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김민주 기자 = “○○년아, 내가 돈 못 줄 것 같냐. 법대로 해라.” 이수진(가명)씨가 임대인 정모씨에게 들은 욕설이다. “집이 압류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씨는 구축 빌라서 전세로 살다 전세 사기를 당했다. 이들이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간에 낀 ‘공인중개사’ 때문이었다.
임대사업자 정씨는 성공한 사업자로 보였다. 사업도 여러 가지 하고 있었고, 그의 이름으로 된 집만 247채였다(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경기도, 인천의 구축 빌라가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인천 구축 빌라가 다수였다. 정씨 집도 인천이며 인천 지역의 공인중개사들에게 그는 유명 인사였다.
화려한
빌라왕
인천서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이씨는 한 부동산에 방문했다. 공인중개사무소(이하 중개사무소)는 이씨에게 정씨의 빌라를 소개하면서 “정씨는 집이 엄청 많은 사람으로, 10년 넘게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 일한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이 집은 중소기업청년대출이 가능하니 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청년대출은 은행서 중소기업을 다니는 청년들에게 1.5% 고정금리로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보통 중소기업청년대출은 빚이 없는 안전한 집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자리서 등기부등본을 떼서 보여줬는데, 1억4000만원 전세에 나온 집으로 서류상으로도 깨끗했다. 그래도 이씨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이 전에 살던 집에서도 전세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를 당했는데도 다시 전세를 구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다.
월세는 보증금이 적은 대신, 한 달에 50~60만원의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여기에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70만원이 훌쩍 넘는 반면, 전세는 보증금의 20%만 있으면 은행 대출이 가능했다. 은행 이자로 나가는 돈과 비교하면 월세보다 전세가 훨씬 저렴하다. 중개사무소서도 은행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씨는 전세 사기로 빨리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자도 지속적으로 나가는 상황이라 월세 집은 현재 월급으론 불가능했는데, 마침 공실인 정씨 집이 있었다. 이씨는 해당 집에 머물면서 매매할 집을 구할 계획이었는데, 결국 1억4000만원에 전세 계약했다.
집이 낡긴 했지만, 위치가 좋았고, 회사도 근처라 출퇴근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2022년 11월에 해당 집에 입주했다. 그후 7개월이 지난 뒤에야 해당 집이 압류당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전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정씨는 인천 공인중개사에게 ‘사기꾼’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알면서도 속인 것이었다.
10년 넘게 일한 성공한 임대사업자
알고 보니 인천에서 유명한 사기꾼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거주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전세보증보험은 거주한 지 1년이 안된 시점에 가입할 수 있었으나 이씨는 임대인에게 중도해지합의서를 요청했다. 중도해지합의서는 임대계약을 미리 해지하기로 합의하는 문서다. 임대인이나 임차인의 계약조건 위반 시 요구할 수 있다.
다음은 지난해 9월, 이씨는 “내가 (이 집에)거주한 지 1년이 안됐다.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데 (집이 압류됐으니)11월에 나가겠다. 미리 중도해지합의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가 “중도해지합의서 쓰고 나가도 마음대로 나가는 것”이라는 말에 그는 “지금 나쁜 집주인 명단에 올라가 있는 거 아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정씨는 “여보세요, 나쁜 집주인이고 뭐고, 만기까지 살아라. 지금 정신이 나갔냐. 당신 멋대로 법을 만들라고 하느냐? 합의고 나발이고 나는 못하니까 만기까지 무조건 살아라”고 역정을 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이씨는 “만기 때가 되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거냐”고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야, ○○년아, 주면 주는 거다. 못 줄 게 뭐가 있냐? 싸가지가 없다. 법대로 해라, 고발하라고”였다.
이씨가 “만기 때 돈은 돌려줄 수 있는 게 맞냐”고 재차 묻자, 그는 “못 돌려준다. 굳이 못 준다. (내가)왜 줘야 하냐. 나는 이제는 너랑 말하기 싫다. 지랄하지 마라. 너하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임대사업하면서 너 같은 것 처음 봤다”고 화내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날부터 정씨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 같은 사례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흔하게 겪는 일이다. 가해자는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서도 떳떳하다. 고의가 아니라는 것이 임대인들의 주장이다.
이렇듯 이씨는 전세 사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그가 두 번이나 전세 사기를 당한 데에는 공인중개사들이 거짓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집을 구하려던 것도 문제였지만, 공인중개사의 “오랫 동안 임대사업했던 안전한 집주인”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게 화근이었다.
