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민주당 꽃놀이패

“타협은 없다” 용산 압박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국정감사를 마친 민주당이 입법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이 중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도 있다. 타협의 여지가 적은 법안을 다시 국회에 올리면서 용산 압박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11월 정국에 접어든 민주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기 위한 몸풀기에 나섰다.

지난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판 지각에 변동이 생겼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보궐선거서 두 자릿수 차이로 패배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한껏 몸을 낮췄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부각하는 전략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기도 하다.

신사협정
실효성은?

선거 다음 날인 지난 12일 “선거 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는 대통령실 입장이 나왔다. 다음 날에는 “선거 결과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보선 관련 언급이 전해졌다.

이 밖에도 용산 대통령실서 참모진과 회의하며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 등 ‘민생’과 ‘소통’을 화두로 한 메시지를 꾸준히 내놨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국정운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관측도 제시됐다. 국민의힘 역시 “민생 해결을 위해 협치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의하자”는 기조를 내세웠다.


민주당도 발맞춰 ‘민생 최우선’이라는 변화를 선언했다. 지난 23일 단식 치료를 마치고 국회로 복귀한 이 대표는 “시급한 민생 문제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회 회의장서 서로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잠잠해질 전망이다. 여야가 회의장서의 피켓 소지 및 부착 행위, 고성이나 야유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를 보면서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국회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서 “전날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와 만나 국회 회의장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여야가 지나치게 정쟁에 매몰됐다는 지적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과거에는 여야 의견이 서로 달라도 회의장을 나가면 의원들끼리 안부 정도는 묻는 분위기였는데, 21대 국회에는 그런 모습이 없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날카로운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홍 원내대표도 국정감사 대책회의서 “대통령 시정연설, 여야 교섭단체 대표연설 시에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의원들이 별도의 발언, 말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가 일종의 ‘신사협정’을 제안했고 여야가 이에 대해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여야 협치 유효기간 11월?
거부권 꺼내면 또 ‘전쟁’

국민의힘이 의대 정원 확대를 띄우고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인 것 역시 차갑게 식어가는 민심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의료계 현안을 통해 각자 이득을 보려는 ‘동상이몽’을 꾀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례적으로 합을 맞추는 만큼 협치의 물꼬가 트였다는 평도 나온다.


하지만 양당의 화합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의견에 힘이 실린다. 11월 본회의를 앞두고 의석수를 등에 업은 야당이 입법을 강행하고, 여당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서 갈등이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11월 국회가 민주당 ‘꽃놀이패’로 가득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만큼 여야 대립이 극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대두되는 쟁점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야당이 단독 추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심의·의결 절차를 진행하고 이를 재가했다. 양곡관리법은 쌀이 수요 대비 3~5% 이상 더 생산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해당 법안을 두고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 반할뿐더러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양곡관리법과 관련한 여러 개정안이 발의된 만큼 11월 정기국회서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는 야당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은 총 14건이다.

개정안은 양곡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이나 목표가격 이하로 하락할 경우 그 차액을 지원하는 ‘목표가격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국정감사에서도 농민 소득안정을 위해서는 농산물 가격안정제가 중심이 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후속 입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거부권만
만지작∼

민주당은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서 한데 모아 종합한다는 방침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농민의 의견을 진솔하게 담고, 정부 입장도 가능하면 수용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개정안이 받아들여질지 예단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며 “정부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톤다운을 시킨 것”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 쟁점인 간호법 제정안은 발의 전인 논의 단계지만 민주당에서는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관측된다.

새롭게 발의될 간호법 제정안은 조항 내 갈등의 소지가 있는 문구를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법 제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이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지역사회’ 단어를 두고 “의료기관 밖에서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가능하게 한다”고 반발해왔다.

이에 민주당은 문구 수정을 통해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바운더리를 설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조항도 수정 대상이다. 기존법 5조에는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간호 특성화고 졸업자’ 또는 ‘고교 졸업자로 간호학원을 수료한 자’로 명시했는데, 이는 학력 상한을 고교 졸업으로 뒀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교 졸업자’는 ‘고교 이상 졸업자’로 수정될 전망이다.

다만 수정된 간호법 역시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실이 ‘의료’서 간호 분야를 분리하는 법안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때 의료계 파업까지 몰고 온 사안인 만큼 국민의힘 역시 “충분히 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사실상 야당의 단독 처리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이 정부·여당에 정치적 부담을 지우기 위한 목적으로 두 법안을 재추진했다고 해석했다. 간호사와 농민 등 집단 표심을 공략하는 한편, 정부·여당을 향해서는 ‘불통’ 이미지를 덧씌우는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깎고
또 깎는다

만일 윤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연일 강조해온 ‘민생’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정의당 등 야당이 추진해온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역시 정부·여당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여겨진다. 민주당이 다음 달 9일, 국회 본회의서 두 법안을 상정해 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다.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현행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를 골자로 한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사용자로 보게끔 하는 것이다.

