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람들 릴레이인터뷰 1>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선생님은 영원한 민족의 스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동교동계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랜 시간 김 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삶을 생생히 목도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보다 더 따뜻했던, 눈물 많고 정 많은 김 전 대통령을 보았고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한 인동초 삶을 지켜봤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유훈도 평소 그가 항상 해왔던 말들이었다.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면들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되새겨봤다. 

DJ와 30년 질긴 인연, 첫 국회의원 대정부 질문이 시작
굴곡진 정치사 고비 고비 마다 DJ 곁에서 어려움 도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동교동계 인사 중에는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김 전 대통령과 같이한 30여 년 동안 그가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아끼지 않은 대표적인 측근이기 때문이다.

국상이 마무리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지난달 28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한 전 대표를 만났다. 국상 후 며칠 동안 고단했던 몸을 추스른 한 전 대표의 모습은 한결 나아보였다. 인터뷰 내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에 젖은 그의 뒤로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에서 촬영한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념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 동교동계 주요 인사로 불릴 정도로 DJ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
1981년도에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다. 1982년 10월7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의를 통한 첫 발언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말했다. 당시 나는 김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생활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이었다. (그가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본회의장에서 6가지를 이야기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석방, 광주 사태 진상조사, 전두환 대통령의 민정당 총재직 사퇴,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와 언론의 자유가 그것이다. 김 전 대통령같이 억울한 정치지도자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존경받아야 하는 인물이었다. 두 달 후인 12월 김 전 대통령이 교도소를 벗어나게 됐다. 내 대정부질의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 등 각계 인사들의 구명운동 때문이었다. 교도소를 벗어난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DJ 유언은‘화해와 용서’, 상도동계와 화해 큰 흐름
“민주당을 중심으로 화합할 수 있도록 힘 보탤 것”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1985년 귀국 후였다. 김 전 대통령에게 인사를 갔는데 내 대정부질의를 기억하고 “가족과 더불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게 인연이 됐다. 귀국한 김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추협의 양대 산맥이 됐다. 이전에도 민추협은 활동하고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이 합류하고 나서야 활발히 움직이게 됐다. 낙선한 내게 김 전 대통령이 민추협 대변인을 제의하면서 인연이 계속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미니 민주당의 야당 통합과 DJP연합, IMF 시절 노사정위원장, 민화협, 옷 로비 사건 후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청와대로 가는 등 김 전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은 고비고비마다 그와 함께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투쟁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진정성과 한길을 걸으며 인동초 같은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을 보고 김 전 대통령과 함께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 국회 본회의 발언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국회 첫 발언에서 뜻있는 말을 하는 것이 민주화 학생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나를 뽑아준 관악구민에게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일이었다. 의원직을 걸고, 목숨을 걸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8개월가량 내사를 받았었다. 주변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는데 비밀로 하라는 말도 있었고 너무 무섭기도 해 말을 하지 못했었다. 10개월이 지나 나에게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 이후 오랜 기간 DJ와 함께하며 그를 지켜봤다. 곁에서 본 DJ는 어떤 사람이었나.
김 전 대통령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산이 있으면 큰 산이라고만 하지 어떤 산이라고는 말을 못하는 것과 같다. 그는 큰 인물이었고 정치지도자였다.
인간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눈물도 많았다. 바탕이 착하고 선한 분이었다. 노력하고 인내하는 사람이었다.

- 인간적인 DJ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시골에 모시고 가면 “산을 보라”하신다. 바위가 왜 저렇게 생겼는지, 나무는 왜 그렇게 휘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항상 머리를 쓰고 창조적인 아이템을 생각해내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은 내가 김 전 대통령에게 “선생님 골프가 참 좋은 운동이죠” 했다. 그랬더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냐. 그 시간에 책을 잃고 얻는 희열이 더 크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 말이 가슴에 남아 한동안 골프를 치지 않았다. 지금도 자주 치는 편은 아니다. 계속 쳤으면 프로급일 텐데….

