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국회 2인자’ 맞불 대담 정우택 국회부의장

“시한폭탄은 터질 수밖에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민족 대명절 설날이다. 어려워진 경제 탓에 올해 설날은 예년과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야는 서로 공격거리를 찾아 자기편 지키기에만 몰두 중이다. 민생은 이미 뒷전으로 밀렸다. <일요시사>가 국회 2인자인 정우택 국회부의장(국민의힘), 김영주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을 만나 민생 대책, 여야의 관계 해소 비책 등을 물었다.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국민의힘 내 최다선(5선) 의원이다. 1992년 정계에 입문한 뒤 30년이 넘게 정치인으로서 다방면으로 활약 중이다. 정 부의장은 처음 정치에 발을 들였을 때와 지금도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열정을 쏟는 인물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수 여당 국회부장의장이 됐다. 무거운 짐을 지게 됐는데?

▲여야 간 극명한 대치 국면에서 상생과 협치로 이끌어나가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여소야대, 기울어진 운동장, 거대 야당의 독선적인 국회 운영 등 대한민국 국회의 무거운 현실 속에서 정쟁과 갈등을 줄여나가겠다. 국회부의장으로 소통과 대화로 합의와 협치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감이 막중하다.

반드시 한쪽으로 기울어진 국회의장단의 균형추를 맞춰 공정하고 상식적인 국회 운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국회의장단에 소속됐다는 것은 대내외적으로 국회를 대표하는 자리다. 한 사람의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단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부의장으로서 목표는?


▲개인적인 목표보다는 성공적인 윤석열정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여소야대’라는 정치 상황에서 국회부의장으로서 윤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제1야당인 민주당과의 소통 문제부터 당이 나아가야 방향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역할에 매진하겠다. 다만, 2가지 좌우명을 말하고 싶다.

첫째는 ‘진인사대천명’이다. 대학 입시 당시 성적이 좋아서 대학입시는 문제없다는 생각에 입시 직전 일주일을 놀았다가 결국 낙방의 쓴맛을 봤다. 당시 어머니께서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라’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지금 좌우명이 됐다.

둘째는 ‘꿈이 있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치를 시작하면서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하고 큰 좌절감을 느꼈다. 그때 생각한 게 ‘꿈이 있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2006년 충북도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적 있다. 앞으로 국가에 어떻게 더 봉사할지 알 수 없지만 좌우명대로 어떤 직을 맡더라도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

-국회가 정쟁의 장이 됐다. 당내 최다선 의원으로서 냉랭한 여야대치 전선을 끊어낼 비책을 제시한다면?

▲최다선인 만큼 이에 걸맞게 정치경험과 역량으로 공정하고 상식적인 국회 운영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우리 앞에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 첫째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둘째는 비상식과 불공정의 사회가 아닌,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 위기를 극복하는 게 최우선이다. 국회가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확실히 하겠다. 앞으로 국회의장단의 구성원으로서 여야 가리지 않고, 함께 일하는 국회, 국민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국회로 만들어야 한다. 

-첨예한 대립 탓에 국회서 민생이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의 이념적 대립, 갈등이 어느 때보다 첨예하고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민생과 경제는 악화하고 있는데 지금 국회는 정쟁과 갈등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마치 적으로 생각하고 너무나 공격적인 행태를 보이는 점이 상당히 유감스럽다.

이런 공격적인 행태는 서로에게 비수가 될 뿐이다. 소위 ‘팬덤 정치’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는 정치문화가 조성되고 있는 게 매우 개탄스럽다. 한국이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뤘지만, 아직 정치만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합의와 협치 책임감 막중하게 생각
도탄에 빠진 민생 위해 여야 맞대야

시대에 맞춰 정치도 발전해야 하는데,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고 소통과 협치는 사라진 채 오히려 갈등과 정쟁은 심해지고 있어 매우 송구스럽다. 의원 스스로가 변화해 국내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국회서 녹여내고, ‘국민이 원하는 것을 풀어나가는 데 역할을 하겠다’는 결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새해예산안이 끝내 법정기한을 넘겨 통과됐고, 임시회도 공회전 중인데…

▲640조원에 달하는 올해 정부 예산안이 법정기한 내 처리되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삼중고로 퍼펙트스톰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대내외적으로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다. 역대 정권 초기에는 여소야대 국면에서도 마지막까지 협상을 통해 예산을 통과시켰고, 정권이 추구하는 핵심 사업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는 했지만, 정권의 국정운영과 철학이 반영된 예산은 그대로 통과시켜줬다.

민주당이 몽니를 부렸던 셈이다. 일각에서는 ‘대선 불복’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민주당은 왜 국민께서 정권교체를 만들어주셨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런 몽니가 지속된다면 역사적 책임에 대해 민주당은 국민의 지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 상황도 뒤숭숭하다. 당내 최다선 의원으로서 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면?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야당과 소통하지 않으면 법안 하나 통과시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야 간 보여주기식 대화가 아니라 진심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국회의 모습을 견지해, 지금의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는 어떤 인물이 돼야 한다고 보나?

