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재보선> 별들의 공천전쟁 막후

대권 노리는 잠룡들의 '단두대 매치'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다가오는 7·30재보선은 별들의 전쟁이 될 전망이다. 현재 정치권에서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출마 예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거의 대선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치 양보도 없는 별들의 전쟁에서 과연 누가 승리하게 될까?

정치권의 이목이 다가오는 7·30재보선으로 쏠리고 있다. 7월 재보선은 전국적으로 최소 14곳에서 치러지게 되면서 '미니 총선'급으로 판이 커졌다. 역대 최대 규모였던 지난 2002년 8월 재보선(13곳)의 기록은 이로써 갈아치우게 됐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서울 서대문을)과 같은 당 성완종 의원(충남 서산태안)도 오는 26일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어 재보선 대상지역은 최대 16곳까지 늘어날 수 있다. 지난 6·4 지방 선거에서 승패를 가리지 못한 여야는 다가오는 재보선에서 진검승부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이 깨질 가능성도 크다.

과반의석 위협
진검승부

이번 재보선의 중요성 때문인지 현재 정치권에서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출마 예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거의 대선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서울 동작을은 출마예상자들의 면면이 워낙 화려해 '미니 대선'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정몽준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동작을은 이번 재보선에서 유일한 서울 지역구로 그 상징성이 크다. 때문에 여야 모두 승부처로 꼽고 있어 주목도가 높은 만큼 차기 대권까지 바라보고 있는 잠룡들로서는 탐이 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지난 14대부터 19대까지의 총선 결과를 살펴보면 동작을은 새누리당이 15대와 18대, 19대 선거에서 승리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14대와 16대, 17대 선거에서 이기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김문수VS정동영 드림매치 이뤄질까?
손학규VS김황식 대결 여부도 관심사


우선 새누리당에선 김문수 경기지사, 김황식 전 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이혜훈 전 의원 등이 자천타천으로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출마설이 거론됐으나 이 전 수석은 전남 순천·곡성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측근인 이 전 수석이 동작을에 출마해 야권의 거물과 맞붙으면 자칫 정권 심판 구도가 형성될 수 있는 만큼 재보선 전체 판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당 지도부가 급히 교통정리를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응해 새정치연합에선 정동영 상임고문, 천정배 전 의원, 김두관 전 경남지사, 안철수 대표의 측근인 금태섭 대변인과 이계안 전 의원 등이 자천타천 출마예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18대 총선 때, 이계안 전 의원은 19대 총선 때 동작을에 출마했던 경험도 있다.

후보 난립
경선부터 치열

수많은 후보군이 난립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진표는 김문수 경기지사 대 정동영 상임고문의 대결로 꼽힌다. 차기 대권까지 노리고 있는 김문수 경기지사의 경우는 동작을 출마에 유독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경기지사 출신인 김 지사가 경기도에 출마해 승리하는 정도로는 대권주자의 이미지를 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목도가 높은 동작을에서 승리한다면 김 지사는 단번에 전국구 정치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김 지사가 이미 동작을 지역에서 자신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극비리에 조사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만약 새누리당이 동작을 후보로 김 지사를 공천할 경우에는 김 지사의 정치적 중량감을 고려할 때 새정치연합이 이에 대응할 카드는 정동영 상임고문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정 고문에게 동작을 출마는 최고의 기회인 동시에 큰 부담이기도 하다.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재보선마저도 패한다면 정 고문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어 위험한 도박이다. 하지만 정 고문 측은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 "당의 승리를 위해 기여할 수 있다면 지역은 어디라도 상관이 없다"고 공언한 만큼 동작을 출마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 고문의 동작을 공천설이 힘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정 고문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의원이나 손학규 상임고문이 안철수 대표의 명운이 달린 광주시장 선거를 외면했음에도 공동선대위원장 중 가장 먼저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를 지지하는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이후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와 정 고문과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재보선에서 정 고문이 당 지도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김 지사와의 정면 승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체 평가다.