<일요시사>는 지난 16일, 인천 부평구 소재의 한 카페서 정씨 소유의 빌라에 거주하다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 3명을 만났다. 여태까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다가구주택 거주자가 많았다면, 이들은 다세대주택 거주자였다. 다가구주택은 집주인이 1명으로 호실이 나뉘어 있는 공동주택이고, 다세대주택은 집주인이 여러명인 공동주택이다. 호수별로 매매해 소유자가 다른데, 정씨의 집 대부분은 다세대주택이었다.
이날 이들 3명은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은 한통속”이라고 이구동성했다.
돈 달라니
“○○년아”
전세 사기를 당하게 되면, 해당 집은 경매로 넘어간다. 경매서 집이 낙찰돼 돈을 받으면 문제는 해결되지만, 구축 빌라는 공시지가(국토교통부서 발표한 공식 가격)가 높지 않다. 현실적으로 경매서 빌라가 낙찰되더라도 보증금이 충당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전세 사기 매물 경매 금액은 ‘공시지가’에 피해자의 ‘보증금’을 더한다. 구매자가 피해자의 보증금을 대신 내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축 빌라가 경매서 낙찰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정씨 소유의 집은 곰팡이는 기본이고, 집 천장이 무너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등 상태도 나빴다. 빌라 매매 자체가 계속 감소하는 데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집을 살리는 만무하다.
이씨는 “그나마 신축 빌라서 전세 사기를 당하면 인테리어가 돼있으니 당장 사는 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구축 빌라는 곰팡이가 기본이다. 도배를 다시 해야 하는데 정씨한테 연락해도 전화를 안 받거나, 돈이 없다고 우리보고 해결하라고 한다”며 “우리는 돈을 받을 때까지 버틸 수가 없고,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집이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정씨 소유의 다세대주택은 연식이 최소 20년이 됐다. 너무 오래된 집은 일반 도배로는 곰팡이가 해결되지 않는다.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특수 도배 시 최소 4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집에서 정체 모를 냄새가 올라오기도 하는데, 하수구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은 기본이다.
문고리가 고장이 나는 것 정도는 애교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곧 무너질 것처럼 을씨년스운데도 정씨는 “돈이 없다”며 집수리를 거부하고 있다.
경매서 낙찰되지 않는 구축 빌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선택지는 단 하나다. 전세사기특별법이 시행되더라도 보증금의 30%만 구제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구매 후 거주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이씨는 “만약 집이 경매서 낙찰된다고 해도 최소한 1년이 걸리는데, 나는 1년 동안 또 발이 묶인다. 지금 이 집이 잘 팔리면 1억원 초반에 팔리겠지만 압류도 걸려 있으니 나밖에 살 사람이 없다”며 “세입자 외에 다른 사람이 사면 압류권까지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 집이라도 괜찮은 상태면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답답하다. 이런 식으로 집을 사서 1주택자가 된다. 이 집을 그냥 두고 다른 집에 가면 또 이자가 이중으로 부담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가)이 집을 구매해서 전세로 내놔도 공시지가가 내려갔으니 (내가 낸)보증금보다 적게 받는다. 또 집수리에만 1000만원 이상 들어갈 ”것이라며 “집이 있어도 손해고, 이 집을 나가도 손해다. 신축 빌라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한탄했다.
결국 이씨가 구축 빌라를 떠안아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는 “가장 화나는 건 정씨가 낸 빚을 피해자인 내가 대신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씨가 돈을 안 버는 것도 아니다. 전세 사기 매물을 단기 월세로 중개사무소에 올렸다”며 “분명 돈을 벌고 있는데 통장에 돈이 없다고 ‘돈이 없다’는 말만 한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10년 동안 건강보험료도 내지 않았는데 임대사업을 했다. 나는 왜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신용불량자가 돼서 정씨를 괴롭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나 몰라
배째라
결국 이씨는 ‘정씨는 안전한 집주인’이라는 공인중개사의 거짓말과 은행서 중소기업전세대출이 가능한 바람에 전세 사기를 당하게 됐다. 이씨는 “은행서 어떻게 대출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은행서 대출이 안됐더라면 들어갔을 리 없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피해자 김서영(가명)씨는 전세 만기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정씨와 연락이 되질 않으면서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월세로만 살다가 첫 전셋집이었다. 계약자도 정씨가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었다. 김씨가 전세로 들어올 때 정씨가 집을 매매했는데, 매매 금액과 전세 금액이 같았다.