▲누구라고 점지할 수는 없지만 이번 당 대표 선출은 굉장히 중요하다. 전대 룰 변경을 했다. 차기 당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우리 당으로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윤정부 성공은 물론이고 한국 희망의 빛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번 당 대표는 정부를 성공으로 갈 수 있게 밀어주고, 표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우리 당이 분열되지 않게 만들 사람이 필요하다. 당 대표가 이런 시너지효과를 내서 원팀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몰아갈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돼야 한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걸림돌이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중요한 가치다. 범죄 혐의가 있다면 당연히 수사를 받아야 하고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이라는 두 사람이 구속됐다. 그 정점에는 이 대표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앞으로 제대로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민주당도 언제까지 민생은 외면하고 이 대표 방탄에만 매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대표를 계속해서 옹호하더라도 시한폭탄은 결국 터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범죄 옹호에 매진할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 빠져있는 민생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소수당은 거대 양당에 가려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다당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국회는 대화와 소통이 이뤄지는 민의의 전당인 만큼 이런 것들이 반영될 수 있는 다양한 소통 채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특히, 양당 간 극심한 갈등과 대립으로 인해 양당제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협치를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다당제 도입이 이 중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대선거구제 도입,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정당 설립 요건 완화, 정당보조금 소수정당 배분 강화, 국회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 양당 기득권 체제를 혁파하기 위한 다당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중이다. 이외에도 개헌을 통한 양원제 도입 등 현행 정치체계서 벗어나 협치를 강화하는 새로운 체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현행 선거제도나 정치 관계법을 개정하더라도 결국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현행 양당 체제도 결국에는 국민의 소중한 투표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각 당 유불리에 의해 정치관계법이 논의되는 것보다 국민의 시각에서, 시대적 요구에 맞춰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국회부의장으로서 대화와 소통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확대해나가겠다. 또 윤정부 출범과 함께 입법부의 기능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

-정치인이 가져야 할 목표는 무엇인가?

▲정치의 가장 큰 목적은 ‘국태민안’이다. 나라가 태평하고 국민이 살기가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지난 5년간 실패한 소득주도성장과 국가적 재난인 코로나19로 인해 민생과 경제는 피폐해진 상황이다. 임대차 3법 등 부동산정책 실패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서민들의 주거 부담이 증가하는 등 각종 부작용을 낳았고, 코로나로 인한 정부의 거리두기 방역대책으로 소상공인의 피해도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역대 대통령 감옥행 이젠 끝내야
양당 기득권 혁파 ‘다당제’ 필요

과감한 정책 기조 변화를 통해 어려운 민생과 경제를 극복해나가는, 우리 국민이 잘사는 꿈이 이뤄졌으면 한다. 민생안정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정책을 풀고, 서민의 부담을 낮추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과감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오름세지만 여전히 30%대에 갇혀 있는데…

▲최근 화물연대 파업 등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함으로써 윤정부의 국정철학이 드러난 것이 국민의 호응을 얻었다. 사실상 그동안 윤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의 기대와 염원이 있는데, 그 기대와 염원에 맞게 당과 정부가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면이 있었다.

당은 혼란을 거듭하면서, 국정 초기 윤정부의 국정을 적극적으로 지원해도 모자란 판에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다만 정부도 시원하게 국민에게 다가서고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 없다는 게 많이 거론된 바 있다. 

-지지율을 더욱 오르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윤정부가 국정 드라이브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강력한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그동안 국정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 윤정부의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정과 상식이라는 국정철학이 국민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앞으로도 국정 메시지가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처음 국민에게 전달될 때 잘못 전달돼 비판받는 일이 없도록 내부적으로 충분히 조율된 뒤에 발표됐으면 한다.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 수사가 반복되고 있는데…

▲김종필 전 총리를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장관직을 맡았을 때 빼고 정책위의장을 하면서 4년간 모셨다. 김 전 총리의 별명은 내각제 전도사다. 5년제 대통령제를 하면 정치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점을 굉장히 강조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다녀왔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굉장히 어려운 직업이라고 인식된다. 앞으로는 이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충북 민·관·정 공동위원회가 출범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

▲지난 40여년 동안 각종 규제 및 지리적 여건 등으로 피해 본 충북도민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위해 충북 민·관·정 공동위원회가 출범했다. 대청댐, 충주댐으로 수도권 등 3000만명에게 식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했지만, 정작 댐 주변 지역은 과도한 규제로 약 40여년간 재산권 제한을 받아왔다. 수변 지역의 과도한 규제로 지금까지 약 1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댐·백두대간으로 인한 사회간접자본(SOC) 부재가 인구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제천, 단양, 보은, 옥천, 영동, 괴산 등은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다. 앞으로 충북 민·관·정 공동위원회는 ‘중부내륙연계발전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 등 충북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과의 연계를 통해 충북과 국가균형발전을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일요시사> 독자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린다

▲이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일요시사> 독자 여러분들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국회의장단의 구성원으로서 의원님들과 함께 일하는 국회, 국민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국회를 만들겠다. 대화와 소통으로 협치가 이뤄지는 국회가 되어 국민의 기대와 염원에 맞게 국회가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그 징검다리 역할을 확실히 하겠다. 든든한 국회부의장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새해에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힘차게 떠오르는 밝은 태양처럼 바라던 일, 소망했던 일이 모두 이뤄지길 바란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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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