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노무현 부관참시' 논란 막전막후

"의도적 세월호 물타기?" vs "오비이락 우연한 유탄?"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청와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말이다. 특히 청와대가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을 수사했던 우병우 변호사를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내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이미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을 노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모든 것은 노무현 탓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유행처럼 번진 말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서거 5주기를 맞은 지금까지도 최소한 여권에선 '모든 것은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유효하다.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우병우 변호사를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내정한 것이 사실상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노무현과 악연
다시 반복된다?

비록 중도 사퇴하긴 했지만 안 전 대법관은 노무현정권 당시 불법 대선자금을 파헤치며 정권 실세인 안희정과 최도술을 구속했던 전력이 있고, 우 변호사는 대검찰청 중수부1과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9년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에 출석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인물이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지 23일 만인 지난 2009년 5월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 전 대법관과 우 변호사의 인선에 대해 통합진보당 김재연 대변인이 "남북정상회담회의록 왜곡으로 시작된 박근혜정권의 '노무현 죽이기'가 끝나지 않고 있다"고 꼬집은 이유다.

안 전 대법관이야 박 대통령의 선거캠프에도 참여했던 인물이지만 우 변호사의 민정수석실 내정은 특히 의외였다. 당장 야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인물을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일을 앞두고 내정한 것은 야당과 정쟁하자는 얘기"라며 단체성명까지 내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같은 야권의 반발을 청와대가 예상 못했을 리는 없다. 우 변호사는 당초 검사장 승진이 유력했으나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따른 책임론이 일면서 검사장 승진에서도 연거푸 탈락해 지난해 4월 퇴직한 뒤 변호사로 활동해온 인물이다.

노무현 수사했던 인물 민정비서관으로 내정
노무현정권 시절 펼쳤던 사업 대대적 수사


박근혜정부가 검사장 승진에서도 탈락시킨 인물을 이제 와서 청와대 요직인 민정비서관에 앉힌다는 건 어딘가 어색하다.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세월호 사태로 악화된 민심을 수습하기위해 또 다시 노 전 대통령의 치부를 국민들에게 상기시켜 노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부관참시는 '관을 열어 시신을 참한다'는 뜻으로 여기서 언급된 부관참시는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다시 죽이려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퇴임 후에도 여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희생양이 되어 왔다.

광우병 사태 직후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졌고, 대선을 전후에서는 NLL논란과 사초실종 사태로 곤혹을 치렀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 궁지에 몰리자 박근혜정부가 노무현 카드를 다시 빼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 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야권의 반발이 뻔히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우 변호사를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내정한 만큼 단순히 이미 밝혀진 노 전 대통령의 치부를 들추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준비된 카드는?
치부 있을까?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다양한 해양정책을 펼쳤는데 우 변호사는 과거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친노진영의 해양업계 유착 가능성까지 파고들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청와대는 우 변호사를 통해 참여정부의 해양관련 사업을 전반적으로 뒤지면서 이번 세월호 사태와 연관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노무현정부의 마지막 해양수산부 장관인 강무현 전 장관은 퇴임 후 불과 5개월 만에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강 전 장관은 관련업계에서 두루 뒷돈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강 전 장관은 차관 재임 시절인 2005년부터 자신의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 회사 또는 단체들로부터 수시로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객선 운항 및 항만 준설공사 수주 편의, 부두 사용권 제공, 노무문제 해결 등 수뢰명목도 다양했다.

강 전 장관은 퇴임 직전에는 장관실에서도 뇌물을 받을 정도로 대담했다. 돈을 건넨 사람들은 검찰 조사에서 "선박의 운항 횟수·시간, 여객정원 증원, 여객선 증선 등이 모두 해수부 신고사안인 데다 선박 안전관리 감사 권한과 근로감독권도 해수부에 있다 보니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때문에 검찰 수사 당시 강 전 장관의 뇌물 범죄는 빙산의 일각이고 해운업계 전반에 비리가 만연해 있다는 얘기가 많았다. 따라서 이 같은 비리를 다시 한 번 캐내 노 전 대통령과 친노진영을 공격하려 한다는 것이다.

비리 한 두건만 건져도 '대박'
또 다시 희생양 된 노무현?

