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뿔이 흩어진 범현대가 '정씨들' 현주소

한두 군데만 멀쩡…나머진 벼랑끝

[일요시사=경제1팀] 범 현대가의 '왕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그의 동생들과 자식들은 현대그룹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현대그룹에서 분가해 기업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현재 회장님들의 표정은 다르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회장들이 있는가 하면 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회장들도 있다. 범 현대가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현대그룹은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그룹은 쪼개졌고 옛 현대그룹을 이룬 기업들을 뭉뚱그려 '범 현대가'로 부르고 있다. 현대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그룹, 성우그룹, 한라그룹, KCC그룹, 현대산업개발그룹,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한국프랜지공업 등이 범 현대가로 분류되는 그룹들이다.

2000년 3월 현대그룹은 작고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아들들인 정몽구 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정면충돌로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당시 정 창업주가 5남인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려던 것에 대해 차남인 정몽구 회장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정 창업주는 2001년 3월 별세했다. 그리고 재계1위 현대그룹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잘나가는 아들
죽 쑤는 동생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만 옛 '현대' 명성을 되찾았다. 삼성에 이어 재계 서열 2위로 올라섰고 2010년에는 시가총액 100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했으며 지난해에만 매출 132조4000억원, 영업이익 9조7000억원을 올렸다.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은 정 창업주 아들들 중 처음으로 ‘명예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현대백화점 전신인 금강산업개발 때부터 줄곧 백화점 사업에 몰두해 왔으며 1999년 현대그룹에서 현대백화점그룹을 떼어내 분가했다. 현대백화점은 장남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다. 차남은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이다.


현대백화점그룹도 범 현대가에서 나름 잘나가는 그룹에 속한다. 정지선 회장이 경영을 맡은 2003년 당시 매출은 5조1148억원, 10년이 지난 2012년에는 11조2200억원으로 100% 가까이 성장했다. 150%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46.4%까지 끌어내렸다. 점포는 경인지역 8개 점포를 포함, 전국에 13개를 운영 중이다.
 

정 창업주의 6남이자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다. 현대중공업은 2002년 2월 현대미포조선과 함께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됐다. 현대상선이던 최대주주는 정몽준 의원으로 바뀌었다. 1987년 30대의 나이에 현대중공업 회장에 오른 정몽준 의원은 88년 13대 총선 때 무소속으로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에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로만 이름을 올린 채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후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룹은 정몽준 의원의 최측근 인사인 이재성 회장이 이끌고 있다. 이 회장은 2012년 말 정 창업주의 동생인 고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과 사돈이 됐으며 정몽준 의원과 중앙고 및 서울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황이 악화되면서 실적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선박 가격은 하락했고 수주물량도 감소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32조1000억원으로 전년대비 4.8% 줄어들었으며 영업이익은 8020억원으로 무려 60%나 급감했다. 2010년 영업이익은 5조6223억원이었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는 871억원의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했다. 순손실 규모는 2300억원에 달했다.

'왕회장' 세상 떠난 지 13년째
가족들은 힘겨운 각개전투 중

7남 정몽윤 회장은 손해보험업계 2위인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의 수장이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은 55년 3월 현대그룹이 설립한 해상보험 회사다. 99년 1월 현대그룹에서 분리해 나갔다. 정몽윤 회장은 96년 9월 분식회계혐의로 금융당국의 해임권고를 받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2004년 10년 만에 등기이사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의 현재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계속 상승하면서 영업이익이 줄었기 때문인데 현대해상은 2013회계년도(2013년 4∼12월) 기준 순이익이 210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9% 줄었다. 이는 손해보험업계 최대 수준이다.
 


8남 정몽일 회장은 현대기업금융을 이끌고 있다. 현대기업금융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일원으로 2002년 2월 현대중공업과 함께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됐다. 여신 금융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며 어음채권금융 및 매출채권금융 업무에 종사한다. 국제투자금융 부문 업무도 실시하고 있다.