즉, 사용자 범위는 확대하면서 노조 관련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게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방송 3법은 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교육방송(EBS)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편함으로써 정치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함이다. 공영방송 이사를 현행 9명 또는 11명서 21명으로 늘릴 수 있다. 이 밖에도 국회, 학회, 시청자위원회, 언론단체의 추천을 받는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변경도 포함된다.

앞서 두 법안은 정부·여당의 반대 속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사위를 거치지 않은 채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국회법 86조에 따르면 법안이 법사위에 이유 없이 계류된 지 60일 이상 지나면 소관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 부의를 요청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법안이 직회부 요건을 충족했다”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은 “개정안을 정상적으로 심사하고 있었으므로 이유 없는 계류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결국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법률안 심의 표결권’을 침해했다며 지난 4~5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두 법안에 관해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다만 지난 26일 헌재가 두 건의 권한쟁의심판서 무효확인 청구와 권한 침해 확인 청구를 전부 기각하면서 “입법절차는 무효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회법 86조 등 국회법상 절차를 준수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탄력을 받은 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힘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생부터 예산까지 꽉
리스크 구석구석 공략

다음 달 예정된 예산 국회서 민주당은 ‘민생 예산’ 증액 추진을 위한 송곳 심사도 벼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새만금에 물어 전북도 예산을 삭감하고, 연구·개발(R&D) 투자금을 대폭 줄인 것이 주요 뇌관이 될 전망이다.

지난 24일, 전북도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잼버리 파행과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삭감 책임을 둘러싸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잼버리가 잘되면 내 덕, 안 되면 남 탓이냐”며 “조직위에 전북 출신 공무원 75%가 파견 갔는데 공무원을 감시·감독 못한 도지사의 무능이고 무책임”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예산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전북에 지역구를 둔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정부 역시 새만금 (기본)설계서 재수립을 이유로 (기본)계획을 무력화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쟁점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명확하게 점검할 예정”이라며 “최대한 예산을 복원하는 데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천준호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올해까지 부처 예산을 100% 반영했던 예산안을 내년도에 갑자기 5000억원이나 삭감해 22%만 반영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맞느냐”며 ‘보복성 삭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 모욕”이라고 소리를 높이는 등 고성이 오갔다. 국민에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신사협정 약속이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부분이다.

또 다른 쟁점으로 꼽히는 R&D 예산은 31조1000억원서 16.6% 삭감한 25조9152억원으로 책정됐다. 삭감 폭이 큰 분야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정보통신기술 연구·개발(ICT R&D) 지원 사업 등이다. 비효율적이고 낭비성인 요인은 정비하고, 인공지능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R&D는 늘렸다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반면 대통령의 해외순방 비용이 증가한 것을 두고 민주당은 강하게 질책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서 “R&D 예산도 깎고 일자리 예산도 깎고 골목상권 살리는 지역상품권 예산도 깎았는데, 해외순방 가는 대통령 예산만 늘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 역시 “외국에 나가서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5000만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어려운 삶을 제대로 챙겨보길 권유드린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R&D 예산을 비롯한 청년 일자리나 소상공인 지원예산 등 정부와 반대되는 행보를 강조하며 증액 검토에 나설 전망이다. 이는 총선을 앞둔 시점서 2030세대의 민심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민주당은 잠잠하던 ‘김건희 특검법’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지난 24일,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던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것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마지막
치명타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리스크 중 하나를 재점화해 총선까지 압박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의힘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장모가 구속된 만큼 김 여사 특검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세를 몰아 민주당 의원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지역 주민과의 스킨십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총선을 앞두고 골고루 뿌려 놓은 민심이 표가 되어 돌아올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화합과 파열 사이

화합의 길로 들어서는 듯했던 더불어민주당서 파열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당이 단합과 통합을 해야 한다”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메시지가 무색할 만큼 매일같이 친·비명계가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다.

친명(친 이재명)계가 계속해서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의 징계를 요구하자 일부 비명계는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부결하자는 호소는 선동인 ‘해당 행위’”라고 맞불을 놨다.

여기에 비명계를 향한 ‘개딸’의 수위 높은 발언이 이어지면서 갈등의 골이 또다시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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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