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②안·김 정치생명 건 7·30 '단두대 매치'

"기껏 잘해야 본전…이겨도 죽 쒀서 개 줄 판"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걸고 또 한 번 '단두대 매치'를 치르게 됐다. 여야의 명운이 달려 있는 7·30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사실상 무승부로 끝난 지방선거의 연장전이다. 여야 간의 승패에 따라 양 대표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일요시사>가 두 사람의 정치생명이 걸린 '7·30재보선 단두대 매치'를 분석해봤다.

여야의 명운이 달려 있는 7·30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 대한 정치권의 분석은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정치적 기반을 확고하게 다질 절호의 기회라는 의견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팽배하다.

다가오는 재보선
정치적 명운 걸다

이번 재보선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선거의 중요성을 반증하듯 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중진 이상 거물급 인사들의 출마설이 끊이지 않았다.

사실상 무승부로 끝난 지방선거의 연장전 격인 이번 선거는 전국적으로 모두 15곳에서 치러진다. 그야말로 '미니총선'이다. 역대 최대 규모였던 지난 2002년 8월 재보선(13곳)의 기록도 이로써 갈아치우게 됐다.
특히 선거의 승패에 따라 새누리당의 과반의석이 깨질 수도 있다는 점이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10년 가까이 여권에 끌려 다니기만 했던 야권이 드디어 향후 정국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승리한다면 재보선을 진두지휘한 두 대표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

안철수 vs 반안철수 연대 정면 대격돌
양 대표, 전략공천 덫에 빠져 '허우적'

지난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무공천 및 계파갈등으로 당내 입지가 좁아진 데다가 인천과 경기를 내주며 위상이 실추됐던 두 대표로선 누구보다 재보선 승리가 절실하다. 현재 147석인 새누리당은 4석 이상을 얻어야만 과반인 151석을 방어할 수 있다.


재보선 15곳 가운데 여야 모두 승부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수도권 재보선 지역은 6곳이고, 충청권은 3곳이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텃밭인 영남은 2곳에서 재보선이 실시된다. 새정치연합의 강세지역인 호남지역 재보선 4곳을 제외하면, 새누리당은 최소한 영남권 2곳과 수도권·충청권 2곳에서 승리를 해야 과반을 유지할 수 있다.

일단 재보선의 전체적인 판세는 새정치연합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3일~26일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 따르면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상승세다. 한때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 논란에 휩싸이며 20%대까지 하락했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30%대까지 치솟았다.

치솟은 지지율
최고의 호기

세월호 참사 정국,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 GOP 총기 사고 등은 분명 야권에 호재로 작용했다. 특히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문창극 후보자 논란은 월드컵 열기조차 무색케 할 정도였다.

거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키면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지지율이 30%대까지 폭락한 상황이다. 지난 지방선거까지도 유효했던 새누리당의 '박심 마케팅'은 이번 재보선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반면 새정치연합의 호재는 아직도 줄줄이 남아 있다. 세월호 국정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새로운 장관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세월호 국정조사에서는 정부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조사 도중 유가족과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잠을 자거나 유가족들에게 막말을 해 구설에 오르는 등 열심히 자책골을 넣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장관들에 대한 의혹들도 줄줄이 쏟아지고 있다. 논문표절, 병역비리, 세금탈루 등 높아진 검증기준을 적용해 새롭게 임명한 장관후보자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박 대통령의 '막장인사'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은 가운데 인사청문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커지면서 당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여권의 결집력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당초 컨벤션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새누리당 7·14전당대회는 연일 후보들 간 이전투구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표를 갉아 먹고 있다. 전대를 치르며 당 내분이 확산되면서 재보선에도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런 이전투구 끝에 새롭게 취임할 당 대표가 곧바로 치러질 재보선을 제대로 진두지휘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전당대회에 나온 인사들 중 여론조사 1위부터 5위까지 차지한 인사들이 모두 비리혐의에 휩싸였거나 과거 비리전력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어 전당대회가 새누리당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볼멘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일례로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김무성 의원의 경우 최근 딸의 교수특채 대가로 사학비리를 비호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검찰 고발을 당한 상태다. 그야말로 새누리당은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대표와 김 대표가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새정치연합도 내부 공천 갈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새정치연합은 지난 3일 서울 동작을에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전략공천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에 대해 동작을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당 대표실을 점거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기동민 후보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최측근으로 당초 광주 광산을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었다. 때문에 당 내에서도 "인지도도 없고 명분도 없는 인사를 가장 중요한 격전지에 꽂아 넣었다"는 비판여론이 커지고 있다.

동작을은 이번 재보선에서 유일한 서울 지역구이며 여야의 승패를 판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꼽히는 곳이다. 이처럼 공천을 둘러싼 당내 계파 간 갈등과 대립이 표면화될 경우엔 당 지지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재보선의 판세가 새정치연합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면서 당 내부의 공천 갈등과 그 후유증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모양새다.

심해진 공천 후유증
복잡해진 역학구도

새정치연합이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재보선은 여름 휴가철이 한창일 때 치러진다. 새누리당의 조직표를 무시할 수 없다. 7월 청문회와 세월호 국정조사 등도 새정치연합이 어떻게 세련되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연이어 총리후보가 낙마한 상황에서 장관 청문회가 정치적 공세나 발목잡기로 대중들에게 비쳐질 경우엔 오히려 보수진영이 결집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또 지금까지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상승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실정에 의한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했는데, 이제는 새정치연합이 먼저 경제성장과 복지 등에 있어서 대안을 제시하고 정국을 주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두 공동대표가 이번 재보선을 승리로 이끈다고 해도 남 좋은 일만 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상승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실정에 의한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하다.

김·안 정치적 입지 넓힐 호기?
재보선, 김·안 정치적 무덤 될까?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두 사람은 새누리당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당을 살려냈지만 '세월호' 덕분이라는 냉혹한 평가만 받아야했다. 오히려 세월호 정국으로 유리한 판세에서도 수도권 광역단체장 2석을 빼앗긴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도 새정치연합이 완승을 거두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이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잘해야 본전'이란 뜻이다.

또 공천 과정에서 두 사람의 전략공천을 반대하는 구 민주계 세력이 강하게 뭉치고 있는 현상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동작을에선 당초 안철수계 인물인 금태섭 대변인의 전략공천 가능성이 거론됐었다. 그런데 새정치연합 현역의원 31명이 이에 반발하며 공동성명을 냈다.

그들이 지지한 것은 문재인계로 분류되는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이었다. 31명에 달하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지역공천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은 대부분은 친노 또는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인물들로 구 민주계가 두 공동대표에게 정식으로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측근 챙기기
딜레마 빠져

이러한 당내 분위기를 고려할 때 두 공동대표가 지난 지방선거 때처럼 자신의 측근을 전략공천하는 무리수를 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따라서 이겨도 다른 계파 수장의 측근들만 국회에 입성하는 꼴이 되고, 지게 된다면 공천 작업을 주도한 두 대표의 책임론만 부각될 것이란 예측이다.

게다가 이번 재보선을 통해 당내 거물들이 복귀하게 되면 두 대표의 입지가 더욱 흔들릴 위험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치인들은 원래 자신을 챙겨줄 수 있는 힘 있는 사람 옆에 모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안 대표가 이번에도 자기 사람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다면 정치적 입지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측근을 챙길 수도 없고, 안 챙길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두 사람이다. 이번 재보선이 두 공동대표의 무덤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두 사람은 재보선을 통해 더 멀리 도약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대로 추락하게 될까? 두 사람의 정치생명이 걸린 '7·30재보선 단두대 매치'가 다가오고 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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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