유일한 딸인 정경희씨는 바깥 활동은 잘 하지 않는다. 남편은 정희영 선진종합 회장이다. 정희영 회장은 1965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 조선 수주에서 수완을 보이면서 현대그룹에서 선진해운을 갖고 독립했다. 선진종합은 스타힐리조트(전 천마산스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정 창업주의 장남과 4남, 5남은 세상을 떠났다. 장남 정몽필 전 동서산업·인천제철 회장은 82년 4월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운전기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인천제철은 2001년 4월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된 뒤 INI스틸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2006년 3월 현재의 상호인 현대제철로 변경했다. 

톱 중의 톱은
현대자동차그룹

정몽필 전 회장의 장녀 은희씨는 95년 8월 주현 현대IHL 대표이사와 결혼했다. 현재는 현대IHL의 2대주주(9%)에 올라있다. 차녀 유희씨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장남 김지용 전 용평리조트 상무와 결혼했다.

4남 고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은 지병에 시달리다 90년 4월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아들들은 현대자동차그룹의 비엔지스틸에 입사했다. 장남 일선씨는 구자엽 LS산전 회장의 딸 은희씨와 결혼하고 비엔지스틸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차남인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제주 본태박물관 관장)씨와 결혼하고 비엔지스틸 전무로 일하고 있다.

막내 대선씨는 KBS 전 아나운서 노현정씨와 결혼했다. 대선씨는 현대BS&C 대표이사를 맡아오다가 최근 돌연 퇴진을 선언했다. 정몽우 전 회장의 부인은 이행자 본태박물관 고문이다. 이 고문의 오빠는 이진호 전 고려산업개발 회장이다.

세상등진 형제들
남은 가족들은?

5남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2003년 8월 타계한 '비운의 황태자'다. 정몽헌 회장은 정 창업주가 명예회장이 되면서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아버지 사후에는 금강산 관광개발 사업을 주관했다. 그러나 2002년 9월 5억달러 규모의 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터졌고 2003년부터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같은 해 8월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12층 화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명운을 달리했다. 이후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에 뛰어들었다.
 

현 회장은 선대 경영자들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 사업을 지속했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 피격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사업 차질을 빚었고 2010년에는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정몽구 회장과 벌인 경쟁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고난은 이어졌다. 주력계열사 현대상선은 해운업 불황이 이어지면서 적자상태가 이어지고 있고 현대증권은 주식시장의 침체로 쓴맛을 보고 있다.

정 창업주의 동생들도 범 현대가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이들 대부분은 '현대'라는 글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범 현대가 그룹을 이끌고 있다.

첫째 동생인 고 정인영 전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유학, 귀국해 언론인의 길을 잠시 걷다가 정 창업주의 요청으로 현대양행 전무이사를 맡으며 현대와 인연을 맺었다. 53년 현대건설 부사장, 61년 사장으로 승진한 정인영 전 명예회장은 76년 현대건설 대표를 맡아 현대건설을 국내 굴지의 건설사로 키웠다.


정인영 전 명예회장은 현대양행의 기계사업 분야를 만도기계로, 건설 분야를 한라자원으로 독립시켰다. 한라그룹의 탄생이다. 97년 정인영 전 명예회장이 물러나고 장남인 정몽원 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섰다. 같은 해 한라그룹이 부도를 냈고 지급보증을 섰던 한라건설도 함께 부도 처리됐다. 같은 해 한라건설의 기업 회생을 위한 화의 절차가 시작됐고 99년 경영이 정상화됐다.

최근 한라그룹은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주력 계열사 ㈜한라가 부동산 경기침체로 2011년부터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해 있는 것. 한라그룹이 공시한 지난해 잠정경영실적을 보면 매출 1조9992억원과 영업손실 2507억원, 당기순손실 4281억원 등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5% 상승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4%, 79.1% 줄었다.

이런 한라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친 곳이 현대백화점과 KCC다. KCC는 정 창업주 막내동생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진 회장이 오너로 있는 회사다. ㈜한라는 지난 7일 재무개선을 위한 자구책으로 1000억원 가량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던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하이힐' 복합쇼핑몰을 KTB자산운용이 조성한 펀드에 팔았다.

이 펀드에는 한라가 500억원을 댔고 현대백화점과 KCC도 각각 400억원씩 자금을 모아 인수에 참여했다. 현대백화점은 향후 이 쇼핑몰을 도심형 아울렛으로 위탁운영해 힘을 실어주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다른 그룹과는 달리 독자노선을 걸었다. 58년 직접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했으며 74년 고려화학, 89년 건설 부문을 따로 분리해 금강종합건설, 89년 금강레저, 90년 고려시리카, 96년 금강화학을 신설했다.

