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 속 한동안 행보를 자제해왔던 여야가 그간 미뤄왔던 안전관련 법안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격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바꿀 건 바꿔야한다'는 여야의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로 분석된다. 논의되기 시작한 안전관련 법안들은 과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진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국회에서 세월호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안전관련 법안발의가 쏟아지고 있다. 또 그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던 안전관련 법안들도 뒤늦은 심사·처리가 이뤄지고 있다. 국회가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는 법안들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에야 사후약방문격식으로 부랴부랴 나온 행보에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 만은 않다.
사후약방문격 대처
세월호 참사 이후 국회의원들이 세월호 방지법을 대거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지난 4월25일 해양수산산부 등 정부 관료들의 퇴직 후 낙하산 취업을 막는 일명 '해피아(해수부+마피아) 방지법'(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 민홍철 의원도 지난 4월23일 3000톤급 이상의 여객선 및 여객선 이외 선박의 경우 해상사고 발생 시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과 조기수습을 위해 항해자료기록설치를 의무화하는 '선박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이찬열 의원도 이날 운항관리자가 화물과적 등에 대한 관리·감독 등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해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화물 과적을 감독하는 운항관리자가 업무를 부실하게 해도 법률에 벌칙조항이 없어 처벌할 수 없는 점을 개정하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또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도 같은 날 발의했다. 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난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정신적 피해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누리당 윤명희 의원은 이 의원의 '해운법 개정안'에 처벌을 좀 더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같은 명칭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또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지난 4월22일 선박에 위험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구조에 필요한 조치를 소홀히 한 선장의 형량을 1년에서 10년으로 높이는 '선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월호 사고에서 선장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항해와 사고를 책임졌어야 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법안이다.
앞서 지난 3월 새민련 김승남 의원이 발의한 수상구조사 제도를 도입하고 민간 해양구조대원의 해상구조 활동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수난구호법 개정안'도 최근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학교 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법 ▲해사 안전법 개정안 ▲연안사고 예방법 ▲항로표지법 개정안 등 다양한 법안들이 최근 다시 논의되거나 발의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쏟아지는 '세월호 사태 방지법'
입법돼도 실효성 의문…최근 시행 재난안전법 '무용지물'
그러나 이들 법안 중 실제로 상임위를 통과하거나 본회의를 통과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수난구호법 개정안'은 부처 간 입장 차이로 심의 자체가 무산됐고, '항로표지법 개정안'은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혔다. '선박안전법 개정안'은 해당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했다.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지난해 발의된 '학교 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법 개정안', 해양사고 관리와 사전예방을 맡는 해사안전감독관 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의 '해사안전법 개정안' 등 일부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선주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선상 카지노를 허용하는 '크루즈산업 육성법'(김재원 의원 대표발의)은 세월호 방지법 심사·처리 기류에 묶여 상임위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2만톤급 이상의 크루즈에서 외국인에 한해 공해상에서 카지노를 할 수 있는 이 법안은 세월호 관련법안과는 무관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해당 상임위가 수난구호법 등 승객 안전과 밀접한 법안 통과는 보류하면서 굳이 세월호 사고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선상 카지노를 통과시킨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 나오는 세월호 방지법들은 진지한 고민보다 시류에 편승해 급조된 형태로 줄줄이 발의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 분위기와 맞지 않는 엉뚱한 법안이 세월호 방지법과 함께 통과되는 것도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효성 의문
한편, 국가적 재난에 대한 컨트롤타워를 정부 부처급으로 격상시킨 내용의 안전관련 입법이 지난해 이미 이뤄졌지만 실제 재난(세월호 사고)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 '안전'을 강조하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는 근간인 재난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이 지난 2월부터 시행됐지만, 세월호 사고 초동대응에서는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따라 현재 거론되고 있는 세월호 방지법안들이 통과된다고 해도 그 실효성은 의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재난안전법 개정 당시 안전행정부 공무원들이 재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이미 있었음에도 전문가 공청회 등의 과정도 없이 처리됐다"며 "지금 논의되는 법안들도 보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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