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가 낯선 '연정 열풍' 겉과 속

"어제의 적이 내민 손 덥석 잡기에는 꺼림칙"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6.4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경기도와 제주도 등 몇몇 광역단체에서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른바 '연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제 식구 챙기기에만 바빴던 과거 정치권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지방정가에 난데없이 연정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연정 열풍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지방정가에 난데없는 연정 열풍이 불고 있다. 이미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상대진영에 공식적으로 연정을 제의하고 관련 논의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남 지사는 기존의 정무부지사를 '사회통합부지사'로 이름을 바꾸고 야당 측 인사가 맡아줄 것을 제의했다.

달라진 정치권

원 지사는 좀 더 파격적으로 자신과 선거에서 맞붙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신구범 후보에게 손을 내밀어 상대후보였던 인물이 당선자의 인수위원장직을 맡는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연정까지는 아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서병수 부산시장 등은 상대 진영의 공약과 인재를 적극 활용하겠다며 잇달아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제 식구 챙기기에만 바빴던 과거 정치권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지방정부에서 연정이 시도되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가 끝난 후 야권 단일화를 이룬 지역에서 '공동지방정부'가 구성된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념적 적대 관계에 있는 세력까지 아우르며 도정을 운영하겠다는 시도는 처음이다.

일단 각 지방정가의 연정 시도는 일반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정쟁에 질릴 대로 질린 국민들에게 연정은 분명 신선한 시도고, 반가운 소식이다. 연정이 지방정가에서 성공적으로 싹을 틔워 중앙정치권으로까지 확대된다면 지리멸렬한 정쟁이 조금은 잦아들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 전문가들도 연정이 우리 정치문화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정작 정치권에서는 연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연정을 시도하는 각 광역단체에서는 볼썽사나운 잡음도 있었다. 특히 새정치연합 제주도당의 경우 원 지사가 경쟁자였던 신구범 후보를 인수위원장으로 채택한 것에 대해 "협치를 가장한 협잡이며, 통합을 빌미로 야권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인수위원장직을 수용한 신 후보에 대해서는 탈당까지 권고했다.

새정치연합 측은 또 원 지사가 연정을 제의한 것은 현재 대권 출마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향후 자신의 정치 행보를 생각해 '이미지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연정의 의미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경기도 역시 연정과 관련해 잡음이 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남 지사의 연정 제의에 대해 새정치연합 일부 인사들은 "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연정이 이뤄지면 7월 재보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대권 노린 이미지정치?
결국엔 야당 와해작전?


새정치연합이 연정에 협력하게 되면 남 지사와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기폭제가 될 것이 뻔하다. 심지어 일부 인사들은 남 지사가 제안한 사회통합부지사 직을 받는 사람은 '해당행위자'라는 강경한 입장까지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연정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정치연합 소속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경우는 새누리당이 도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연정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지만 연정은 실효성이 없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최 지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분들(남경필 경기지사·원희룡 제주지사)은 초보 도지사니까 (연정을 시도하는 것)"라며 "지역 행정은 90%가 지역발전을 위한 사업이고 안전성을 추구하다 보니 여야가 극한 정쟁을 벌일 일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도 "서로 너무나 다른 정책과 의견을 가진 양 정당의 인사들이 억지로 한데 섞여 일하게 되면 오히려 정치적 분란과 혼란만 가중시킬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이는 책임정치 구현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유권자들이 어느 한 정당을 투표를 통해 선택한 것은 그 정당이 추구하는 노선과 정책을 지지했기 때문인데 정작 당선 후 연정을 위해 이를 대폭 수정한다면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기도에선 연정의 진정성을 보이라며 야권이 생활임금조례를 통과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 새누리당의 입장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생활임금조례는 새정치연합이 다수당인 도의회를 통과했지만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해 남 지사의 결정에 따라 실현여부가 결정된다.

생활임금조례안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근로자 및 하도급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제도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생활임금제가 최저임금제를 무력화시켜 도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고,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경기도가 재원 대책도 없이 일괄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려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권이 연정에 거는 기대는 크다. 특히 남 지사의 경우 과거부터 연정에 큰 관심을 보여 온 인물이라 단순히 이미지정치를 위한 행보는 아닐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남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제안했던 대연정에 대해서도 당론과 달리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국회에서는 줄곧 권력 분산을 강조하며 분권형 대통령제와 4년 중임제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각종 포럼을 통해 독일의 연정 정치를 공부해오기도 했다. 따라서 남 지사의 연정 제의를 그저 정치적 꼼수라고 폄훼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다.

도의회가 여대야소로 꾸려진 현 경기도에서 연정은 꼭 필요한 선택이라는 주장도 있다. 과거 경기도는 도와 의회간의 불협화음으로 각종 조례가 통과되지 못하는 등 갈등을 겪어왔다. 이 같은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경기도의 발전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높은 불신의 벽

한편 대다수의 정치전문가들은 연정의 성공여부는 진정성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연정이 '정치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성공하려면 여야 모두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는 뿌리 깊은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열쇠는 현 시·도지사들에게 있다. 지방정부의 특성상 시·도지사가 모든 사업의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정파의 의견을 얼마나 수렴하느냐가 관건이다. 상대진영을 챙기는 과정에서 정작 소외될 수 있는 내부세력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해소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지방정가에 불어 닥친 연정 바람은 정치권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까? 아니면 또 다시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게 될까? 국민들의 이목이 지방정가로 쏠리고 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정이란 무엇? 우리나라에서는 아픈 기억

연정이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둘 이상의 세력이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해외에서는 이미 흔한 일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척 헤이글 전 공화당 상원의원을 민주당 정권의 국방장관으로 임명했고, 독일에서는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우파 진영과, 좌파 진영이 대연정을 꾸린 바 있다.

연정은 불필요한 정쟁을 피하고 국가정책의 일관성, 지속성, 예측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연정은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김대중정부 때 시도됐던 DJP연합의 경우 내각제 개헌 약속 불이행과 동교동계의 인사 불만 등이 겹치면서 끝내 와해되어 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단 번에 거절당해 대통령이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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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