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가정보원이 방첩 수사 역량 공백을 메우려 바삐 움직이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대공수사권 폐지에 따른 후속 조치로 관련 시행령 개정에 나선 것이다. 합동수사기구에 참여하게 되는 게 골자지만 사실상 대공수사권 ‘우회 부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부활 조짐을 보인 건 올해 초부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직접 경찰 이관에 관한 보완을 언급했다. 여당과 법무부도 발을 맞췄다. 국가수사본부 산하 조직으로 안보수사국이 출범했지만 수사 공백과 전문성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쏟아냈다. 결국 시행령 제정을 통한 합동수사기구 참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경찰 내부는 안보수사국이 ‘국정원 하청 조직’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
유턴
국정원은 대통령령인 ‘안보범죄 등 대응업무 규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제정안은 ▲국정원이 법령상 직무 범위 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방식 열거 ▲안보범죄 등 대응업무의 원활한 수행과 협조 체제 유지를 위한 유관기관 협의회 설치 ▲합동수사기구 참여 등 각급 수사기관과 협력 등을 골자로 한다.
또 ▲보안대책 및 결과 처리의 통보 ▲안보범죄 등에 효율적 대응을 위한 교육 및 필요한 경우 국정원에 위탁교육 의뢰 등 내용도 담겼다.
국정원은 “대공수사권 폐지와 관련한 후속 조치”라며 “국가안보 공백 방지를 위해 국가정보원법상 확인·견제·차단 등 대응 조치권을 구체화하고, 수사기관을 포함한 각급 국가기관과 정보 공유 및 협력 등을 규정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제정안이 향후 공포·시행되면 국정원은 대공수사와 관련한 합동수사기구에 참여하거나 협력할 수 있게 된다. 국정원은 현재 별도 수사권이 없는 마약, 테러, 방첩 등 범죄의 경우 검경 수사에 관한 정보 지원과 조사 등 업무를 통해 합동수사기구에 참여 중이다.
올해 말까지는 국정원 자체 대공수사가 가능하지만 내년부터는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경찰 수사에 정보 지원이나 조사 등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 시행령 제정을 두고 국정원이 내년에도 대공수사를 할 수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향후 합동수사기구 내 경찰 대공수사에 대한 정보를 국정원이 지원하게 되면 사실상 수사 초기 단계부터 개입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권 바뀌자 ‘합수단’ 합류 움직임
사실상 우회 부활…붕 뜬 안보수사국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안보수사국이 신설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며 “국정원의 지휘를 받아야 성과도 있을 텐데 사실상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이번 시행령 제정이 폐지되는 대공수사권을 우회적으로 부활시킨 건 아니란 입장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대공수사 특수성과 국정원의 전문성을 고려해 필요한 경우에 합동수사기구에 참여하는 것”이라며 “대공수사권 폐지에 따른 안보 공백 최소화를 위해 유관기관과 협력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대공수사권은 내년 1월부터 경찰로 넘어간다. 국회는 2020년 12월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과 인권침해 방지 등을 이유로 국정원의 직무 범위서 국내 보안정보를 삭제하고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도록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개정안은 대공수사관 이관 과정의 공백과 혼란 방지를 위해 2024년 1월까지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경찰은 수사업무 인력 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썩어 왔다. 서울강남·금천경찰서, 경기 분당경찰서 등 전국 56개 경찰서에 안보수사팀을 신설해 추가 채용 계획도 진행했다. 기존 일선 경찰서 안보과 내에 수사팀을 신설하고, 배정된 수사관은 기존 안보과 업무인 탈북민 신변보호에서 제외해 수사에만 집중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수사 인력 증원에 맞춰 다른 경찰서에도 안보수사팀을 늘리고 있다.
경찰은 그간 시·도경찰청 안보수사대를 중심으로 안보 관련 범죄 수사를 해왔으나, 이를 경찰서 단위로 확대해 운영한다. 안보수사 연구교육센터도 신설해 내년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그동안 국정원의 고유 업무로 여겨진 형법상 내란, 외환죄 및 국가보안법 등에 대한 수사권이 경찰청으로 이관되는 것을 두고, 국정감사 등에서 수사력 공백 우려가 제기됐던 터라 관련 교육의 중요성도 커졌다.
“전문성 차이” 수사기법 익히려면 수십년
“국정원 역할 공백 커질 것” 우려도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지만 사실상 국정원이 해오던 역할 공백이 커질 것이라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방첩 수사 차질 우려가 나왔다. 대공수사권이 폐지되면 북한 직파간첩 수사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직파간첩을 검거하려면 장기간 내사가 불가피한데 경찰 수사 능력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지배적이다.
국정원이 그동안 전문성을 갖고 장기간 내사를 통해 직파간첩을 검거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국민의힘에서는 국정원법 개정을 통한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의 부작용을 거론해왔다. 국정원이 5년에 걸친 내사 끝에 직파간첩 A(55)씨를 체포한 것이 일례다.
국정원이 수년간 내사를 통해 간첩수사를 진행해온 것과 다르게 경찰은 비슷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안보수사국 출신 관계자는 “국정원은 해외통신망을 통해 경찰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네트워크 활용 수사도 뛰어나다”며 “관련 전문성이 국정원보다 약하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경찰은 수사력 논란을 해소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다만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 지휘처럼 흘러가게 될 수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사건을 지휘했던 것처럼 수년이 지나도 국정원의 수사 지휘가 고착화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공백
실제 검찰과 경찰은 이른바 ‘수사 경쟁’ 및 사건 지휘 여부를 놓고 수년간 갈등을 이어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수사권조정으로 일단락되는가 싶었으나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찰이 일부 직접수사권을 회복했다. 현재까지는 방첩 수사에 대한 국정원의 합수단 합류로 끝났으나 향후 수사 주체 문제를 두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게 경찰 내부의 우려다.
국정원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으로는 대공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예정대로 2024년 1월1일부로 법률상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면 경찰 수사 등에 대한 정보 제공 등 지원에 그친다. 국정원은 경찰과 합동으로 운영 중인 합동수사단의 운영 결과를 토대로 국가 차원의 대공수사 역량 유지를 위한 필요한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