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특집> 파란의 6·4지방선거 후폭풍 ③야권 지형도

<안철수-김한길> 발등의 불 껐지만 발걸음 마다 '지뢰밭'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여야 간 격전 끝에 6·4지방선거가 사실상 '무승부'로 끝났다. 광역단체장의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이 한 석을 더 얻어내기는 했지만 승리라고 말하기엔 민망하다. 일각에선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는 공식이 16년 만에 깨진 만큼 오히려 야권의 패배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6·4지방선거의 후폭풍은 곧바로 야권의 정치지형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명운이 걸린 선거였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2012년 대선 이후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에게 참패해왔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도 패했다면 야권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찝찝한 결과
사실상 무승부

그 여파는 곧바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선거 결과는 여야 모두 승리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특히 지난 3월초 전격적인 합당 선언과 기초선거 무공천 번복, 지방선거 공천잡음 등으로 바람 잘 날 없었던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로서는 당내 리더십 논란을 말끔하게 회복하기엔 다소 부족한 결과였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인 광역단체장선거의 경우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보다 한석을 더 얻어내긴 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9곳, 야권이 8곳을 차지했지만 이번 선거에선 '8대9'로 역전됐다.

새정치연합은 호남 텃밭과 서울과 충청권·강원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중 서울에서의 압도적인 승리와 충청권을 싹쓸이한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현역 의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강원도에서 최문순 당선인이 재선에 성공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무소속 후보의 위협을 받던 텃밭 광주도 지켜냈다.

세월호 앞세우고도 겨우 체면치레 그쳐
진검승부는 7월 재보선으로 미뤄져


하지만 민심의 바로미터격인 수도권 3곳 가운데 경기지사와 인천시장 자리를 내준 것은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이다. 게다가 기초단체장 선거의 경우는 총 226곳 가운데 새누리당이 117곳을 차지하고, 새정치연합은 80곳을 차지하는 데 그치면서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82석에 그쳤던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에 확실한 설욕을 했다.

이처럼 지방선거의 결과가 여야 모두 승리라고 말할 수 없는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새정치연합 내에선 "그저 급한 불만 껐다"는 아쉬움 짙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여섯 번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의 참패 징크스가 깨진 것은 16년 만이라는 점에서 지도부 책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998년 제2회 지방선거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모든 지방선거는 야당이 완승했다.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으로 여겨지는 지방선거에서는 통상 야권의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살린 야권
텃밭도 흔들흔들

또 이번 선거의 결과를 두고 여권은 물론이고 야권 내부에서도 '세월호가 야권을 살렸다'는 비아냥이 들려온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이전까지는 야권의 패색이 짙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에게 완벽하게 패배한 정몽준 후보조차도 세월호 참사 이전까지는 박 당선인에게 근소하게 앞서는 지지율을 보였었다.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정부의 총체적인 무능이 부각되며 대중적인 정권 심판론 기류가 형성됐음에도 새정치연합이 압승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상 패배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번 선거결과는 국민들이 새누리당의 대안으로 새정치연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세월호 참사로 직격탄을 맞은 경기 안산시장선거에서 새정치연합 제종길 후보가 고작 1.6% 차이로 새누리당 후보에게 신승을 거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안산은 반월공단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이 많고 호남 출신 인구비율도 높아 지난 2002년 이후부터는 야당후보가 연이어 당선된 대표적인 야권 텃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안산이라는 상징적인 도시에서 압승을 거두지 못하면서 '이번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라는 야권의 구호는 크게 퇴색되고 말았다. 제종길 안산시장 당선인이 김한길 대표와 가까운 인물이라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지역에서는 "김 대표가 무리한 전략공천으로 진보진영의 표를 분산시켜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야권 대권주자들의 명암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우선 안철수 대표의 경우는 광주시장선거에서 전략공천한 윤장현 당선인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살아 돌아오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게 됐다. 윤 당선인은 개표결과 총 57.85%를 얻어 31.77%에 그친 무소속 강운태 후보를 압도했다.

