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대응 못하는 ‘관계성 범죄’, 왜?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연인, 친구, 가족.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관계다. 하지만 이 같은 관계를 통해 범죄를 경험하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관계성 범죄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경찰의 현장 대응이나 후속 조치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경찰은 이에 대한 대응을 계속 주문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관련 법을 통한 처벌이 먼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등 평소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극성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범죄를 ‘관계성 범죄’라고 부른다. 이 같은 관계성 범죄에 대응해 특례법 제정 등을 통해 피해자 보호조치를 마련하고 경찰은 이를 집행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실무적인 문제나 관련 법 제정이 미비해 제대로 된 피해자 보호조치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밀한 관계
느는 범죄들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112신고는 2021년 21만8680건에서 2024년 23만6647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동학대는 2만6048건에서 2만9735건, 스토킹은 1만4509건에서 3만1947건, 교제폭력은 5만7305건에서 8만8394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에 따른 피해자 보호조치도 함께 증가했다. 2023년 가정폭력 보호조치는 1만3691건에서 2024년 1만6881건으로 늘었고 아동학대에 대한 긴급 임시·임시 조치는 같은 기간 8864건에서 1만468건으로 증가했다.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긴급응급·잠정조치도 1만4176건에서 1만6337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관계성 보복 범죄를 막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최근 불구속 상태로 수사받던 스토킹 범죄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다수 발생했다. 지난 10일, 대구 달서구에서 스토킹 범죄 신고로 경찰의 신변 안전조치를 받고 있던 5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지난달 12일에는 경기 동탄에서 스토킹 범죄 관련 안전조치를 받던 30대 여성이 납치·살해됐다.

가정폭력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지난달 19일 인천 부평구 한 오피스텔에서는 60대 남성이 아내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지난해 말 가정폭력으로 100m 이내 접근금지와 연락 제한 등 임시조치를 명령받았고 접근금지 조치가 종료되자 일주일 만에 아내를 살해했다.

이 같은 관계성 범죄의 보복 범죄는 법이 얼마나 피해자 보호에 동떨어져 설계돼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면서 관계성 범죄가 살인 등 강력범죄로 뻗어나가는 비극의 고리를 끊으려면 재범 위험이 큰 가해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할 강력한 제재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온다.

유한별 법률사무소 내곁애 변호사는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 등의 긴급 임시 조치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며 “과태료 부과 수준에 그치는 지금의 처벌 수위는 피해자를 지키기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강압적 통제’ 개념을 법률에 넣어 신고 상황에서 물리적 폭행이 없더라도 피해자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는 한편, 가해자를 적극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강압적 통제는 친밀 관계의 피해자가 가해자에 의해 완전히 압도·장악된 상태를 뜻한다.

지난해 약 38만6000건 신고
현장 출동해도 속수무책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신체 폭력 없이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인 통제 상황이야말로 극도의 위험 증거기 때문에, 이 개념을 도입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스토킹처벌법에 근거가 있는 GPS 전자장치를 가정폭력 가해자에게도 부착시켜 접근을 원천 금지토록 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위험군에 대한 ‘의무체포’ 논의도 이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가정폭력처벌법 개선 과제 전반은 법률 보호 대상을 혼인·동거 관계가 아닌 친밀 관계로 넓히는 것을 전제해야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한다.

유 변호사는 “혼인 등 관계 이상으로 친밀성이 확장된 지금 시기에 젠더 폭력 문제를 대응하기엔 법적으로 한계가 있어 보호 범주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 조사관은 “교제폭력 피해자도 가정폭력처벌법 범주 안에서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수사기관의 현장 대응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도 일원화된 체계로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신고가 들어와도 강제로 체포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부산경찰직장협의회 대표 정학섭 경감은 “관계성 범죄(가정폭력)에 대한 112신고가 접수되면 지역 경찰관들이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라 현장에 출동해 현장 조사를 하게 된다”며 “문제는 가정폭력 행위자가 경찰관의 현장조사를 거부하는 등 업무수행을 방해해도 처벌이 고작 500만원 이하 과태료에 불과하다 보니, 신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업무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수행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행 법률 규정을 살펴보면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가정폭력방지법) 제9조의4(사법경찰관리의 현장출동 등) 사법경찰관리는 가정폭력 범죄의 신고가 접수된 때에는 지체없이 가정폭력의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

하지만 가정폭력 행위자가 해당 현장 조사를 거부해도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될 뿐이다. 정 경감은 과태료는 벌금과 같은 것으로 행정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정질서벌이라 경찰관이 현행범 체포 등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 경감은 현장에 출동해 피해자에 대한 응급조치를 진행하지만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긴급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현장 조사
문제점?

현행법에 따르면 경찰은 관계성 범죄 중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긴급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 종류는 ▲가해자·피해자 분리 ▲현행범의 체포 수사 ▲피해자 상담소 등 장소로 인도 ▲폭력행위 재발 시 임시조치 신청 가능성 통보 ▲피해자 신변보호 요청 등이다.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범죄가 재발될 우려가 있고 긴급을 요해 법원의 임시조치 결정을 받을 수 없을 때에는 경찰관의 직권 또는 피해자의 신청에 의해 긴급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긴급 응급조치는 ▲가해자·피해자 격리 ▲가해자·피해자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이다.

