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국가정보원·검찰의 간첩증거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야당의 국회 정보위원회 소집 요구를 거부해온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국회 정보위원장)이 당 후보 공천 신청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6월 대구시장선거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당장 야당에서는 "국회 정보위를 열지 않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당 지도부와 대구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던 후보들은 서 의원의 갑작스러운 정치적 결단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야 모두를 당황케 한 서 의원의 대구시장 출마 뒤에 도사린 꼼수를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지난 14일 차기 대구시장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불과 일주일 전 대구지역 국회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불출마 하겠다"고 했던 입장을 갑자기 바꾼 것이다. 서 의원이 내세운 출마의 주요 배경은 '당의 강력한 요청'과 '지역 국회의원들의 권유'다. 그러나 새누리당 지도부와 지역 국회의원들은 "요청도, 권유도 없었다.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환영받지 못한 출마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서 위원장의 출마와 관련, '당 요청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 당헌당규개정특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구지역 중진 이한구 의원(4선·수성갑)은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심(黨心)과는 무관한 개인출마로 안다"며 "새누리당은 (정치)개혁 방안으로 내놓은 상향식 공천을 충실히 실천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재원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도 "서 의원과는 지난 2월 임시국회 이후 한 차례도 만난 적 없고, 전화 통화를 한 일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외에도 대구지역 국회의원들 대부분은 "출마를 요청한 적이 없다"며 황당해 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서 의원에 앞서 출마를 선언한 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 조원진 의원은 "서 의원이 '나는 안 나간다. 본인의 뜻대로 출마하라'고 말했었다"고 했고,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은 "서 의원이 '당에서 요청이 없으면 출마하지 않는다. 당신을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권영진 전 의원은 "당의 요청과 대구 국회의원들의 요구를 빙자해서 스스로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라고 자가발전 의혹을 제기했다.
이처럼 당 지도부의 요청과 대구지역 국회의원들의 출마권유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서 의원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20일 <뉴스와이>에 출연한 그는 출마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일찍 출마를 선언한 이들이 많아 안 나가려 했지만 공천 신청 마감일까지의 여론조사를 보면 후보들이 1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당의 요청에 의해 하루 전날 어쩔 수 없이 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장이나 도지사에 나갈 정도면 다 당의 지도부나 영향력 있는 분들과 사적으로 의논을 하고 나간다"며 "제 경우도 누군지 밝힐 수는 없지만 강한 권유가 있어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의원이 본인의 출마 명분을 위해 정치개혁 방안으로 새누리당이 야심차게 내놓은 상향식 공천제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언론인터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는 셈이다.
결국 참지 못한 새누리당 심현정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성명을 통해 "서 의원의 출마는 당의 요청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대구 초선의원 중심의 출마 권유 역시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서 의원은 대구시민들을 우롱한 것에 대해 사죄한 뒤 후보직을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후보는 또 "서 의원이 정치개혁의 상징으로 내세운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제에 당 지도부의 강력 요청 운운하며 고춧가루를 뿌렸다"며 "이러한 3류 코미디언도 웃고 갈 출마 행보와 정치 권모술수에 대해 경쟁후보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과 분노만 치밀 뿐"이라고 비난했다.
국회 정보위 파행 속 뒤늦은 출마
"당 요청 있었다"…당은 사실무근
여야 모두 '황당' '꼼수' 비판 작렬
여당 못지않게 야당에서도 서 의원의 대구시장 출마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국정원·검찰의 간첩증거조작 의혹 사건이 정국의 주요 현안으로 부상한 지 오래지만, 위원장인 서 의원의 국회 정보위 개최 거부로 국회 차원의 추궁이 수개월째 이뤄지지 않던 상황에서 나온 이번 결정은 지방선거까지 완전히 정보위 문을 닫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 의원에 앞서 여당 정보위 간사(조원진 의원)도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만큼 지방선거까지 정보위는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은 "검찰은 국정원 앞에서 쩔쩔매고 국회 정보위원장은 국정원을 돕기 위해 몸을 던져 사라졌다"고 꼬집었다.
국정원개혁특별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았던 문병호 의원은 "간첩증거조작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정보위 개최를 거부해 온 서 의원의 대구시장 출마는 후안무치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침묵을 제1의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도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는데 서 의원만 '요지부동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8차례에 걸친 야당의 정보위 소집 요청을 묵살한 서 의원 때문에 정보위가 석달 가까이 문 닫혀 있다. 이 정도면 간첩증거조작의 국정원장과 재판부 기만의 검찰을 지키는 '충직한 마당쇠'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비꼬았다.
앞서 국회 정보위 소속 야권 의원들은 지난 12일 국회 정보위원장 사무실을 찾아 '서상기 위원장은 즉각 사퇴하라'는 피켓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국·검 지키는 마당쇠?
이와 같이 정보위 개최 요구 및 사퇴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서 의원의 지방선거 출마는 임기를 마치는 5월까지 시간을 끌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서 의원은 "저는 정보위 회의를 한 번도 안 열겠다고 거부한 적이 없다"며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열어서 법안을 논의하고 남는 시간에 현안 질의를 하자고 야당이 나서면 지금 선거 때문에 정신이 없지만 올라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보위를 열어 국정원, 국정원장을 흠집 내는 것만 하는 야당에게는 멍석을 깔아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또 당내 일각에서 '남재준 책임론'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 당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은 유감"이라고 남 원장을 옹호했다. 검찰의 국정원 수사에 대해선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고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구속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고 대단한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국정원을 옹호했다.
결국 서 의원의 강경한 태도와 대구시장 출마로 인해 국회에서 국정원의 간첩증거조작사건을 따지는 것을 보는 일은 지방선거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차기 대구시장 여권후보 지지율
서상기, 아슬아슬 1위…1~5위 오차범위 내 접전
대구지역 신문인 <매일신문>과 <TBC>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코리아에 의뢰해 지난 17~19일 대구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13.9%의 지지율을 기록, 타 후보들에게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조원진 의원(12.4%), 3위는 이재만 전 동구청장(10.5%), 주성영 전 의원(10.5%), 5위는 권영진 전 서울시정무부시장(7.7%)이 차지했다(조사방식 : 방문 및 전화면접 조사,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3.15%p).
1~5위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 격차를 보이고 있어 내달 19일 대구지역 경선까지 후보 간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된다. <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