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국회 2인자’ 맞불 대담 김영주 국회부의장 

“새는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민족 대명절 설날이 찾아왔다. 어려워진 경제 탓에 올해 설날은 예년과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야는 서로 공격거리를 찾아 자기편 지키기에만 몰두 중이다. 민생은 이미 뒷전으로 밀렸다. <일요시사>가 국회 2인자인 정우택 국회부의장(국민의힘), 김영주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을 만나 민생 대책, 여야의 관계 해소 비책 등을 물었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다른 정치인들이 으레 밟아온 ‘엘리트 코스’를 전면 부정하며 본인의 정치를 이어왔다. ‘농구선수 출신’ ‘여성노동자 인권운동’ ‘비주류’ ‘사상 2번째 여성 국회부의장’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하나같이 생소하기만 하다. 다소 불리한 조건 속에서 많은 것을 이뤄낸 김 부의장에게 그 비결과 앞으로의 국정계획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농구선수 출신이라는 이력이 매우 특이하다. 그때 경험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중학교 시절 농구부에 처음 들어갔을 때 패스의 기본도 몰랐던 게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특기생으로 시작한 동기생들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농구였지만, 결국 끝엔 고교농구 우승팀 주전 멤버까지 올라갔다. 끈질긴 인내심이 빛을 발했던 것 같다.

-그것이 ‘정치인’ 김영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때의 경험이 ‘비주류 정치인’ 시절을 견디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나는 상고 출신, 그것도 은행원이 아닌 운동선수 출신 은행원이었다. 주산, 부기부터 배워야했던 ‘지진아’였던 셈이다. 마치 농구를 처음 배울 때처럼 모든 것이 뒤처져있었다. 노조활동 당시에도 학연이 없는 비주류의 설움을 맛봤다. 그러나 모든 것을 견디며 노조활동을 20년 이상했고, 여성 최초의 금융노련 상임부위원장까지 지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던 노하우를 청년들에게 말해달라

▲농구선수, 은행원 모두 남들보다 시작이 미약하게 시작했다. 항상 비주류로 발을 뗐지만, 노력과 열정으로 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비주류 정치인으로 시작해 스타 정치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아직까지도 크지 않다. 하지만 매 순간 노력, 열정과 집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도 나를 ‘스타 정치인’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정치인’으로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농구선수와 은행원,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치인이 된 계기는?

▲‘노동운동’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녀 고용평등법 제정과 개정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았다. 이를 인정받아 1999년 김대중 대통령께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되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다. 당시 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는데, 김 전 대통령은 각계 각층에서 인물을 영입하고 있었다. 노동계와 여성계에서 많은 추천을 받은 나에게도 그 영입 제안이 온 것이다.

-정치판에 들어와서 곧바로 효능감을 느꼈나?

▲입법으로 국민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큰 효능감을 느낀다. 노조활동 때 간절했던 마음으로 국회에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국회의원은커녕 보좌관들도 만나기 힘든 시절이었다. 입법활동이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하고 체험하는 것이 매일 나를 설레게 한다. 국민과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입법권자의 필요성을 매일 되새기며 일하고 있다.

-제21대 국회가 여야 갈등 속에 민생은 뒷전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국회부의장으로서 해결 방안을 제시해달라


▲남은 임기 동안 여야간 소통의 메신저 역할에 집중할 것이다. 지난해 예산 처리 과정 등에서 많은 국민이 실망하신 것을 안다. 위기 앞에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초당적 자세로 협력해야 한다. 소통과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의장단의 한 축으로서 여야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내 위기를 극복하겠다.

-올해 국회가 이뤄야 할 ‘숙제’ 한 가지가 있다면?

▲‘빈곤 해결’이다. 이를 위한 정치적 역할을 찾아낼 것이다. 경제가 극도로 어려운 시기다. 행정부는 먹고사는 문제인 노동과 관련법, 제도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이것이 정말 노동자들을 위한 개혁인지 의문이 든다. 경제, 경기 침체 시기에 섣부르게 개혁과제로 노동을 선정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불리한 조건들 속 굵직한 성과…비결은 ‘끈기’
국회 올해 첫 숙제? “당연히 경제 위기 극복” 

어려운 시기일수록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 경제와 노동문제가 심각할수록 ‘신 빈곤층’이 지속적으로 양산된다. 전 세계 7대 경제 대국이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빈곤 문제’는 정치권의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입법부가 발 벗고 나서서 취약계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신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빈곤해결을 정치가 할 수 있다고 보나?

▲정치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맞춰 정치권도 재역할을 위한 준비해야 한다. 경제, 노동, 외교, 안보, 여성, 환경 등 모든 분야가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정치로 해결할 수 있는 주요 과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다.

정쟁에만 빠지지 말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최근 의장 직속 자문기구를 맡아 ‘빈곤아동문제’ 해결을 위한 위원회를 출범했다. 이 뿐만 아니라 주요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세미나 개최 등을 기획 중이다.

-협치를 강조하는데, 가능할 것이라 보나?

