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소재의 서이초교(교장 권선태)서 근무 중이던 20대 초반 교사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저연차 교사로 알려진 A씨는 1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으며 학부모의 갑질이 주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다수 학부모의 지속적인 괴롭힘 때문에 발생했다는 주장이 온라인을 통해 우후죽순처럼 퍼지면서 경찰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사망 현장서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만큼 구체적인 원인을 밝혀내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1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인과 유족에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교사가 학교 내에서 생을 마감한 것을 두고 심각한 교권침해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교육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교원의 권리 및 교육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공교육의 첫걸음”이라며 “교권이 무너지면 공교육도 무너진다. 교권 보호는 교사의 인권을 넘어 다른 학생들의 학습관을 보호하는 것으로, 교육활동에 대한 침해는 어떠한 경우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날 현장을 찾은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일부 학부모의 갑질 민원 제기(의혹)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조 교육감은 “경찰 조사에 적극 협력하고 조사가 온전하고 폭넓게 이뤄질 수 있도록 선생님들로부터 철저한 조사를 하려고 한다”며 “필요 시 선생님 의견을 전후로 듣는 것을 포함해 경찰의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자료를 모아 (제공)하겠다”고 부연했다.
그는 추모 공간에 마련된 쪽지 메모들을 보며 “상당 부분 저희에 대한 책망이다. 저희도 교권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참담한 결과가 있어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이초교는 사망 사건 이틀 만인 지난 20일 ‘본교 교사 사망 사안 관련’ 입장문을 통해 “모든 교직원은 비통한 심정으로 깊은 애도를 표한다. (고인은)신규 교사였지만 꿋꿋하게 맡은 소임에 대해 열정을 보여줬으며 아침 일찍 출근해 학생과의 하루를 성실히 준비하시는 훌륭한 교사였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선생님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 중이지만, SNS 등을 통해 여러 이야기들이 사실 확인 없이 떠돌고있다. 부정확한 내용들은 고인의 죽음을 명예롭지 못하게 하며 많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어 바로 잡고자 한다”고 입장문을 게재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인의 담임 학년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배정된 것으로, 담당 업무는 학교폭력 업무가 아닌 나이스(NEIS) 권한 관리 업무였으며 이 또한 본인이 희망한 업무”라고 부연했다.
해당 학급서 여러 번 담임이 교체됐다는 의혹에 대해선 “지난 3월1일 이후, 고인 담당 학급의 담임 교체 사실은 없다. 해당 학급에선 올해 학폭 신고 사안이 없었으며 학폭과 관련해 해당 교사가 교육지원청을 방문한 적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SNS서 거론되고 있는 정치인들의 가족은 이 학급에 없음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앞서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과 김성주 서초구의원이 A씨의 사망과 관련된 인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날 한 의원도 “서이초교에 다니는 손자‧손녀가 없는데 어제 밤부터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외손녀가 한 명 있는데 이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라며 “외손자는 다른 초등학교 2학년이다. 친손자들은 큰 놈이 두 돌 지났고 경기도서 거주 중”이라고 반박했다.
서이초 교장 명의로 입장문이 발표되자 같은 날, 서울교사노동조합(이하 노조)은 공식 인스타그램에 “동료 교사의 추가 제보가 있어 알린다. 계속되는 학부모의 전화로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고인은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힘들었다고 동료에게 이야기한 제보가 있었다. 알 수 없는 경로로 교사의 핸드폰 번호를 입수한 학부모가 핸드폰으로 수십 통의 전화를 해 ‘힘들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은 ‘소름 끼친다. 방학하면 휴대폰 바꿔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제보자에 따르면 핸드폰으로 학부모로부터 연락이 오고 고인께서 어려움을 토로한 것은 오늘자 학교 입장서 언급된 ‘해당 사건’ 이후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앞서 A씨가 맡았던 학급서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긁었던 사건을 말한다. 이에 대해 피해 학부모는 A씨에게 “교사 자격이 없다. 아이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제보에 대해선 “최대한의 신빙성이 보장된 제보에만 기초해 언론 대응에 응하고 있다”며 신뢰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경찰은 A씨와 같은 학교서 근무 중인 교장‧교감을 포함한 교사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미 학교 측에 교사들의 명단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번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두고 “터질 게 터졌다” 등의 개탄 목소리가 나온다.
