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사이버안보 전략자문회의 필요

정부 차원의 정예 화이트 해커 양성 긴요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사이버공간을 통해서 작동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사이버공간의 효용에 대한 인식이 커갈수록 사이버공간에 의존해 파생될 위험에 대한 이해와 투자 또한 꾸준히 증가해 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사이버공간에 대한 위험 대응은 크게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 안전 대응과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안보 대응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사이버 안전 대응은 악의적 의도를 가진 불특정 개인이나 조직이 시민이나 기업 등의 자유로운 활동에 영향을 미쳐 중요 이익이나 기타 주변적 이익에 피해를 유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련의 대응 활동을 말하며, 주로 개인과 기업 차원의 조치와 경찰 등 수사기관의 대응 임무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피해 위험이 발생하더라도 그 영향이 국지적이거나 또는 국가의 핵심 임무 중단에 끼치는 영향이 비교적 작은 수준의 사이버 위험들이 여기에 속한다.

북한이 체제경쟁 승리 위해 사용하는 수단

그러나 사이버안보 대응은 적대적 의도를 가진 국가나 거대조직이 우리 국가 기능에 영향을 미쳐 생존적 또는 사활적 이익에 피해를 발생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련의 대응 활동을 말한다.


전자와 구분해 이것을 사이버전 대응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주로 군이 중심이 된 대응 임무가 여기에 해당한다. 북한 위협의 본체인 사이버 공격 의도 분석을 기반으로 사이버안보와 헌법적 가치의 관계서 우리의 생존적이고 사활적인 이익을 지켜내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근 80년간 이어져 온 한반도 안보 갈등은 남쪽에 자유민주주의, 북쪽에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타난 체제경쟁이 그 본래의 모습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북한의 군사 위협은 이 체제경쟁 승리를 위한 수단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안보 위협을 이해하려면 군사를 넘어서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하고, 사이버안보 위협 또한 북한이 체제경쟁 승리를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북한의 사이버 위협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이 선택한 공산주의 체제는 정부 수립 후 1978년까지 우리의 자유민주시장경제 체제보다 국내총생산(GDP)이 높았다. 이것이 김일성이 정권을 유지한 가장 중요한 명분이었고 따라서 이 시기 북한은 체제 선전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 GDP는 북한의 50배를 넘어섰고 우리가 선택한 자유민주 체제는 그 수월성을 이미 증명했다. 그러므로 북한 정권에게 우리의 번영이 북한 정권의 지배 논리를 무력화시키는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위협이란 본래 의도와 능력으로 구성되므로 공격 의도가 없는 단순 능력은 위협이 아니다. 남한의 첨단 군사력이 북한 정권에 위협이 아닌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북침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민주 번영은 의도와 상관없이 북한 정권 존립 근거를 스스로 무너뜨리게 하는 결정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남북한이 전쟁을 방지하고 서로 번영하는 것을 평화라고 생각하며 북한도 이에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원하는 평화는 그것이 아니다. 남한의 번영이야말로 북한 정권에게는 치명적 위협이고 오히려 남한 번영을 중단시키는 모든 행위가 그들이 바라는 평화다. 어쩌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우리의 번영을 중단시키는 것을 넘어 초기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같은 시각서 바라보면 북한이 준비하는 단기전이란 바로 이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시장경제 엔진의 가동을 저하하거나 붕괴시키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행하는 모든 행동의 목적이고 의도다.

피해 예측·복원력 대응으로 정책 전환

정보화시대 성취의 결과로 우리의 자유민주시장경제 엔진은 사이버공간 안에 대부분이 놓여 있는 만큼 북한이 국가 능력을 여기에 집중해서 투사하려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북한의 사이버 위협을 안전 차원이 아닌, 안보 차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의 사이버 위협은 단지 우리의 컴퓨터나 네트워크만이 아니라 우리 헌법적 가치를 파괴하기 위한 인지적, 물리적 표적에 대한 다양한 행위들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이 핵 도발을 회피하기 위해 남한이 아니라 북한 상공서 핵을 폭발시키면 대전 이북의 대한민국 사이버공간이 순식간에 붕괴하고 이에 따라 대한민국이 북한이 원하는 과거로 초기화될 수 있다는 위험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이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6년 전에 이를 언급했고 올해 들어서는 미사일은 공중폭발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한 바 있다. 어쩌면 북한의 대남 적화 전쟁은 우리의 사이버공간 붕괴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들 개별 표적에 대한 직간접적인 공격 의도나 행위가 진정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알아채는 능력과 주체가 우리에게 너무도 부족하다는 데 있다. 사실 우리에게 전시에 사이버공간을 방어할 책임 주체는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4월 한미 사이버안보 동맹이 체결되면서 전시 우리의 사이버공간은 한미 연합 사이버 전력으로 방어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도 군은 이 책무에 대해서 준비가 부족하며 향후 미국과의 협력 방향성과 목적 설정에도 이 책무에 대한 고려에 있어 아직도 부족함이 엿보인다.

