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전직 국회의원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많은 사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임기 중 끝나지 않았던 재판이 임기를 끝내고 나서야 확정됐고, 그는 국회의원으로 4년을 활동할 수 있었다. 임기 중 형이 확정됐다면 당연히 당선 무효였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재판을 받던 미국 전직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자 그에 대한 거의 모든 재판이 줄줄이 중단 혹은 연기됐고, 그에 대한 사법 판단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설령 유죄가 확정돼도 스스로 사면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리는 것을 보면, 정치인에 대한 사법 정의 실현은 일반적 잣대와 사뭇 다른 듯하다.
이 같은 현실을 초래하는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가면 아래서 벌어지는 고의적인 재판 지연 전술이 숨어 있다. 판사를 바꿔 달라거나 변호인을 변경한다거나 일정을 핑계로 들거나 건강상 이유를 들이대는 등 재판을 지연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부지기수다.
법원의 문제로 재판이 길어지거나 지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미국서도 재판해야 할 사건이 지나치게 많아서 지연될 수도 있으며, 그것이 사법제도의 문제 중 하나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기에 특별히 국내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유가 어쨌든 지연된 사법 정의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초래한다.
형벌은 그 목적이 다양하다. 교정시설에 수용해 체계적인 교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범죄자를 건설적인 준법 시민으로 사회에 복귀시키기 위해, 재범 위험성이 높은 범죄자를 구금해 범죄 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형벌의 고통을 가해 범죄자 본인은 물론이고 이성적으로 범죄의 비용과 이익을 계산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범행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 등이다.
범죄를 억제하려는 목적이 달성되려면 형벌이 확실하고, 신속하고, 엄중해야 한다. 형벌이 엄중하지 못하면 범죄 동기를 억제할 수 없다.
범죄에 대한 형벌이 피해에 비해 지나치게 경미하다면 영리한 정치인들이 이런 달콤함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선거 사범에게 당선무효형에 해당되는 100만원서 단돈 1만원을 뺀 벌금 99만원을 선고한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다.
당선이 무효화되는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하더라도 형의 선고가 충분히 신속하지 못하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범죄 억제도 불가능하며 사법 정의의 실현도 물 건너간다. 당선인의 신분으로서 임기를 다 마치고 난 이후기 때문이다.
불충분한 최소한의 정의조차도 형벌의 확실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그것마저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정치인의 선거 범죄에 대한 사법 정의가 신속하지도, 확실하지도, 엄중하지도 않다면 이런 지연된 정의는 절차적으로 부정의한 것이고, 죄에 상응할 만큼 엄중하지 못한 처벌은 결과적으로 사법 불신을 초래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