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영풍 화물열차의 비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9.21 09:32:09
  • 호수 1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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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안 쓰는 불량품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아연 생산기업 영풍(주)이 발주한 화물열차에 탑재된 중국산 핵심 부품이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열차를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사규에 따른 절차를 어기고 사유화차로 도입해 특혜 의혹도 불거졌다. 사유화차는 기업 등이 소유한 화물차지만 코레일에 편입돼 코레일 기관차로 운행된다. 기업 소유의 열차가 철도 노선서 운행하기 위해 코레일의 시스템 등록을 마친 ‘차적 편입’ 차량이라는 의미다.

영풍(주)은 2018년 12월 말 철도차량 제작업체 고려차량(주)에 황산조차 20량 제작을 의뢰했다. 고려차량은 그해 1월 황산조차 도면설계에 착수했고 6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측에 통보했다. 이 과정서 코레일은 사규에 따라 차량제작설명서 등 문서화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 

위험천만
황산 운송

이후 2021년 2월 코레일은 “황산조차 20량에 대한 기술검토가 완료됐다”는 공문을 영풍과 고려차량에 발송했다. 유해 물질을 운반하는 화물열차의 기술검토를 절차와 규정을 어긴 채 완료한 것이다.

코레일 사규인 ‘사유화차 취급 및 유지보수 세칙’ 제5조(차량 편입조건)는 사유화차가 코레일 차적에 편입되려면 ‘차량의 구조 및 기능이 철도안전법령 및 공사의 차량제작설명서에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사규는 사유화차에 관해 ‘전용 적재화물의 수송이 가능’ ‘신조 차량은 ‘철도안전법’에 따른 형식승인 등에 합격해야 한다’는 점도 들어가 있다.


상급기관인 국토교통부의 고시 ‘철도안전관리체계 기술기준’서도 철도차량 발주자와 운영자가 다른 경우 ‘차량설계·제작·완성검사·시운전 시 운영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하며, 철도운영자 등은 철도차량 제작감독 관련 사항을 협의·이행하기 위한 문서화된 절차를 수립·실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려차량이 수입·제작한 문제의 열차는 영풍의 사유화차로 2021년 초 도입됐다. 영풍이 운영하는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서 나온 황산을 싣고 석포역과 온산역을 왕복한다. 열차 불량으로 탈선·전복 등 사고가 발생하면 대량의 황산 유출로 막대한 환경 피해가 불가피하다.

코레일이 직접 발주하는 화차는 물론, 기업의 사유화차도 반드시 코레일 표준사양서에 맞춰 제작해야만 한다. 표준사양서에 따라 제작해온 철도업계는 고려차량이 시장 교란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코레일은 현행법상 사양서에 맞지 않아도 기업·개인이 보유한 화차라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무책임한 입장을 보인다. 수년간 코레일 사양서 기준에 따라 제작해온 제작사들은 “물 먹은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업계에선 영풍이 발주한 사유화차에 탑재된 주요 부품이 중국서조차 외면받은 저가품이라는 입장이다. 화차 제조업계에 종사 중이라는 제보자는 “화차의 안전을 결정짓는 주요 장치는 주행장치(대차), 제동장치, 연결장치”라며 “고려차량이 2년 전 제작한 황산조차의 주요 장치는 모두 중국서 들여왔다”고 주장했다.

석포제련소 황산열차 핵심 부품 안전성 논란
코레일 ‘차적 편입’ 왜?···특혜 의혹도 불거져

황산조차 20량에 적용한 대차·제동·연결장치는 기존 코레일 표준사양서와 다를뿐더러, 타 화차 부품과 호환성도 떨어진다.


제보자는 “영풍 황산조차에 적용한 대차가 원 제조사인 미국 와브텍(Wabtec)사 제품의 특허권을 회피하고자 중국서 모양을 변형해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당 대차는 지금까지 국내서 사용한 적이 없었고, 미국 AAR(Asscociation of American Railroads)의 승인도 받지 못한 제품”이라며 “원산지인 중국서조차 사용승인을 받지 못한 불안전한 제품”이라고 꼬집었다.

고려차량이 수입한 중국산 제동·연결기도 문제다. 국내서 사용해본 적이 없다 보니, 기존 화차와의 호환성을 검증하기 어렵다. 연결기 간 호환성이 떨어지면 운행 도중 분리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열차 간 연결기에는 출발할 때나 제동할 때 충격을 완화하는 기능도 있는데, 중국산 화차가 기존 화차와 연결할 때 사고가 일어날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주장이다. 제보자는 “중국서 들여온 제품은 기존 연결기와 외관부터 달라 단순 체결만 가능한 정도로 호환성이 없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코레일의 검증절차를 거쳐 선정된 사양과 고려차량이 중국서 수입한 사양은 제원상 큰 차이를 보인다.

기존 사양의 A 대차는 북미권서 60년간 사용돼 신뢰성을 확보했다. 반면, 고려차량이 수입한 B 대차는 중국서 1990년도에 개발됐으면서도 현지서 운행되지 않고 있다. 결정적으로 바퀴 단면이 거칠고, 금이 발생하는 등 편마모 현상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B대차의 바퀴가 선로에 알맞게 올라가지 않으면서 주행 시 미세한 충돌로 손상이 발생한다고 봤다.한국철도기술연구원 시험결과에 따르면 고려차량이 수입한 제동장치는 기존 화물열차에 제동장치보다 제동시간이 2배 이상 늦게 기록됐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브레이크가 밀린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외면받은 
저가품?

