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실리는 주호영의 풀지 못한 숙제들

친윤 넘어 찐윤으로 ‘마지막 기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원내대표를 여러 번 경험한 프로 정치인임에도 쉽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분명 힘을 실어줬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기가 빨린다. 협상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비판과 민주당의 공격에 끼여버린 모습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요즘 한층 더 외로워 보인다. 과연 그는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치이고 있다. 야당의 공세는 물론 당내에서도 주 원내대표를 향해 공격이 들어온다.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한가득 쌓인 상태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세제개편 법안 통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전당대회 시기 결정까지 여러 모로 괴롭다. 주 원내대표의 협상력과 지도력이 빛을 발해야 할 때다. 

예산안에
발목 잡혀

최근 해결해야 할 사안들을 감안할 때 주 원내대표가 상당히 고민이 많은 시기처럼 보인다. 여러 위기를 헤쳐나갈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일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모양새지만 난관을 헤쳐나가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초대해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주 원내대표에게 “선배”라며 친근감을 보였다. 만찬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이날 만찬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정치 현안, 국정조사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만찬은 윤 대통령이 만찬 정치를 통해 약해진 여당 결속력을 강화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주 원대대표는 국민의힘 5선의 중진 의원으로 벌써 4번의 원내대표직을 맡았다. 협상을 잘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국회에서 잘 알려져 있다. 미래통합당 당시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물러나면서 대표 권한대행 이력도 갖고 있다. 이 같은 협상의 달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민주당이 요구해왔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수용하면서 주 원내대표의 입지가 다소 흔들렸기 때문이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세력과 대통령실은 주 원내대표에게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사실 주 원내대표를 원내대표직에 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쓴 세력이 바로 윤핵관이다. 직전 비대위원장을 맡았으며, 이준석 전 대표가 신청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뒤 물러난 후 한 달이 지나 재차 원내대표직에 올랐다. 당시 비윤(비 윤석열)계의 파란에도 불구하고 주 원내대표는 무난하게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면서 당내의 분란도 점차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권성동 의원 등이 주 원내대표를 향해 공격하면서 또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주 원내대표가 국정조사를 받아들이는 것을 고심하자 당장 대통령실과 윤핵관 세력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원내대표
국조부터 전대까지 챙길 것 한가득

같은 당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국정조사 계획서를 채택할 때 국회 본회의 표결에 권 의원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장 의원, 김기현 의원 등은 반대표를 던지며 대놓고 주 원내대표의 국정조사 합의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우여곡절 끝에 국정조사 건이 본회의를 통과하긴 했지만, 합의문 중 대검찰청을 넣느냐 빼느냐를 두고 서로 합의문 위반이라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주 원내대표는 당초 이태원 국조를 두고 “받아들이자”는 식으로 언급했으나 윤핵관의 입김에 결국 “수용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급선회했다. 급선회 배경으로는 “경찰 수사로 충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간신히 대검 조사 범위를 한정해 일단은 합의문대로 이행됐지만, 이번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 안건이 주 원내대표에게 시련을 안기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이 장관 해임 건의안 발의 시 이태원 국조는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결국 이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발의했다.

이태원 국조는 생각보다 많은 범위에 걸쳐 있는 민주당의 여론전을 이겨내야 하는 형국이다. 국조 과정에서 드러난 것들이 국민의힘을 겨냥할 수 있는 무기로 변모할 수 있는 까닭이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해임 건의안 발의 배경에 대해 “(참사에)책임지는 첫 번째 방법은 이 장관이 물러나는 것인데 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두 번째 방법인 반강제적 방식으로 해임 건의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결자해지 측면에서 윤 대통령과 이 장관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전 상황인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안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번에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당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잡음이 새어 나온다. 민주당은 여전히 공세를 그치지 않고 있다.

결국 주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 간담회를 열어 “민주당의 행태를 몽니, 갑질 힘 자랑을 하고 있다”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조 대상에 이미 이 장관이 포함돼있다. 시작도 전에 이 장관의 파면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조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 내외
공격 타깃

일각에서는 취임 두 달 만에 주 원내대표가 리더십 위기에 봉착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당장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주 원내대표가 협상을 어떻게 한 것이냐는 내부적인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민주당이 띄운 국조를 받아들였는데도 불구하고 이 장관 해임 건의안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는 탓이다.

예산안도 문제가 꼬인 건 매한가지다. 앞서 국민의힘은 선 예산안 처리 후 국조를 주장했으나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민주당은 대통령실의 내년도 예산을 줄줄이 삭감해 버렸다. 

주 원내대표에 따르면 민주당이 삭감하려던 예산은 문재인정부에서 추진하던 사업이나 대선공약 사업이 정부 예산에 들어 있다는 이유로 삼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중 용산공원 조성 사업은 문정부 5년간 총 214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던 사업이다. 이를 대통령실 이전과 엮어 정부안 304억원 대비 165억원을 감액했다는 것. 국가기본도 제작사업의 경우 지난해 예산은 952억원이 편성된 사업이다. 그러나 정부가 566억원을 책정했음에도 382억원이나 감액했다고 밝혔다. 

과거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었던 소형모듈원자로 사업 지원은 새 정부가 추진한다는 이유로 정부안 70억원을 전액 감액하겠다고 나섰다. 또 윤정부 핵심 추진 사업도 대폭 감액할 방침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 구축 관련 6개 사업 예산은 정부안 285억원에서 29억원을 감액했고, 규제혁신추진단 운영 예산은 19억원을 줄이려 했다. 