문제는 임시조치 과정에서 체포된 가해자는 보통의 경우 가정폭력 사건은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서 수사를 진행한 후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는 경우 석방, 귀가 조치하는데 경찰서 정문을 나가는 순간부터 가해자가 어떤 행위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부터 피해자 보호에 대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에 반해 검사의 청구에 의해 법원의 임시조치 결정을 받은 사람이 이를 위반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에 처하고 있다. 현장 경찰관들은 이에 따라서 경찰관이 피해자를 실질적,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한 사람에 대해서는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 경감은 현행 경찰관이 피해자 안전을 위해 실시하는 안전조치 유형이 11가지가 있지만, 해당 제도만으로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안전조치 유형은 ▲보호시설 연게 ▲임시숙소 제공 ▲특정 시설 신변 안전조치 ▲신변 경호 ▲맞춤형 순찰 ▲112 시스템 등록 ▲스마트워치 지급 ▲CCTV 설치 ▲가해자 경고 제도 ▲피해자 권고 제도 ▲신원 정보 변경 보호 제도 등이다.

그는 “가해자를 실질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며 피해자 안전 조치도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가해자를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제적 대응
가동하기로

또 현행 전자장치부착등에관한 법률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자, 살인, 강도, 스토킹 범죄자 등에는 전자장치 부착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지만 가정폭력 사범에 대해서는 전자장치를 부착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경찰청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파악하고 있는 듯 유재성 경찰청 차장(경찰청장 직무대리)는 관계성 범죄에 대한 선제적 대응 체계를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단순한 말다툼이라도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가능성이 엿보이면 여성청소년·지구대 경찰이 동시에 출동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보다 선제적이고 다층적인 현장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경찰청은 최근 전국 지휘부 화상회의를 열고 관계성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단계별 대응 체계'와 ‘사건별 Case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달 12일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이 전 연인에게 납치돼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마련된 대책이다.

해당 회의에선 112 신고가 접수될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의 과거 이력이나 상담 기록이 확인되면 단순 말다툼이라도 가정폭력이나 스토킹으로 간주해 여청수사·지구대 경찰이 동시 출동하는 체계를 마련할 방침이다.

또 경찰청은 이 같은 현장 대응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관련 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도 긴급 임시조치 위반 시 형사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경찰청 관계자는 “스토킹과 가정폭력은 반복성과 예측 가능성을 지닌 범죄로, 강력한 현장 대응력이 필요하다”며 “가정폭력 처벌 수준 역시 기존 과태료에서 형사처벌로 상향하는 방향으로의 개정을 추진 중이다. 경찰 역시 이를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전력을 다해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이미 일선 청에서는 관계성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관계성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관악서에서는 지난 1월 “관계성 범죄의 살인 등 강력범죄 발전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관계성 범죄의 경찰 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한 유관기관과의 협업, 범죄 예방·홍보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관계성 범죄 대응 강화 종합대책’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경찰 내부망서도 토로
“관련 법 제정이 우선”

지난해 10월 기준 서울청 주요 112신고 순위를 보면 스토킹이 1위, 교제 폭력이 2위로 꼽혔다. 특히 관악구는 서울 25개 구 가운데 1인 여성 가구 비율이 29.4%로 가장 높고, 스토킹·교제폭력 등 관계성 범죄 신고가 많은 지역이다. 관악경찰서는 이런 지역 특성을 반영해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종합대책에 따라 관악경찰서는 관계성 범죄 112신고에 대해 적극 사건 처리하고 필요하면 구속 수사하는 등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가·피해자 분리, 임시 숙소 연계, 민간 경호 등 피해자 보호에도 집중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 신고가 쉽지 않고 반복·지속적인 관계성 범죄 특성을 고려해 112신고 이후 ‘처벌불원’ 등을 이유로 현장 종결한 사건에 대해서도 전수 피해자 모니터링을 통해 다시 한번 사건 처리 방식을 종합 판단한다. 친밀한 관계에 의한 범죄 통계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상황인만큼, 관계성 범죄 112신고 종결 때엔 신고처리 내용에 ‘연인’ ‘부부’ 등 가·피해자 관계를 정확히 입력하도록 했다.

형사과 등 여성청소년과(여청과) 이외 수사 부서에서 관계성 범죄를 수사할 경우에는 여청과에 적극적으로 통보하도록 해 피해자가 모니터링 대상에서 누락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매일 아침 여청·수사·형사과 등 주요 당직 사건 처리 부서가 모여 실시하는 일일상황점검회의도 2차례 실시 중이다. 관계성 범죄신고 초동조치, 가·피해자 분리 등 각종 피해자 보호조치 사항을 중복 점검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관악구청·구의회·우체국 등 관내 유관기관들과 협업해 관계성 범죄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려 신고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 외에 남양주남부경찰서, 경산경찰서, 사천경찰서 등 전국적으로 관계성 범죄와 관련해 전반적인 대응체계를 점검하는 회의를 개최하고 AI를 통해 범죄 분석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찰청은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를 위해 ‘민간 경호’도 전국적으로 도입했다. 경찰청은 지난 2023년 6월부터 ‘고위험 범죄 피해자 민간경호 지원사업’을 시범 도입해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 운영해 왔다.

2년간 시범 운영 결과 254명에게 민간경호를 지원하면서 단 한 건의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민간경호원의 신고로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한 스토킹·가정폭력 가해자 10명이 검거되는 성과를 올렸다.

피해자 보호
민간 경호도

이에 따라 경찰은 올해부터 서비스 운영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로 인해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 위험도 등급 ‘매우 높음’으로 판단되거나 경찰서장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범죄 피해자에 근접·밀착 등 경호를 통해 보호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민간 경호 지원 기간은 14일이며 1회 연장 가능해 최대 28일까지다. 대상자에게 민간 경호업체 소속 경호원 2명이 24시간 이내 배치된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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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