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실리는 주호영의 풀지 못한 숙제들

친윤 넘어 찐윤으로 ‘마지막 기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원내대표를 여러 번 경험한 프로 정치인임에도 쉽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분명 힘을 실어줬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기가 빨린다. 협상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비판과 민주당의 공격에 끼여버린 모습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요즘 한층 더 외로워 보인다. 과연 그는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치이고 있다. 야당의 공세는 물론 당내에서도 주 원내대표를 향해 공격이 들어온다.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한가득 쌓인 상태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세제개편 법안 통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전당대회 시기 결정까지 여러 모로 괴롭다. 주 원내대표의 협상력과 지도력이 빛을 발해야 할 때다. 

예산안에
발목 잡혀

최근 해결해야 할 사안들을 감안할 때 주 원내대표가 상당히 고민이 많은 시기처럼 보인다. 여러 위기를 헤쳐나갈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일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모양새지만 난관을 헤쳐나가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초대해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주 원내대표에게 “선배”라며 친근감을 보였다. 만찬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이날 만찬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정치 현안, 국정조사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만찬은 윤 대통령이 만찬 정치를 통해 약해진 여당 결속력을 강화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주 원대대표는 국민의힘 5선의 중진 의원으로 벌써 4번의 원내대표직을 맡았다. 협상을 잘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국회에서 잘 알려져 있다. 미래통합당 당시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물러나면서 대표 권한대행 이력도 갖고 있다. 이 같은 협상의 달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민주당이 요구해왔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수용하면서 주 원내대표의 입지가 다소 흔들렸기 때문이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세력과 대통령실은 주 원내대표에게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사실 주 원내대표를 원내대표직에 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쓴 세력이 바로 윤핵관이다. 직전 비대위원장을 맡았으며, 이준석 전 대표가 신청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뒤 물러난 후 한 달이 지나 재차 원내대표직에 올랐다. 당시 비윤(비 윤석열)계의 파란에도 불구하고 주 원내대표는 무난하게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면서 당내의 분란도 점차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권성동 의원 등이 주 원내대표를 향해 공격하면서 또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주 원내대표가 국정조사를 받아들이는 것을 고심하자 당장 대통령실과 윤핵관 세력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원내대표
국조부터 전대까지 챙길 것 한가득

같은 당끼리도 의견이 엇갈렸다. 국정조사 계획서를 채택할 때 국회 본회의 표결에 권 의원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장 의원, 김기현 의원 등은 반대표를 던지며 대놓고 주 원내대표의 국정조사 합의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우여곡절 끝에 국정조사 건이 본회의를 통과하긴 했지만, 합의문 중 대검찰청을 넣느냐 빼느냐를 두고 서로 합의문 위반이라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주 원내대표는 당초 이태원 국조를 두고 “받아들이자”는 식으로 언급했으나 윤핵관의 입김에 결국 “수용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급선회했다. 급선회 배경으로는 “경찰 수사로 충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간신히 대검 조사 범위를 한정해 일단은 합의문대로 이행됐지만, 이번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 안건이 주 원내대표에게 시련을 안기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이 장관 해임 건의안 발의 시 이태원 국조는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결국 이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발의했다.

이태원 국조는 생각보다 많은 범위에 걸쳐 있는 민주당의 여론전을 이겨내야 하는 형국이다. 국조 과정에서 드러난 것들이 국민의힘을 겨냥할 수 있는 무기로 변모할 수 있는 까닭이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해임 건의안 발의 배경에 대해 “(참사에)책임지는 첫 번째 방법은 이 장관이 물러나는 것인데 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두 번째 방법인 반강제적 방식으로 해임 건의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결자해지 측면에서 윤 대통령과 이 장관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전 상황인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안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번에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당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잡음이 새어 나온다. 민주당은 여전히 공세를 그치지 않고 있다.

결국 주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 간담회를 열어 “민주당의 행태를 몽니, 갑질 힘 자랑을 하고 있다”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조 대상에 이미 이 장관이 포함돼있다. 시작도 전에 이 장관의 파면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조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 내외
공격 타깃

일각에서는 취임 두 달 만에 주 원내대표가 리더십 위기에 봉착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당장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주 원내대표가 협상을 어떻게 한 것이냐는 내부적인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민주당이 띄운 국조를 받아들였는데도 불구하고 이 장관 해임 건의안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는 탓이다.

