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람 잡는’ 부모들 진상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8.07 11:27:33
  • 호수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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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갑질 성지된 맘카페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내 아이 예쁘지 않고 귀하지 않은 부모는 없겠지만, 부모의 갑질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소아과,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등은 학부모 갑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소아과나 어린이집은 맘카페 갑질로 폐업 사태마저 발생한다.

한국은 저출생·고령화가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가임기 15~49세 여성이 낳을 거라고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8명으로 역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인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저출생에 시달리는 이웃 나라 일본도 합계출산율이 1.26명이라는 점에서 한국 저출생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내 아이만
소중하다”

통계청은 향후 출산율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2021년 3월 공표한 ‘내국인 인구 시범 추계: 2020~2040년’서 출산율이 2020년 0.87명서 2025년 0.75명, 2030년 0.73명으로 지속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정서도 이에 한몫한다. 한국 국민 절반은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다. 결혼·출산 적령기인 30대도 결혼 후 자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54.7%에 그쳤다. 특히 10~20대의 경우 과반수가 결혼 후에도 자녀를 낳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녀가 있는 가정은 자녀 양육을 위해 전심을 다 하다 보니 이에 따른 부작용도 생긴다. 이를 겪는 것은 주로 영·유아들이 이용하는 교육·의료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다. 


‘빅5’라고 불리는 서울의 대형 병원들은 올 하반기 소아청소년과 상급년차 레지던트 모집에 실패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 미달 현상이 이어지면서 소아 진료 공백 대란 현실화가 코앞으로 도래한 셈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마감한 ‘2023년도 하반기 상급년차 레지던트 모집’ 결과, 빅5 병원을 비롯한 주요 대학병원의 2~4년 차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인원은 0명이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2년 차 10명, 3년 차 10명, 4년 차 3명 등 전국 8개 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총 23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0명이었다. 세브란스병원 역시 2년 차 8명, 3년 차 11명 등 총 19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0명이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도 각각 6명과 3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전무했다. 서울대병원은 올 하반기 소아청소년과 상급년차 레지던트를 모집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2023년 상반기 전공의 1년 차 모집서도 빅5 병원을 비롯한 주요 대학병원서 전공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지원율은 역대 최저인 16%대로 떨어졌다. 이 같은 전공의 지원 감소는 결국 정상적인 진료를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 

소아청소년과의 인기가 왜 이렇게 떨어진 것일까? 일각에선 소아청소년과가 겪고 있는 악성 민원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맘카페 갑질’에 힘들어하는 경우는 많다. 한 병원 원장은 폐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소아청소년과는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보호자 민원이 과할 정도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일선 현장의 의사들 사이에선 “안 그래도 의사가 부족한데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 따르면 충남 홍성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맘카페 회원의 갑질에 시달려 소아청소년과를 폐업하고 성인 진료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병원에 공지문을 붙였다.

“보호자 악성 허위 민원으로 폐과”
“소청과 문 닫고 성인진료병원으로”

9세 초진인 환아가 보호자 연락 및 대동 없이 내원하자, 병원에서는 14세 미만은 보호자와 동반해야 한다는 내부 방침에 따라 보호자와 함께 오라며 아이를 돌려보냈는데, 맘카페 회원인 아이 엄마가 보건소에 진료 거부라며 악성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해당 아이의 엄마는 39도의 열이 나는 아이를 진료도 보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냈고 5분 이내로 올 수 있느냐고 했는데 민원을 넣고 싶다는 글을 맘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엄마의 주장 중 일부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5분이 아닌 30분 정도의 시간을 줄 테니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했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다. 이후 해당 엄마는 맘카페에 게시했던 글을 삭제하고 민원을 취하했다. 

광주에서는 지난 6일, 악성 민원으로 폐과를 선언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있다. 이 의원은 “박모 보호자의 악성 허위 민원으로 지난 5일로 폐과한다. 만성 통증과 내과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아가겠다”고 공지했다.

