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람 잡는’ 부모들 진상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8.07 11:27:33
  • 호수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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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갑질 성지된 맘카페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내 아이 예쁘지 않고 귀하지 않은 부모는 없겠지만, 부모의 갑질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소아과,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등은 학부모 갑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소아과나 어린이집은 맘카페 갑질로 폐업 사태마저 발생한다.

한국은 저출생·고령화가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가임기 15~49세 여성이 낳을 거라고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8명으로 역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인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저출생에 시달리는 이웃 나라 일본도 합계출산율이 1.26명이라는 점에서 한국 저출생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내 아이만
소중하다”

통계청은 향후 출산율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2021년 3월 공표한 ‘내국인 인구 시범 추계: 2020~2040년’서 출산율이 2020년 0.87명서 2025년 0.75명, 2030년 0.73명으로 지속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정서도 이에 한몫한다. 한국 국민 절반은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다. 결혼·출산 적령기인 30대도 결혼 후 자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54.7%에 그쳤다. 특히 10~20대의 경우 과반수가 결혼 후에도 자녀를 낳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녀가 있는 가정은 자녀 양육을 위해 전심을 다 하다 보니 이에 따른 부작용도 생긴다. 이를 겪는 것은 주로 영·유아들이 이용하는 교육·의료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다. 


‘빅5’라고 불리는 서울의 대형 병원들은 올 하반기 소아청소년과 상급년차 레지던트 모집에 실패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 미달 현상이 이어지면서 소아 진료 공백 대란 현실화가 코앞으로 도래한 셈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마감한 ‘2023년도 하반기 상급년차 레지던트 모집’ 결과, 빅5 병원을 비롯한 주요 대학병원의 2~4년 차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인원은 0명이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2년 차 10명, 3년 차 10명, 4년 차 3명 등 전국 8개 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총 23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0명이었다. 세브란스병원 역시 2년 차 8명, 3년 차 11명 등 총 19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0명이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도 각각 6명과 3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전무했다. 서울대병원은 올 하반기 소아청소년과 상급년차 레지던트를 모집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2023년 상반기 전공의 1년 차 모집서도 빅5 병원을 비롯한 주요 대학병원서 전공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지원율은 역대 최저인 16%대로 떨어졌다. 이 같은 전공의 지원 감소는 결국 정상적인 진료를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 

소아청소년과의 인기가 왜 이렇게 떨어진 것일까? 일각에선 소아청소년과가 겪고 있는 악성 민원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맘카페 갑질’에 힘들어하는 경우는 많다. 한 병원 원장은 폐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소아청소년과는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보호자 민원이 과할 정도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일선 현장의 의사들 사이에선 “안 그래도 의사가 부족한데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 따르면 충남 홍성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맘카페 회원의 갑질에 시달려 소아청소년과를 폐업하고 성인 진료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병원에 공지문을 붙였다.

“보호자 악성 허위 민원으로 폐과”
“소청과 문 닫고 성인진료병원으로”

9세 초진인 환아가 보호자 연락 및 대동 없이 내원하자, 병원에서는 14세 미만은 보호자와 동반해야 한다는 내부 방침에 따라 보호자와 함께 오라며 아이를 돌려보냈는데, 맘카페 회원인 아이 엄마가 보건소에 진료 거부라며 악성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해당 아이의 엄마는 39도의 열이 나는 아이를 진료도 보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냈고 5분 이내로 올 수 있느냐고 했는데 민원을 넣고 싶다는 글을 맘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엄마의 주장 중 일부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5분이 아닌 30분 정도의 시간을 줄 테니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했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다. 이후 해당 엄마는 맘카페에 게시했던 글을 삭제하고 민원을 취하했다. 

광주에서는 지난 6일, 악성 민원으로 폐과를 선언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있다. 이 의원은 “박모 보호자의 악성 허위 민원으로 지난 5일로 폐과한다. 만성 통증과 내과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아가겠다”고 공지했다.