예산안도 문제가 꼬인 건 매한가지다. 앞서 국민의힘은 선 예산안 처리 후 국조를 주장했으나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민주당은 대통령실의 내년도 예산을 줄줄이 삭감해 버렸다. 

주 원내대표에 따르면 민주당이 삭감하려던 예산은 문재인정부에서 추진하던 사업이나 대선공약 사업이 정부 예산에 들어 있다는 이유로 삼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중 용산공원 조성 사업은 문정부 5년간 총 214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던 사업이다. 이를 대통령실 이전과 엮어 정부안 304억원 대비 165억원을 감액했다는 것. 국가기본도 제작사업의 경우 지난해 예산은 952억원이 편성된 사업이다. 그러나 정부가 566억원을 책정했음에도 382억원이나 감액했다고 밝혔다. 

과거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었던 소형모듈원자로 사업 지원은 새 정부가 추진한다는 이유로 정부안 70억원을 전액 감액하겠다고 나섰다. 또 윤정부 핵심 추진 사업도 대폭 감액할 방침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 구축 관련 6개 사업 예산은 정부안 285억원에서 29억원을 감액했고, 규제혁신추진단 운영 예산은 19억원을 줄이려 했다. 

이 밖에 윤정부 핵심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청년원가주택, 역세권첫집, 분양주택 예산 역시 1조1400억원을 감액하려 했고, 주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새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이 대표의 대선공약과 문정부의 실패한 정책 사업예산을 일방적으로 증액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우 정부안보다 3161억원 증액했고,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은 6조5000억원을 증액했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간신히 양당이 긴 협의를 거쳐 정부 예산안 1조1800억원을 감액하는 데는 합의한 상태지만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을 넘겼다. 지난해 대선이 겹쳐 있어 비교적 무난히 통과된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협치를 당부하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이다. 야당에서 발목 잡고 있는 상황에서 주 원내대표의 예산안 통과는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막혀 있는
굵직한 사안

민주당이 이처럼 예산안과 관련해 발목을 잡는 이유는 윤정부에 ‘무능’의 덫을 놓기 위해서다. 예산안은 여러 정치적 상황이 얽혀 있고 야당이 활용할 수 있는 무기다. 정부에 시위함으로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정부가 예산안이 삭감된 채 출발하게 되면 그려놓은 밑그림에 색을 칠할 수 없어진다. 

초조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지금껏 반대해온 이태원 국조를 수용한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이 질질 시간을 끌수록 이득을 챙긴다. 내년 경제 상황 등이 더 어렵다는 예측이 계속 나오는 만큼 시간이 지체될수록 불안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건 정부여당인 국민의힘이다.

거듭된 파행에서도 결국 책임론은 국민의힘과 윤정부에게 돌아간다. 민주당이 예산을 볼모로 잡고 있는 이유다. 
지금껏 유례없던 준예산이 편성되는 경우도 문제다.

준예산은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이 성립하지 못하면 정부가 국회에서 예산안 의결이 확정될 때까지 경비를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준예산은 의원의 지역구에 대한 문제까지 번질 수 있어 그 전에 예산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주 원내대표가 윤정부의 핵심 사업을 원활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이에 따라 원내지도부의 협상력을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당내 역시 친윤, 비윤 가리지 않고 결합하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국조와 예산안 등 굵직한 사안에는 당이 하나가 돼왔다. 국민의힘도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 원내대표를 구심점으로 뭉쳐야 산다. 세재개편 역시 주 원내대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다. 민주당은 앞서 초부자 감세라며 몇 차례 제동을 건 바 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예산심사를 여당이 거부하고, 지연하고 있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반면 주 원내대표는 과거 문정부 당시였던 2017년 4000억원에서 4조1000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며 역공으로 응수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과거 발언도 문제삼았다. 대선을 앞두고 문정부에서 1가구 1주택 보유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 플랜을 밝히자 이 대표가 “잘했다”고 한 발언이다.

