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민주당 꽃놀이패

“타협은 없다” 용산 압박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국정감사를 마친 민주당이 입법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이 중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도 있다. 타협의 여지가 적은 법안을 다시 국회에 올리면서 용산 압박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11월 정국에 접어든 민주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기 위한 몸풀기에 나섰다.

지난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판 지각에 변동이 생겼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보궐선거서 두 자릿수 차이로 패배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한껏 몸을 낮췄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부각하는 전략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기도 하다.

신사협정
실효성은?

선거 다음 날인 지난 12일 “선거 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는 대통령실 입장이 나왔다. 다음 날에는 “선거 결과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보선 관련 언급이 전해졌다.

이 밖에도 용산 대통령실서 참모진과 회의하며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 등 ‘민생’과 ‘소통’을 화두로 한 메시지를 꾸준히 내놨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국정운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관측도 제시됐다. 국민의힘 역시 “민생 해결을 위해 협치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의하자”는 기조를 내세웠다.


민주당도 발맞춰 ‘민생 최우선’이라는 변화를 선언했다. 지난 23일 단식 치료를 마치고 국회로 복귀한 이 대표는 “시급한 민생 문제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회 회의장서 서로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잠잠해질 전망이다. 여야가 회의장서의 피켓 소지 및 부착 행위, 고성이나 야유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를 보면서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국회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서 “전날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와 만나 국회 회의장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여야가 지나치게 정쟁에 매몰됐다는 지적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과거에는 여야 의견이 서로 달라도 회의장을 나가면 의원들끼리 안부 정도는 묻는 분위기였는데, 21대 국회에는 그런 모습이 없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날카로운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홍 원내대표도 국정감사 대책회의서 “대통령 시정연설, 여야 교섭단체 대표연설 시에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의원들이 별도의 발언, 말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가 일종의 ‘신사협정’을 제안했고 여야가 이에 대해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여야 협치 유효기간 11월?
거부권 꺼내면 또 ‘전쟁’

국민의힘이 의대 정원 확대를 띄우고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인 것 역시 차갑게 식어가는 민심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의료계 현안을 통해 각자 이득을 보려는 ‘동상이몽’을 꾀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례적으로 합을 맞추는 만큼 협치의 물꼬가 트였다는 평도 나온다.


하지만 양당의 화합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의견에 힘이 실린다. 11월 본회의를 앞두고 의석수를 등에 업은 야당이 입법을 강행하고, 여당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서 갈등이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11월 국회가 민주당 ‘꽃놀이패’로 가득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만큼 여야 대립이 극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대두되는 쟁점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야당이 단독 추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심의·의결 절차를 진행하고 이를 재가했다. 양곡관리법은 쌀이 수요 대비 3~5% 이상 더 생산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해당 법안을 두고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 반할뿐더러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양곡관리법과 관련한 여러 개정안이 발의된 만큼 11월 정기국회서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는 야당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은 총 14건이다.

개정안은 양곡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이나 목표가격 이하로 하락할 경우 그 차액을 지원하는 ‘목표가격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국정감사에서도 농민 소득안정을 위해서는 농산물 가격안정제가 중심이 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후속 입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거부권만
만지작∼

민주당은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서 한데 모아 종합한다는 방침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농민의 의견을 진솔하게 담고, 정부 입장도 가능하면 수용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개정안이 받아들여질지 예단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며 “정부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톤다운을 시킨 것”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 쟁점인 간호법 제정안은 발의 전인 논의 단계지만 민주당에서는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관측된다.

새롭게 발의될 간호법 제정안은 조항 내 갈등의 소지가 있는 문구를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법 제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이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지역사회’ 단어를 두고 “의료기관 밖에서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가능하게 한다”고 반발해왔다.

이에 민주당은 문구 수정을 통해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바운더리를 설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조항도 수정 대상이다. 기존법 5조에는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간호 특성화고 졸업자’ 또는 ‘고교 졸업자로 간호학원을 수료한 자’로 명시했는데, 이는 학력 상한을 고교 졸업으로 뒀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교 졸업자’는 ‘고교 이상 졸업자’로 수정될 전망이다.

다만 수정된 간호법 역시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실이 ‘의료’서 간호 분야를 분리하는 법안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때 의료계 파업까지 몰고 온 사안인 만큼 국민의힘 역시 “충분히 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사실상 야당의 단독 처리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이 정부·여당에 정치적 부담을 지우기 위한 목적으로 두 법안을 재추진했다고 해석했다. 간호사와 농민 등 집단 표심을 공략하는 한편, 정부·여당을 향해서는 ‘불통’ 이미지를 덧씌우는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깎고
또 깎는다

만일 윤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연일 강조해온 ‘민생’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정의당 등 야당이 추진해온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역시 정부·여당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여겨진다. 민주당이 다음 달 9일, 국회 본회의서 두 법안을 상정해 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다.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현행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를 골자로 한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사용자로 보게끔 하는 것이다.

