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세월호 의문의 침몰 ①풀리지 않는 미스터리10

패닉에 빠진 대한민국 "부끄럽고 화나고 슬프다"

[일요시사=사회팀] 박민우 기자 = 뒤집힌 세월호. 나라도 발칵 뒤집혔다. 역대 최대급 인명 피해가 예상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참사가 일어난 지 상당 시간이 흘렀지만 사고 원인과 침몰 과정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각종 설만 난무하는 실정. 이번 사고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되짚어봤다.

 

 

 

더 구할 수 있었는데…도대체 왜?
사고원인 침몰과정 두고 각종 설만 난무

승객과 선원 등 총 470여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인천을 떠난 것은 15일 오후 9시께. 당초 이날 오후 6시30분 출발 예정이던 세월호는 안개로 인해 2시간30분 지난 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밤새 순조롭게 운항해 전남 진도군 해상에 도착한 세월호는 오전 8시55분께 긴급한 구조요청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뱃머리 바닥만 간신히 수면 위로 드러낸 채 선체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겼다.

[의문1] 안개 속 운항 '왜?'

세월호 사고를 둘러싸고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의문은 안개가 심한 데도 왜 운항을 강행했냐는 것이다. 이날 안개 속 인천항을 떠난 배는 세월호가 유일해 더욱 의문이 커진다.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 들어섰을 때도 안개는 걷히지 않은 상태였다.

해경은 "세월호가 사고해역에 도달했을 당시 시정거리가 1마일(1852m)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짙은 안개를 무시한 무리한 운항이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과감히 중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경은 세월호가 무리한 출항을 하게 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3주 전에도 안개 속에서 여객선 충돌 사고를 낸 적이 있는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발뺌했다. 항해 안전운행 지침에 파고 2.5m, 풍속 10m 이상 등이면 여객선 운항이 전면 금지된다. 하지만 선장이 안전하다고 판단할 경우 제한적으로 운항이 가능하다.


[의문2] 항로 변경 '왜?'

세월호는 안개로 출발이 지연된 만큼 도착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지름길'을 택했다. 이를 두고 항로 이탈 논란이 일고 있다. 세월호가 예정보다 늦게 출항하면서 입항 시간을 맞추려고 평소 다니던 항로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해경 관계자는 "사고 지점이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이라며 "이는 진도 남쪽으로 돌아가는 해도상의 인천-제주 권고항로를 벗어난 항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항로는 선박들이 운항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항로"라고 덧붙였다. 

권고항로란 특별한 법적근거는 없지만 선박의 교통질서 확립과 선박 통항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권고하는 항로로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한다. 권고항로를 벗어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다만 선박들은 권고항로를 잘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사 측도 항로 이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한 결과 정상적인 안전항로를 크게 이탈한 걸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문3] 사고원인 '왜?'

가장 의견이 분분한 대목은 바로 사고 원인이다. 전문가들도 각기 다른 추측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엔 짙은 안개 속에 무리하게 출항했다가 암초와 충돌해 좌초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됐다. 또 외부 충격과 내부 폭발 등도 좌초 이유로 꼽혔다.

그러나 세월호 선장 등 승무원을 조사한 해경은 사고 원인을 '변침'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선장은 사고 원인을 변침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변침은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항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항로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뱃머리를 갑자기 돌리는 순간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침몰했다는 것이다. 해경은 세월호가 사고 지점에서 급하게 뱃머리를 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 선박이 좌현으로 기울면서 1, 2층에 실린 화물과 승용차 등이 충돌했을 터. 세월호엔 차량 180대와 컨테이너 화물 1157t이 실린 상태였다.

당시 승객들이 증언한 '쾅'하는 소리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나리오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선체를 끄집어내야 정확한 사고 원인을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의문4] 시간차이 '왜?'

사고 시간과 신고 시간이 다르다는 주장이 나와 진위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1시간 이상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이날 목포해경 상황실에 접수된 최초 사고 신고 시각은 오전 8시58분. 그런데 현지 어민들에 따르면 신고 시각 1시간여 전부터 세월호가 바다에 정지해 있었다고 한다.

한 어민은 "바다에서 그 배를 처음 본 것은 7시∼7시30분쯤이었다"며 "마을에 도착하니 9시가 좀 넘었는데 그때 구조작업에 동참해달라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어민의 말대로라면 세월호는 사고 현장에서 1시간여 동안 머물다 8시30분 이후부터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최초 신고는 사고 선박에 탑승하고 있던 승무원이 한 게 아니다. 단원고 한 학생의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가족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조난신고는 배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조난신고가 사고 발생보다 1시간 이상 늦어졌다면 그만큼 구조작업도 지체됐다는 얘기가 된다. 승무원들이 직접 조난신고를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의문5]- 모자란 2시간 '왜?'

1분1초를 다투며 진행된 필사의 구조작업은 2시간 동안 이뤄졌다. 그동안 탑승자 475명 가운데 179명이 구조됐으나 나머지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조난 신고가 접수된 건 8시58분. 여객선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11시30분쯤이다. 이에 따라 2시간이나 있었는데 왜 모두 구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일고 있다.
 

