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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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 2026.02.16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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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기의 시사펀치

[김삼기의 시사펀치] 분단은 우리의 선택이었다

1945년 8월15일의 태극기는 광복을 알렸지만 그 아래에 서 있어야 할 주권 정부는 없었다. 당시 한반도는 해방된 땅이 아니라 점령된 공간이었고 한국인은 독립된 국민이 아니라 전쟁 승전국의 관리 대상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북위 38도를 경계로 들어온 순간 분단은 이미 지도 위에 그어졌지만, 그 선이 국가의 경계로 굳어질지는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다. 진짜 비극은 그 선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를 한국 정치가 약 3년 동안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군과 소련군이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후 통일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 공간을 채우는 방식이 연합과 타협이 될지 배제와 경쟁이 될지는 한국 지도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었고, 그 선택의 갈림길에 이승만 김구 여운형 김일성 네 사람이 서 있었다. 이승만의 선택은 냉정하고 계산적이었다. 그는 냉전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을 누구보다 빨리 읽었고, 그래서 통일 정부가 아니라 남한 단독 정부를 택했다. 미군정과 결합해 반공 국가를 먼저 세우고 그것을 지렛대로 북을 압박해 통일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그 순간 통일은 뒤로 밀려나고 분단은 현실이 아니라 제도로 굳어졌다. 김구의 선택은 정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