대학병원 의사도 민원에 시달린다. 한 국공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불친절하다는 등의 이유로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민원을 제기해 힘들게 하는 부모가 있다. 돈보다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해 일하고 있지만 이런 민원이 있을 때는 회의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임현택 소아과의사회 회장은 “맘카페나 네이버 리뷰란에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대상으로 한 악성 댓글이 많다. 이런 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힘들어한다. 이런 일로 망하는 병원도 있고 그러면 몇 억원씩 손해 보고 정신적으로 힘들다. 한 의사는 악성 민원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아이 아픈 걸 낫게 해주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네이버 리뷰는 없애고 맘카페에 올라온 악성 글을 그대로 게시되게 놔두는 운영자에 대해서는 페널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아청소년과 대학 A 교수는 출산율과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부족한 것은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발합니다”
합의금 강요

A 교수는 “출산율이 낮아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점심을 평소보다 덜 먹거나, 트림을 평소보다 많이 해도 병원에 데려온다. 이마에 물린 모기 자국 때문에 응급실도 온다”며 “절대적인 출생아 수는 적지만 미숙아, 선천성 질환, 만성 질환자는 급증해서 환자군의 크기와 필요한 진료 양의 규모는 적지 않다”고 밝혔다. 


즉, 출산율이 낮다고 해서 진료를 원하는 환자 수가 적지 않다는 것.

이어 “소아 인구가 줄어서 소아청소년과가 비전 없다는 말은 15년 전부터 나왔지만, 마니아 층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뭘까?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하면서 보호자한테 폭행당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폭언과 무례함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라고 소청과의 현실을 지적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환자 보호자에게 폭행과도 같은 폭언을 듣는 게 일상이며, A 교수는 이런 상황 때문에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A 교수는 “부모에게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가해자, 사기꾼, 돌팔이, 저임금 노동자 정도의 포지션인가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리 무례한 행동을 해도 ‘부모 마음에 걱정이 돼서’라는 한 마디만 붙이면 온갖 무례, 갑질, 폭언, 폭행이 용인된다”며 “보호자가 던진 약봉지나 처방전에 맞아봤고, 멱살잡이 직전까지 여러 번 가봤으며, 소리 지르며 협박당하는 일도 겪는다”고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폭언보다 심각한 상황도 있다. 이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만 겪는 일은 아니지만, 환자가 어리기 때문에 다른 과보다는 훨씬 자주 겪는 일이다. 게다가 의사는 정상적으로 진료 행위를 했지만 형사소송에 걸리는 일도 많다. 

A 교수는 “고의적 위해가 아닌 일반적인 진료 행위의 결과에 의사에게 형사 재판을 거는 나라는 전 세계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동료, 선배, 아무것도 모르는 전공의까지 형사소송에 휘말리고 하루아침에 감옥에 간다. 이런 상황이니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일상적인
폭언 폭설

어린이집 교사가 겪는 부모 갑질도 이에 못지 않다. 깁스한 아이가 혼자 넘어진 것을 두고 학부모가 보육교사 잘못이라고 얼굴에 물을 뿌리고 뺨을 때리거나, 아이가 잘못 말한 내용을 맘카페에 작성해서 어린이집이 폐업한 경우도 있다.

임신 중이었던 10년 차 어린이집 보육교사 B(32)씨는 지난 4월 학부모로부터 얼굴에 물을 맞으면서 “무릎 꿇으라고. 이 X아, 서서 하는 사과는 안 받아. 무릎 안 꿇으면 경찰 부를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B씨는 원생들을 데리고 야외 활동 지도를 하던 중 다른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이때 양쪽 팔에 통깁스를 한 아이가 혼자 넘어져 얼굴을 다쳤다. 다음 날 아이의 엄마와 외할머니는 어린이집으로 찾아와 얼굴에 물을 뿌리며 “아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원장과 동료 교사들이 나서서 CCTV를 보여주며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이들의 괴롭힘은 석 달 동안이나 이어졌다. 감정이 격해진 날엔 교사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B씨는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끝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B씨는 이 일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유산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남양주서 보육교사로 일하던 C(30)씨는 2년 동안이나 악성 학부모에게 시달렸다. C씨가 거짓말을 한 아이에게 “자꾸 거짓말하면 엉덩이에 뿔난다”고 교육했던 것을 구실로 “(아이가) TV에 ‘엉덩이 탐정’(만화 캐릭터)만 보면 경기를 일으킨다”고 아동학대로 민원을 넣었다.