제보자는 “호환성을 고려하지 않은 연결장치가 화차의 기본적인 운영방식에 부적합하다”고 지적했다. 일반 열차와 달리 화차의 경우, 서로 다른 화차끼리 혼합해 연결·분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황산조차는 물론, 컨테이너화차, 유조차, 시멘트화차 등 다양한 종류의 화차끼리 연결하더라도 제 성능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호환성을 보장하는 국내산 화차 핵심장치들이 있음에도 불구, 중국산을 들여온 것은 잇속 챙기기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제보자는 “화차에 사용하는 대차, 제동, 연결장치 등은 모두 국내 중소기업서 생산해온 제품”이라며 “(고려차량이)국산제품을 외면한 채 중국산을 들여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에선 영풍이 단가를 낮춰 사유화차를 발주하는 상황서, 고려차량이 입찰을 위해 헐값에 중국산 화차를 수입한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산 화차가 선로를 활보할 수 있는 이유는 국토부의 생색내기식 승인 절차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고려차량은 국토부 형식승인제도를 거쳤기에 “당당하다”는 입장이다.


철도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유화차 도입 절차와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제보자는 “차량제작설명서 없이 제작된 사유화차를 차적에 편입해 운행하는 것은 코레일이 고려차량에 특혜를 준 것”이라며 “새로 도입된 사유화차의 주행, 제동, 연결장치 등이 기존 코레일 차량과 달라 철도 시스템에 필요한 안전성과 표준성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알았나 
몰랐나

이에 대해 고려차량 관계자는 “국토부 철도차량 형식 승인을 받은 사유화차의 안전성과 차적 편입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숱하게 나왔다”며 “신경 안 쓴다”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 “영풍이 어떤 그룹인데 화차 수입하는 게 얼마나 한다고 아까워하겠냐”며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면 코레일이 차적에 이미 편입한 황산조차 20량을 계속 운행하는 이유는 뭐냐”고 반문했다.

코레일이 차량기술단과 종합검토를 무시하고, 해당 열차를 차적 편입하면서 연쇄적 현상도 야기된다. 상급기관인 국토부는 ‘철도 운영 전문인 코레일이 차적 편입을 했기에 문제없을 것’으로 보고 형식승인제도에 따라 허가한 상태다. 서류로만 확인하고 승인해 중국산 화차의 안전상 문제까지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국토부서 제대로 확인했다면 승인하지 않았을 중국산 화차가 현장에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산 화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영풍이 고려차량에 발주해 제작한 황산조차 30량도 차적 편입을 위해 대기 중이다. 앞서 20량도 허락해준 코레일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2021년 10~11월 영풍은 고려차랑에 두 차례에 걸쳐 도합 30량의 황산조차를 추가 발주했다.

영풍은 이듬해 2월 코레일 측에 제작 협의를 요청한 데 이어 올해 5월 차적 편입을 요청했다. 

황산조차 30량의 적정성을 두고 코레일과 영풍·고려차량 측 입장이 엇갈린다. 코레일 측은 “지난해 5월부터 진행되던 기술검토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서 영풍과 고려차량이 올해 5월 차적 편입을 요청하는 등 코레일 규정과 절차를 준수하지 않아 차적 편입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 열차와 호환성 입증 어려워
사문화된 국토부 내규···권고일 뿐?

이에 영풍 측은 “앞서 차적에 편입된 20량과 동일한 모델임에도 코레일 측이 자사의 ‘권고사항 미이행’이라는 이유로 계속 차적 편입을 미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코레일이 사규를 위반하면서 스스로 재갈을 물게 됐다. 코레일은 앞서 영풍 황산조차 20량을 차적 편입하는 과정서 차량제작설명서를 제시하지 않는 등 자사 사규를 위반한 것을 시인했다. 

코레일이 영풍의 추가 발주한 30량의 차적 편입을 미룰 경우 “기존 황산조차 20량 운행은 되고, 추가 편입은 안된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전망이다.

코레일 측은 “사고 우려 등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 사실 검증이 필요하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30량의 조치 여부를 판단하겠다. 이미 도입한 20량과 편입을 검토하는 30량 중 각 2량 정도를 기존에 운행해온 황산조차 화차와 혼합 조성해 제동시험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표준사양서에도 맞지 않는 중국산 화차에 관해 코레일이 차적 편입해준 것은 “영풍에 특혜를 줬거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레일 내규인 ‘사유화차 취급 및 유지보수 지침’에 따라 부적합한 중국산 화차는 차적을 주면 안 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코레일 관계자는 “사규를 어긴 것은 맞다”면서도 “국토부령으로 상위법에 해당하는 ‘철도안전관리체계 기술기준’이 시행되면서 해당 내규가 사문화됐다”고 해명했다.

철도안전관리체계 기술기준에 따르면 철도차량 발주자(소유자)와 운영자가 다른 경우 발주자는 차량 설계, 제작, 완성검사, 시운전 시 운영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최대한 반영’이라는 점이다. 시행령을 법리적으로 해석하면 일종의 권고일 뿐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코레일 측은 “소유주가 표준사양서에 맞지 않게 화차를 제작했더라도, 절차에 따라 검사를 통과해 차적을 편입해달라고 요구하면 제재할 명분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황산조차 20량 제작 당시 철도연서 형식, 제작자 승인, 성능시험 등을 모두 통과했다”며 “근거 없이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전관 개입?
카르텔 의혹

그러면서 “신규 제작한 황산조차가 실제 운행을 하면서 ‘휠 플랜지 편마모 현상’ 등 위험징후가 나타났다고 했는데, 확인 결과 기준치 이내였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덧붙였다.

지금껏 코레일 표준사양서를 지켜가며, 화차 부품과 완성차를 만든 국내 업체가 중국산 화차에 밀려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국토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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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