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사태로 원금 손실을 입은 피해자들은 ‘국민의 등에 칼 꽂은 은행’을 향해 울분을 토한다. 그러면서 손실 위험 고스란히 품은 금융상품의 설계 제조 책임은 왜 아무에게도 묻지 않을까?
정작 수수료 듬뿍 얹어주며 판매를 맡긴 ELS 제조사, 설계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피해자들은 그들이 누군지 알 수도 없고 고발조차 하지 못한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이 기형적 상황은 누구 책임일까? 이 비극적인 금융 테러 사건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1980년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은 거셌다. 미국 투자은행이 처음 ELS를 선보인 것도 그쯤부터다.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키운다며 시장에 자유를 선물했다.
투자은행, 상업은행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새로운 파생 금융상품을 출시했고 자본시장의 외형은 급격하게 커졌다. 1990년대엔 유럽의 상업은행도 가세했고 본격적으로 일반인들에게 ELS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IMF 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가 지나고 2000년대를 맞았을 무렵, ELS는 한국에 상륙했다. 정부는 ‘자본시장 안정화’를 명분으로 삼았다.
국가 자원과 역량으론 재벌 기업의 덩치를 키우는 데 급급하면서도 정작 시장 안정화엔 전문적 지식과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서민의 쌈짓돈을 끌어들였다.
그럼에도 ELS는 저금리 시대의 인기 상품이 됐다.
반전의 계기는 2007년 미국이었다. 무한히 번식할 것 같던 파생상품들이 초강대국 미국 경제를 무너뜨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었다.
그 뒤로는 파생화된 고위험 증권 상품을 개인에게 판매하는 데 엄격해졌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선진국 시장서 개인을 상대로 한 ELS 상품이 퇴출됐다.
하지만 정말 이해하기 힘든 건 우리의 금융 환경이다. 파생증권 상품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팔렸다.
키코(KIKO)와 DLF 같은 대량 투자 손실 사태를 겪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수많은 국민의 재산 손실 사태가 되풀이되지만, 이 순간까지도 한국은 전혀 변한 게 없다.
참으로 기묘한 현상이다.
참혹한 범죄적 현상을 보고도 정교한 원인 규명은 하지 않는다. 처벌은 당연히 없다. 십중팔구는 이익이 나기 때문에 한두 번의 실패는 실패도 아니다.
투자자 피해는 적당히 보상하고 서둘러 새로운 파생증권을 만든다. 운이 너무 나쁘지 않기만을 바라는 건 만드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심지어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눈앞의 작은 이익에 중독된 개미들은 계속해서 포식자들의 먹이가 된다.
돈만 더 많이 벌 수 있다면, 과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따지는 않는 게 이기적인 자본주의 미덕일지도 모른다. 결과만 좋으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고위험과 고수익의 의미가 등한시되고 파생상품의 위험은 숨겨졌다.
금융시장은 단 하루도 전쟁을 멈춰본 적이 없다. 이 치열하고 잔인한 자본 생태계엔 감시도, 감독할 사람도 없다.
몇 년 뒤, 퇴임하고 옮겨 갈 새 보금자리를 구태여 내 손으로 망가뜨리고 싶은 공무원이 어디 있겠는가. 압수수색 한 번만 하면 내막을 훤히 파악할 수 있을 터지만, 수천명의 검사들 중 눈뜬 이는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의 외환위기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2007년 미국 금융위기는 이후 세계경제의 흐름을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2024년 한국의 비정한 경쟁 환경서 공존과 상생의 가치 따위는 입 밖에 내기도 어렵게 됐다.
서민과 약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자유와 자유 시장경제만 강조한다. 보호가 필요한 서민경제는 외면하고 기득권의 자유만 지켜주는 우리의 창백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누구를 위해 자유의 종은 울려야 할까?
[조용래는?]
▲전 홍콩 CFSG 파생상품 운용역
▲<또 하나의 가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