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뿔이 흩어진 범현대가 '정씨들' 현주소

한두 군데만 멀쩡…나머진 벼랑끝

[일요시사=경제1팀] 범 현대가의 '왕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그의 동생들과 자식들은 현대그룹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현대그룹에서 분가해 기업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현재 회장님들의 표정은 다르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회장들이 있는가 하면 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회장들도 있다. 범 현대가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현대그룹은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그룹은 쪼개졌고 옛 현대그룹을 이룬 기업들을 뭉뚱그려 '범 현대가'로 부르고 있다. 현대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그룹, 성우그룹, 한라그룹, KCC그룹, 현대산업개발그룹,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한국프랜지공업 등이 범 현대가로 분류되는 그룹들이다.

2000년 3월 현대그룹은 작고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아들들인 정몽구 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정면충돌로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당시 정 창업주가 5남인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려던 것에 대해 차남인 정몽구 회장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정 창업주는 2001년 3월 별세했다. 그리고 재계1위 현대그룹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잘나가는 아들
죽 쑤는 동생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만 옛 '현대' 명성을 되찾았다. 삼성에 이어 재계 서열 2위로 올라섰고 2010년에는 시가총액 100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했으며 지난해에만 매출 132조4000억원, 영업이익 9조7000억원을 올렸다.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은 정 창업주 아들들 중 처음으로 ‘명예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현대백화점 전신인 금강산업개발 때부터 줄곧 백화점 사업에 몰두해 왔으며 1999년 현대그룹에서 현대백화점그룹을 떼어내 분가했다. 현대백화점은 장남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다. 차남은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이다.


현대백화점그룹도 범 현대가에서 나름 잘나가는 그룹에 속한다. 정지선 회장이 경영을 맡은 2003년 당시 매출은 5조1148억원, 10년이 지난 2012년에는 11조2200억원으로 100% 가까이 성장했다. 150%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46.4%까지 끌어내렸다. 점포는 경인지역 8개 점포를 포함, 전국에 13개를 운영 중이다.
 

정 창업주의 6남이자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다. 현대중공업은 2002년 2월 현대미포조선과 함께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됐다. 현대상선이던 최대주주는 정몽준 의원으로 바뀌었다. 1987년 30대의 나이에 현대중공업 회장에 오른 정몽준 의원은 88년 13대 총선 때 무소속으로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에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로만 이름을 올린 채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후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룹은 정몽준 의원의 최측근 인사인 이재성 회장이 이끌고 있다. 이 회장은 2012년 말 정 창업주의 동생인 고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과 사돈이 됐으며 정몽준 의원과 중앙고 및 서울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황이 악화되면서 실적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선박 가격은 하락했고 수주물량도 감소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32조1000억원으로 전년대비 4.8% 줄어들었으며 영업이익은 8020억원으로 무려 60%나 급감했다. 2010년 영업이익은 5조6223억원이었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는 871억원의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했다. 순손실 규모는 2300억원에 달했다.

'왕회장' 세상 떠난 지 13년째
가족들은 힘겨운 각개전투 중

7남 정몽윤 회장은 손해보험업계 2위인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의 수장이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은 55년 3월 현대그룹이 설립한 해상보험 회사다. 99년 1월 현대그룹에서 분리해 나갔다. 정몽윤 회장은 96년 9월 분식회계혐의로 금융당국의 해임권고를 받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2004년 10년 만에 등기이사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의 현재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계속 상승하면서 영업이익이 줄었기 때문인데 현대해상은 2013회계년도(2013년 4∼12월) 기준 순이익이 210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9% 줄었다. 이는 손해보험업계 최대 수준이다.
 


8남 정몽일 회장은 현대기업금융을 이끌고 있다. 현대기업금융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일원으로 2002년 2월 현대중공업과 함께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됐다. 여신 금융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며 어음채권금융 및 매출채권금융 업무에 종사한다. 국제투자금융 부문 업무도 실시하고 있다.

