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기초선거 무공천 현장 직접 가보니

"무공천 스트레스 사망, 남일 같지 않다"

[일요시사=정치팀]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선거 무공천 결정으로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준비하던 야권의 예비후보자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선거가 불과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명함 한 장 제대로 돌리지 못한 후보도 있었다. <일요시사>가 직접 가본 야권의 무공천 선거현장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26일 공식 출범했다. 창당대회장은 한껏 들뜬 축제 분위기였지만 같은 시간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소속으로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자들의 근심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미생지신?

기자와 만난 구의원 예비후보 A씨는 "최근 모 구의원이 무공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남의 일 같지가 않다"며 하소연 했다. A씨는 익명을 요구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한 것은 기본적으로 매우 환영하지만 이래서는 아무런 시너지효과도 낼 수 없다. 무공천 결정으로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기초선거에 출마하려던 사람들은 다 죽게 생겼다"고 말했다.

A씨는 이번 지방선거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할 예정이었다. 미리 2천장에 달하는 명함과 홍보물까지 제작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소식이 전해지면서 미리 제작해놓은 명함과 홍보물 등은 한 순간에 쓰레기가 돼버렸다.

그는 "합당 소식에도 일단 선거운동을 위해 민주당 소속으로 예비후보 등록을 하긴 했다. 하지만 민주당 로고가 적힌 명함을 들고 선거운동을 하니 유권자들이 오히려 '민주당은 해체된 거 아니냐'며 물어보더라. 선거운동을 할수록 유권자들에게 혼란만 주는 것 같아 명함을 돌리는 것을 그만뒀다. 어떤 식으로 선거운동을 해야 되는지 아직까지 감도 못 잡고 있다"라고 말했다.


A씨는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이 마음껏 명함을 돌리며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그래도 자신은 그나마 선거사무소에 내걸 대형 현수막은 제작하기 전이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일부 후보는 합당이 결정되기 전 당명과 로고 등을 새긴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무공천 결정으로 이를 모두 교체해야 할 지경에 처했다.

보통 대형 현수막은 설치비까지 포함해 개당 100~200만원 정도 선이다. 현수막의 크기와 개수 제한이 풀리면서 어떤 후보는 2~3개씩 현수막을 설치하기도 한다. 구의원의 선거비용 제한액은 보통 4000만원선이다.

그런데 현수막 교체비용으로만 몇백만원을 날린다면 향후 선거운동에 큰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부 후보자들은 대형현수막에서 당명이 적힌 부분을 지우거나 가리는 등의 궁여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무래도 미관상 좋지 않아 울상이다.

선거 끝나면 어차피 복당, 눈 가리고 아웅?
"차라리 진심으로 사과하고 공천하라"

이번엔 또 다른 구의원 예비후보 B씨의 선거사무실을 찾았다. 선거를 불과 두 달여 앞둔 후보자의 사무실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초라하고 적막했다. 그는 "구의원 선거가 원래 다 그렇다"면서도 "선거비용을 보전 받으려면 득표율이 15%가 넘어야 하는데 야권후보가 난립하는 이번 선거에서 과연 15%를 넘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선거비용을 줄이려고 했고, 선거사무실이 더 삭막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별다른 수행원도 고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선거사무실 대표번호를 자신의 휴대폰으로 착신해놓고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까지 일일이 직접 응대해가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B씨는 무공천의 가장 큰 폐해로 기호 2번을 쓰지 못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사실 구의원 선거는 유권자들이 누가 누군지 구별도 못한다. 아무리 선거운동을 해도 그렇다. 그런데 기호 2번을 못쓰면 사실상 어렵지 않나?"며 "그래도 우리 지역은 야권세가 강한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어쩌면 기호 3번을 부여받는 통진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B씨는 무공천 결정에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만약 새정치민주연합이 무공천 결정을 강행하면 기초선거 후보들은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5월15일 이전에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 하지만 당선이 되고나면 곧바로 복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B씨는 "기초선거공천제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가 '중앙정당에 대한 예속'인데 이래서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라며 "공천제의 폐해를 없애겠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그러려면 제도를 통해 없애야지 어느 한쪽만 공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야말로 보여주기식 정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당장 선거가 끝나면 기초의회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나설 텐데 우리는 지켜보기만 할 건가? 복당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대응을 할 수가 없다"며 "기껏 무공천 선거를 치러놓고 선거가 끝난 후 줄줄이 복당을 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우리만 무공천 하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전략이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공천을 하는 것이 낫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선거운동에서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려면 시장이나 시의원 등이 함께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데 무공천 결정으로 이런 선거운동을 할 수가 없게 됐다. 또 당의 거물급 인사들이 지원유세를 한다고 해도 옆에서 보조를 하는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당의 정치인이 무소속 후보의 유세차를 타고 지원유세를 하면 선거법 위반이 된다. 손발이 다 묶인 채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셈이다.

후보자는 '멘붕'

야권에서는 최소한 후보가 난립하는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 자체단일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 또한 전망은 어둡다. 실제 공천과정에서도 온갖 잡음이 일어나는데 하물며 자체단일화가 쉽게 이뤄질 수 있겠냐는 비관론이다.

단일화 방법을 놓고 이전투구가 일어날 것이 뻔한 상황이다. 기껏 돈을 들여 경선을 치른다고 해도 일부 후보가 승복을 못하겠다며 출마하면 이를 막거나 제재할 방법도 없다. 어차피 모두가 무소속이니 유권자들 입장에선 누가 경선을 불복했는지 쉽게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최근 중앙당의 기초선거 무공천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석 서울시의원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 의원은 "나는 정당공천이 없을 때도 기초선거를 두 번 해봤고, 정당공천이 생긴 이후에도 두 번 기초선거를 치러본 사람이다. 정당공천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혁신을 통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혁신만 이뤄지면 무공천하는 것보다 공천하는 것이 훨씬 더 깨끗하고 효율적인 선거를 치를 수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 모두 기초선거 공천 폐지 공약을 내놓은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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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