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정의와 그에 따른 범죄학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짓느냐가 최근 범죄학 연구서 화두가 되고 있다. 범죄란 무엇이며, 범죄학은 어디까지 어떻게 연구하는 학문인가가 논쟁인 것이다.
전통적 범죄는 법률로 정의할 수 있었다. 즉, 법이 범죄라고 규정해야 범죄라는 것이다. 법이 하라는 것을 하지 않거나, 법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범죄가 된다는 것이다.
범죄학은 이렇게 규정된 범죄의 현황과 실태, 원인과 그 대책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범죄를 규정하는 법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면서 당연히 범죄학의 영역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범죄에 대한 법률적 정의는 ‘법의 기원이 사회적 갈등의 해소와 해결을 위한 장치요 도구’라는 갈등론자들의 주장서 알 수 있듯이, 전통적으로 법은 권력 집단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를 규제하고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당연히 가진 자의 행위보다 가지지 못한 자의 행위를 중심으로 범죄가 규정되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엄격하지만, 사회적 피해가 훨씬 큰 가진 자들의 범죄 행위는 법이 범죄로 규정조차 하지 않거나 겨우 흉내에 그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고 잇는 것이 바로 기업 범죄, 화이트칼라 범죄 등이다.
이 같은 비판을 반영하려는 취지가 바로 ‘녹색 범죄학’이다. 환경과 인간 이외의 다른 Species와 환경에 관련된 범죄 해악(Harm), 부정의(Injustice)의 연구가 가장 단순한 녹색 범죄학의 정의다.
정의가 다소 복잡해 보일 수도 있으나 초점을 환경, 동물, 인간이나 범죄, 해악, 부정의에 맞추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범죄와 해악의 연구로서 더 구체적으로는 환경 범죄와 해악의 정도와 결과 및 원인, 법률제도와 비정부기관과 사회운동에 의한 환경 범죄와 해악에 대한 대응과 예방을 탐색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전통 범죄학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사람인 인간-중심의 연구와 이론이었다. 녹색 범죄학은 물, 토양, 공기, 식물은 물론이고 야생이거나 양식되는 사람이 아닌 동물과 가축 및 애완 동·식물까지 포함하도록 확대하는 것이다.
녹색 범죄학은 사회적 해악의 연구를 수반하는 소위 ‘해악학적(Zemiological) 접근’을 받아들인다. 법률적으로는 합법적이지만 해악적이고 소위 ‘노상 범죄(Street Crime)’보다 훨씬 더 피해와 영향이 크고 넓은 사회적 행위와 행동이 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으로 야기되는 환경 재앙은 공기와 수질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오염된 공기와 물을 마시고 사는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형사사법제도는 이문제를 도외시하거나 크게 중시하지 않았던 것을 녹색 범죄학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녹색 범죄학은 바로 ‘합법적(Legal)’인 것과 ‘해악적(Harmful)’인 것 사이서 이분법(Dichotomy)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법률적으로 합법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사회적 해악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범죄학이라는 우산 아래 있어야 한다고 간주되는 것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사회적 해악에 초점을 맞춘 녹색 범죄학은 자연스럽게 부정의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또 자연환경에 대한 해악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 파괴 범죄(Eco Crimes)’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해악으로서의 생태 범죄, 환경 범죄의 연구를 위한 저변의 이론들은 여성해방주의, 마르크스주의, 사회 구성주의 등 혁신 범죄학파의 사상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녹색 범죄학은 자연환경과 그래서 인간과 동식물을 위협하고 해를 가하는 불법적 행동과 해악적 행위의 예방과 환경자원의 보호와 보전에 전념하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