유일한 딸인 정경희씨는 바깥 활동은 잘 하지 않는다. 남편은 정희영 선진종합 회장이다. 정희영 회장은 1965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 조선 수주에서 수완을 보이면서 현대그룹에서 선진해운을 갖고 독립했다. 선진종합은 스타힐리조트(전 천마산스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정 창업주의 장남과 4남, 5남은 세상을 떠났다. 장남 정몽필 전 동서산업·인천제철 회장은 82년 4월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운전기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인천제철은 2001년 4월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된 뒤 INI스틸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2006년 3월 현재의 상호인 현대제철로 변경했다. 

톱 중의 톱은
현대자동차그룹

정몽필 전 회장의 장녀 은희씨는 95년 8월 주현 현대IHL 대표이사와 결혼했다. 현재는 현대IHL의 2대주주(9%)에 올라있다. 차녀 유희씨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장남 김지용 전 용평리조트 상무와 결혼했다.

4남 고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은 지병에 시달리다 90년 4월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아들들은 현대자동차그룹의 비엔지스틸에 입사했다. 장남 일선씨는 구자엽 LS산전 회장의 딸 은희씨와 결혼하고 비엔지스틸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차남인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제주 본태박물관 관장)씨와 결혼하고 비엔지스틸 전무로 일하고 있다.

막내 대선씨는 KBS 전 아나운서 노현정씨와 결혼했다. 대선씨는 현대BS&C 대표이사를 맡아오다가 최근 돌연 퇴진을 선언했다. 정몽우 전 회장의 부인은 이행자 본태박물관 고문이다. 이 고문의 오빠는 이진호 전 고려산업개발 회장이다.

세상등진 형제들
남은 가족들은?

5남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2003년 8월 타계한 '비운의 황태자'다. 정몽헌 회장은 정 창업주가 명예회장이 되면서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아버지 사후에는 금강산 관광개발 사업을 주관했다. 그러나 2002년 9월 5억달러 규모의 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터졌고 2003년부터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같은 해 8월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12층 화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명운을 달리했다. 이후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에 뛰어들었다.
 

현 회장은 선대 경영자들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 사업을 지속했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 피격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사업 차질을 빚었고 2010년에는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정몽구 회장과 벌인 경쟁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고난은 이어졌다. 주력계열사 현대상선은 해운업 불황이 이어지면서 적자상태가 이어지고 있고 현대증권은 주식시장의 침체로 쓴맛을 보고 있다.

정 창업주의 동생들도 범 현대가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이들 대부분은 '현대'라는 글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범 현대가 그룹을 이끌고 있다.

첫째 동생인 고 정인영 전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유학, 귀국해 언론인의 길을 잠시 걷다가 정 창업주의 요청으로 현대양행 전무이사를 맡으며 현대와 인연을 맺었다. 53년 현대건설 부사장, 61년 사장으로 승진한 정인영 전 명예회장은 76년 현대건설 대표를 맡아 현대건설을 국내 굴지의 건설사로 키웠다.


정인영 전 명예회장은 현대양행의 기계사업 분야를 만도기계로, 건설 분야를 한라자원으로 독립시켰다. 한라그룹의 탄생이다. 97년 정인영 전 명예회장이 물러나고 장남인 정몽원 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섰다. 같은 해 한라그룹이 부도를 냈고 지급보증을 섰던 한라건설도 함께 부도 처리됐다. 같은 해 한라건설의 기업 회생을 위한 화의 절차가 시작됐고 99년 경영이 정상화됐다.

최근 한라그룹은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주력 계열사 ㈜한라가 부동산 경기침체로 2011년부터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해 있는 것. 한라그룹이 공시한 지난해 잠정경영실적을 보면 매출 1조9992억원과 영업손실 2507억원, 당기순손실 4281억원 등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5% 상승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4%, 79.1% 줄었다.

이런 한라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친 곳이 현대백화점과 KCC다. KCC는 정 창업주 막내동생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진 회장이 오너로 있는 회사다. ㈜한라는 지난 7일 재무개선을 위한 자구책으로 1000억원 가량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던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하이힐' 복합쇼핑몰을 KTB자산운용이 조성한 펀드에 팔았다.

이 펀드에는 한라가 500억원을 댔고 현대백화점과 KCC도 각각 400억원씩 자금을 모아 인수에 참여했다. 현대백화점은 향후 이 쇼핑몰을 도심형 아울렛으로 위탁운영해 힘을 실어주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다른 그룹과는 달리 독자노선을 걸었다. 58년 직접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했으며 74년 고려화학, 89년 건설 부문을 따로 분리해 금강종합건설, 89년 금강레저, 90년 고려시리카, 96년 금강화학을 신설했다.