교계 일각에선 “학부모들의 민원을 오롯이 담임교사 한 사람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국의 교사들은 현재 참담한 심정”이라며 “교육청과 교육부의 진정성 있는 대응을 촉구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결국 이번 사건을 낳은 괴물은 현재의 교육 정책과 일부 몰지각한 민원을 중간서 컨트롤하지 못한 교육당국의 총체적인 시스템 부재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경 소재의 교사는 “‘학생인권’이라는 미명 하에 학생들 지도조차 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은 작금의 교육계, 1자녀 시대 속에 ‘금이야 옥이야’ 자녀만 귀하게 여기는 일방적인 학부모들도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재경 소재의 교권 관계자도 “이번 사망사건은 교사들을 위한 강력한 지원 시스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고 본다. 교육당국은 물론, 정책 입안을 맡고 있는 국회서 이들을 위해 학교 업무에 대한 보복이나 항의 등 학부모들의 민원 문제로부터 해방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교권 추락에 대한 문제제기는 수없이 제기돼왔지만 사회적 태도나 교육시스템 전반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젊은 교사의 죽음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지난 20일엔 서이초교 동료 교사가 쓴 글이라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날 한 누리꾼은 “작년 발령난 신규 선생님이고 작년엔 업무없는 1학년과 업무 있는 5학년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서 1학년을 선택했다”는 글과 함께 2장의 캡처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글에는 “올해는 4지망으로 쓴 1학년을 배정받고 나이스 업무는 신규가 할 수 있는 업무라 배정했지만 올해 4세대로 바뀌면서 멘붕 상태가 됐다”며 “교실 상태가 특이한데 학년서 두 개 학급만 동떨어져 있었고 해당 교실은 창문이 없어 해가 거의 들지 않고 음습한 창고가 딸린 교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너무 무섭고 우울하다고 창문을 달아주거나 바꿔달라고 3번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돈도 돈인데 너무 과밀이라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아이들을 밀어넣는 교육청도 문제”라며 “도저히 교실도 없는데 한 반에 30명 이상, 특별실 다 없애는 등 기형적 교실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4명의 금쪽이들과 툭하면 바로 전화해서 난리치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실제로 고인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입수한 학부모의 잦은 전화로 힘들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소름 끼친다, 방학하면 휴대폰 바꿔야겠다’고 말했다”며 “민원과 폭언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중략)
그는 “사안이 터지자 전체 교사가 모였고 교육청서 입단속을 지시했고 교육청서 본인들이 보도할 것이고 지침이 내려올 거라고 했기에 교사들도 소문이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다리려고 했으나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며 “역시나 이번에도 교육청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고 말했다.
또 “(사망)당일에 국과수와 구급차, 경찰차가 운동장에 들어오는 거 보고 부모들이 ‘무슨 일이냐? 교무실과 담임들에게 연락해 고성을 지르며 화를 냈는데 당연히 학교는 아무 말도 못했다”며 “그랬더니 알권리 운운거리며 민원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금쪽이들 부모는 교사들에게 ‘그동안 감사했다. 힘드셨죠’ 이런 문자를 많이 보냈는데 기가 찼다. 고인과 가장 친해서 제일 심적으로 힘든 교사들은 이리저리 조사받고 뒷수습하고 만신창이가 됐다”고 호소했다.(중략)
아울러 “교사들이 학부모 직업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관심도 없다. 특수한 몇 몇의 기득권들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이 아닌, 현재 평범한 교실서 일어나는 상황이니 본질을 흐리지 말아줬으면 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전직 교사였다고 밝힌 한 누리꾼은 “경험상 초등학교는 1학년과 6학년을 가장 기피하는데, 가장 힘든 학년을 2년 차에 배정한 건 잘못됐다. 1학년은 학부모들의 관심과 걱정이 많다”며 “20대 초반의 미혼 담임이라면 ‘나보다 어린데? 애도 안 키워보고 뭘 알아?’ 등의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데다 ‘옆 반은 뭐 해줬는데 우리 반은 그런 거 안 해요?’ 등 비교질을 많이 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막내라고 기피 학년을 맡는 것은 초등학교 현장의 관습이다. 초임 남성 교사는 거의 6학년이나 5학년을 주는데 이건 고쳐야 한다”면서도 “본인이 원했다고 하시는데 교장, 교감, 부장, 선배 교사들이 설득에 설득하면 마지 못해 ‘하겠다’고 하면 본인이 원했다고 하는 게 현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입장문을 보면 ‘나이스 관리업무를 맡았다고 나오는데 의아스러운 게 해당 업무는 무척 어려워 한 사람이 맡으며 교육청에 들어가서 연수받았던 경험이 있다. 지금처럼 학기 말이면 업무가 산더미”라며 “방학 전이라 전교생 통지표 내보내야 하는데 막내뻘 교사가 선배 교사들을 재촉하고 다그칠 수도 없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초조한 업무가 나이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업무를 본인이 원해서 했다고요? 마치 못해 ‘네’ 한 것일 텐데, 이런 일들은 제가 아는 초등 현장에선 비일비재한데 꼭 고쳐야 한다. 요약하자면 어려운 학년과 어려운 업무에 학기 말이라 정말 힘들었을 텐데 학폭, 혹은 학부모 민원이 더해져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고인은 지난해에도 1학년을 맡았는데 8반이라고 한 걸 봐선 학급 수가 엄청 큰 학교로 나이스 업무도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과거 교내 학폭 관련 인터뷰 발언도 재조명받고 있다.
앞서 지난 4월13일, 이 교수는 교내 학폭 문제에 대해 “사법권이 없는 학교와 교사에게 학폭 사건을 담당하게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학교전담경찰(SPO) 배치를 늘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 처벌에 필요한 조치를 전담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던 바 있다.
이어 “학폭도 폭력으로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는 형사사건이다. 경찰이 조사해 잘잘못을 가리도록 해야 한다”며 “미국, 영국 등 영미권 국가는 학폭 사건을 모두 경찰서 담당한다”며 현재의 학폭 대응 실태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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