이날 개표 결과는 그간의 여론조사를 무색하게 만든 압승이다. 광주에서는 경선 없이 윤 당선인이 전략공천되자 현직 시장인 강운태 후보와 이용섭 후보가 거세게 반발하며 각각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었다. 이후 강 후보는 이 후보와의 단일화에도 성공하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의 지지율은 안철수 대표가 여러 차례 광주를 찾아 성난 민심을 달래면서 반등하기 시작했다. 안 대표는 광주 방문 과정에서 일부 후보 지지자들에게 계란 세례를 맞고 감금을 당하는 등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선거기간 여러 차례 광주를 찾았다. 

광주에서 안철수 사람인 윤 당선인이 살아 돌아오면서 안 대표의 당내 입지는 다소 넓어질 전망이다.

윤 당선인의 승리는 야권의 심장인 광주시민들이 안 대표를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도 낳고 있다. 따라서 끝없이 추락하던 안 대표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도 이번 선거 결과를 계기로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광주시장 후보 공천에 앞서 윤 당선인 지지를 선언해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던 광주 국회의원들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일각에서는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안 대표와 같이 마음고생을 했던 만큼 앞으로 이들이 안 대표의 든든한 당내 지지세력으로 거듭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안철수는 부활
손학규는 추락?

반면 문재인 의원과 손학규 전 대표 등 광주시장선거에 관망했던 대선주자들에게는 이번 결과가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광주시장선거에 대해 "누가 돼도 우리 식구"라는 발언을 해 당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손 전 대표는 이번 결과로 무척 멋쩍게 됐다.

손 전 대표 측은 논란이 일자 당 차원에서 낸 해명내용까지도 정면부인하는 등 안 대표와 끝까지 대립각을 세웠다. 때문에 과거 연대설까지 돌았던 두 사람이 지방선거를 계기로 관계를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방선거를 계기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안 대표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광주 후폭풍'은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박지원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내준 원인이 안 대표의 '광주 올인' 탓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광주 전략공천으로 당력을 광주에 집중하면서 경기, 인천 등을 효과적으로 지원 못한 게 패인이고, 광주 무소속연대 바람이 전·남북을 강타해 36개 기초단체장 중 15개 기초단체장을 무소속에 헌납했다"며 안 대표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비록 광주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이런 비판여론은 안 대표에게 부담이다.

차기 대권 잠룡들의 엇갈린 명암
지방정부 입김은 전보다 강화될 듯


당장 친노를 비롯한 당내 여러 계파 의원들이 7·30재보선을 앞두고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며 목소리를 키워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친노진영의 좌장 격인 문재인 의원도 향후 이어질 세월호 정국에서 선명성 있는 야당을 강조하며 김·안 대표와 차별화를 꾀하고 정치적 입지확대를 모색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서는 명실상부 유력 대권주자로 발돋움한 일부 잠룡들도 눈에 띤다. 제일 먼저 수도 서울에서 상대후보를 압도하는 득표율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가 꺾은 정몽준 후보는 이전까지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해왔던 인물이다.

박 당선인은 당선 확정 이후에도 대권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서울시장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은 크다. 서울시장은 지금까지 대통령과 대통령 직무대행을 4명이나 배출한 ‘대권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지금까지 제2대 윤보선 시장과 제32대 이명박 시장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역시 재선에 성공한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인도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충청권의 인구수가 호남권의 인구수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충청 대통령론’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 지사의 존재감이 충북과 대전 등 충청권 전체의 승리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안 당선인의 주가는 더욱 치솟고 있다.

단숨에 대권주자
아직은 시기상조?

물론 아직까진 두 사람의 대권도전이 시기상조라는 평가도 많다. 시도지사들은 당선되는 순간부터 중앙언론에서 멀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지금의 높은 관심은 '반짝효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박 당선인의 경우에는 세월호 참사 이전까진 정몽준 후보에게 고전했다는 점에서 이번 승리가 박 당선인 개인이 잘해서라기보다는 ‘국민 미개 발언’ 논란 등 정 후보 스스로 자멸한 성격이 더 짙다는 평가도 있다.

안 당선인의 경우에도 차기 대권지지율이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다. 하지만 어찌됐던 앞으로 야권에서 지방정부의 입김이 더욱 세질 것이란 점만큼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한편 이번 선거가 무승부로 끝나면서 야권의 정치지형 변화를 예측하기란 더욱 어렵게 됐다. 당장 김·안 공동대표는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7·30재보선 시험대에 서야만 한다. 진짜 진검승부는 7·30재보선으로 미뤄졌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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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