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정심정행 정치인' 정갑윤 신임 국회부의장

"정치는 천천히 가더라도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어"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세월호 참사로 엄중한 시기, 19대 국회 후반기를 이끌어갈 국회의장단이 새롭게 선출됐다. 새누리당 출신의 정의화 국회의장과 정갑윤 부의장,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석현 부의장이 그 주인공이다. 국회가 본연의 역할인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요즈음, 이들은 후반기 국회를 이끌어갈 책임자로서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는 새롭게 취임한 후반기 국회의장단을 차례로 만나 향후 국회운영에 대한 구상을 직접 들어볼 예정이다. 지난호(961호)에 정의화 의장을 만난 데 이어 이번호에는 정갑윤 신임 부의장을 만나봤다.

정갑윤 신임 국회부의장은 1991년 경남도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200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울산 중구에서 내리 4선 의원을 지내며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한 의정활동을 펼쳐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설 것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그는 세월호 참사로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경쟁자 간 잡음이 날 것을 우려해 원내대표를 포기했다고 한다. 대신 국회부의장으로 방향을 틀어 지난달 30일 당당히 여당 몫 국회부의장에 선출됐다.

정치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비리에 연루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사회적·도덕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는 '깨끗한 정치인'의 표본인 정 부의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소통과 친밀감'의 정치력을 최대한 발휘해 모범적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또 "비리와 실망으로 얼룩진 요즘 사회에 필요한 '정심정행(正心正行)'을 국회 내에서 자리 잡게 해 모든 국회의원들이 바른 마음과 행동으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부의장과의 일문일답.


-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역대 국회부의장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감사합니다. 저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소통의 정치'를 해왔습니다. 여당 부의장은 국회의장의 당적보유가 금지된 상황에서 야당과의 소통과 중재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2011년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던 시절, 결산안은 정기국회 전 결산심사를 완료해야 한다는 국회법이 2003년 개정된 이후 9년 만에 법정기한을 지켰습니다.

특히 예산안은 당시 '박근혜표 민생예산'을 대폭 증액시켜,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면서도 2007년 이후 5년 만에 여야 합의에 의한 예산안 처리를 이끌어 냈습니다. 여야를 아우르는 '소통과 친밀감'의 정치력을 발휘해 모범적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앞으로 2년 간 국회부의장으로 함께 활동할 야당 몫 이석현 부의장에 대한 평가와 함께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신다면?
▲ 이석현 부의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매우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치를 해온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랜 의정활동에서 여야를 넘나드는 소통과 화합을 보여주며 대립과 갈등을 조정해 발전적 결과를 이끌어 오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국회에 바라는 것은 '국민을 우선하고 섬기는 성숙한 국회'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야 간 소통과 중재자 역할을 함께 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 후반기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들로 어떤 것들을 꼽고 계시는지요?
▲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도 선언했듯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개조를 이룩하기 위해 국회에서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자행되어 온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를 뿌리 뽑고 이른바 '김영란법'과 '유병언법' 등 후속적인 조치를 빠른 시일 내에 논의해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국회차원의 논의와 처리가 시급한 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하는 국회, 열린 국회를 위해 상시국회로 가는 초석을 다져야 할 것이며 여야 간 소통과 타협을 위해 상시협의체를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여당 부의장 역할은 야당과의 소통과 중재"
"'소통과 친밀감'으로 모범적 국회 만들 것"

-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 국민들은 '제발 싸우지 말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요구로 우리는 지난 18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국회를 쇄신하고자 노력하기도 했지요. 그 결과 국회에서 거친 몸싸움은 사라졌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아직 성에 차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회가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당리당략에 매몰된 '불통의 정치'를 이어간 것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이유라 생각합니다.