동작을 출마가 예상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경우는 김포 출마설도 나돌고 있다. 오 전 시장의 경우 서울시장 재직 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한 바 있는데 김포는 한강을 끼고 있어 이를 마무리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이는 김포 주민들의 지역 개발욕구를 자극시킴으로써 오 전 시장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새정치연합에서는 오 전 시장의 대항마로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수원도 손학규 상임고문의 출마설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수원은 특히 선거구 4곳 가운데 3곳에서 재보선이 치러져 여야 모두 주목하고 있는 곳이다. 손 고문은 현재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의 지역구인 수원병과 김진표 전 의원의 지역구인 수원정을 놓고 출마를 저울질 하고 있다.

손 고문은 개인적으로 수원정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정은 17대부터 19대까지 김 전 의원이 내리 3선을 할 정도로 전통적으로 야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에서는 당 지지세가 강한 곳은 신인에게 양보하고 손 고문은 어려운 지역에 출마해 당의 승리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손학규의 위기
정동영의 기회

여기에 수원을은 안철수 공동대표의 몫으로 김세영 전 대한치과의사협회장이 거론되고 있는 상태. 손 고문은 당 안팎에서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자의 전 지역구인 수원병 출마를 강요받고 있는 모양새다. 수원병의 경우는 남경필 경기지사가 무려 5선을 한 곳이라 야권 인사의 당선이 다소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게다가 새누리당에서는 수원병 지역에 김황식 전 국무총리나 나경원 전 의원 등 거물급 인사를 차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아무리 손 고문이라고 해도 여권 강세 지역에서 이들과 맞대결을 펼쳐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자의 중도사퇴로 공석이 된 부산 해운대·기장갑 역시 눈여겨 봐야 할 곳 중 하나다. 새누리당의 경우 이미 이 지역에서 7∼8명의 후보들이 난립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안경률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배덕광 전 해운대구청장, 허범도 전 부산시 정무특보, 김영준 전 부산시 특별보좌관 등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이들 중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김세현 전 친박연대 사무총장이다.

김 전 사무총장은 서청원 의원의 최측근이다. 새누리당의 공천 결과가 7·14 전당대회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나올 가능성이 커 김 전 사무총장의 생존여부가 정치권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야권에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해 돌풍을 일으킨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과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의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여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또 한 번 빅매치가 성사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거물들 자기사람 앞세워 대리전
안철수 대 비주류 이전투구 양상


한편 새정치연합 내에선 재보선을 앞두고 치열한 기싸움도 전개되고 있다. 비주류는 지방선거 패배론을 앞세워 당 지도부를 끊임없이 흔들고 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당 지도부가 광주시장 선거에 집중하는 바람에 경기와 인천에서 패배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 측은 "새정치계와 합당하지 않았다면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을 구 민주당계가 '살려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란 식'으로 당 지도부를 흔들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구 민주당계가 지방선거 패배론을 제기하는 것은 이번 재보선을 통해 안철수계가 크게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맞서 안 대표는 '중진 선당후사론'을 앞세워 비주류를 압박하고 있다. 안 대표는 중진 차출론과 관련해 "당 중진들은 7·30 재보선에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임하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당 중진들의 공천을 배제하고 정치 신인을 투입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같은 중진 선당후사론은 다목적 포석으로 분석된다. 당 중진들이 재보선을 통해 대거 당에 복귀할 경우 조기 당권경쟁에 불이 붙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중진들의 복귀를 막고, 중진들을 '올드보이'로 낙인찍어 차기 대선에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인물들의 정치적 입지를 미리 좁혀놓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안철수계 인물들을 재보선을 통해 대거 원외에 입성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도 있다.

안철수 이길까?
비주류 이길까?

이번 재보선에서 안 대표의 측근 인사들이 대거 원외로 들어온다면 안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대폭 넓어지게 된다. 실제로 안 대표와 관련된 인사들은 재보선 출마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금태섭 당 대변인, 김효석·이계안 최고위원,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박인복 당 홍보위원장 등이 재보선 출마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곳곳에서 손학규계, 문재인계 등의 인물들과 치열한 공천 경쟁을 벌이게 될 전망이다. 이처럼 이번 재보선은 거물들이 직접 뛰는 선거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거물들이 자신의 사람들을 앞세워 펼치는 대리전의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하다. 거물들은 본인 스스로도 살아남아야 하는 한편 측근들도 챙겨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따라서 다가오는 7월 재보선에선 본선보다 치열한 별들의 공천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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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