김 전 대통령은 일생을 노력하며 살았다. 진지하게 살았다. 때문에 개인적인 재미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창조적으로 엮어내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독서광이었고 이희호 여사와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이 여사에 대해 “나이가 먹을수록 정이 든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굴곡이 심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곁을 지켜준 것이 고마워서일 것이다. 나도 한숨 쉴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되니 고생한 안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깊은 정이 되더라. 
 
- 정치적인 면에서 DJ는 어떤 사람이었나.
정치적인 면에서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정치적인 목적이 생기면 온 몸으로 투쟁했다. 투쟁에 정책과 노력을 겸비했다.

- DJ는 쌓은 업적 중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공이 적지 않다.
김 전 대통령은 정적에 의해 5번의 죽을 위기를 겪었다. 그러면서도 정치적으로 끈질긴 투쟁을 했다. 민주화를 앞당긴 공이 있다.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군부에 의한 정권교체가 아닌 평면적, 평화적 정권교체는 김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YS는 삼당합당으로 대통령직에 올랐으니 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된 정권교체는 아니었다.

- 의회주의자였던 DJ에 대해 듣고 싶다.
노태우 정부 때 지방자치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을 한 적이 있다. 의원직을 사퇴하고 의원회관에서 철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단식투쟁을 벌였다. 지자제를 얻어냈지만 국회의원은 국회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굳게 한 일이었다. 국회의원은 원내에 있어야 하며 원내외투쟁을 병행하되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DJP연합에서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의원내각제라는 산을 넘어야 했다. 나는 김 전 대통령이 내각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나도 내각제를 반대하지는 않아”라고 이를 받아들였다.  
 
- 민주화 외에도 경제, 사회적으로 이룩한 공이 크다. 
집권 후 IMF라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했다. 제2의 국난이라고 불린 IMF 외환위기를 신속하게 벗어났다. 당시 나도 노사정위원장으로 노사정간 대타협을 이끌어내 국가 부도를 막는데 일조한 바 있다. 

IT 사업을 이끈 것도 김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서 힌트를 얻어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부터 지식정보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우리나라가 IT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를 만드는 등 인권 문제에도 공이 크다. 서민 복지를 위해 노력했고 동서간의 화합, 국민 통합을 위해 매진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평화를 연 최초의 대통령이다. 평화를 위한 끈질긴 노력으로 남북화해에 큰 공을 세웠다.

- 공적이 있다면 과실도 있을 수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은 한 일이 많다. 역사가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이고 순수한 의도에서 했던 일이 홍보보다 행동이 먼저 이뤄지면서 국민들의 이해를 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


- DJ의 유훈은 무엇인가.
평상시 들어온 이야기들이다. ‘화해와 용서’를 통한 국민통합이다. 서민을 위한 경제를 이룩하고 남북문제와 인권 등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뜻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줄곧 주장한 것이다.

- 그중 핵심이 되는 것이 있다면.
‘화해와 용서’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납치돼 죽을 뻔 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 설립을 승인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그를 사면 복권했다. 보복하고 싶은 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모두 용서했다. YS와 생전에 만나 화해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내가 돌아가신 분은 아니지만 YS가 화해하러 왔는데 싫다고 내칠 분은 아니다. 앙금이 있지만 자연히 화해했을 것이다.

YS가 주도하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모임이 미뤄지면서 화해 분위기가 냉각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모임은 49일 이후로 미뤄졌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인사 중 화해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화해’라는 큰 흐름은 한두 사람의 말에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인 ‘용서와 화해’를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 향후 동교동계 인사들이 DJ의 유훈에 따라 민주개혁 진영의 통합에 일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당 상임고문으로 복당한 상태다. 앞으로 민주당을 중심으로 화합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것이다. 분열이 아닌 통합을 위해 힘쓰겠다.

-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통합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정당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교체에 있다.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의석수를 늘리고 정권 장악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을 기반으로 재야는 물론 필요하다면 민주노동당까지 끌어안는 반한나라당 연합을 이뤄야 한다.

 

한광옥은 누구?

1981년 제11대 민한당 국회의원
1988년 제13대 평민당 국회의원, 김대중 평민당 총재 비서실 실장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사무총장
1998년 제1기 노사정위원장
1999년 11월 청와대 비서실 실장
2002년 통일미래연구원 이사장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2009년 2월 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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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