먼저 승무원들의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승무원들은 사고 직후 "밖으로 나가지 말고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라. 객실에 있어라"란 내용의 안내방송을 하다가 약 30분 뒤에 "구명조끼를 착용하라"는 방송을 했다. 선체가 기울자 뒤늦게 대피령을 내린 것이다. 지체된 대피로 실종자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못했고, 이미 물이 들어와 선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혀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우왕좌왕한 모습도 비난을 사고 있다. 정부는 처음 배가 그대로 버틸 것으로 오판했다. 구조에 나선 해경과 해군도 눈에 보이는 승객만 구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2시간 후 침몰했고, 내부에 갇힌 승객들은 모두 실종됐다.

[의문6] 안내방송 '왜?'

그렇다면 "객실에 있으라"는 안내 방송은 왜 한 것일까. 세월호는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란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이어 배가 기울어도 "선실이 더 안전하겠습니다"란 방송으로 승객들의 이동을 막았다.


자체 수습을 시도한 정황으로 판단되는 이 대응은 결과적으로 승무원들의 판단 미스였다. 승객들이 충분히 대피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수습만 하려다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물이 들어오면 퍼내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선장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선장은 승객들을 급히 대피시켜야 할 상황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보통 선장은 배에 문제가 생기면 승객들을 구명보트 등이 있는 데크(갑판)로 유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반면 승객들이 한꺼번에 선상으로 올라오면 배가 더욱 기울어 침몰이 가속된다는 의견도 있다.

[의문7] 안 펴진 구명벌 '왜?'

선박 화재나 침몰 등 해난 사고가 일어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때 '구명벌(천막처럼 펴지는 둥근 형태의 구명보트)'이란 비상 탈출기구를 활용하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구명벌은 선박이 물 속으로 가라앉을 때 수압이 가해지면서 자동으로 펴진다. 수동으로 끈만 풀러서 작동할 수도 있다.

세월호에도 구명벌 46대가 구비돼 있었다. 1대당 25명씩 탑승할 수 있어 모두 1150명이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중 펴진 구명벌은 단 1대뿐이었다. 배가 가라앉으면 자동으로 펼쳐져야 했지만, 나머지 45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체 승객을 다 태우고 남을 만큼의 구명벌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구조된 승객들은 구명조끼에만 의지한 채 바다에 뛰어들었다. 구명조끼도 270여개가 선미에 보관돼 있었지만 승객들은 이를 입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문8] 전원구조 발표 '왜?'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세월호에 탑승한 안산 단원고엔 사고 초기 잠시 희소식이 전해졌다. '전원구조'란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환호성을 지르는 등 한때 술렁이기도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사고 당일 오전 11시9분께 언론에 문자 메시지로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고 통보했다. 단원고도 학부모에게 '모두 구조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데 이어 학교로 몰려온 학부모들에게도 "모두 구조됐으니 안심하라"고 알렸다. 일부 언론도 '수학여행 학생 전원 구조'라고 보도했다.
 

이도 잠시. 곧바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단원고는 다시 눈물바다가 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공식 발표와 다른 것이 뒤늦게 확인되자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잘못된 소식의 진원지는 학교였다. 단원고에 파견된 경찰관이 학교 관계자에게 정확하지 않은 첩보를 전달한 게 발단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의 엉터리 발표도 학부모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해경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고 초기 서로 다른 현황을 발표해 혼란을 키웠다.

[의문9] 실종자 문자 '왜?'

세월호에서 미처 탈출하지 못한 학생이 보낸 구조요청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SNS에 "지금 배 안인데 아무것도 안 보인다. 나 아직 안 죽었으니까 안에 사람 있다고 좀 말해 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캡처한 사진이 올라온 것. 이외에도 온라인상에 실종자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문자와 카카오톡들이 여러 건 공개됐다.

한 실종 학생의 어머니는 "지인이 배 안에 있는 학생으로부터 '살아있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전해왔다"고 말해 학부모들이 환호를 질렀다. 실종자와 직접 통화를 했다는 가족도 있었다. 이를 근거로 실낱같은 희망이 생긴 가족들은 "배 안에 생존한 실종자가 있는데 왜 구조하지 않냐"며 해경에 항의했다.

해경은 실제 실종자들이 보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발신자 추적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사실 확인이 안 된 정보들이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고 판단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실종자를 사칭해 허위 문자메시지를 유포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엄정 처벌할 방침이다.

[의문10] 탈출한 선장 '왜?'

"객실에 있으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올 당시 이준석 선장은 탈출을 준비했다. 이 선장은 승무원들과 함께 일반 승객들이 다 대피하지 못한 상황에서 배를 버렸다. 이는 명백한 선원법 위반이란 지적이다.

선원법 10조(재선의무)를 보면 선장은 화물을 싣거나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 다만 기상 이상 등 특히 선박을 떠나서는 아니 되는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장이 자신의 직무를 대행할 사람을 직원 중에서 지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명시돼 있다.

또 선박 위험 시 조치를 다룬 11조에도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 선장은 인명구조는커녕 가장 먼저 배를 탈출했다. 실제 세월호 1차 구조자 명단엔 이 선장의 이름이 떡하니 올라있다. 더구나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선장은 탈출 후 진도 한국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는 동안 병상에서 바닷물에 젖은 현금을 말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 선장뿐만 아니라 승무원들도 마찬가지다. 구조 생존자엔 사망한 승무원 박지영씨 1명을 제외한 29명이 포함돼 있다. 승무원 30명 중 29명이 생존한 것이다. 결국 선원과 승무원들이 승객 구조를 외면한 채 자신만 생존하기 급급해 피해를 키운 셈이다. 승무원들이 발 빠른 구조작업만 벌였더라도 더 많은 승객들을 구조했을 것이란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pmw@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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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