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주체인가 쇄신대상인가 ‘친노’ 실체 전격해부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1.22 11: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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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힌 돌’ 빼낸 ‘개천의 용’…“외롭네~”

[일요시사=정치팀] 이쯤 되면 ‘귀에 못이 박힐 만’도 하다. ‘좋은 소리도 세 번 하면 듣기 싫다’고 했듯 이젠 지루함을 넘어 거부감마저 들 지경이다. 당 안팎에서 ‘친노(친노무현)’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피곤하긴 마찬가지. 그럼에도 국민은 친노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는 눈치다. 이에 <일요시사>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역사 뿌리인 친노의 실체를 해부해 보았다.

 

민주통합당의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 공방 중심에는 여전히 ‘친노’가 있다. 좀 더 격한 표현을 빌리자면 ‘친노 패권진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 보폭을 맞췄던 이들이 권리와 힘을 휘둘러 대선에 패배했다는 당내 목소리가 넘쳐나는 상황이다.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굳히는 DJ
흔드는 YS

1967년 유진오를 당대표로 창당된 신민당은 당내 갈등 없이 가장 오랫동안 건재했던 민주당계 정당이다. 이후 ‘40대 기수론’의 DJ와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YS가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신민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들이 1985년 신한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야권 진영에 바야흐로 ‘양김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무리의 수장은 둘이 될 수 없는 법. 신한민주당에서 DJ측 동교동계와 YS측 상도동계 사이에 당권 장악을 위한 물밑전쟁이 치열해졌다. 상도동계 인사들이 DJ의 당권 장악을 저지하면서 야권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12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민당을 깨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한 양김은 1987년 DJ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13대 총선을 앞두고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완전히 갈라섰다.

'3당야합’ 반대하고
세력 없는 혈혈단신

이때 재야활동을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YS와 인연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 후보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 출마해 부산동구 지역구에서 당선돼 헌정사에 이름을 올렸다.

1990년 통일민주당 총재인 YS, 민주정의당 총재인 노태우 전 대통령, 신민주공화당 총재인 김종필의 ‘3당합당’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를 ‘밀실야합’이라 규정하고 통일민주당 잔류세력들과 함께 소위 ‘꼬마민주당’ 생활을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혈혈단신’ 신세가 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5공청문회’에서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명판을 집어던지는 등의 언동으로 일약 ‘청문회 스타’자리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석자를 전국민에게 알렸다. 

하지만 14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에 출마했으나 여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고, 15대 총선에서는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당시 신한국당의 이명박 후보와 민정당 사무총장 출신의 정계거물로 DJ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이종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얼마 전 “친노의 잔도 불태워라”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던 김영환 민주통합당 의원이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었다.


1997년 노 전 대통령은 김정길, 김원기 등의 집행위원들과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DJ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동교동계 VS 상도동계 싸움판… YS 노무현 발탁 후 ‘줄튀’ 
‘낙동강 오리알 신세’ 노무현, 민주당 ‘미운 오리 세끼’

여당에 몸담게 된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서울시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면서 부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해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인터넷에서 ‘노사모’가 조직돼 붐을 일으켰던 것도 이때다. 국회의원에 낙선한 후 그는 DJ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한마디로 노 전 대통령은 ‘박힌 돌’ 빼내는 ‘굴러들어온 돌’이였다. 지연, 학연을 비롯해 아무런 세력이 없는 노 전 대통령이 DJ계 인사들에게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제16대 대선후보경선에서 잔뼈 굵은 인사들과 경쟁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면서 단숨에 수장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잇따라 참패하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때 ‘친노’와 ‘반노’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심지어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서는 의원까지 등장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당내 분란은 좀처럼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자, 그를 추대하던 친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반면 반노를 향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친노 의원들은 일제히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고 한화갑 대표가 이에 불응하면서 양측 갈등은 더욱 악화됐다.

당시의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진통은 지금보다 더욱 심각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 쇄신안 처리 과정에서 양측이 몸싸움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대북송금특검’으로 노 전 대통령이 DJ에 법망을 씌웠으니, 이들의 날 선 대립이 골육상잔의 아픔에 비견할 만했다.