대학병원 의사도 민원에 시달린다. 한 국공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불친절하다는 등의 이유로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민원을 제기해 힘들게 하는 부모가 있다. 돈보다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해 일하고 있지만 이런 민원이 있을 때는 회의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임현택 소아과의사회 회장은 “맘카페나 네이버 리뷰란에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대상으로 한 악성 댓글이 많다. 이런 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힘들어한다. 이런 일로 망하는 병원도 있고 그러면 몇 억원씩 손해 보고 정신적으로 힘들다. 한 의사는 악성 민원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아이 아픈 걸 낫게 해주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네이버 리뷰는 없애고 맘카페에 올라온 악성 글을 그대로 게시되게 놔두는 운영자에 대해서는 페널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아청소년과 대학 A 교수는 출산율과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부족한 것은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발합니다”
합의금 강요

A 교수는 “출산율이 낮아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점심을 평소보다 덜 먹거나, 트림을 평소보다 많이 해도 병원에 데려온다. 이마에 물린 모기 자국 때문에 응급실도 온다”며 “절대적인 출생아 수는 적지만 미숙아, 선천성 질환, 만성 질환자는 급증해서 환자군의 크기와 필요한 진료 양의 규모는 적지 않다”고 밝혔다. 


즉, 출산율이 낮다고 해서 진료를 원하는 환자 수가 적지 않다는 것.

이어 “소아 인구가 줄어서 소아청소년과가 비전 없다는 말은 15년 전부터 나왔지만, 마니아 층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뭘까?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하면서 보호자한테 폭행당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폭언과 무례함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라고 소청과의 현실을 지적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환자 보호자에게 폭행과도 같은 폭언을 듣는 게 일상이며, A 교수는 이런 상황 때문에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A 교수는 “부모에게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가해자, 사기꾼, 돌팔이, 저임금 노동자 정도의 포지션인가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리 무례한 행동을 해도 ‘부모 마음에 걱정이 돼서’라는 한 마디만 붙이면 온갖 무례, 갑질, 폭언, 폭행이 용인된다”며 “보호자가 던진 약봉지나 처방전에 맞아봤고, 멱살잡이 직전까지 여러 번 가봤으며, 소리 지르며 협박당하는 일도 겪는다”고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폭언보다 심각한 상황도 있다. 이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만 겪는 일은 아니지만, 환자가 어리기 때문에 다른 과보다는 훨씬 자주 겪는 일이다. 게다가 의사는 정상적으로 진료 행위를 했지만 형사소송에 걸리는 일도 많다. 

A 교수는 “고의적 위해가 아닌 일반적인 진료 행위의 결과에 의사에게 형사 재판을 거는 나라는 전 세계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동료, 선배, 아무것도 모르는 전공의까지 형사소송에 휘말리고 하루아침에 감옥에 간다. 이런 상황이니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일상적인
폭언 폭설

어린이집 교사가 겪는 부모 갑질도 이에 못지 않다. 깁스한 아이가 혼자 넘어진 것을 두고 학부모가 보육교사 잘못이라고 얼굴에 물을 뿌리고 뺨을 때리거나, 아이가 잘못 말한 내용을 맘카페에 작성해서 어린이집이 폐업한 경우도 있다.

임신 중이었던 10년 차 어린이집 보육교사 B(32)씨는 지난 4월 학부모로부터 얼굴에 물을 맞으면서 “무릎 꿇으라고. 이 X아, 서서 하는 사과는 안 받아. 무릎 안 꿇으면 경찰 부를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B씨는 원생들을 데리고 야외 활동 지도를 하던 중 다른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이때 양쪽 팔에 통깁스를 한 아이가 혼자 넘어져 얼굴을 다쳤다. 다음 날 아이의 엄마와 외할머니는 어린이집으로 찾아와 얼굴에 물을 뿌리며 “아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원장과 동료 교사들이 나서서 CCTV를 보여주며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이들의 괴롭힘은 석 달 동안이나 이어졌다. 감정이 격해진 날엔 교사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B씨는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끝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B씨는 이 일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유산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남양주서 보육교사로 일하던 C(30)씨는 2년 동안이나 악성 학부모에게 시달렸다. C씨가 거짓말을 한 아이에게 “자꾸 거짓말하면 엉덩이에 뿔난다”고 교육했던 것을 구실로 “(아이가) TV에 ‘엉덩이 탐정’(만화 캐릭터)만 보면 경기를 일으킨다”고 아동학대로 민원을 넣었다.

