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령700호를 발행하며

진정한 1000원의 가치

앞면엔 퇴계 이황 선생의 초상이, 뒷면엔 명륜당과 ‘계상정거도’가 자리하고 있는 가로 13.6센티미터 세로 6.8센티미터의 종이.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1000원짜리 지폐의 모습이다.

현재 시중은행에서 발권하는 고액권 수표를 제외하면 한국은행 발권 전체 화폐 중 중고참급인 1000원이지만 별로 그렇게 쌈박하지 않고 뭔가 찜찜한 느낌의 지폐. 통용되는 지폐 중 가장 말단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받아도 달갑지 않고 줘도 손부끄러운 게 지금 1000원의 참담한 모습이다.

오죽하면 지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땀내 나는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채로 동전들과 함께 나뒹구는 ‘천덕꾸러기’ 신세이겠는가.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더니 어느 여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아 옛날이여’가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게 1000원짜리 지폐의 처지가 아닌가 싶다.

수표라는 게 없던 시절엔 일명 ‘배춧잎’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화폐의 지존으로 군림한 ‘세종대왕(1만원)’을 가까이 모시면서 거북선을 배후에 둔 ‘충무공 이순신 장군(구권 500원)’까지 휘하에 두고 지갑 속에서 귀하신 대접을 받았던 ‘퇴계 선생(1000원)’ 아니었던가.

물론 그때 역시 동급이면서도 앞에 5자가 붙은 ‘율곡 선생(5000원)’에게 다소 밀리긴 했지만 지금처럼 최말단은 아니었기에 다림질 세례까지 받을 정도로 행세 꽤나 했었다.


그때는 퇴계 선생 한 장이면 콩나물을 사고 무를 사고 두부 한 모를 사서 조촐하나마 서민들의 한 끼 밥상을 차릴 수 있었고, 솔담배 한 갑에 두꺼비소주 한 병까지 사서 착잡한 가슴을 달랠 수 있는 ‘거금’이었음은 물론이다. 

명절날 중·고등학생 조카들에게 세뱃돈으로 퇴계 선생을 내밀면 ‘멋진 삼촌’ ‘통큰 이모’로 인정받던 시절, 동네 구멍가게에 가면 얼음과자를 비롯한 대다수의 군것질거리 역시 1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충분했었다.

1000원으론 겨우 시내버스와 지하철 한 구간밖에 못타는 요즘과 달리 택시를 타고 룰루랄라 기본거리를 갈 수 있었고, 휘발유 2리터에 경유는 무려 4리터를 넣을 수 있었기에 휘발유는커녕 경유 1리터도 채 못 넣는 요즘, 그 시절이 못내 그리운 퇴계 선생이다.

물론 요즘 들어 덥석 받아 챙기는 이도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받을 손조차 없어 감히 엄두도 못냈던 커피 음료자판기는 요즘 겁도 없이 퇴계 선생을 받아 삼키곤 커피 한두어 잔을 선심 쓰듯 따라주고 달랑 100원 짜리 동전 몇 개를 짜증스럽게 뱉어낸다.

찬밥도 이만하면 완전히 쉬어빠진 찬밥이다.

그나마 지폐로서 유지하던 체모도 조만간 율곡 선생의 어머니 ‘신사임당(5만원)’이 새 상전으로 등장하게 되면 동전으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엿보여 이래저래 화폐계에서 퇴계 선생의 자리는 위태위태하다. 

하지만 잘 몰라서 그렇지, 아직도 우리에게 퇴계 선생은 매우 소중하고 귀하신 몸이다. 이 지구상에는 하루에 1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사는 사람들이 무려 10억명이나 된다고 한다. 단돈 1000원이면 그 10억명에서 제외가 되는 셈이니 주머니 속 퇴계 선생을 하찮게 여겨서야 되겠는가.


북한에선 우리 돈 1000원으로 옥수수를 3킬로그램이나 살 수 있으며, 그 옥수수로 한 사람이 한 달은 너끈히 산다니 결코 적은 돈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 없다. 

어디 그뿐인가. 누구나 로또복권을 사서 일주일간 부푼 꿈을 꿀 수 있고, 때론 뜻하지 않은 ‘대박의 꿈’을 이룰 수도 있는 소중한 종잣돈이기도 하다.

1000원이 가져다준 더 진한 감동도 있다. 모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사랑의 리퀘스트>란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전화 한 통화할 때마다 1000원씩 자동으로 기부되는 대국민 모금운동인데, 어느새 11년이 되었고, 그 사이 모아진 돈이 460억원, 여기에 개인과 단체의 후원금까지 합하면 610억원이 모금돼 지난 10년 동안 무려 4만5000여명에게 혜택이 돌아갔다고 한다.

퇴계 선생의 가치는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작금 지령 700호를 맞이한 <일요시사>와 접할 수 있는 엄청난 거금이기 때문이다. 물가 급등과 화폐가치의 하락에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1000원짜리 한 장이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타블로이드판 정통 시사종합주간신문 <일요시사>.

