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파열음' 안철수-김한길 위기론 전모

비정한 정치판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7·30재보선 공천파동을 계기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선거가 끝나고 나면 두 사람이 완전히 갈라설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공동대표가 된 후 한 몸처럼 움직이며 끈끈한 의리를 과시했던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불화설에 시달리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3월 합당 이후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어왔다. 원내에 세가 없고 당무 경험이 없는 안 대표에게는 김 대표가 꼭 필요했고, 연일 지지율이 추락하던 구 민주당과 김 대표 역시 안철수라는 상징이 반드시 필요했다. 김 대표는 새정치계와의 통합을 성사시켜 다 죽어가던 야당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두 사람은 이후 공동대표로서 항상 한 몸처럼 움직이며 끈끈한 의리를 과시해왔다.

전략적 동맹
전략적 뒤통수

하지만 이번 7·30재보선 공천파동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번 재보선 공천 결과만 놓고 보면 안 대표는 분명히 김 대표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모양새다.

안 대표는 당초 이번 재보선을 통해 반드시 측근들을 대거 원내로 진입시켜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이번 재보선 이후에는 다음 총선까지 특별한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안 대표에게 이번 재보선은 마지막 기회였고, 어쩌면 지방선거보다도 더 중요한 선거였다.

그러나 금태섭 전 대변인을 비롯해 이수봉 전 대표 보좌관,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이석형 전 함평군수 등 안 대표 측 인사들은 공천과정에서 줄줄이 밀려났다. 안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반면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박광온 대변인과 정장선 전 의원 등은 모두 공천장을 받아 대조를 이뤘다.

김한길이 새정치연합 실세?
공천 때마다 물먹은 안철수


특히 이번 공천파동의 책임론 화살이 모두 안 대표에게 쏟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안 대표 측은 불만을 갖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이번 공천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된 동작을 기동민 후보와 광주 광산을 권은희 후보의 공천은 김 대표의 주도하에 이뤄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초 동작을은 안 대표의 최측근인 금 전 대변인이 출마를 준비 중이었고 안 대표도 금 전 대변인의 공천을 관철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던 곳이다. 동작을에서 금 전 대변인의 전략공천 가능성이 유력해지자 이를 감지한 구민주계 국회의원 31명이 전략공천을 반대하는 공동성명까지 냈을 정도였다. 
 

그런데 김 대표가 안 대표에게 금 전 대변인을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옮겨주겠다며 기 후보를 동작을에 전략공천 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 후보의 공천은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졌고 일을 꾸민 김 대표는 뒤로 빠진 채 모든 비난의 화살은 안 대표에게 쏟아졌다.

꾸민 건 한길인데
욕은 철수가 먹다


게다가 안 대표가 동작을 공천이 무산된 금 전 대변인을 수원정(영통)으로 전략공천 하려고 할 때 김 대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수원정에는 결국 김 대표의 측근인 박광온 대변인이 공천됐다. 안 대표 측 내부에서 ‘김 대표에게 우리가 당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새정치연합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도 안 대표 측 금태섭 전 대변인의 낙천에 대해 “좋은 이미지와 높은 경쟁력을 갖춘 그가 ‘안철수 사람’이라 역차별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권 후보의 공천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광주 광산을에 권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자신의 측근인 최재천 전 전략홍보본부장을 메신저로 활용했다고 한다. 최 전 본부장은 권 후보의 전남대 법대와 사법고시 선배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 광주 광산을에 권 후보를 전략공천 한 것은 차기 당대표에 도전할 가능성이 큰 천정배 전 법무장관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함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역시 차기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경쟁상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정세균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서울 동작을에 정세균계인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을 낙마시켰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정동영 상임고문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 역시 같은 이유로 김 대표의 작품이란 후문이다.

김 대표와 안 대표의 갈등도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안 대표는 정치 문외한이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두 공동대표가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인데 정치 문외한인 안 대표는 그동안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해왔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사실상 당을 독단적으로 운영해오면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쌓이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새정치연합 이해찬 상임고문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천과 예산, 정책 문제를 논의하는 종합적인 의사조율 기구가 당대표와 최고위원, 도당위원장이 참여하는 당무회의인데 우리당에는 현재 당무회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고문은 또 “최고위원회 몇 명이서 결정하니 당이 공정성을 잃어버리고 동의가 안 되는 것”이라며 “지금껏 이렇게 당을 운영해 본 적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고문의 지적처럼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 몇 명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안 대표 측 최고위원 8명 중 5명은 정당활동 경험이 전무하고, 나머지 3명도 현직 국회의원이 아니다. 당연히 정치경험이 부족한 안 대표가 김 대표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정치 초보
당한 줄도 몰라?

게다가 당 대표로서 가끔은 비판이 예상되는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두 대표가 함께 결정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비난의 화살은 정치적 존재감이 더 큰 안 대표가 혼자 뒤집어쓰다시피 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자 안 대표 측 내부에서 김 대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두 사람의 갈등 기류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다. 두 사람의 불화설에 불씨를 당긴 것은 지난 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두 대표가 각각 따로 입장하면서부터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두 대표는 평소 회의장에 들어설 때 의도적으로 항상 나란히 입장하며 굳건한 신뢰관계를 과시하곤 했다. 이는 새정치계와 민주계가 완벽하게 화합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새정치연합은 합당 후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신생정당이기에 이런 상징적 의미는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전날 열린 회의에서 금 전 대변인의 전략공천에 대한 일부 최고위원의 반발이 격화되고 급기야 금 전 대변인이 수원 공천을 거절하는 사태로까지 번지자 두 사람은 차마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따로따로 입장하게 된 것이다.

이날 안 대표는 격앙된 목소리로 “금태섭은 최적최강의 후보였고 기동민은 민주적 절차로 선출한 후보”라면서 “그런 잣대로 비판하면 하나님도 비판받을 것”이라고 작심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끈끈한 의리는 옛말
끈적한 이해관계가 우선


안 대표는 또 지난 15일 권은희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불참하기도 했다. 권 후보 개소식엔 김 대표가 혼자 참석했다. 안 대표는 또 자신 쪽 사람인 이석형 전 함평군수를 물리치고 공천된 이개호 전남 담양ㆍ함평ㆍ영광ㆍ장성 보선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안 대표는 이날 오후 3시 전남 순천ㆍ곡성 보선에 나선 서갑원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 안 대표는 단순히 일정 탓이라고 했지만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안 대표가 이번 공천 과정에 대한 불만을 대놓고 표시한 것이란 해석이 잇따랐다.

이미 재보선 결과에 따라 조기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당 안팎에서는 일단은 두 대표가 협력하겠지만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동작을에 안 대표의 측근인 금 전 대변인 대신 박원순 서울시장의 측근인 기동민 후보를 공천시킨 것을 놓고 김 대표가 박 시장 측으로 갈아타려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당내 뚜렷한 세력도 없는 안 대표가 가장 큰 무기였던 지지율마저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정치7단인 김 대표가 안철수라는 썩은 동아줄을 계속 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박 시장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갈아타기?
안철수 부활?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대놓고 서로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안 대표의 지지율이 점점 하락하는 추세에서 안 대표가 당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당 안팎의 비판도 있지만 막상 안 대표가 새정치연합을 떠나게 되면 후폭풍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새정치계와 민주계의 연합으로 새롭게 창당된 새정치연합은 1년도 안 돼 뿌리가 흔들리게 된다. 안 대표는 이미 새정치연합의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안 대표 역시 김 대표에게 등을 돌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측근 중 현역 국회의원은 송호창 의원뿐인 안 대표가 김 대표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차기 대권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화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어색한 동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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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