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실리는 주호영의 풀지 못한 숙제들

친윤 넘어 찐윤으로 ‘마지막 기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원내대표를 여러 번 경험한 프로 정치인임에도 쉽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분명 힘을 실어줬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기가 빨린다. 협상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비판과 민주당의 공격에 끼여버린 모습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요즘 한층 더 외로워 보인다. 과연 그는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치이고 있다. 야당의 공세는 물론 당내에서도 주 원내대표를 향해 공격이 들어온다.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한가득 쌓인 상태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세제개편 법안 통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전당대회 시기 결정까지 여러 모로 괴롭다. 주 원내대표의 협상력과 지도력이 빛을 발해야 할 때다. 

예산안에
발목 잡혀

최근 해결해야 할 사안들을 감안할 때 주 원내대표가 상당히 고민이 많은 시기처럼 보인다. 여러 위기를 헤쳐나갈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일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모양새지만 난관을 헤쳐나가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초대해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주 원내대표에게 “선배”라며 친근감을 보였다. 만찬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이날 만찬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정치 현안, 국정조사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만찬은 윤 대통령이 만찬 정치를 통해 약해진 여당 결속력을 강화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주 원대대표는 국민의힘 5선의 중진 의원으로 벌써 4번의 원내대표직을 맡았다. 협상을 잘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국회에서 잘 알려져 있다. 미래통합당 당시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물러나면서 대표 권한대행 이력도 갖고 있다. 이 같은 협상의 달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민주당이 요구해왔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수용하면서 주 원내대표의 입지가 다소 흔들렸기 때문이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세력과 대통령실은 주 원내대표에게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사실 주 원내대표를 원내대표직에 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쓴 세력이 바로 윤핵관이다. 직전 비대위원장을 맡았으며, 이준석 전 대표가 신청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뒤 물러난 후 한 달이 지나 재차 원내대표직에 올랐다. 당시 비윤(비 윤석열)계의 파란에도 불구하고 주 원내대표는 무난하게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면서 당내의 분란도 점차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권성동 의원 등이 주 원내대표를 향해 공격하면서 또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주 원내대표가 국정조사를 받아들이는 것을 고심하자 당장 대통령실과 윤핵관 세력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원내대표
국조부터 전대까지 챙길 것 한가득

같은 당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국정조사 계획서를 채택할 때 국회 본회의 표결에 권 의원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장 의원, 김기현 의원 등은 반대표를 던지며 대놓고 주 원내대표의 국정조사 합의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우여곡절 끝에 국정조사 건이 본회의를 통과하긴 했지만, 합의문 중 대검찰청을 넣느냐 빼느냐를 두고 서로 합의문 위반이라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주 원내대표는 당초 이태원 국조를 두고 “받아들이자”는 식으로 언급했으나 윤핵관의 입김에 결국 “수용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급선회했다. 급선회 배경으로는 “경찰 수사로 충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간신히 대검 조사 범위를 한정해 일단은 합의문대로 이행됐지만, 이번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 안건이 주 원내대표에게 시련을 안기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이 장관 해임 건의안 발의 시 이태원 국조는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결국 이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발의했다.

이태원 국조는 생각보다 많은 범위에 걸쳐 있는 민주당의 여론전을 이겨내야 하는 형국이다. 국조 과정에서 드러난 것들이 국민의힘을 겨냥할 수 있는 무기로 변모할 수 있는 까닭이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해임 건의안 발의 배경에 대해 “(참사에)책임지는 첫 번째 방법은 이 장관이 물러나는 것인데 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두 번째 방법인 반강제적 방식으로 해임 건의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결자해지 측면에서 윤 대통령과 이 장관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전 상황인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안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번에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당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잡음이 새어 나온다. 민주당은 여전히 공세를 그치지 않고 있다.

결국 주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 간담회를 열어 “민주당의 행태를 몽니, 갑질 힘 자랑을 하고 있다”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조 대상에 이미 이 장관이 포함돼있다. 시작도 전에 이 장관의 파면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조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 내외
공격 타깃

일각에서는 취임 두 달 만에 주 원내대표가 리더십 위기에 봉착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당장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주 원내대표가 협상을 어떻게 한 것이냐는 내부적인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민주당이 띄운 국조를 받아들였는데도 불구하고 이 장관 해임 건의안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는 탓이다.

예산안도 문제가 꼬인 건 매한가지다. 앞서 국민의힘은 선 예산안 처리 후 국조를 주장했으나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민주당은 대통령실의 내년도 예산을 줄줄이 삭감해 버렸다. 

주 원내대표에 따르면 민주당이 삭감하려던 예산은 문재인정부에서 추진하던 사업이나 대선공약 사업이 정부 예산에 들어 있다는 이유로 삼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중 용산공원 조성 사업은 문정부 5년간 총 214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던 사업이다. 이를 대통령실 이전과 엮어 정부안 304억원 대비 165억원을 감액했다는 것. 국가기본도 제작사업의 경우 지난해 예산은 952억원이 편성된 사업이다. 그러나 정부가 566억원을 책정했음에도 382억원이나 감액했다고 밝혔다. 

과거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었던 소형모듈원자로 사업 지원은 새 정부가 추진한다는 이유로 정부안 70억원을 전액 감액하겠다고 나섰다. 또 윤정부 핵심 추진 사업도 대폭 감액할 방침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 구축 관련 6개 사업 예산은 정부안 285억원에서 29억원을 감액했고, 규제혁신추진단 운영 예산은 19억원을 줄이려 했다. 