윤핵관 세력화되면 재차 계파 갈등?
문제 해결해야 당 대표 도전 가능

이번 발의한 종부세법 개정안은 본래의 기본공제액을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11억원에서 12억원으로, 다주택자는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중과세를 폐지한다는 게 목표다.

법인세법 개정안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재 시행 중인 25%에서 22%로 3%p 낮추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를 두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펼치며 끝이 보이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문제는 이뿐만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주 원내대표는 전당대회까지 신경써야 한다. 전당대회는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만찬 이후 급물살을 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본격적으로 전대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달, 윤 대통령과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독대 자리서 전대를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으로 보도됐다. 

해당 보도가 나가자 정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이 지침을 주지 않는다고 했으나, 전대 준비 모드에 돌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도 전대 시기 조율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전대 시점은 정 비대위원장의 임기가 끝날 즈음인 내년 3월12일 이전이 유력하다.

정치권에서는 (전대 개최 시기에 대해)윤핵관이 윤 대통령에게 내년 2~3월 초가 적절하다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발맞춰 친윤 인사들은 본격 세력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이미 한차례 민들레(민심을 들어볼래)라는 이름으로 출범했고, 여러 의원이 이름을 올리는 등 세력화를 시도한 바 있다.

장 의원을 주축으로 지난 6월 닻을 올릴 계획이었지만 친윤계와 이 전 대표 간 갈등이 불거지며 결국 계파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윤핵관 핵심축인 권 의원 역시 비판적 의견을 내면서 출범이 연기됐고, 장 의원은 불참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간판을 바꿔 ‘국민공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오는 7일 출범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주 원내대표가 미리 계파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 원내대표가 흔들리는 이유도 당내 친윤, 비윤의 갈등 때문이다. 의원 개개인 별로 따졌을 때 주 원내대표를 향한 신뢰도는 상당히 높다.  

그러나 세력으로 보면 여전히 갈등의 조짐은 여럿 비치는데 이는 여전히 국민의힘이 갈라져 있다는 반증이다. 내부서조차 앞에서는 하나인 것처럼 목소리를 내지만 뒤에서는 호시탐탐 뒤통수를 치려 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주 원내대표가 최근 “힘들다”는 식의 토로를 자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여러 과제를 해결해야 할 이유가 있다.

주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차기 당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태원 국조와 예산안 난관을 헤쳐나가면서 강한 리더십을 보일 경우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힐 수도 있다.

라스트 찬스?
어려운 처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주 원내대표가 산적해 있는 현안 과제들을 잘 해결해야 다음에도 중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민주당이 의도한 대로 주 원내대표가 끌려가게 되면 앞으로 처지가 곤혹스럽고 곤란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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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후폭풍> 윤석열이 삼킨 이슈들

