처음으로 복지예산이 2조원이 넘었습니다.
 

- 경남도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요 복지사업은 무엇입니까?
▲ 경남도가 실시하고 있는 주요 복지사업으로는 취약계층의 자립·자활을 돕는 ‘희망울타리 지킴이 사업’, 홀몸 노인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르신 5~10인 공동생활 사업’, 60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및 차상위계층에 개안 수술비를 지원하는 ‘시력 찾아주기 사업’, 여성·가정육아 지원을 위한 ‘우리 아이 함께 키우기 조성 사업’ 등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도는 사회적 약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실현에 최선을 다하고 이를 위한 복지정책을 적극 추진하되, 소중한 세금이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습니다. 안전한 경남도를 만들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 있습니까?
▲ 이번 세월호 사고 대응을 거울삼아 ‘도민 안심 경남 안전망’을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도민 안심 경남 안전망’은 시설물 안전을 점검하는 하드웨어부터 재난대응시스템 확립과 사회 취약계층별 재난예방, 안전문화 확산에 이르는 소프트웨어까지 유기적으로 잘 결합된 사회 안전망입니다. 또한 2기 도정 취임 후 단행한 조직개편에서 안전총괄과를 건설방재국으로 이관해 안전건설국을 신설했습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모든 재난·재해에 대한 초동 대응부터 복구까지 안전건설국에서 총괄해 현장중심의 재난 대응체계를 확립해 나갈 것입니다.

- 지난 7월16일 경남도가 ‘20세기 폭스사’ ‘빌리지로드쇼사’와 글로벌테마파크 3자 MOU를 체결했습니다. 그동안 타 지자체에서도 글로벌테마파크를 건설하려다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무엇입니까?
▲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내 웅동지구에 조성될 진해 글로벌테마파크 조성사업은 86만평 부지에 약 3조5천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FOX 브랜드 테마파크, 영화관, 프리미엄 아울렛, 6성급 호텔, 카지노, 콘도미니엄, 수상스포츠시설, 골프코스 등 복합리조트를 건설하는 사업입니다. 지난 6월20일 미국에서 FOX사와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7월16일에는 서울에서 <FOX사>, <빌리지로드쇼사>와 3자 MOU를 체결했습니다.

연말까지 투자자 모집과 총괄개발사업자 선정, 사업을 추진하게 될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게 될 것입니다. 진해 글로벌테마파크가 조성되면 연간 1000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와 1만명 이상의 고용창출효과와 5조원의 경제유발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최근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직자들의 비리 문제가 연이어 불거져 나오면서 국민들의 실망감이 큽니다. 깨끗한 경남도를 만들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 있습니까?
▲ 저는 지난 민선5기 도지사 취임 때부터 부패척결을 도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부패척결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도의 청렴도 향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부패연루자는 공무원이나 민간인 구분 없이 적발 즉시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등 사소한 잘못도 일벌백계해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패 척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하반기부터는 공직기강 확립과 부패척결에 중점을 두고 우리 도는 물론이고 시군과 산하기관에 대한 감찰역량도 강화해 비정상적 관행과 고질적 비리를 찾아내 척결하겠습니다.


- 하필 홍 지사와 정치적 앙숙으로 유명한 안상수 전 대표가 창원시장이 됐습니다. 경남도와 창원시는 앞으로 도청 이전 등의 문제로 갈등이 예고되는데, 두 분 다 강성이라 지역민들의 걱정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 기우에 불과합니다. 저희 두 사람은 지난 선거운동 기간 중에 공동유세를 하며 경남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도에서는 서부권 지역 발전과 창원시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공기관을 이전할 것입니다. 인재개발원 자리에는 경남도립도서관을 건립하고 보건환경연구원 건물은 18개 시군 및 도청의 기록물보관소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적정한 시기에 창원시와 상생발전 방안을 협의해 나갈 것입니다.