- 국회가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 국회가 좀 더 성숙한 정치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여야 간 소통과 타협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이 참여하는 '상임위갈등조정회'를 정례화해 서로 간의 이해의 폭을 줄여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 현재 국회의 가장 큰 이슈는 세월호 국정조사입니다. 하지만 기관보고 시기, 자료제출 범위 등을 놓고 여야가 충돌을 거듭하며 국정조사가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여야는 세월호 국정조사의 기관보고 시기를 두고 '월드컵은 피해야 한다' '보궐선거와 겹쳐서는 안 된다' 등의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월호 국정조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두어야 할 부분은 유가족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유가족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번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고 관련자들이 마땅한 책임을 질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월드컵 이후에 기관보고를 시작하는 것은 보궐선거도 있겠지만, 월드컵 기간인 1개월 동안 국회가 일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습니다. 세월호 국정조사를 하루라도 빨리 실시해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고, 시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으신지요?
▲ 저 역시 어떠한 방법이든지 국회선진화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폭력국회'의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마련된 '국회선진화법'이 오히려 '공전국회' '식물국회'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법안의 처리에 있어 국민이 우선되지 않고 당리당략이 우선되었으며, 정당 간의 대화와 소통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 이전보다 더 많은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하지만, 여야가 의견을 대립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반대로 통과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의결 과정에서 일방적이거나 폭력적인 부분을 개선하고 충분한 소통과 타협을 통해 의결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국회선진화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정 의장께선 '상시 국회'를 열겠다고 하셨습니다.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 시대가 변화하고, 사회가 발전하며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매년 수천 개의 법안이 발의되고, 엄청난 액수의 예산이 집행되며, 거의 매일 새로운 현안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회성 국정감사와 예·결산으로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사회 현안에 적절히 대응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상시국회를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잘못을 시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만, 매번 장관을 부르거나 증인을 세우는 등 비효율적인 지금의 방식과 룰은 지양하고 대화와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당리당략에 매몰된 '불통정치'가 국회불신 원인"
"성숙한 정치 위해 끊임없는 여야 소통·타협 필요"

- 세월호 참사 정국 속에서 열린 6·4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국민들의 현명함에 매우 놀랐으며,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쳐, 여당의 선거 참패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안배를 통한 현명한 선택과 결과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집권여당에게는 정국현안을 이끌고 갈 추진력을 남겨주면서 반성과 쇄신을 명령했고, 야당에게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힘을 주면서도 내부 개혁을 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 부의장님의 지역구가 있는 울산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이 시장과 구·군 단체장을 싹쓸이 했습니다. 앞서 19대 총선에서도 울산의 6개 지역구를 새누리당이 싹쓸이 한 바 있어 울산의 보수진영 강세가 날로 강화되는 모양새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울산의 경우 새누리당을 대신할 뚜렷한 대안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그동안 국민들은 진보정당에 대해 많은 기대와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특히, 울산시민들은 진보정당을 울산 제1야당으로 키워주시는 등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 폭력사태와 분열, 2013년 이석기 국가 내란음모사건, 정당해산심판청구 등으로 진보정당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진보정당들은 시대와 사회 흐름에 맞는 가치를 제시하고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고자 노력했어야 하는데,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6·4교육감선거가 진보의 압승(13곳 당선)으로 끝난 가운데 여권에서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 이번 교육감선거를 통해 교육감 직선제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진보니 보수니 하며 교육을 정치화시키고 당선에 매몰되어 포퓰리즘이 넘쳐났습니다. 이로 인해 학부모와 아이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선택을 위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개(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수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고 선거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포퓰리즘으로 학부모와 아이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교육은 선거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으로 완성되는 만큼 교육감 직선제는 폐지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봅니다.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시다면. 
▲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소통하며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도 천천히 가더라도 함께 가야 실수 없이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여야 간의 소통과 중재역할을 충실히 해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국회를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비리와 실망으로 얼룩진 요즘 사회에 필요한 '정심정행(正心正行)'을 국회 내에서 자리 잡아 모든 국회의원들이 바른 마음과 행동으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국회부의장으로서 국회를 국민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참된 국회' '민주주의 가치가 존중되는 국회'가 되도록 제 모든 힘을 쏟겠습니다.

 

<carpediem@ilyosisa.co.kr>

 

<정갑윤 국회부의장 프로필>

▲ 경상남도의회 의원
▲ 한국청년회의소 중앙부회장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 4선 의원(16·17·18·19대)
▲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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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