이 밖에 윤정부 핵심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청년원가주택, 역세권첫집, 분양주택 예산 역시 1조1400억원을 감액하려 했고, 주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새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이 대표의 대선공약과 문정부의 실패한 정책 사업예산을 일방적으로 증액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우 정부안보다 3161억원 증액했고,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은 6조5000억원을 증액했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간신히 양당이 긴 협의를 거쳐 정부 예산안 1조1800억원을 감액하는 데는 합의한 상태지만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을 넘겼다. 지난해 대선이 겹쳐 있어 비교적 무난히 통과된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협치를 당부하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이다. 야당에서 발목 잡고 있는 상황에서 주 원내대표의 예산안 통과는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막혀 있는
굵직한 사안

민주당이 이처럼 예산안과 관련해 발목을 잡는 이유는 윤정부에 ‘무능’의 덫을 놓기 위해서다. 예산안은 여러 정치적 상황이 얽혀 있고 야당이 활용할 수 있는 무기다. 정부에 시위함으로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정부가 예산안이 삭감된 채 출발하게 되면 그려놓은 밑그림에 색을 칠할 수 없어진다. 

초조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지금껏 반대해온 이태원 국조를 수용한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이 질질 시간을 끌수록 이득을 챙긴다. 내년 경제 상황 등이 더 어렵다는 예측이 계속 나오는 만큼 시간이 지체될수록 불안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건 정부여당인 국민의힘이다.

거듭된 파행에서도 결국 책임론은 국민의힘과 윤정부에게 돌아간다. 민주당이 예산을 볼모로 잡고 있는 이유다. 
지금껏 유례없던 준예산이 편성되는 경우도 문제다.

준예산은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이 성립하지 못하면 정부가 국회에서 예산안 의결이 확정될 때까지 경비를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준예산은 의원의 지역구에 대한 문제까지 번질 수 있어 그 전에 예산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주 원내대표가 윤정부의 핵심 사업을 원활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이에 따라 원내지도부의 협상력을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당내 역시 친윤, 비윤 가리지 않고 결합하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국조와 예산안 등 굵직한 사안에는 당이 하나가 돼왔다. 국민의힘도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 원내대표를 구심점으로 뭉쳐야 산다. 세재개편 역시 주 원내대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다. 민주당은 앞서 초부자 감세라며 몇 차례 제동을 건 바 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예산심사를 여당이 거부하고, 지연하고 있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반면 주 원내대표는 과거 문정부 당시였던 2017년 4000억원에서 4조1000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며 역공으로 응수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과거 발언도 문제삼았다. 대선을 앞두고 문정부에서 1가구 1주택 보유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 플랜을 밝히자 이 대표가 “잘했다”고 한 발언이다.

윤핵관 세력화되면 재차 계파 갈등?
문제 해결해야 당 대표 도전 가능

이번 발의한 종부세법 개정안은 본래의 기본공제액을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11억원에서 12억원으로, 다주택자는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중과세를 폐지한다는 게 목표다.

법인세법 개정안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재 시행 중인 25%에서 22%로 3%p 낮추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를 두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펼치며 끝이 보이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문제는 이뿐만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주 원내대표는 전당대회까지 신경써야 한다. 전당대회는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만찬 이후 급물살을 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본격적으로 전대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달, 윤 대통령과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독대 자리서 전대를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으로 보도됐다. 

해당 보도가 나가자 정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이 지침을 주지 않는다고 했으나, 전대 준비 모드에 돌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도 전대 시기 조율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전대 시점은 정 비대위원장의 임기가 끝날 즈음인 내년 3월12일 이전이 유력하다.

정치권에서는 (전대 개최 시기에 대해)윤핵관이 윤 대통령에게 내년 2~3월 초가 적절하다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발맞춰 친윤 인사들은 본격 세력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이미 한차례 민들레(민심을 들어볼래)라는 이름으로 출범했고, 여러 의원이 이름을 올리는 등 세력화를 시도한 바 있다.

장 의원을 주축으로 지난 6월 닻을 올릴 계획이었지만 친윤계와 이 전 대표 간 갈등이 불거지며 결국 계파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윤핵관 핵심축인 권 의원 역시 비판적 의견을 내면서 출범이 연기됐고, 장 의원은 불참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간판을 바꿔 ‘국민공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오는 7일 출범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주 원내대표가 미리 계파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 원내대표가 흔들리는 이유도 당내 친윤, 비윤의 갈등 때문이다. 의원 개개인 별로 따졌을 때 주 원내대표를 향한 신뢰도는 상당히 높다.  

그러나 세력으로 보면 여전히 갈등의 조짐은 여럿 비치는데 이는 여전히 국민의힘이 갈라져 있다는 반증이다. 내부서조차 앞에서는 하나인 것처럼 목소리를 내지만 뒤에서는 호시탐탐 뒤통수를 치려 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주 원내대표가 최근 “힘들다”는 식의 토로를 자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여러 과제를 해결해야 할 이유가 있다.

주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차기 당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태원 국조와 예산안 난관을 헤쳐나가면서 강한 리더십을 보일 경우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힐 수도 있다.

라스트 찬스?
어려운 처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주 원내대표가 산적해 있는 현안 과제들을 잘 해결해야 다음에도 중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민주당이 의도한 대로 주 원내대표가 끌려가게 되면 앞으로 처지가 곤혹스럽고 곤란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