김씨는 “나는 계약할 때 전세보증보험 가입 내용도 듣지 못했다. 첫 전셋집 계약이라 알지 못했지만, 공인중개사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계약할 때 방조했던 공인중개사가 다른 중개사무소서 일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을 보니 계약한 공인중개사와 수수료를 입금한 사람도 달랐다. 계약금도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A 중개사무소서 계약했는데 계약금을 B 중개사무소에 넣는 식”이라며 “원래는 중개사무소 대표에게 입금하는 게 맞다. 계약서 쓸 때 대표를 본 적도 없으며, 계약서 필체도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고 하소연했다.
김씨 역시 전세 사기서 공인중개사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정씨의 집을 전세 계약할 당시 공인중개사가 은행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김씨 주장에 따르면, 집 계약 당시 대출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중개사무소서 ‘○○은행 역삼지점’서 대출을 받으라고 했다. 당시 인천 부평구에 거주 중이었던 그는 “역삼까지 가야 대출이 잘 나온다”며 은행원 명함을 받았다.
김씨는 “(내가)너무 멀어서 못 가겠다고 하니 차로 태워줬다”며 “전세 사기 피해자들 중 이런 식으로 대출받은 사람이 많다. 대출이 나오면 안 되는 집인데 대출을 해 준 것”이라며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이 공범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정상적인 심사를 통해선 대출이 나올 수 없는 집인데, 공인중개사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임차인에게 말하지 않고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집 근처 은행을 찾았던 한 임차인은 대출을 받지 못해 결국 공인중개사가 제시한 은행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빌라 경매 기간만 1년 넘어
공시지가보다 낮은 경매가
김씨는 “정씨는 인천 중개사무소 시장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집이 많아 여러 중개사무소서 거래했으며, 이런 정씨의 사기 행각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며 “사기를 당한 뒤 알게 된 것은 중개사무소가 전세금(1억2000만원)으로 현재 임대인이 예전 임대인으로부터 집을 매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매매가는 1억원이었고, 남은 2000만원은 중개사무소와 현재 임대인이 나누눠 가져갔다고 들었다”고 개탄했다.
공인중개사법 제25조에는 ‘개업공인중개사는 중개를 의뢰받았으면 중개가 완성되기 전 ▲해당 중개 대상물의 상태‧입지 및 법률관계 ▲법령의 규정에 따른 거래 또는 이용제한 사항 등을 확인해 이를 해당 중개 대상물에 관한 권리를 취득하고자 하는 중개 의뢰인에게 성실·정확하게 설명하고, 토지대장 등본 또는 부동산종합증명서, 등기사항증명서 등 설명의 근거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기재돼있다.
수리가 안 돼있지만 이씨는 돈을 받을 때까지 현재 집에서 거주할 예정이다. 경매서 낙찰될 것이라는 희망도 이미 접었다. 1억2000만원짜리 전세지만 매매가 되더라도 7000만원 이하라는 비관적인 말을 들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단체로 중개사무소에게 소송을 걸 예정이다. 중개사무소도 정씨가 사기꾼인 것을 묵인했고, 여전히 전세 사기 매물을 단기 월세로 올려 2차 피해를 양상하고 있는 데다 전부 허위 매물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매물을 올릴 경우 압류 사실을 게시하지 않으면 허위 매물로 간주되는데, 당시 A 중개사무소는 해당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평범한 일상을 잃은 채 정씨의 행각을 쫓는 게 일상이 됐다.
이씨는 “경찰에 중개사무소를 신고해도 ‘연관성이 없다’는 말만 한다. 계약 과정을 모두 녹음하거나 영상으로 찍을 순 없다. 결론은 중개사무소를 따로 고소해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변호사 수임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이들은 “경찰에 관련 내용을 전부 찾아서 넘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계속 정씨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혀야 하냐? 우리는 일반 직장인인데, 내가 사기당했다고 거기에 몰두하고만 있을 수 없지 않느냐?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는데…”라며 “1억원이 넘는 돈이 고스란히 빚이 됐다. 전세 사기를 당해본 사람은 안다. 이건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다. 선 구제해주길 원하지만 가능하겠느냐?”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죽지 못해…”
피해자 지금…
인천에선 3명 중 1명이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피해자가 다수다.
이날 카페서 인터뷰 중 전세 사기 피해 이야기를 듣고 ‘나도 피해자’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자신들의 피해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씨는 “앞으로 피해자가 훨씬 많아질 텐데 대책은 전혀 없는 상태”라고 호소했다. 현재 정씨는 전세 사기로 검찰에 송치됐고 보완 수사 지시가 내려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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