해수부는 김영삼정권 말 시작돼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본격적으로 운영됐다. 강 전 장관의 사례처럼 해수부가 비리 청탁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사실을 복기하면 세월호 수사과정에서 역대 해수부의 비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개연성도 적지 않다. 노 전 대통령 자신도 김대중정부에서 해수부 장관을 지냈고, 야권 단일후보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오거돈 후보도 해수부 장관 출신이다.

이 같은 정치권의 이야기를 방증하듯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검찰의 해운업계 비리 수사는 최근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수사 대상도 여객선사 뿐 아니라 지방해양항만청, 항만공사, 해운조합 등 해운업계 전체로 커졌다. 검찰은 해운업체들이 비자금을 조성해 해경과 해양항만청 등에 로비한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감사관은 부산항만공사 현장조사를 했고, 울산검찰청은 울산항만청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감사원도 인천항만공사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다. 또 제주검찰청은 부산항만청 제주해양관리단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부산신항,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항만 투포트 정책 등 고강도 해양 업그레이드 사업을 하며 특히 항만과 연관이 깊다. 정치권이 이번 수사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편파수사
억울한 노무현

또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 이후 박연차 태광그룹 회장이 정관계 인사 등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된 검찰 수사는 지나치게 노 전 대통령의 일가와 주변인물에만 집중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반면 박연차 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함께 거론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은 검찰이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한 바 있다.

결국 이번 항만비리 수사도 당시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물론 여권에서는 고작 1급 비서관 인사를 두고 정치적인 노림수가 있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지적한다. 우 변호사의 경우 검찰 내에서 평가가 좋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서관 내정이 결코 무리한 인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지금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을 대상으로 비리수사를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한다. 항만 업계 등이 수사의 대상이 된 것도 노 전 대통령을 겨냥 했다기보다는 세월호 수사의 유탄이 우연히 튄 것뿐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재 상황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작품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시 한 번 공안정국의 불을 지펴 세월호 정국을 정면돌파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평소 같으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인사지만 세월호 참사로 내각 총사퇴와 청와대 비서진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려는 마당에 나온 인사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인 부담을 감수하고 우 변호사를 임명한 것은 일개 비서관을 인사한 문제라고 볼 수 없다. 분명히 숨겨둔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기춘 작품?
수상한 인사

이 관계자는 또 "세월호 참사 이후 야권에서 너무 강경하게 (청와대를) 흔들었다는 말이 있다. 특히 문재인 의원의 광주사태 발언(세월호 사태는 또 하나의 광주사태와 같다는 발언)에 대해 청와대가 무척 심기 불편해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에선 같은 야권이라도 당 지도부는 사태수습에 먼저 무게를 둔 온건파인 반면, 친노로 분류되는 강경파들은 정권 흔들기에만 몰두하고 있어 눈엣가시 같을 것"이라며 "어디 너희는 얼마나 깨끗한지 같이 털어보자는 심정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권의 관계자도 "특히 여권에는 학습효과가 있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으로 정국이 한창 시끄러울 때 여권에선 NLL 논란으로 맞불을 놔서 위기를 잘 넘긴 적 있다. 현재 청와대와 여권을 공격하는 야권 인사들의 뿌리가 노 전 대통령인 만큼 노무현을 걸고 넘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며 "야권이 세월호 국정조사 대상에 청와대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 본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인물과 관련한 비리 한 두건만 발견해도 청와대는 시쳇말로 '대박'"이라고 분석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광주 발언이 뭐기에?
박주선 의원 "문재인 발언 동의 못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부실 대처를 놓고 연일 강경 발언을 이어오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의 발언에 대해 같은 당 박주선 의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문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는 또 하나의 광주"라며 "죽지 않아도 될 소중한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몬 점에서 '광주의 국가'와 '세월호의 국가'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를런지요?"라고 썼다.

이에 대해 박주선 의원은 지난달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세월호 사태와 5·18민주화운동은 전혀 다르다"며 "이번 경우엔 미필적 고의도 있겠지만 제도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권력의 직무유기나 의도적인 살인 행위는 아니지 않느냐 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광주 동구가 지역구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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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