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판 주무르는 '박심' 실체추적

'선거의 여왕'(박근혜)이 찍으면 당선은 떼논 당상?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지방선거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방선거와 관련해 '박심(朴心)'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청와대는 박심은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의심스러운 정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치 누군가의 지휘를 받는 듯 일사분란한 경선 후보들 간의 교통정리는 박심 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지방선거를 뒤흔들고 있는 박심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그해 총선을 두 달 가량 앞두고 "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는 발언으로 탄핵 위기까지 몰렸다.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는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다.

박근혜의 힘

그런데 지방선거를 두 달 가량 앞둔 지금 새누리당 내부는 이른바 '박심'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박심 논란이 가장 뜨거운 곳은 바로 서울시장 경선이다. 현재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군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예비후보는 정몽준 의원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인 정 의원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박근혜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자 떠오른 대항마가 김황식 전 국무총리다. 정치권에서는 김 전 총리가 사실상 박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실제로 김 전 총리는 하필 박심 논란이 한창 불거질 무렵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런저런 문제에 관해 상의를 한 적은 있다"면서 박심 논란에 스스로 불을 지폈다. 이후에도 김 전 총리는 작심한 듯 또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친박계가 돕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 전 총리는 당초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다 돌연 미국행을 택했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공천신청 접수마감을 김 전 총리의 귀국일 다음날로 하루 연장까지 해줬다.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또 김 전 총리가 출마를 결심하자마자 최형두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비서관직을 사임하고 김황식캠프에 합류했으며,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캠프 조직총괄단장을 맡았고, 2012년 대선 때는 새누리당 국민소통본부장을 맡았던 친박계 이성헌 전 의원이 김황식캠프에 총괄선대본부장으로 합류했다.

지난 3일에는 박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육사 37기 동창생 전인범 특수전사령관의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김황식캠프에 합류하면서 서울시장 경선을 둘러싼 박심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반면 김 전 총리의 맞수인 정 의원 측은 박심 논란을 의식한 듯 박 대통령의 원로자문그룹 7인회의 멤버인 최병렬 전 대표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위촉했다고 발표했다가 최 전 대표 측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히고 나서면서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2주 만에 돌연 불출마, 박심의 실체?
청와대 비서관까지 동원, 노골적 지지?

정 의원 측은 "여러 차례 최 전 대표를 만나 선대위원장직을 맡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는데 여러 상황으로 인해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최 전 대표의 합류를 박 대통령 측에서 막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인천시장 선거에서는 이례적으로 선거관리를 책임지는 현직 안전행정부장관이 차출되기도 했다. 일각에선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의 인천시장 선거 출마가 이번 지방선거에 박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 전 장관은 당초 인천시장직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지역구 또한 경기도 김포시였다. 그런 유 전 장관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박 대통령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유 전 장관이 출마를 결심하자마자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은 돌연 인천 시장 출마를 포기하고 유 전 장관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출마를 공식 선언한 지 불과 12일 만이었다. 이 의원과 유 전 장관 모두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유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이 의원은 대선 후보 시절 각각 비서실장을 지냈다. 박심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이런 발 빠른 내부 교통정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박 대통령은 유 전 장관에게 "인천이 국가적으로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게 (국민들의) 바람일 것이다. 결단을 했으면 잘되길 바란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선거중립 훼손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물론 당사자들은 청와대와의 교감설에 대해 선을 그었다.

제주도지사 선거와 관련해서는 청와대가 무소속이던 우근민 현 제주지사의 새누리당 입당을 적극적으로 회유한 후 원희룡 전 의원과 우 지사의 교통정리까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 지사는 지난 1월 새누리당 제주도당 신년인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박 대통령의 입당 권유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새누리당에 입당하고 나니 제주예산은 한 푼도 깎이지 않고 오히려 100억원이 늘었다고도 말했다.

게다가 새누리당이 원 전 의원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주도지사 경선을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치를 것을 결정하자 반발하던 우 지사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서청원 의원 등을 잇달아 만난 뒤엔 돌연 불출마를 선언하고 오히려 원 전 의원을 돕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울산시장 출마를 선언했던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 역시 출마 선언 후 불과 2주 만에 돌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후 정 의원은 갑자기 당내에서 차기 국회부의장 또는 차기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 의원은 대표적인 친박계이다. 강길부, 김기현 의원 등 새누리당 소속 울산 중진의원 모두가 울산시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구도가 되자 청와대의 교통정리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처럼 발 빠른 교통정리에 지방선거를 둘러싼 박심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하나같이 청와대 개입설에 선을 긋고 있지만 앞뒤 정황을 놓고 보면 믿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출마 선언 후 불과 2주 만에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인가? 누군가의 압박, 아니 명령이 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황우여 대표나 최경환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이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국은 (배후조종자가) 박 대통령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새 판짜기

청와대 개입설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실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화성갑 재보선에 출마할 당시 크게 반발하던 김성회 전 화성갑 의원은 갑자기 재보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서 의원을 지지하고 나선다.

이후 '보은인사설'이 불거졌지만 청와대와 김 전 의원은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 박 대통령은 보란 듯이 김 전 의원을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에 임명했다. 비전문가인 김 전 의원이 난데없이 지역난방공사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보은인사라는 반발이 거셌지만 박 대통령은 임명을 밀어붙였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아직도 각 지역 당원 표심에는 박심의 향배가 결정적이다. 때문에 각 후보자들이 박심을 잡기 위해 자가발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대통령이 지방선거 승리에 눈이 멀어 선거중립의 의무를 잊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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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