이 밖에 윤정부 핵심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청년원가주택, 역세권첫집, 분양주택 예산 역시 1조1400억원을 감액하려 했고, 주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새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이 대표의 대선공약과 문정부의 실패한 정책 사업예산을 일방적으로 증액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우 정부안보다 3161억원 증액했고,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은 6조5000억원을 증액했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간신히 양당이 긴 협의를 거쳐 정부 예산안 1조1800억원을 감액하는 데는 합의한 상태지만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을 넘겼다. 지난해 대선이 겹쳐 있어 비교적 무난히 통과된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협치를 당부하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이다. 야당에서 발목 잡고 있는 상황에서 주 원내대표의 예산안 통과는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막혀 있는
굵직한 사안

민주당이 이처럼 예산안과 관련해 발목을 잡는 이유는 윤정부에 ‘무능’의 덫을 놓기 위해서다. 예산안은 여러 정치적 상황이 얽혀 있고 야당이 활용할 수 있는 무기다. 정부에 시위함으로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정부가 예산안이 삭감된 채 출발하게 되면 그려놓은 밑그림에 색을 칠할 수 없어진다. 

초조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지금껏 반대해온 이태원 국조를 수용한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이 질질 시간을 끌수록 이득을 챙긴다. 내년 경제 상황 등이 더 어렵다는 예측이 계속 나오는 만큼 시간이 지체될수록 불안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건 정부여당인 국민의힘이다.

거듭된 파행에서도 결국 책임론은 국민의힘과 윤정부에게 돌아간다. 민주당이 예산을 볼모로 잡고 있는 이유다. 
지금껏 유례없던 준예산이 편성되는 경우도 문제다.

준예산은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이 성립하지 못하면 정부가 국회에서 예산안 의결이 확정될 때까지 경비를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준예산은 의원의 지역구에 대한 문제까지 번질 수 있어 그 전에 예산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주 원내대표가 윤정부의 핵심 사업을 원활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이에 따라 원내지도부의 협상력을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당내 역시 친윤, 비윤 가리지 않고 결합하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국조와 예산안 등 굵직한 사안에는 당이 하나가 돼왔다. 국민의힘도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 원내대표를 구심점으로 뭉쳐야 산다. 세재개편 역시 주 원내대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다. 민주당은 앞서 초부자 감세라며 몇 차례 제동을 건 바 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예산심사를 여당이 거부하고, 지연하고 있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반면 주 원내대표는 과거 문정부 당시였던 2017년 4000억원에서 4조1000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며 역공으로 응수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과거 발언도 문제삼았다. 대선을 앞두고 문정부에서 1가구 1주택 보유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 플랜을 밝히자 이 대표가 “잘했다”고 한 발언이다.

윤핵관 세력화되면 재차 계파 갈등?
문제 해결해야 당 대표 도전 가능

이번 발의한 종부세법 개정안은 본래의 기본공제액을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11억원에서 12억원으로, 다주택자는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중과세를 폐지한다는 게 목표다.

법인세법 개정안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재 시행 중인 25%에서 22%로 3%p 낮추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를 두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펼치며 끝이 보이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문제는 이뿐만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주 원내대표는 전당대회까지 신경써야 한다. 전당대회는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만찬 이후 급물살을 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본격적으로 전대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달, 윤 대통령과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독대 자리서 전대를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으로 보도됐다. 

해당 보도가 나가자 정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이 지침을 주지 않는다고 했으나, 전대 준비 모드에 돌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도 전대 시기 조율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전대 시점은 정 비대위원장의 임기가 끝날 즈음인 내년 3월12일 이전이 유력하다.

정치권에서는 (전대 개최 시기에 대해)윤핵관이 윤 대통령에게 내년 2~3월 초가 적절하다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발맞춰 친윤 인사들은 본격 세력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이미 한차례 민들레(민심을 들어볼래)라는 이름으로 출범했고, 여러 의원이 이름을 올리는 등 세력화를 시도한 바 있다.

장 의원을 주축으로 지난 6월 닻을 올릴 계획이었지만 친윤계와 이 전 대표 간 갈등이 불거지며 결국 계파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윤핵관 핵심축인 권 의원 역시 비판적 의견을 내면서 출범이 연기됐고, 장 의원은 불참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간판을 바꿔 ‘국민공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오는 7일 출범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주 원내대표가 미리 계파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 원내대표가 흔들리는 이유도 당내 친윤, 비윤의 갈등 때문이다. 의원 개개인 별로 따졌을 때 주 원내대표를 향한 신뢰도는 상당히 높다.  

그러나 세력으로 보면 여전히 갈등의 조짐은 여럿 비치는데 이는 여전히 국민의힘이 갈라져 있다는 반증이다. 내부서조차 앞에서는 하나인 것처럼 목소리를 내지만 뒤에서는 호시탐탐 뒤통수를 치려 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주 원내대표가 최근 “힘들다”는 식의 토로를 자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여러 과제를 해결해야 할 이유가 있다.

주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차기 당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태원 국조와 예산안 난관을 헤쳐나가면서 강한 리더십을 보일 경우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힐 수도 있다.

라스트 찬스?
어려운 처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주 원내대표가 산적해 있는 현안 과제들을 잘 해결해야 다음에도 중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민주당이 의도한 대로 주 원내대표가 끌려가게 되면 앞으로 처지가 곤혹스럽고 곤란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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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