- 지리산댐 건설과 남강댐 물 부산 공급 등 이른바 ‘물 문제’가 경남도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물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생각입니까?
▲ 물은 국가적 자원입니다. 수자원은 특정지역에서 ‘우리 것이다’란 개념으로 보면 안 됩니다. 남강댐 물 공급에 대해 반대가 워낙 심하니까 그 대안으로 문정댐(지리산댐) 건설이 나온 것입니다.

문정댐(지리산댐) 건설에 찬반양론이 있다면 해당 지역인 함양군 주민의 투표로 결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경우 식수 및 물 관리정책이 아주 잘못됐다고 봅니다. 유럽의 경우 85% 정도가 식수 댐을 쌓거나 지하수를 개발해 물을 공급하고 하천수는 15%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하천수가 51%가 넘고 경남의 경우 63% 이상이 하천수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처럼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강물에 의존하는 식수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비싼 돈을 들여 수돗물을 만들어도 대부분 그대로 먹지 않습니다. 화장실이나 설거지, 청소 등에 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화장실은 빗물이나 원수를 쓰고 식수는 바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중수도 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하천 표류수에 의존하는 식수정책을 식수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 재선 직후부터 유난히 물 문제에 대한 발언을 많이 하셨습니다. 일각에선 대권을 염두에 둔 홍 지사가 부산-경남의 해묵은 갈등인 물 문제를 해결해,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 살아오면서 자리나 이익을 목적으로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대권도 마찬가지 입니다. 경남지사로서 도정을 잘 이끌고 그 성과에 대해서 도민들과 국민들이 ‘저 정도면 국정을 맡겨도 되겠다’하는 평가를 해주시면 대권의 기회도 같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 평소 ‘정치는 자기 경쟁력으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대권주자로서 본인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정치에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어떤 계파에도 속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웃사이더’라는 말도 듣지만 정치는 자기책임으로 하는 것입니다. 무리의 힘에 얹혀서 하는 정치는 자기 정치가 아닙니다. 책임과 원칙이 ‘홍준표식 정치’의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권주자로서 적합한 인물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항시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이나 국가에 대한 사명감, 이런 것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다음 대선에서 국민들이 어떤 리더십을 원하고 시대정신이 어디에 방점이 찍힐 것인가 하는 것은 적어도 2년 정도는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치 입문 후 지금까지 어떤 계파에도 속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홍 지사를 친이계로 분류합니다.
▲ 저는 지금까지 정치하면서 어떤 계파에도 속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지만 저는 친이계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어떤 계파에 속해서 계파 수장의 지시를 받고 정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 차기 대통령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세월호 참사에서 국민들이 가장 분노한 것은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소통도 중요하지만 소통에 발목이 잡혀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정치적 결단이 없는 시대, 무책임한 정치로는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당단부단 반수기란'(당연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말미암아 도리어 화를 입게 됨)이라는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국민 원하는 리더십은 시대 따라 변해"
"계파정치 안한 것은 가장 큰 장점"

- 취임사에서 경남발 혁신으로 대한민국 대개조의 첫걸음을 내딛겠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 우리 사회의 기본부터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는 것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복지로 우리사회의 헤게모니가 급격히 전환되는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와 민주적 질서, 기본적인 사회적 정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걸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 근본적으로 체질을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취임하면서 기념식수를 무궁화로 했는데, 이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과거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만 주장하고 공동체나 국가에 대한 어떤 의무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 사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경남도민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 지난 1년6개월 동안의 ‘홍준표 도정’을 믿고 다시 선택해 주신 데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선거기간 동안 도내 전역을 돌면서 도정에 대한 기대가 1년6개월 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절실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2기 도정은 경남미래 50년 사업과 서부권 대개발을 위해 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세부적인 추진계획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서민경제 회복과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 도정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살림살이 걱정, 자식들 취업걱정 덜어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민만을 바라보고, 도민을 섬기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자세로 당당한 경남시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대담=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홍준표 경남지사 프로필>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제15~18대 국회의원
▲ 한나라당 원내대표
▲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 제35~36대 경상남도 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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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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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