2003년 4월28일 친노 중심세력은 본격적인 신당 창당 작업에 돌입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재선 이상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민주당에 잔류했지만, 초선의원은 대부분 신당 창당에 동참했다. 이들은 더욱 자유롭게 당적을 선택할 수 있었단 이야기다. 호남을 기반으로 둔 의원들도 대부분 잔류를 선택했다.

노무현 연이은 ‘등업’에
민주당 인사들 ‘열 받네’

한 전문가는 논문을 통해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신당참여는 지역구 유권자에게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신당 참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라고 분석했다.

작년 민주당 대선 후보경선 과정에서 대표적인 비노로 분류됐던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그런 경우다. 현 강운태 광주광역시장도 당시 민주당에 잔류했으며, 친노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호남이 친노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다. 이는 결국 '친노의 호남홀대론'으로까지 이어졌다.

친노를 둘러싼 민주당의 갈등이 분출되는 슬로건은 그때나 지금이나 남아있는 자들을 향한 ‘쇄신’이다. 10년 전 친노는 ‘쇄신’을 외치며 뛰쳐나왔지만, 실상은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DJ 인사들에 대한 ‘갈등의 분출’로 볼 수 있다.

11년 전 친노는 비노를 이겼다. 친노는 대선에 승리했음에도 승자의 포용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것은 친노의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오히려 비노에게 ‘재보선 패배 책임’을 물어 야권 분열을 가속화 시켰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 “이번 대선에서 비노에 속하는 의원들은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비노입장에서 11년 전과 같이 친노의 ‘득세’로 험한 꼴을 보느니, 차라리 대선 패배의 책임을 친노에 묻고, 신당 창당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이란 계산이 가능하다. 11년 전 친노가 대선 승리로 비노에게 책임을 묻고 신당 창당의 명분을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 친노 “한화갑 사퇴” 지금 친노 “모두가 책임져”
그때 비노 “노무현 사퇴” 지금 비노 “문재인 책임져”


달리 보면 ‘친노’의 시작은 비노에게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이 YS가 아닌 DJ를 통해 동교동계 인물들과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면, 혹은 DJ계가 노 전 대통령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고 대선 승리에 힘을 모았다면 애초에 친노와 비노의 대립이 있었겠느냐는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을 끝까지 인정하지 못한 DJ계 인사들의 고집도 ‘패권’이요, 대선 승리에도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새집을 마련한 친노 인사들의 속 좁은 처사도 ‘패권’이란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친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노 전 대통령의 급부상을 목격해야 했던 비노의 ‘쓰린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25년 갈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친노보다 비노가 먼저 생겼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현재 '친노 직계'로 불리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3당합당 당시 노 전 대통령과 통일민주당에 잔류했던 인물이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도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했던 88년에 보좌관을 맡았다. 문재인 전 후보는 알려진 바대로, 노 전 대통령과 인권변호사 활동을 했던 ‘골수 친노인사’다.

노 전 대통령을 따라 열린우리당 창당에 힘을 보탰던 이들은 이후 각각 정동영 전 상임고문,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 손학규 전 상임고문을 필두로 세력을 형성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숙, 이해찬, 문희상, 유시민 의원 등이 소수 무리를 이끌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당’이었다. 현재 당권을 장악한 박영선 의원은 열린우리당 시절 정동영계 인사였다.

이번 18대 대선에서 대표적 동교동계 인사인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한광옥·김경재 전 의원은 아예 새누리당에 입당해 박근혜 정권 창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내가 하면 ‘쇄신’
남이 하면 ‘구태’

이러한 맥락에서 대표적인 동교동계 인물로 대북송금특검 과정에서 갖은 수모를 겪고도, 이해찬 전 당대표와 함께 문재인 전 후보의 당선을 도왔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구태’로 몰린 것은, 참으로 큰 손실이라는 평가도 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친노와 비노의 대립이 격한 이때. 이들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가진 구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10년 전 그들이 서로에게 요구했던 것을 자신이 먼저 실천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친노는 대선 패배 책임을, 비노는 노 전 대통령을 인정하고 친노에 대한 포용력을 발휘해 얽히고설킨 갈등을 해결하기를 ‘실패한 투표자’ 48%는 바라고 있다.

DJ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라며 울먹였던 것처럼, 친노와 비노는 결국 한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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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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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