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끝? ‘라돈 침대’ 집단소송전 현주소

4년 기다리고 ‘쓴맛’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사람이 하루 8시간씩 맞닿아 있는 곳. 바로 침대다. 건강을 위해 웃돈을 주고 샀던 침대에는 알고 보니 발암물질이 가득했다. 충격에 빠진 소비자들은 앞다퉈 소송에 나섰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4년을 끌어온 소송전. 소비자 70여명은 이미 패소의 쓴맛을 봤다. 그리고 또 다른 판결을 기다리는 소비자는 5886명. 과연 이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아낼 수 있을까. 

‘고진감래’를 기대했건만, 현실은 달랐다. 4년 만에 처음 나온 ‘라돈 침대’ 손해배상소송 판결에서 소비자가 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06단독 장원지 판사는 지난 9일 소비자 69명이 대진침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건강 대신
모나자이트

라돈 침대 사건의 발단은 201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대진침대가 생산한 침대 매트리스에서 방사성물질 ‘라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라돈은 호흡기를 통해 몸속에 축적돼 폐암을 유발하는 방사성 기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센터(IARC)는 라돈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한때 불었던 ‘음이온’ 열풍이 화근이었다. 라돈은 대진침대가 매트리스에 도포한 음이온 파우더 원료 ‘모나자이트(Monazite)’에서 검출됐다. 애초에 모나자이트 자체가 소량의 우라늄과 토륨을 포함한 방사성물질이다. 하지만 당시 세간에선 모나자이트의 위험성보다 ‘음이온을 발산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이 이목을 끌었다.


그 결과 모나자이트는 수년간 별다른 제지 없이 각종 생활용품에 활용됐다.

이 중 상당 비율이 대진침대를 거쳐 라돈 침대로 유통됐다. 2019년 MBC 보도에 따르면 이전 6년간 국내 유통된 모나자이트는 총 40톤. 그중 7%가 넘는 2.9톤이 대진침대에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진침대는 2005년부터 꾸준히 관련 제품을 판매했다.

이를 고려하면 실제로 대진 침대를 통해 시중에 풀린 모나자이트는 이보다 많을 것이 확실시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조사 끝에 “대진침대 매트리스에서 방사선 피폭선량이 기준치를 최고 9.3배 초과했다”고 발표했다.

대진침대 측은 최초 보도 후 닷새 만에 전량 회수 및 리콜을 결정했다. 라돈이 검출된 매트리스 4종이 그 대상이었다. 이는 추후 7종까지 늘어났다. 대진침대는 2010년 이후 해당 제품들을 총 6만1406개 생산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줄곧 법적 대응을 시사했던 소비자들이 결국 칼을 빼들었다. 대진침대 소비자들은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천명이 모여 공동소송을 개시했다. 

예컨대 소비자 69명은 2018년 7월 대진침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들은 인당 200만원, 총 1억3800만원을 위자료로 책정했다. 


발암물질 침대 소비자 위자료 청구서 패소  
유사한 재판 줄지어 대기 중…영향 미칠까?

이들은 재판에서 “대진침대는 안전기준에 어긋나는 침대를 제조·판매하는 위법행위를 해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침대를 사용함에 따라 소비자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진침대 측은 라돈 검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2018년 5월14일 안전기준이 변경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만 해도 관련 사건 약 10건이 계류 중이다. 이 중 대부분이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인 것으로 알려졌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론이 난 사건은 거의 없다. 앞서 제기된 소송 결과를 기다리는 등 외적 지연 요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20년 1월 대진침대 대표와 납품업체 관계자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라돈 침대 사용과 폐암 발생 간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물건값’에 대한 보상 여부도 정리됐다. 지난해 12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대진침대가 사건 당시 소비자들에게 교환·환불을 약속하고도 장기간 이행하지 않아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며 “매트리스 교환 가치에 상응하는 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물건값 배상과 위자료 지급은 다른 문제다. 법원은 위자료 청구 소송의 첫 판결에서 대진침대 손을 들어줬다.