[탄핵 후폭풍] 윤석열이 삼킨 이슈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과 몇 개월 만에 온 천지가 쑥대밭이 됐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로 변했다. ‘내가 옳다, 너는 틀렸다’ 갈등을 빚는 사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공든 탑도 무너져 내렸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지 감도 안 오는 상황이다. 비로소 탄핵 정국이 끝났다. 지난해 12월14일 국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탄핵6 소추한 때로부터 111일 만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로는 122일이 걸렸다. 역대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중 가장 오랜 숙의 기간을 거쳤다. 결론까지 120여일 문제는 후폭풍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탄핵 정국은 4개월 만에 나라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정치권은 정쟁에만 몰두했고 정부는 기능이 마비돼 공회전을 거듭했다. 그사이 국민 여론은 완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사태를 수습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컨트롤 타워는 붕괴했다. 무정부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외교다. 특히 미국발 공격에 한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당선된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미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상 외교는커녕 실무진 간의 대화도 삐걱거렸다. 대통령 권한대행,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미국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우방국, 동맹 관계는 허울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도 관세를 부과했다. 당선 직후부터 스스로 ‘관세맨’이라고 칭하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도 예외로 두지 않은 것이다. 지난 2일 미국 정부는 한국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과정서 “미국 제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산업을 파괴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비금전적 장벽을 만들었다”며 “미국 납세자들은 50년 이상 갈취를 당해 왔으나 더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하면서 통상 전쟁에 불을 댕겼다. 이번 발표는 미국발 통상 전쟁을 전 세계로 확산한다는 일종의 선언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별로 중국 34%, EU(유럽연합)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등의 관세율을 적용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본, EU 등보다 높은 상호관세율이 적용되면서 불리한 여건서 경쟁을 벌이게 됐다. 나름의 ‘믿는 구석’이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미국과 새로운 통상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관세뿐만 아니다. 지난달 15일 미국 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포함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인 지난 1월 초, 조 바이든 행정부가 결정한 조치로 파악됐다. 미국 에너지부는 국가안보나 핵 비확산, 지역적 불안정성, 경제 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의 이유로 민감국가를 지정한다. 민감국가로 분류되면 원자력·인공지능(AI) 등 미국 첨단기술 분야와의 교류, 협력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트럼프 취임 이후 대응 못 해 민감국가 지정 이어 관세 폭탄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한 언론서 관련 보도가 나올 때까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감국가 지정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지정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보안 문제에 따른 것일 뿐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권은 민감국가 지정 배경을 두고 서로를 탓하며 정쟁을 벌였다. 정부의 안일한 인식과 달리 민감국가 지정은 한국 과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홍기원 의원실은 지난해 8월 작성된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보국의 ‘예측과학 학술 연계 프로그램(PSAAP) 제4기 모집 공고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공고문에 따르면 “PSAAP 자금은 미국 시민이거나 비민감국가 출신 비미국 시민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고 돼있다. 민감국가 출신은 자금 지원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민감국가에 등재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과학기술 협력에 새로운 제한은 부재하다는 게 에너지부의 설명”이라고 밝혔다. 물론, 당시 조 장관이 언급한 ‘한미 간 과학기술 협력’에 해당 프로그램이 포함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민감국가 리스트는 오는 15일 공식 발효된다. 정부는 발효 전 한국을 리스트서 빼기 위해 막판 협의를 벌이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방위비 분담금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중순께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으로 알려진 9쪽 분량의 문건을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국방부는 ‘인력과 자원의 제약을 고려해 여타 지역서의 위험을 감수할 것이고,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 동맹국이 러시아와 북한, 이란 등의 위협 억제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국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한국과 미국은 내년부터 5년간 낼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올린 1조5192억원으로 이미 정했다.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을 연동시키되 연간 인상률이 최대 5%를 넘기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때부터 한국이 지금보다 더 많은 방위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재협상 가능성이 남아있는 셈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언급하면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김 위원장에게 연락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미 1기 정부서 김 위원장과 직접 소통한 경험이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재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동맹도 내친 미국 대통령 이 과정서 ‘한국 패싱’ 가능성 또한 나오고 있다. 100일 넘게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리더십 부재 상태가 계속된 부분이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북한과 미국의 대화에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그동안 북한 관련 대화는 주로 정상 외교를 통해 이뤄졌다. 내치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민생은 뒷전이 됐다. 여야는 탄핵소추안 표결로 갈등을 빚었고 이후에는 탄핵 심판을 두고 서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사이 각종 문제가 불거졌지만 기능이 마비된 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참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29일 승객과 승무원 181명이 탑승한 제주항공 2216편이 무안공항서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폭발했다. 