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미국이 반복해 온 전략은 단순하다. 전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정점 제거’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은 2003년 체포된 후 2006년 제거됐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역시 지난달 28일 피살됐다. 이것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체제를 지탱하는 중심을 끊는 정치적 선택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후세인이 제거된 이유는 명확했다. 공식 명분은 대량살상무기였지만, 실제로는 중동 질서를 흔드는 ‘불안정의 축’을 없애는 것이었다.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과 쿠웨이트 침공을 통해 질서를 교란해 온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예측 불가능한 권력이었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통제되지 않는 변수다.
미국이 중동에 개입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에너지, 군사, 정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중동은 세계 원유의 핵심 통로이며, 동시에 국제 질서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이 지역이 흔들리면 시장이 흔들리고, 시장이 흔들리면 세계가 흔들린다.
미국은 이 연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중동은 선택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된다.
여기에 이스라엘이라는 변수는 결정적이다. 미국에게 이스라엘은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중동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축이다. 이스라엘이 흔들리면 중동 전체의 균형이 무너진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모든 구조는 곧 미국의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미국의 개입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다. 그리고 그 계산의 중심에는 항상 이스라엘이 있다.
하메네이 제거는 이 구조의 연장선이다. 이란은 핵 개발, 대리전 네트워크, 반미·반이스라엘 이념이라는 세 축을 동시에 가진 국가다.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라크로 이어지는 영향력은 단순한 외교가 아니라 ‘확장된 전선’이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중동은 안정될 수 없다. 따라서 제거는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해체다.
하메네이는 그 구조의 정점이었다. 그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체제의 정당성과 군사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축이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그에게 있었다. 그래서 제거의 대상은 이란이 아닌 ‘하메네이’였다. 정점을 제거하면 구조는 흔들린다. 미국은 이 원리를 반복해서 사용해 왔다.
여기까지가 과거라면, 이제부터는 미래다. ‘그렇다면 다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인물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미국은 특정 인물을 미리 정해 제거하지 않는다. 대신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이 동시에 충족되는 순간 움직인다.
이스라엘을 위협하는가, 지역 질서를 흔드는가,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확산 구조를 가지는가. 이 세 가지가 겹치면 그 정점은 제거 대상이 된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레바논·시리아 축이다. 헤즈볼라는 이미 국가를 넘어선 군사 조직이다. 이란 이후 공백을 흡수하며 독립된 위협으로 진화할 경우, 그 지도부는 새로운 ‘정점’이 된다. 이스라엘을 직접 위협하는 실질적 군사력과 국가를 대체하는 조직 구조가 결합되는 순간, 제거는 선택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예멘과 홍해다. 후티 반군은 지역분쟁을 넘어 글로벌 물류를 흔드는 단계에 진입했다. 에너지와 해상 교통을 동시에 압박하는 능력은 단순한 반군의 수준을 넘는다. 이스라엘과 연결된 해상 루트를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순간, 이들은 ‘지역 변수’가 아니라 ‘세계 변수’가 된다. 그 순간 지도부는 제거 대상이 된다.
세 번째 시나리오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이제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네트워크다. 중동 이후의 전장은 국경이 아니라 연결이다. 여러 지역에 분산된 조직, 디지털로 확산되는 이념,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지도부. 이 구조가 완성되면 제거 대상은 특정 국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점’이 된다. 전쟁은 더 작아지지만 더 정확해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공식의 대상이 아닌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와 조정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은 항상 ‘가능한 제거’에 집중된다. 전면전으로 확산되지 않으면서도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대상만 선택된다.
후세인과 하메네이는 그 조건에 부합했고, 다음 역시 이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선택의 기준은 힘이 아니라 계산이다.
베네수엘라 사례는 이 공식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중동이 아닌 남미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미국은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체제를 직접 무너뜨리기보다, 권력의 ‘정점’을 압박하고 체포 시도까지 이어지는 방식으로 중심을 겨냥했다. 이것은 권력구조의 축을 끊는 선택이었다. 국가를 무너뜨리지 않고도 질서를 재편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결국 미국은 적을 직접 제거하지 않는 방식으로 질서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 질서를 가장 위에서 흔드는 존재가 제거 대상이 된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설계고, 보복이 아닌 구조다. 그래서 미국의 전쟁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되고, 정확하게 끝난다. 겉으로는 충돌이지만 본질은 구조 재편이다.
중동은 끝난 전장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정교한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후세인 제거는 첫 번째 신호였고, 하메네이 제거는 두 번째 신호였다. 이제 남은 것은 세 번째 단계다. 누가 그 공백에 들어가느냐, 그리고 그 권력이 어떤 구조를 가지느냐다. 그 선택이 다음 질서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다음은 누구인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질서를 흔들며,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그 정점은 제거 대상이 된다. 미국은 구조를 겨냥한다. 그리고 그 구조의 꼭대기에 선 존재를 결국 제거한다. 그것이 반복돼 온 미국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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