▲대내외적으로 경제 등 여러 사안이 있다. 국가적인 위기다. 부의장 당선 인사에서 여야 소통의 메신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일수록 여야의 초당적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 역할의 맨 앞에 내가 설 것이다.

새가 한쪽 날개만으로 날 수 없듯,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하려면 여야 협치는 필수적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포용의 정신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국민들께서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 부의장 지역구에 ‘제2세종문화회관’유치를 두고 갈등 중인 것으로 안다


▲다른 지역구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제2세종문화회관에 대한 논의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내가 2012년 최초로 제안한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은 서남권(7개구) 시민 300만명의 문화향유권을 위해 추진한 굵직한 문화사업이다. 2015년 ‘서울 3대 도심’으로 승격된 영등포구는 2021년 서울시 최초로 문화도시에 지정됐다. 

2019년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문래동에 세종문화회관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고, 해당 건립안과 예산안이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했다. 주요 절차였던 영등포구의회와 서울시의회에서도 모두 통과한 상황이다. 그런데 영등포구청장이 바뀌더니 이 모든 것이 ‘올스톱’된 상황이다.

-건립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서민들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건 정말 영등포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제2세종문화회관은 영등포구 주민과 서울 서남권 주민의 숙원사업이다. 2018년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남권 주민 중 77.9%가 건립을 희망한다고 나온다. 그중 63%에 해당하는 주민들은 시설을 “이용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또 서울시 연구조사 결과에는 생산유발효과 약 3000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약 1000억원, 취업유발효과 약 2000명에 달한다. “도움되지 않는다”는 일각의 주장을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심지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모두 선거당시엔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을 공약했었다.

-또 다른 이유로 예산 부족이 거론되곤 하는데…


▲예산이 없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2021년도에 국제현상설계공모비였던 7억5000만원과 지난해 설계비인 5억원이 모두 올해로 이월된 상태다. 국제현상설계 공모위원회 구성이 지연되면서 예산집행이 늦어지고 있다. 올해 공모를 진행해 예산을 집행하고 당선작에 대한 설계비를 집행할 예정이다. 진행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영등포구청이 토지무상 사용에 대한 양해각서(MOU) 문건 합의를 서울시로 빨리 회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기 앞에선 여야 모두
초당적 자세로 협력해야”

-개인적인 미래도 궁금하다. 민주당서 한창 진행 중인 ‘국회의원 선수 제한 운동’에 해당되는데?

▲개인적인 소신은 국회의원의 연임 여부를 지역구 주민, 즉 국민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구성에 정치적 다양성을 높이고 정치 신인에게 도전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한다. 그런데 단순한 선수 제한이 어떤 정치적 개혁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 중 선수를 제한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안다. 과거 미국도 선수 제한 운동을 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는가. 

-왜 실패했다고 보는가?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정치인, 행정부 견제의 전문성과 연속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국회의원 4년 임기 동안 공약하고 진행하는 사업들만 수십가지다. 적게는 4년, 많게는 10년 걸리는 사업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사업들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속성이 필요하다.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상당 부분 필요하다. 선수가 제한된다면, 주민들을 위한 장기 계획은 사실상 세울 수 없고 단기적인 사업들에만 집중할 것이다. 이는 지역발전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자타공인 ‘노동문제 전문가’다. 지난 세월 기억에 남는 일을 몇 가지 꼽는다면?

▲주 52시간제를 이뤄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통합된 인식이 없었고, 노사가 다름은 물론 산업 분야별, 개별 기업마다 제각각 입장이 분분했다. 의견 차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소통밖에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양측의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해 경제인 단체는 물론 노총과 의견을 조정하고, 개별 기업을 끊임없이 방문했다.

현장노동청 설치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국 10곳에 현장 노동청을 설치했다. 17일 만에 현장 상담과 진정, 제안 건수가 6000건이 넘었다. 지난 10년간 접수한 건들 중에 66%를 정책에 반영했고, 진정 82%를 해결했다. 

-아쉬운 점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해마다 2000여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하고 있는 점은 뼈아픈 현실이다. 부상자만 연간 10만여명이 발생하고, 사업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사업주를 무조건 엄벌하고자 마련된 법은 아니다. 산업재해라는 문제의 본질상 사후관리, 감독 등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결국 사후 처벌, 관리보다는 ‘예방’이 사망자를 줄이는 방법이다. 제21대 국회에서 산업재해를 전문적으로 예방하고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을 발의했다. 아직까지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해 아쉽다. 이는 경영계, 노총에서도 찬성하는 법안이다. 여야를 떠나 초당적으로 정부와 논의하고, 하루빨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길 소망한다.

-여성인권 운동도 오래했다. 젠더갈등이 극심한 요즘 세대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청년세대서 나타나고 있는 젠더 갈등 현상은 경제적 저성장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이에 대해 기성세대로서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부족한 기회를 두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일어난 청년들의 생존경쟁이다. 청년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정치가 청년들에게 더 다가가고,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무엇보다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깊이 강구하겠다. 나부터 노력하겠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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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