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출판기념회 후원금 추적

재산 공개 어겨도 달랑 '경고'…솜방망이 처벌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 후원금이 사라졌다!' 작년 국회의원들은 여론의 질타 속에서도 우후죽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통해 국회의원들이 거둬들인 수익이 최소 수천만원에서 최대 수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올해 재산공개에서 그 내역을 공개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국회의원들이 거둔 후원금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지난 3월28일 제19대 국회의원의 재산변동사항을 공고했다. 지난해 국회의원들은 여론의 질타 속에서도 우후죽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특히 다수의 의원들은 국정감사나 예산심사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출판기념회를 개최했고, 소위 '대박'을 쳤다.

사라진 돈

정치권에서는 해당 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최소 수천에서 수억원의 수익을 거둬들였을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재산공개 내역에서 출판기념회 수익을 공개한 사람은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 단 한 명뿐이었다. 어찌된 일일까?

지난해 출판기념회를 열어 최고 흥행을 거둔 것으로 유명했던 새누리당 A의원은 이번 재산공개에서 따로 출판기념회 수익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던 A의원은 예산결산심사를 두 달여 남겨둔 시점에 출판기념회를 개최함으로써 그야말로 흥행 대박을 거뒀던 인물이다. 예산 확보에 목을 매는 각계의 사람들이 예결위 위원장의 출판기념회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적절한 시기에 출판기념회를 열었다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지만 A의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며칠 후 자신의 지역구에서 또 한 번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당시 국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장에 도착한 화환은 80여개로 행사장을 빙 둘러싸고도 남았다.

420석 규모의 행사장은 빈자리가 없었고, 눈도장만 찍고 다녀간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참석자가 1000명은 족히 될 것으로 추산됐다. 출판기념회를 위해 A의원 측이 준비한 1600권 정도의 책은 금방 동이 났다. 정치권에서는 A의원이 출판기념회로 수억원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A의원 측은 출판기념회 수익내역을 따로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작년에 소득저축(연금포함), 도서판매 인세 수익, 자녀의 도움 등으로 1억9000만원 가량의 채무를 변제했는데 이중 도서판매 인세 수익에 출판기념회 수익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세란 계약에 의해 저작물을 발행하여 판매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판권 소유자인 저작자에게 저작물이 팔리는 수량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치르는 돈이다.

반면 출판기념회 후원금은 말 그대로 후원금으로 인세로 집계되지 않는다. 인세에 출판기념회 후원금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설명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두루뭉술 해명에도 추적 불가
자진 신고 의무 있으나 마나


작년 국정감사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B의원도 출판기념회 수익을 따로 표기하지 않았다. B의원 측은 출판기념회 수익을 모두 예금에 포함시켰다고 설명을 했는데 B의원의 예금액은 재작년에 비해 1억원 넘게 줄어 있었다. 재산공개를 통해 밝혀진 예금액 중 정확히 출판기념회 수익이 얼마였고, 지출은 얼마였냐고 문의했지만 B의원실 관계자는 "그걸 알려줄 의원실이 있을까요?"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은 이를 고지해야 할 의무가 없다. 때문에 이외에도 대부분의 의원들은 출판기념회 후원금을 인세 수익이나 예금 등에 포함시켰다는 두루뭉술한 해명을 내놨다.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관계자도 출판기념회 수익금에 대해 "예금 어딘가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답변만 내놨다. 하지만 출판기념회 후원금은 모두 현금으로 모금되기 때문에 예금에 포함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하자 "예금에 넣지 않으면 사실상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공무원은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재산을 등록해야 하며, 첫 등록 이후 이듬해부터는 재산변동부분에 대해 자진 신고해야 한다. 만약 국회의원들이 출판기념회 후원금을 재산공개에 반영하지 않았다면 공직자윤리법을 어긴 셈이다.

또 현행법상 출판기념회는 모금 한도나 회계보고에 대한 의무가 없긴 하지만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등록된 재산사항에 대해 잘못 기재되었거나 누락된 부분에 대해 보완 및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매년 출판기념회를 통해 수천에서 수억원의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인데도 이 부분에 대해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재산 공개에서 일부 재산을 누락시킨다고 하더라도 3억원 이하는 '경고'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자들에게는 경고가 인사상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선출직인 국회의원들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올해 초 여야는 모처럼 뜻을 모았다. 불법 정치자금의 모금창구로 의심받고 있는 출판기념회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정치자금법을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고, 민주당은 후원회 형식의 출판기념회 금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부적인 반발도 있어 관련법의 보완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실제로 여야 당 대표는 올해 초 출판기념회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고 공언하고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동료의원들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출판기념회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약속이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립서비스는 아니었는지 우려가 되는 상황인 것이다.

뜻 모은 여야

웬만해선 자기 밥그릇에 손대는 법이 없는 국회의원들이 출판기념회에 대해 한목소리를 낸 것은 그만큼 출판기념회의 병폐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2012년 6월부터 작년 12월까지 현직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건수는 79건으로 한 달 평균 4.15건에 달했다.

대다수의 출판기념회는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 전후에 몰렸다. 울며 겨자 먹기로 출판기념회장을 찾은 이들은 출판기념회를 '합법적 삥 뜯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과연 올해는 출판기념회의 병폐를 해소할 수 있을까? 매년 사라지는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 후원금은 어디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 것일까?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출판기념회가 뭐기에?
정치자금 편법 모금창구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참석자들은 관례적으로 책값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낸다.

출판기념회를 한 번 열면 최소한 2억~3억원씩은 거둔다는 이야기가 떠도는 이유다. 특히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피감기관이나 국감과 관련된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사는데, 대기업의 경우 기업 명의로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 어치의 책을 구매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회의원 공식 후원 모금한도는 연간 1억5000만원이고 선관위에 수입과 지출 내용을 반드시 신고해야 하지만 출판기념회는 모금액 제한이 없고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선관위에 신고할 필요도 없다. 때문에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 편법 모금 창구로 활용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