C씨는 “우리 아이에게 피해를 줬으니까 너도 자살하게 만들어 줄게”라는 폭언까지 들었다. 그는 2년간 해당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어린이집을 떠났다. 어린이집은 학부모의 화를 달래기 위해 1200만원의 피해보상금을 제안했고, 이후로 해당 학부모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충분한 해명과 증거를 보여줘도 생떼를 부리며 사실상 합의금을 강요하는 사례도 있다. 돈을 목적으로 “맘카페에 글을 올리겠다”며 작정하는 학부모의 민원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 의정부 한 어린이집의 교사는 급식 메뉴에 나온 시래깃국을 아이가 부모에게 “점심으로 쓰레기국이 나왔다”고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 합의금을 요구하는 듯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학부모는 지역사회 맘카페에 저격 글을 올렸다.

이 가짜 뉴스로 어린이집은 나쁜 어린이집 낙인이 찍혔고, 결국 원아 부족으로 폐업했다.

하지도 않은 아동학대 신고 받아
충분한 해명·증거 보여줘도 생떼

2018년 세종시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있었다. 보육교사가 원생을 아동학대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어린이집 학부모는 보육교사가 자신의 아이를 아동 학대했다고 주장하며 “역겨워. 시집 가서 너 같은 새끼 낳아” “싸가지 없는, 개념 없는 것들” “웃는 것도 역겹다. 아주 XX같이 생겨가지고” 등의 폭언과 폭행을 했다.

보육교사가 아동학대를 하지 않은 정황이 확인됐고 오히려 아이가 보육교사를 때리는 CCTV를 확인하자, 학부모는 “애들이 교사를 때릴 수도 있다. 애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 아동학대는 없는 것 확인했으니 조심해달라”고 돌아갔다.

하지만 학부모는 경찰서로 가 보육교사를 향한 고소장을 제출하고 어린이집 주변 동네 주민들과 병원 관계자들에게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법원과 전문가들은 CCTV 분석과 아동학대 기관의 의견을 들어보고 “아동학대 피해 아동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아이가 보육교사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며 아동학대는 없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해당 학부모는 지속적으로 신고하고 민원을 넣었다. 해당 구청은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확인했는데, 이때마다 보육교사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반 보습학원도 마찬가지다. 학원강사 13년 차 D씨는 “원생의 나이가 어릴수록 학부모 진상이 심해진다. 고등학교 3학년이 자녀를 둔 진상 학부모는 없다. 유명 종합병원 근처 밀집 지역서 학원을 한 적이 있는데 부모가 대부분 의사, 간호사였다”며 “학생이 학원을 1년 다녔는데 성적이 안 좋다고 1년 치 학원비를 환불해달라고 한 적도 있다.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맘카페에 글을 올리겠다, 사기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가출한 학부모는 강사한테 아이를 찾지 않는다고 신고하겠다고 하고, 학원비가 밀리면 연락두절되거나 도망치기도 한다. 무단결석한 학생에게 보충수업을 잡아달라고 하는 학부모는 계속 있다. 코로나19가 심해서 학원 영업정지 기간일 때는 당연하다는 듯이 강사가 집에 와서 과외해달라고 한 학부모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아이들이 좋아서 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는데, 초반엔 진상 학부모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오히려 학원에 혼자 상담받으러 오는 애들이 공부도 잘 한다. 학부모가 애들을 놔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원 많은
학원에선…

모든 학부모가 갑질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갑질하는 학부모를 많이 본 또 다른 학부모는 “갑질하는 학부모가 정말 많다. 소아과,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등 아이들이 다니는 곳에는 모두 있다. 아이를 보다 보면 엄마들이 예민해져서 더 그런 것 같다. 특히 지역 맘카페서 갑질하는 것은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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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