즉, 사용자 범위는 확대하면서 노조 관련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게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방송 3법은 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교육방송(EBS)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편함으로써 정치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함이다. 공영방송 이사를 현행 9명 또는 11명서 21명으로 늘릴 수 있다. 이 밖에도 국회, 학회, 시청자위원회, 언론단체의 추천을 받는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변경도 포함된다.

앞서 두 법안은 정부·여당의 반대 속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사위를 거치지 않은 채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국회법 86조에 따르면 법안이 법사위에 이유 없이 계류된 지 60일 이상 지나면 소관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 부의를 요청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법안이 직회부 요건을 충족했다”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은 “개정안을 정상적으로 심사하고 있었으므로 이유 없는 계류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결국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법률안 심의 표결권’을 침해했다며 지난 4~5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두 법안에 관해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다만 지난 26일 헌재가 두 건의 권한쟁의심판서 무효확인 청구와 권한 침해 확인 청구를 전부 기각하면서 “입법절차는 무효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회법 86조 등 국회법상 절차를 준수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탄력을 받은 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힘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생부터 예산까지 꽉
리스크 구석구석 공략

다음 달 예정된 예산 국회서 민주당은 ‘민생 예산’ 증액 추진을 위한 송곳 심사도 벼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새만금에 물어 전북도 예산을 삭감하고, 연구·개발(R&D) 투자금을 대폭 줄인 것이 주요 뇌관이 될 전망이다.

지난 24일, 전북도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잼버리 파행과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삭감 책임을 둘러싸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잼버리가 잘되면 내 덕, 안 되면 남 탓이냐”며 “조직위에 전북 출신 공무원 75%가 파견 갔는데 공무원을 감시·감독 못한 도지사의 무능이고 무책임”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예산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전북에 지역구를 둔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정부 역시 새만금 (기본)설계서 재수립을 이유로 (기본)계획을 무력화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쟁점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명확하게 점검할 예정”이라며 “최대한 예산을 복원하는 데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천준호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올해까지 부처 예산을 100% 반영했던 예산안을 내년도에 갑자기 5000억원이나 삭감해 22%만 반영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맞느냐”며 ‘보복성 삭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 모욕”이라고 소리를 높이는 등 고성이 오갔다. 국민에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신사협정 약속이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부분이다.

또 다른 쟁점으로 꼽히는 R&D 예산은 31조1000억원서 16.6% 삭감한 25조9152억원으로 책정됐다. 삭감 폭이 큰 분야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정보통신기술 연구·개발(ICT R&D) 지원 사업 등이다. 비효율적이고 낭비성인 요인은 정비하고, 인공지능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R&D는 늘렸다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반면 대통령의 해외순방 비용이 증가한 것을 두고 민주당은 강하게 질책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서 “R&D 예산도 깎고 일자리 예산도 깎고 골목상권 살리는 지역상품권 예산도 깎았는데, 해외순방 가는 대통령 예산만 늘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 역시 “외국에 나가서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5000만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어려운 삶을 제대로 챙겨보길 권유드린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R&D 예산을 비롯한 청년 일자리나 소상공인 지원예산 등 정부와 반대되는 행보를 강조하며 증액 검토에 나설 전망이다. 이는 총선을 앞둔 시점서 2030세대의 민심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민주당은 잠잠하던 ‘김건희 특검법’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지난 24일,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던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것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마지막
치명타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리스크 중 하나를 재점화해 총선까지 압박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의힘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장모가 구속된 만큼 김 여사 특검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세를 몰아 민주당 의원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지역 주민과의 스킨십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총선을 앞두고 골고루 뿌려 놓은 민심이 표가 되어 돌아올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화합과 파열 사이

화합의 길로 들어서는 듯했던 더불어민주당서 파열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당이 단합과 통합을 해야 한다”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메시지가 무색할 만큼 매일같이 친·비명계가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다.

친명(친 이재명)계가 계속해서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의 징계를 요구하자 일부 비명계는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부결하자는 호소는 선동인 ‘해당 행위’”라고 맞불을 놨다.

여기에 비명계를 향한 ‘개딸’의 수위 높은 발언이 이어지면서 갈등의 골이 또다시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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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