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개편’ 명지대 파문 풀스토리

잘못은 재단이 희생은 학생이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파산 위기를 넘기고 한숨 돌린 명지대학교. 회생 절차에 매진하는 가운데 또 다른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학교가 일부 순수학문 폐과 계획을 담은 학사구조 개편안을 교육부에 제출한 탓이다. 해당 학과 구성원은 물론, 교내 여론 대다수가 반대 의사를 표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재단이 초래한 재정 위기를 애먼 교내 구성원의 희생으로 극복하는 모순적 상황. 한술 더 떠 ‘희생 방식’마저 강제하려는 태도에 ‘희생양’들은 뿔이 났다.

“철학과 없애면 그게 종합대학인가요?” 이달 초 <일요시사>와 만난 한 명지대학교 타 과생은 이같이 일갈했다. 원론적인 반문에서 시작된 작심 비판은 재단(명지학원)과 학교의 구체적 실책에 관한 지적으로 끊임없이 뻗어나갔다. 재단이 자초한 재정 위기와 학교의 비민주적 여론 수렴 과정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뤘다. 

회생안
통폐합

명지대학교는 지난해부터 학사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명지전문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명지대 일부 학과도 통폐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명지대와 명지전문대는 모두 학교법인 명지학원에서 운영 중이다. 여기에 재단이 함께 운영 중인 명지초·중·고까지 합치면 재학생이 3만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재단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조원대의 수익 사업체를 보유하는 등 안정적인 재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후 전임 이사장의 무리한 부동산 개발, 재단 사유화 시도 등으로 악재가 누적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재단이 떠안은 부채액은 2000억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채권자에게 파산·회생 신청을 당하면서 재단 존속 여부가 잠시 불투명해지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해 법원과 교육부가 재단 측 회생안을 받아들이면서 파산 위기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당시 재단은 회생안에서 명지전문대 부지를 매각해 그 대금으로 일부 부채를 메우겠다고 밝혔다.


명지대-명지전문대 통합은 본격적인 회생 절차에 돌입하기 위한 필수 밑 작업인 셈이다.

교내 통합추진위원회(이하 통추위)와 컨설팅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전공 경쟁력·학생 수요 등을 기준 삼아 적극적인 학사구조 개편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제시한 통폐합안 초안에서 ▲철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바둑학과 등을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했다. 대부분 순수학문을 가르치는 학과다.

특히 통추위는 철학과의 폐과 추진 사유를 “자퇴자가 많고 외국인 유학생 유입이 적어 등록금 창출 기여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철학과는 반발했지만, 결국 통추위는 철학과 등의 폐과 계획이 담긴 개편안을 최종안으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12월28일 교육부에 제출됐다.

순수학문 위주 일부 학과 폐지 예고
교내 반발에도 강행 시사…불통 비판

지난달 철학과 교수진 일동은 입장문을 내고 통추위 행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교수진은 입장문에서 “철학과 교수의 연구 실적과 학생의 취업률은 비교 대상인 서울시 내 소재 대학 중 중간 정도를 차지했다. 명지대학교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인문대 내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는 통추위가 철학과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학과 실적 지표만 선택적으로 제시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명지대 철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비교적 정원이 적은 철학과는 몇 명만 결원이 생겨도 그 비율이 커 보일 수밖에 없다. 자퇴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걸 지적하기 이전에 이 같은 맥락을 참작해야 한다”며 “그런데 다른 긍정적 지표들은 외면한 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지표를 근거로 드니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내 일각에서는 “통추위가 폐과 대상을 입맛대로 정해두고 자료를 짜맞춘 것 같다”는 식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울러 교수진은 통추위 결정이 상업주의적 판단에 매몰됐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입장문에 “통추위와 학교의 구조조정안은 ‘순수학문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폐지하고 응용학문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편견에 기초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전체 구상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고 상업주의적”이라며 “철학도 충분히 응용적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학문적 성격과 사회적 효용에 무지한 통추위와 대학은 철학과를 인문캠퍼스 25개 학과 중 유일하게 쓸모없는 학과로 낙인찍어 폐지하려고 한다”고 적었다.

다른 교내 구성원들도 이 같은 학사구조 개편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명지대-명지전문대 통합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폐과 등 학사 구조개편에는 반대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통합 사안과 개편 사안 자체를 분리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교직원·학생
집단 반발 중

교내 5개 조직(인문·자연총학생회, 인문·자연교수협의회, 대학노조 명지대지부)은 지난해 11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이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개편안이 부실하게 작성된 점 ▲구성원과의 협의가 미흡했던 점 ▲개편안이 통합 비용 측면에서 효과적이지 못한 점 ▲폐과 및 폐과에 준하는 개편안은 교육부 필수 요구조건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통합안 재작성’을 촉구했다.

대학 내 최고 의결기구인 대학평의원회 역시 지난해 12월16일 표결에서 통추위의 학사구조 조정안을 부결했다. 총장 요청으로 재심의가 이뤄진 같은 달 29일에도 심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학교 측이 전체 구성원에게 ‘통합’ 동의 여부를 물었을 때, 80%가 훌쩍 넘는 동의율이 나왔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이에 통추위 및 학교 측 관계자는 대학평의원회 측에 “지금까지 교육부에 통폐합을 신청한 학교 중 평의원회 동의를 지참하지 않은 선례가 없었으므로, 통합을 위해서라도 (통합안 및 개편안을) 추인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일부 학과의 폐과 여부를 재고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들은 일부 학과의 폐과 대신 개편안을 제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수학과는 응용통계학과, 물리학과는 융합에너지공학과로 개편될 계획이다. 다만 철학과와 바둑학과는 여전히 폐과 대상이다.