2000년 금강스레트공업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사명을 금강고려화학으로 정했다. 금강고려화학은 2005년 회사 이름을 ㈜KCC로 바꿨다. KCC는 국내 최대 종합건자재 업체로 성장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2000년 초반 경영권을 정몽진 회장에게 물려줬다.


위기 맞은 한라 'SOS'
도와주는 현대백·KCC

KCC는 지난해 양호한 영업성과를 올렸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317억원으로 전년 대비 16% 늘었고 매출액은 3조2330억원으로 전년 대비 0.4%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둘째 동생은 고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이다. 정순영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일하다 70년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며 분가했다. 75년 현대종합금속을, 87년에는 성우오토모티브를 세웠다.

90년 성우리조트를 설립하면서 성우그룹이라는 사명을 쓰기 시작했다. 92년에는 성우종합건설, 96년 성우전자를 계열사로 편입하며 덩치를 키웠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사세가 크게 축소됐다.

성우그룹의 오너는 장남 정몽선 회장. 주력계열사인 현대시멘트는 전액자본잠식 상태에 처해 있다. 현대시멘트는 100% 자회사인 성우종합건설에 대한 보증채무,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재고누적 등으로 경영난을 겪어왔다. 현대시멘트가 성우종합건설에게 지급보증을 서준 금액은 지난해 9월 기준 총 4863억원이다.

셋째 동생이자 유일한 여동생 정희영 여사는 고 김영주 전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김영주 전 명예회장은 40년대 초 정 창업주를 만나 정 여사를 소개받았으며 50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부사장까지 지냈다.

이후 금강개발 사장, 현대중공업 사장, 현대엔진공업 회장 등을 역임했고 74년 자동차 부품 생산 업체인 울산철공을 창업해 76년 사명을 한국프랜지공업으로 변경했다. 2000년 장남인 김윤수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명예회장직으로 물러났다.

한국프랜지공업은 지난해 매출 9692억원, 영업이익 174억원, 당기순이익 102억원으로 매출액은 전년대비 1.6% 증가,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4.3%, 20.7% 감소했다.

정 창업주의 넷째 동생은 '포니정'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그룹 명예회장이다. 정세영 전 명예회장은 67년 현대자동차 설립 당시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74년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승용차인 현대 포니를 개발, 세계 시장에 수출하면서 포니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95년까지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 회장을 지낸 뒤 99년 자동차 업계를 떠나 현대산업개발의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다가 2005년 5월 폐렴으로 사망했다.
 

정세영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규 회장은 99년 4월 회장에 취임해 현대산업개발을 경영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토목 건축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08년 5위였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지난해 9위로 하락했으며 2004년부터 2012년까지 흑자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장기 미착공 사업지 분양에 따른 공사손실 등으로 적자 전환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매출액 4조2169억원, 영업손실 1479억원, 당기순손실 2012억원의 잠정 영업실적을 기록했다.

뒤로 물러나 앉은
창업주 동생들

다섯째 동생 고 정신영씨는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의 아버지다. 정신영씨는 동아일보 기자와 유럽특파원, 한국일보 유럽통신원으로 일한 뒤 62년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대종합상사는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다. 76년 설립되어 현대그룹 수출을 전담하다가 2003년 워크아웃 후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 2010년 현대중공업그룹에 편입됐다.

현대종합상사는 최근 몇 년간 실적 악화에 시달려 왔다. 200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공격적인 투자 때문이다.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이던 중국 청도현대조선 지분 66.25%를 신규투자자인 산동산푸·국정홀딩스 컨소시엄에 부채를 떠맡기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매각하면서 인수대금과 유상증자 지원금 등으로 1855억원을 허공에 날렸다.

2012년 244억원의 순손실, 지난해 상반기에만 84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2012년 자본총계는 -666억원, 지난해 상반기에는 -812억원을 기록했다.

정신영씨의 부인인 장정자씨는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현대학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비영리법인이다. 딸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블룸버그 대학 교수인 임광수씨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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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