2000년 금강스레트공업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사명을 금강고려화학으로 정했다. 금강고려화학은 2005년 회사 이름을 ㈜KCC로 바꿨다. KCC는 국내 최대 종합건자재 업체로 성장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2000년 초반 경영권을 정몽진 회장에게 물려줬다.


위기 맞은 한라 'SOS'
도와주는 현대백·KCC

KCC는 지난해 양호한 영업성과를 올렸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317억원으로 전년 대비 16% 늘었고 매출액은 3조2330억원으로 전년 대비 0.4%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둘째 동생은 고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이다. 정순영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일하다 70년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며 분가했다. 75년 현대종합금속을, 87년에는 성우오토모티브를 세웠다.

90년 성우리조트를 설립하면서 성우그룹이라는 사명을 쓰기 시작했다. 92년에는 성우종합건설, 96년 성우전자를 계열사로 편입하며 덩치를 키웠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사세가 크게 축소됐다.

성우그룹의 오너는 장남 정몽선 회장. 주력계열사인 현대시멘트는 전액자본잠식 상태에 처해 있다. 현대시멘트는 100% 자회사인 성우종합건설에 대한 보증채무,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재고누적 등으로 경영난을 겪어왔다. 현대시멘트가 성우종합건설에게 지급보증을 서준 금액은 지난해 9월 기준 총 4863억원이다.

셋째 동생이자 유일한 여동생 정희영 여사는 고 김영주 전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김영주 전 명예회장은 40년대 초 정 창업주를 만나 정 여사를 소개받았으며 50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부사장까지 지냈다.

이후 금강개발 사장, 현대중공업 사장, 현대엔진공업 회장 등을 역임했고 74년 자동차 부품 생산 업체인 울산철공을 창업해 76년 사명을 한국프랜지공업으로 변경했다. 2000년 장남인 김윤수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명예회장직으로 물러났다.

한국프랜지공업은 지난해 매출 9692억원, 영업이익 174억원, 당기순이익 102억원으로 매출액은 전년대비 1.6% 증가,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4.3%, 20.7% 감소했다.

정 창업주의 넷째 동생은 '포니정'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그룹 명예회장이다. 정세영 전 명예회장은 67년 현대자동차 설립 당시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74년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승용차인 현대 포니를 개발, 세계 시장에 수출하면서 포니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95년까지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 회장을 지낸 뒤 99년 자동차 업계를 떠나 현대산업개발의 명예회장으로 활동하다가 2005년 5월 폐렴으로 사망했다.
 

정세영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규 회장은 99년 4월 회장에 취임해 현대산업개발을 경영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토목 건축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08년 5위였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지난해 9위로 하락했으며 2004년부터 2012년까지 흑자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장기 미착공 사업지 분양에 따른 공사손실 등으로 적자 전환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매출액 4조2169억원, 영업손실 1479억원, 당기순손실 2012억원의 잠정 영업실적을 기록했다.

뒤로 물러나 앉은
창업주 동생들

다섯째 동생 고 정신영씨는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의 아버지다. 정신영씨는 동아일보 기자와 유럽특파원, 한국일보 유럽통신원으로 일한 뒤 62년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대종합상사는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다. 76년 설립되어 현대그룹 수출을 전담하다가 2003년 워크아웃 후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 2010년 현대중공업그룹에 편입됐다.

현대종합상사는 최근 몇 년간 실적 악화에 시달려 왔다. 200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공격적인 투자 때문이다.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이던 중국 청도현대조선 지분 66.25%를 신규투자자인 산동산푸·국정홀딩스 컨소시엄에 부채를 떠맡기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매각하면서 인수대금과 유상증자 지원금 등으로 1855억원을 허공에 날렸다.

2012년 244억원의 순손실, 지난해 상반기에만 84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2012년 자본총계는 -666억원, 지난해 상반기에는 -812억원을 기록했다.

정신영씨의 부인인 장정자씨는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현대학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비영리법인이다. 딸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블룸버그 대학 교수인 임광수씨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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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