초연결 사회로 진전되면서 이제 정보기술(IT) 시스템의 위험관리가 더 어려워졌으며 비용이 증가되고 피해의 규모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최근 국가 행정망 오류 사건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인프라는 외부 공격에 의해서뿐 아니라 잠복한 적 또는 자체 소프트적 충돌과 오류로 인해 커다란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이버 대응은 이제 단순한 침해 대응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침해 대응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노력을 투자한다고 모든 것이 방어되지 않는다. 컴퓨터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따라서 공격표면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방어밀도는 더욱 얇아지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의 경험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으며 이제 모두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사이버 대응을 위한 국가정책 목표는 침해 대응이 아닌, 피해를 예측하고 최소화하는 복원력 대응으로 전환돼야 한다.


얼마나 빨리 핵심 기능이 허용하는 임계수준의 서비스로 복원될 수 있도록 준비됐느냐가 핵심적 의제가 돼야 한다. 전시에 사이버 작전은 네트워크 침해 방어가 아니라 침해로 인해 야기되는 국가와 군 핵심 기능의 임무 지속성을 보장하는 복원력 구현에 있다.

그런데도 군 사이버 조직은 이 임무를 개발하지 못한 채로 700여명이 근무하는 국방부 네트워크 담장 하나를 무려 1000여명이 지키며 또 하나의 거대 기마무사 집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동안 사이버공간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다양한 노력이 꾸준하게 증가돼왔다. 정부는 화이트 해커를 양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고 있으며 기술개발을 위해서도 투자를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안보는 적의 의도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사이버안보 전략자문회의 필요

사이버 인력 10만 양병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고 수준의 정예 인력 100명을 양성하고 지속해서 지원하는 정책적 지도력에 있다. 이제 사이버 대응은 자국의 인력양성만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글로벌 차원의 인력 동원 능력이 필요하게 됐다.

따라서 인력양성은 이제 우리의 인력 소요 충족 차원이 아닌, 글로벌 안보협력과 비즈니스 차원으로 변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서 미국이 1주일 만에 전 세계 해커를 동원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우리 인력양성 정책에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사이버 대응은 사건 대응 차원의 노력이 대부분이었다. 경보하고 출동해서 불을 끄는 차원의 사건 대응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오면서 그동안 놓친 것 또한 너무 많았다.

평시 여러 부서로 나눠 진행되는 사건 대응이 아니라 전시를 대비한 국가안보 차원의 사이버 대응을 위해 이제  과업은 대통령의 통치 과업으로 수행돼야 한다. 어느 부처가 다른 부처를 통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가를 결정하려 우리는 이미 10여년을 허비했다.

사이버안보는 어느 한 부처가 다른 부처를 통제해서는 안 되는 통치 과업이며 대통령의 전략지침이 가장 중요하다. 대통령 직속의 사이버안보 전략 자문회의가 필요한 이유다. 여기서 대통령의 사이버안보 전략지침이 제공되고 대통령의 힘으로 각 부처서 전략이 이행돼야 한다.

기술자 의존에서 벗어나 이제는 전시에 국가 기능 지속을 위한 전략적 포석을 고민할 수 있는 수준의 전문가 그룹을 모으고 활용하며 또 이들의 능력이 지속 발전될 수 있도록 정권과 무관하게 그 운영은 지속돼야 한다.

사이버안보는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시장경제를 지키는 일이기에 우리 모두의 생존적 사활적 이익이 걸린 과업이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다. 과거 경험과 지식은 중요하나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기에 오직 도전만이 기회를 발견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도전을 허용토록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국회라는 국가의 지성뿐이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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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