승무원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한 참사로 오는 7일로 100일째에 접어들었다. 사고 원인 규명, 피해자 보상 등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계엄, 탄핵 등의 여파로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진 모양새다. 일단 당국의 조사와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안타까운 점은 블랙박스에 사고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내용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현장서 수거된 항공기 블랙박스와 엔진, 주요 부품 등 사고 원인을 가늠할 수 있는 증거를 종합적으로 분석, 시험하는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의성서 시작돼 5개 시군으로 번진 대형 산불 피해도 만만찮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5개 시군의 피해 조사액은 8000억원에 이른다. 최종 피해액은 1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산불로 주택 3987채가 탔다. 3915채가 전소됐고 30채는 절반 정도, 42채는 부분적으로 불에 탔다. 여기에 농작물 3785㏊, 시설하우스 423동, 축사 217동, 농기계 6230대가 화재 피해를 입었다. 인명피해도 26명이나 났다.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는 경북 산불로 사망자를 낸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야산에 있는 조부모 묘소를 정리하던 중 일대에 불이 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F보다 더 어렵다 정부, 기업, 연예인 등 각계각층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지만, 다 타버린 숲 등을 산불 이전 상태로 복구하는 데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자영업자는 최악의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연말연초 대목을 놓친 데 이어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위축된 소비심리에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일 여신금융협회의 ‘2025년 2월 카드승인실적’에 따르면 지난 2월 숙박, 음식점업 카드 승인 실적은 11조21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4320억원 줄었다. 국내 자영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식업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심리의 악화는 취미 생활 위축으로도 드러났다. 지난 2월 예술, 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 카드 승인 실적은 96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 가까이 감소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으니까 여가와 외식 소비가 줄어들면서 관련 업종이 전반적으로 부진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빌린 돈은 갚을 수 없고 수입은 없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지난달 31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과 행정안전위 소속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양부남 의원에게 제출한 ‘개인사업자 대출 세부 업권별 연체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저축은행 연체율(1개월 이상)은 11.7%로 나타났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 3개월 사이 0.7%p 올랐다. 2015년 2분기 이후 9년6개월 만에 최고 기록이다. 빚을 여러 곳에서 낸 다중채무자가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다중채무자는 가계대출 기관 수와 개인사업자 대출 상품 수의 합이 3개 이상인 경우를 뜻한다. 지난해 4분기 말 자영업 대출자 가운데 다중채무자는 56.5%에 이른다. 대출액 기준으로 보면 70.4%에 달한다. 1인당 평균 4억3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공개한 ‘금융안정 상황(2025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취약 자영업자는 42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소득이 적고 신용도가 작은 자영업자가 43만명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이들이 전체 자영업자 차주서 차지하는 비중은 13.7%에 이른다. 소비심리 위축되고 자영업자는 망하고 2021년 말 28만1000명에서 2022년 말 33만8000명, 2023년 말 39만6000명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다 보니 아예 장사를 접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내놓은 ‘2025년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 10곳 중 4곳은 매출 부진 등의 사유로 창업 후 3년 이내에 문을 닫았다. 폐업 시점의 빚은 1억원을 웃돌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3년 미만 단기 폐업자의 비율은 39.9%를 차지했다. 폐업 사유는 수익성 악화 및 매출 부진이 86.7%로 나타났다. 그 원인으로는 내수 부진에 따른 고객 감소가 과반(52.2%)을 차지했다. 인건비 상승(49.4%), 물가 상승으로 인한 원재료비 부담(46%), 임대료 등 고정비용 상승(44.6%) 등이 뒤를 이었다. 폐업 과정서 드는 비용도 평균 2188만원에 달했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2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난 자리서 정치권의 대책을 요구했다. 송 회장은 “자영업자 수가 지난 1월 기준 두 달 만에 20만명이 줄고 수도권 상가도 공실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과 민생을 위한 추경이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은 나름 해소 수순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부결된 이후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경제적인 관점서만 봤다고 전제하면서 “탄핵이 경제엔 더 낫다”고 말한 바 있다. 비상계엄, 탄핵 정국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건이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정국을 뒤흔들었던 ‘명태균 게이트’가 다시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한 언론은 지난 3일 명태균씨와 홍준표 대구시장 간의 의혹을 보도했다. 윤 전 대통령 내외와 홍 시장 부부가 회동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를 명씨가 주도했다는 취지로 보도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3일 해당 내용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홍 시장 측근이 명태균을 통해 김건희 여사가 선호하는 동물 관련 기획을 전달했고 이를 계기로 부부 동반 회동이 성사됐다는 것”이라며 “명태균은 단순한 연결고리가 아니었다. 기획안을 준비해 김건희의 승인을 받고 회동을 성사시킨 핵심 인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공직자가 민간인과 손잡고 대통령 부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사적 회동을 주선한 것”이라며 “홍 시장의 권력 네트워크에 명태균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 시장은 지난 3월14일 명태균 사건에 연루된 것이 밝혀지면 정계 은퇴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묻혔던 사건 수면 위로? 시간상으로는 120일 남짓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한국에 남긴 상흔은 상당했다. 외부로는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내부에선 ‘IMF 때보다 힘들다’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본연의 자리서 일했어야 할 국민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탄핵 정국이 지나간 자리에 결국 국민의 상처만 남은 셈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