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흰 사슴, 루카’ 이정록

모든 생물의 마지막 공통 조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부산 해운대구 소재 갤러리 소울아트스페이스가 이정록 작가의 개인전 ‘흰 사슴, 루카: White Deer, LUCA’를 준비했다. 이정록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가시화하기 위해 수많은 도전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독창적인 작업방식을 구축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를 찾아다니며 사전답사와 테스트, 실제 촬영에 이르기까지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한 이정록의 여정은 지난하다. ‘흰 사슴, 루카: White Deer, LUCA’전에서는 남도의 풍경 속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익숙한 공간에 흰 사슴과 빛으로 경이로운 에너지를 형상화한 루카 시리즈 신작 15점을 처음 공개한다. 

능동적

이정록은 20년 넘게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풍경과 나무를 배경으로 비범한 에너지를 담아왔다. 대표작인 ‘생명나무’ 연작을 통해 자연의 신비로운 장면을 기록했다. 이번 전시서 공개되는 신작은 제주 한라산 백록담의 전설에 등장하는 신선이 타고 다니던 흰 사슴, 백록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루카는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생물의 마지막 공통 조상(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의 약자다. 생명나무 시리즈서도 나무 조형물을 제작해 촬영했지만 보편성을 지닌 상징물인 나무서 흰 사슴이라는 전설 속 존재를 형상화해 새로운 시리즈에 등장시키는 것은 과감한 선택이다. 그만큼 이정록은 사슴이라는 대상에 확신을 갖고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명확히 찾은 셈이다. 

현실의 풍경에 놓인 사슴은 존재만으로 화면을 순식간에 몽환적이고 영롱하게 변화시킨다. 뿔은 마치 한 그루 나무 형상처럼 전작인 생명나무 시리즈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습이다. 흰 사슴 주변을 부유하는 빛과 나비는 대지를 더욱 경이롭게 만든다. 


도전과 시행착오
독창적 작업 방식

고대부터 광범위한 지역서 사슴뿔은 신의 뜻을 감지하는 신성한 매체로 여겨졌다. 이정록은 “봄에 자라나 이듬해 봄이면 떨어져 다시 돋고 계절처럼 순환하는 사슴뿔의 속성은 생명나무 시리즈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슴은 그 자체로 끊임없이 유동하는 생명의 연속성이자 생명이 가진 능동적이고 근원적인 힘이면서 생명나무의 뿌리가 된다.  

빛을 발하는 사슴 몸체와 주변을 감싸는 나비의 빛을 보면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초현실적인 이미지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연출됐지만 그 과정은 오로지 대형 필름카메라와 플래시로 얻어낸 아날로그 사진이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작품은 새롭게 인식된다. 

지속광과 순간광을 혼용해 반복한 촬영은 한 장소서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수일, 수개월을 포착해야 나올 수 있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포토샵을 활용하면 보다 쉽고 더욱 오묘한 장면을 얻을 수 있지만, 이정록이 추구하는 예술의 가치는 효율성보다 자연으로부터 진정한 기운과 숨결을 느끼고 작은 빛 하나도 공들여 직접 만들어가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생명나무 시리즈와 연결
뿔의 형상과 자연스럽게

관람객은 알 수 없는 작품 이면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2020~2021년 제작한 루카 촬영은 실내서 진행했지만 신작은 외부서 공개된다. 모든 요소를 직접 조절할 수 있는 내부 스튜디오와 달리 야외 로케이션 촬영은 작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철저히 제한된다. 시선이 이끄는 곳보다 마음이 먼저 와 닿는 특별한 장소는 의지만으로 찾아낼 수 없기에 더 어렵다. 

이정록은 지난 몇 년간 먼 지역을 유랑하면서 생경하고 유서 깊은 장소를 주로 방문했다. 그러다 다시 남도의 자연서 평범한 풍경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번에 공개되는 작품의 장소는 이정록이 새로 터를 잡은 작업실서 가깝다. 어느 정도 계절감도 느낄 수 있는 친숙한 배경이다. 

근원적

소울아트스페이스 관계자는 “오랜 시간 농부의 삶의 터전이자 역사가 깃든 남도의 속살 같은 곳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순환의 과정을 담아낸 이정록의 작품을 통해 고유한 생명력과 숭고하고 경이로운 에너지를 한껏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오는 7월25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이정록은?]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서 순수사진을 전공했다.

국내를 비롯해 중국, 미국, 영국 등에서 30회 이상 개인전을 가졌다.

국내 유수의 미술관과 헝가리, 스페인, 벨기에, 대만, 터키, 싱가포르, 러시아 등에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중국난징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등 국제비엔날레 초청 및 신세계미술제 대상, 수림문화재단 사진문화상, Redpoll Photo Awards에서 최고 사진가상을 수상했다. 

중국 상해 히말라야미술관, 제주도 가시리 창작스튜디오 등에서의 입주작가 활동을 통해 보다 깊이 있게 공간을 이해하며 장기간 촬영에 임하기도 했다.

사진집 <Mythical Gleams>와 에세이 <수상한 풍경>을 저술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림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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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