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국회 2인자’ 맞불 대담 김영주 국회부의장 

“새는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민족 대명절 설날이 찾아왔다. 어려워진 경제 탓에 올해 설날은 예년과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야는 서로 공격거리를 찾아 자기편 지키기에만 몰두 중이다. 민생은 이미 뒷전으로 밀렸다. <일요시사>가 국회 2인자인 정우택 국회부의장(국민의힘), 김영주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을 만나 민생 대책, 여야의 관계 해소 비책 등을 물었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다른 정치인들이 으레 밟아온 ‘엘리트 코스’를 전면 부정하며 본인의 정치를 이어왔다. ‘농구선수 출신’ ‘여성노동자 인권운동’ ‘비주류’ ‘사상 2번째 여성 국회부의장’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하나같이 생소하기만 하다. 다소 불리한 조건 속에서 많은 것을 이뤄낸 김 부의장에게 그 비결과 앞으로의 국정계획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농구선수 출신이라는 이력이 매우 특이하다. 그때 경험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중학교 시절 농구부에 처음 들어갔을 때 패스의 기본도 몰랐던 게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특기생으로 시작한 동기생들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농구였지만, 결국 끝엔 고교농구 우승팀 주전 멤버까지 올라갔다. 끈질긴 인내심이 빛을 발했던 것 같다.

-그것이 ‘정치인’ 김영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때의 경험이 ‘비주류 정치인’ 시절을 견디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나는 상고 출신, 그것도 은행원이 아닌 운동선수 출신 은행원이었다. 주산, 부기부터 배워야했던 ‘지진아’였던 셈이다. 마치 농구를 처음 배울 때처럼 모든 것이 뒤처져있었다. 노조활동 당시에도 학연이 없는 비주류의 설움을 맛봤다. 그러나 모든 것을 견디며 노조활동을 20년 이상했고, 여성 최초의 금융노련 상임부위원장까지 지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던 노하우를 청년들에게 말해달라

▲농구선수, 은행원 모두 남들보다 시작이 미약하게 시작했다. 항상 비주류로 발을 뗐지만, 노력과 열정으로 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비주류 정치인으로 시작해 스타 정치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아직까지도 크지 않다. 하지만 매 순간 노력, 열정과 집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도 나를 ‘스타 정치인’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정치인’으로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농구선수와 은행원,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치인이 된 계기는?

▲‘노동운동’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녀 고용평등법 제정과 개정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았다. 이를 인정받아 1999년 김대중 대통령께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되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다. 당시 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는데, 김 전 대통령은 각계 각층에서 인물을 영입하고 있었다. 노동계와 여성계에서 많은 추천을 받은 나에게도 그 영입 제안이 온 것이다.

-정치판에 들어와서 곧바로 효능감을 느꼈나?

▲입법으로 국민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큰 효능감을 느낀다. 노조활동 때 간절했던 마음으로 국회에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국회의원은커녕 보좌관들도 만나기 힘든 시절이었다. 입법활동이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하고 체험하는 것이 매일 나를 설레게 한다. 국민과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입법권자의 필요성을 매일 되새기며 일하고 있다.

-제21대 국회가 여야 갈등 속에 민생은 뒷전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국회부의장으로서 해결 방안을 제시해달라


▲남은 임기 동안 여야간 소통의 메신저 역할에 집중할 것이다. 지난해 예산 처리 과정 등에서 많은 국민이 실망하신 것을 안다. 위기 앞에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초당적 자세로 협력해야 한다. 소통과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의장단의 한 축으로서 여야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내 위기를 극복하겠다.

-올해 국회가 이뤄야 할 ‘숙제’ 한 가지가 있다면?

▲‘빈곤 해결’이다. 이를 위한 정치적 역할을 찾아낼 것이다. 경제가 극도로 어려운 시기다. 행정부는 먹고사는 문제인 노동과 관련법, 제도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이것이 정말 노동자들을 위한 개혁인지 의문이 든다. 경제, 경기 침체 시기에 섣부르게 개혁과제로 노동을 선정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불리한 조건들 속 굵직한 성과…비결은 ‘끈기’
국회 올해 첫 숙제? “당연히 경제 위기 극복” 

어려운 시기일수록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 경제와 노동문제가 심각할수록 ‘신 빈곤층’이 지속적으로 양산된다. 전 세계 7대 경제 대국이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빈곤 문제’는 정치권의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입법부가 발 벗고 나서서 취약계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신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빈곤해결을 정치가 할 수 있다고 보나?

▲정치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맞춰 정치권도 재역할을 위한 준비해야 한다. 경제, 노동, 외교, 안보, 여성, 환경 등 모든 분야가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정치로 해결할 수 있는 주요 과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다.

정쟁에만 빠지지 말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최근 의장 직속 자문기구를 맡아 ‘빈곤아동문제’ 해결을 위한 위원회를 출범했다. 이 뿐만 아니라 주요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세미나 개최 등을 기획 중이다.

-협치를 강조하는데, 가능할 것이라 보나?