단돈 1000원으로 사람의 색깔과 소리를 느끼고, 잉크 냄새가 아닌 사람 향기를 맡을 수 있다니, 이런 소식을 접하면 아마 퇴계 선생께서도 흐뭇하게 미소짓지 않으실까?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아이들에게 1달러의 가치를 가르쳐 주라고 강조한다. 우리에겐 1000원쯤 되는 돈이다.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밥을 챙겨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할 정도다. 1달러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부자가 될 수 없고, 설령 억만 달러가 손에 쥐어져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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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교체? 김문수<br> “법적·정치적 책임 묻겠다”

대선후보 교체? 김문수
“법적·정치적 책임 묻겠다”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국민의힘 지도부가 대선후보 교체를 강행한 데 대해 10일, 김문수 후보가 “불법적이고 부당한 후보 교체에 대한 법적·정치적 조치에 즉시 착수하겠다”며 강력히 대응을 예고했다. 김 후보는 이날 여의도 선거캠프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야밤에 정치 쿠데타가 벌어졌다. 대한민국 헌정사는 물론이고 전 세계 역사에도 없는 반민주적 일이 벌어졌다”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국민과 당원의 선택을 받아 정당하게 선출된 저 김문수의 대통령 후보 자격을 불법적으로 박탈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헌에 의하면 대통령후보는 전당대회 또는 그 수임 기구인 전국위원회서 선출하게 돼있는데 전국위원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비상대책위원회는 후보 교체를 결정해 버렸다. 이는 명백한 당헌 위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 지도부는 제가 후보로 선출되기 전부터 줄곧 한덕수 예비후보를 정해 놓고 저를 압박했다”며 “어젯밤 우리당의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저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을 계속 할 것”이라며 “우리가 피와 땀으로 지켜 온 자유민주주의의를 반드시 지키겠다. 국민 여러분, 저 김문수와 함께해달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김 전 후보 측은 이날 중으로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대통령 후보자 취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김 후보가 시간 끌며 단일화를 무산시켰다”며 “당원들의 신의를 헌신짝같이 내팽개쳤다”고 주장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이재명 독재를 저지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후보로 단일화해서 기호 2번 국민의힘 후보로 세워야 한다는 게 당원들의 명령이었다”며 “우리 당 지도부는 기호 2번 후보 단일화를 이루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반박했다. “김 후보께 단일화 약속을 지켜주실 것을 지속적으로 간곡히 요청드렸고 저를 밟고서라도 단일화를 이뤄주십사 부탁했다”는 권 비대위원장은 “하지만 결국 합의에 의한 단일화는 실패하고 말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단일화는 누구 한 사람, 특정 정파를 위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다. 누구를 위해 미리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민의힘 비대위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뼈아픈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며 “비대위는 모아진 총의와 당헌·당규에 따라 김 후보 자격을 취소하고 새롭게 후보를 세우기로 결정했다”고 부연했다. 앞서 당 지도부는 이날 새벽 비대위와 경선 선거관리위원회를 열고 한 예비후보를 대선후보로 재선출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이날 오후 9시까지 진행되는 당원 투표를 거쳐 오는 11일 전국위원회 의결을 마치면 대선후보 교체가 이뤄질 예정이다. 일각에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이뤄졌던 이번 국민의힘 지도부의 대선후보 교체를 두고 절차적 정당성 등의 다양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치열한 경선 과정을 통해 최종 후보로 선출돼있는 공당의 후보를 두고, 당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소속의 예비후보와 단일화를 시도하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후보 접수도 이날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단 한 시간만 받았던 점, 한 후보가 32개에 달하는 서류를 꼭두새벽에 접수했다는 점 등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양수 선관위원장은 이날 당 홈페이지를 통해 “당헌 74조 2항 및 대통령 후보자 선출 규정 제29조 등에 따라 한 후보가 당 대선후보로 등록했다”고 공고했다. 앞서 이 선관위원장은 김 후보의 선출을 취소한다는 공지와 후보자 등록 신청을 공고했다. 김 전 후보와 한 후보는 후보 단일화 문제로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여왔다. 지난 1차 회동에 이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모처서 가졌던 2차 긴급 회동서도 단일화 방식 등 룰에 대해 논의를 시도했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끝내 결렬됐다. 그러자 이날 권성동 원내대표는 “단일화 없이 승리는 없다”며 국회 원내대표실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권 원내대표는 “두 후보 간의 만남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며 “후보 등록이 11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오늘(7일)은 선거 과정서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가 불과 27일 남았다. 이제 남은 시간이 없다”며 “이재명 세력은 공직선거법상의 허위 사실 공표죄를 사실상 폐지하고 대법원장 탄핵까지 공언하면서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마지막 숨통까지 끊어버리려고 한다. 반면 우리는 단일대오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다”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