대학 평의원회는 이달 초 관련 안건을 재논의했다. 평의원회는 학교 측 요청에 따라 통합안에 우선 동의하되, 조건부 동의 의사를 강조하기 위해 별지를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별지에는 ‘향후 정원 증원 가능성이 발생했을 때 철학과와 바둑학과의 폐과 철회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를 권고’ ‘통폐합 추진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구성원의 의견 수렴 권고’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작금의 사태 
구조적 모순

<일요시사>는 학교 측 입장을 듣기 위해 통추위 고위관계자에게 이메일로 질의서를 송부했다. 해당 관계자는 답신에서 “교육부 심의가 진행 중인 사안에 관해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대학은 구성원과 간담회·공청회를 진행해 의견을 수렴했으며, 최선의 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내용이 수정되고 발전적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학사 조정에 얽힌 지표 선택 논란에 대해서는 “대학의 학사구조 조정은 대학서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매우 중요한 업무”라며 “이를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경쟁력 지표 등은 기밀사항 중 하나로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교내 구성원들은 현 사태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다. 학교가 통폐합을 사실상 강제로 진행하게 된 데에는 재단의 책임이 큰데, 이로 발생한 피해는 애꿎은 구성원들에게 향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구성원들은 불합리한 상황에도 애교심을 가지고 희생을 결심했는데, 재단과 학교가 구성원들을 최대한 보호하기는커녕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재단을 둘러싼 빚더미 대부분은 유모 전 이사장 때 만들어졌다. 학교 설립자의 아들이자 명지건설 회장이었던 유 전 이사장은 무리한 사업으로 부도 위기에 놓인 명지건설을 살리기 위해 재단을 끌어들였다. 재단의 알짜 자산을 명지건설이 가져가는 대가로 재단에 명지건설의 적자 사업을 떠넘겼다.


명지대 관련 공사는 명지건설이 모두 맡는, 일감 몰아주기가 발각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 전 이사장은 임금 돌려막기, 기금 횡령 등을 일삼다가 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났고, 2012년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7년 형이 확정돼 2018년 출소했다. 채권자가 신청한 파산·회생 절차 또한 유 전 이사장 재임 당시 재단서 진 빚에 근거한 것이다.

현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유 전 이사장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도 필수 아니라는데…폐과 추진, 왜?
파산 초래한 재단, 구성원 희생 강요 논란 

하지만 유 전 이사장의 친·인척은 여전히 재단과 학교 요직을 맡고 있다. 2020년 교육부는 부실 재정의 책임을 물어 이들을 포함한 재단 이사 10명과 감사 2명에 대한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하고, 관선이사 파견을 추진하기도 했다. 재단 측은 가처분신청과 본안소송 등을 통해 이를 저지했다.

재단의 실책은 계속됐다. 얼마 전 재산을 큰 폭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를 그르치며 입길에 올랐다(1364호 명지대 위험한 땅거래 내막). 2020년 재단은 교육부의 협조를 얻어 교내 유휴용지 매각에 나섰다. 인문캠퍼스 인근 부지 일부(면적 172㎡)와 자연캠퍼스 16개 필지(면적 36만5273㎡)가 그 대상이었다. 

당시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대상 부지들은 교육부의 매각 허가가 있어야만 처분할 수 있었다. 

교육부는 재정이 어려운 재단 측 사정을 고려해 절세 및 교육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유휴용지 처분을 먼저 권유했다. 하지만 2021년 재단은 교육부령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매각 계약을 진행하다가 이를 교육부 정기 감사에서 발각당했다. 

교육 재산 소유권은 매각대금을 모두 받은 뒤 넘겨줘야 하는데, 당시 재단은 계약금만 받은 채로 부지 소유권을 매수자에게 넘겨줬다. 이는 일반 개발사업 중 흔히 볼 수 있는 매각 방식이다. 미리 넘겨받은 소유권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고, 대출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식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선 엄연히 불법이었다.

결국 교육부는 재단에 연말까지 매각대금을 회수할 것을 지시했지만, 재단은 잔금 확보에 실패했다. 교육부가 매각 허가를 취소하면서 재단의 재산 처분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2월 명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매각 허가가 취소된 것은 맞지만, 조만간 다시 매각 계획을 수립해 교육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일시적으로 답보상태에 놓였어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재단은 지난해 5월부로 해당 부지에 매매계약 해제에 따른 가처분신청을 걸어둔 상태다.

좌절된 매매계약 규모는 약 43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진행만 됐다면 명지대 어반캠퍼스 준공비용(약 500억원 추산) 대부분이나 채무 상당 비율을 메울 수 있었을 만한 액수다.

계속될
책임론

지난해 들어 교육부의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해당 부지를 처분할 길도 재차 열린 것으로 보인다. 채무 변제 자체가 쉬워지면서 “한숨 덜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교내 여론이 꾸준히 재단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만큼, 관련 논란에 대한 비판과 ‘철학과 구명 운동’은 계속될 전망이다. 철학과 관계자는 <일요시사> 측에 “학교 측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과 구조적 모순을 끝까지 지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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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