▲대내외적으로 경제 등 여러 사안이 있다. 국가적인 위기다. 부의장 당선 인사에서 여야 소통의 메신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일수록 여야의 초당적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 역할의 맨 앞에 내가 설 것이다.

새가 한쪽 날개만으로 날 수 없듯,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하려면 여야 협치는 필수적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포용의 정신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국민들께서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 부의장 지역구에 ‘제2세종문화회관’유치를 두고 갈등 중인 것으로 안다


▲다른 지역구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제2세종문화회관에 대한 논의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내가 2012년 최초로 제안한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은 서남권(7개구) 시민 300만명의 문화향유권을 위해 추진한 굵직한 문화사업이다. 2015년 ‘서울 3대 도심’으로 승격된 영등포구는 2021년 서울시 최초로 문화도시에 지정됐다. 

2019년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문래동에 세종문화회관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고, 해당 건립안과 예산안이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했다. 주요 절차였던 영등포구의회와 서울시의회에서도 모두 통과한 상황이다. 그런데 영등포구청장이 바뀌더니 이 모든 것이 ‘올스톱’된 상황이다.

-건립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서민들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건 정말 영등포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제2세종문화회관은 영등포구 주민과 서울 서남권 주민의 숙원사업이다. 2018년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남권 주민 중 77.9%가 건립을 희망한다고 나온다. 그중 63%에 해당하는 주민들은 시설을 “이용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또 서울시 연구조사 결과에는 생산유발효과 약 3000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약 1000억원, 취업유발효과 약 2000명에 달한다. “도움되지 않는다”는 일각의 주장을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심지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모두 선거당시엔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을 공약했었다.

-또 다른 이유로 예산 부족이 거론되곤 하는데…


▲예산이 없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2021년도에 국제현상설계공모비였던 7억5000만원과 지난해 설계비인 5억원이 모두 올해로 이월된 상태다. 국제현상설계 공모위원회 구성이 지연되면서 예산집행이 늦어지고 있다. 올해 공모를 진행해 예산을 집행하고 당선작에 대한 설계비를 집행할 예정이다. 진행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영등포구청이 토지무상 사용에 대한 양해각서(MOU) 문건 합의를 서울시로 빨리 회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기 앞에선 여야 모두
초당적 자세로 협력해야”

-개인적인 미래도 궁금하다. 민주당서 한창 진행 중인 ‘국회의원 선수 제한 운동’에 해당되는데?

▲개인적인 소신은 국회의원의 연임 여부를 지역구 주민, 즉 국민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구성에 정치적 다양성을 높이고 정치 신인에게 도전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한다. 그런데 단순한 선수 제한이 어떤 정치적 개혁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 중 선수를 제한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안다. 과거 미국도 선수 제한 운동을 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는가. 

-왜 실패했다고 보는가?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정치인, 행정부 견제의 전문성과 연속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국회의원 4년 임기 동안 공약하고 진행하는 사업들만 수십가지다. 적게는 4년, 많게는 10년 걸리는 사업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사업들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속성이 필요하다.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상당 부분 필요하다. 선수가 제한된다면, 주민들을 위한 장기 계획은 사실상 세울 수 없고 단기적인 사업들에만 집중할 것이다. 이는 지역발전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자타공인 ‘노동문제 전문가’다. 지난 세월 기억에 남는 일을 몇 가지 꼽는다면?

▲주 52시간제를 이뤄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통합된 인식이 없었고, 노사가 다름은 물론 산업 분야별, 개별 기업마다 제각각 입장이 분분했다. 의견 차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소통밖에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양측의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해 경제인 단체는 물론 노총과 의견을 조정하고, 개별 기업을 끊임없이 방문했다.

현장노동청 설치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국 10곳에 현장 노동청을 설치했다. 17일 만에 현장 상담과 진정, 제안 건수가 6000건이 넘었다. 지난 10년간 접수한 건들 중에 66%를 정책에 반영했고, 진정 82%를 해결했다. 

-아쉬운 점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해마다 2000여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하고 있는 점은 뼈아픈 현실이다. 부상자만 연간 10만여명이 발생하고, 사업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사업주를 무조건 엄벌하고자 마련된 법은 아니다. 산업재해라는 문제의 본질상 사후관리, 감독 등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결국 사후 처벌, 관리보다는 ‘예방’이 사망자를 줄이는 방법이다. 제21대 국회에서 산업재해를 전문적으로 예방하고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을 발의했다. 아직까지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해 아쉽다. 이는 경영계, 노총에서도 찬성하는 법안이다. 여야를 떠나 초당적으로 정부와 논의하고, 하루빨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길 소망한다.

-여성인권 운동도 오래했다. 젠더갈등이 극심한 요즘 세대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청년세대서 나타나고 있는 젠더 갈등 현상은 경제적 저성장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이에 대해 기성세대로서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부족한 기회를 두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일어난 청년들의 생존경쟁이다. 청년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정치가 청년들에게 더 다가가고,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무엇보다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깊이 강구하겠다. 나부터 노력하겠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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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