C씨는 “우리 아이에게 피해를 줬으니까 너도 자살하게 만들어 줄게”라는 폭언까지 들었다. 그는 2년간 해당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어린이집을 떠났다. 어린이집은 학부모의 화를 달래기 위해 1200만원의 피해보상금을 제안했고, 이후로 해당 학부모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충분한 해명과 증거를 보여줘도 생떼를 부리며 사실상 합의금을 강요하는 사례도 있다. 돈을 목적으로 “맘카페에 글을 올리겠다”며 작정하는 학부모의 민원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 의정부 한 어린이집의 교사는 급식 메뉴에 나온 시래깃국을 아이가 부모에게 “점심으로 쓰레기국이 나왔다”고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 합의금을 요구하는 듯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학부모는 지역사회 맘카페에 저격 글을 올렸다.

이 가짜 뉴스로 어린이집은 나쁜 어린이집 낙인이 찍혔고, 결국 원아 부족으로 폐업했다.

하지도 않은 아동학대 신고 받아
충분한 해명·증거 보여줘도 생떼

2018년 세종시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있었다. 보육교사가 원생을 아동학대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어린이집 학부모는 보육교사가 자신의 아이를 아동 학대했다고 주장하며 “역겨워. 시집 가서 너 같은 새끼 낳아” “싸가지 없는, 개념 없는 것들” “웃는 것도 역겹다. 아주 XX같이 생겨가지고” 등의 폭언과 폭행을 했다.

보육교사가 아동학대를 하지 않은 정황이 확인됐고 오히려 아이가 보육교사를 때리는 CCTV를 확인하자, 학부모는 “애들이 교사를 때릴 수도 있다. 애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 아동학대는 없는 것 확인했으니 조심해달라”고 돌아갔다.

하지만 학부모는 경찰서로 가 보육교사를 향한 고소장을 제출하고 어린이집 주변 동네 주민들과 병원 관계자들에게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법원과 전문가들은 CCTV 분석과 아동학대 기관의 의견을 들어보고 “아동학대 피해 아동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아이가 보육교사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며 아동학대는 없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해당 학부모는 지속적으로 신고하고 민원을 넣었다. 해당 구청은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확인했는데, 이때마다 보육교사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반 보습학원도 마찬가지다. 학원강사 13년 차 D씨는 “원생의 나이가 어릴수록 학부모 진상이 심해진다. 고등학교 3학년이 자녀를 둔 진상 학부모는 없다. 유명 종합병원 근처 밀집 지역서 학원을 한 적이 있는데 부모가 대부분 의사, 간호사였다”며 “학생이 학원을 1년 다녔는데 성적이 안 좋다고 1년 치 학원비를 환불해달라고 한 적도 있다.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맘카페에 글을 올리겠다, 사기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가출한 학부모는 강사한테 아이를 찾지 않는다고 신고하겠다고 하고, 학원비가 밀리면 연락두절되거나 도망치기도 한다. 무단결석한 학생에게 보충수업을 잡아달라고 하는 학부모는 계속 있다. 코로나19가 심해서 학원 영업정지 기간일 때는 당연하다는 듯이 강사가 집에 와서 과외해달라고 한 학부모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아이들이 좋아서 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는데, 초반엔 진상 학부모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오히려 학원에 혼자 상담받으러 오는 애들이 공부도 잘 한다. 학부모가 애들을 놔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원 많은
학원에선…

모든 학부모가 갑질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갑질하는 학부모를 많이 본 또 다른 학부모는 “갑질하는 학부모가 정말 많다. 소아과,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등 아이들이 다니는 곳에는 모두 있다. 아이를 보다 보면 엄마들이 예민해져서 더 그런 것 같다. 특히 지역 맘카페서 갑질하는 것은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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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