장 판사는 “대진침대가 소비자들에게 침대를 제조·판매한 것이 생활방사선법을 위반한 제품을 판매한 것으로서 불완전 이행에 해당한다거나, 당시 대진침대가 음이온을 배출한다고 알려진 모나자이트가 라돈을 방출하고 이로 인해 인체에 피폭되는 방사선이 해로울 수 있음을 알았다거나 알지 못한 데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연쇄작용?
일단 미지수

이어 “가공제품의 연간 피폭방사선량에 관한 기준을 규정한 생활방사선법이 2011년 7월 제정돼 2012년 7월 시행됐다”며 “원자력안전위원회의 2018년 5월자 라돈 검출 침대 조사 중간결과에 따르면 대진침대가 2015년과 2016년에 생산한 매트리스 속 커버 제품 2개에 대한 외부 피폭선량이 생활방사선법상 가공제품 안전기준인 연간 피폭선량 1mSv에 못 미치는 0.05mSv 내지 0.15mSv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또 “신체 외부 및 내부에 피폭하는 양을 모두 합해 가공제품의 연간 피폭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제품에 첨가하는 것이 금지되는 원료물질에 라돈이 추가된 생활방사선법 개정은 2019년 1월 비로소 이뤄지고 같은 해 7월 시행됐다”며 “가공제품 피폭 방사선량 한도인 1mSv는 유해 기준이 아니라 안전 관리기준에 해당하고, 라돈 침대의 사용과 폐암 등 질병 발병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소비자는 이번 재판 결과의 ‘연쇄작용’을 우려한다. 순차적으로 진행될 다른 재판 판결들이 ‘선례’를 따라가지 않겠냐는 걱정이다.


반면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다른 재판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판결과 다르게 통상 지방법원의 1심 판결은 기속력이 없다.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건을 대법원 전원협의체 판결로 정리한다.

이후 결정되는 유사 사건 판결은 앞선 대법원판결 법리를 따르게 된다. 이것이 ‘기속력’이다. 반면 지방법원 1심 판결에는 이 같은 권위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전면 배제할 수는 없다. 피고인 대진침대가 각 재판에서 동일한 변호인을 고용했다면, 이번 판결을 활용해 유사한 판결을 유도할 수 있다. 재판부에 이번 판결을 참고해달라고 요청해 ‘인용 판결’을 노리는 전략이다.

어느 방향이든 사건의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에서 모인 소비자들이 제기한 소는 여전히 재판이 한창이다. 이 인원만 해도 5886명에 달한다.

인원뿐만 아니라 청구 금액 규모도 훨씬 크다. 위자료 명목으로만 1인당 1000만원을 책정했다. 치료비 등은 별개다. 소송 인원 모집 당시 예상 청구액은 1인당 3000만원을 넘겼다. 

알면서도
판매 강행?


이들은 앞선 재판보다 세부적인 근거를 제시해 인과관계를 인정받겠다는 계획이다. 공동소송 담당 변호사는 “대진침대의 일부 모델에서 라돈이 검출된 점, 라돈이 발암물질이고 인체에 유해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잠복기가 길어 언제 증상이 발현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일단 라돈이 검출된 침대를 구매해서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적인 손해는 발생했다고 본다”며 “침대 때문에 혹시나 나에게 건강상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지,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소송단은 본 사건의 입증 책임이 대진침대 측에 있다고 주장한다.

담당 변호사는 “실제로 진단서상 드러나는 질환이 있다면 그 신체상 손해를 계산해서 배상을 청구하겠지만, 이 부분은 인과관계의 입증이 굉장히 까다롭다”면서 “다만 라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은 이미 공지된 사실이므로, 만약 대진침대를 사용한 소비자 집단의 발병률이 일반적인 한국인 집단보다 더 높다면 이는 라돈 침대로 인한 영향일 것이라고 보아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따라 대진침대에서 검출된 라돈으로 인해서 발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대진침대 쪽에서 입증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상 타당하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공동소송 참여자 중 일부는 원자력 병원에서 전문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증거로 제출했다. 담당 변호사는 “검사 결과, 이들은 유전자 파괴 정도가 일반인에 비해 심했다”며 “충분히 유의미한 수치를 얻었다고 판단해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공동소송단은 대진침대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을 확보해 분석했다. 변호사는 이를 통해 대진침대가 침대 판매 전부터 그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판매를 강행한 정황을 발견했다. 수사기록대로라면 당초 음이온 파우더 상품화는 ‘A테크’ 설립자인 김모씨 제안에서 시작됐다.

5900명 뭉친 ‘본 게임’ 남았다
뒤집기 성공할까…추가 쟁점은?

대진침대는 제안을 받아들여 음이온 파우더 활용 상품을 ‘B 베드산업’이 개발하게 했다. 

김씨는 “대진침대·B 베드산업과 매트리스를 공동으로 기획·개발하다 중도 이탈했다”고 진술했다. 이를 기점으로 두 업체가 라돈 검출 매트리스의 기획·제작·판매의 주축이 됐다는 주장이다.

검찰 측이 공개한 김씨 진술조서에는 “2004년 하반기에 위 요업기술원의 성분분석을 통해 음이온 파우더에서 방사선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사실을 B 베드산업을 방문해 성분분석서와 함께 토륨·우라늄 등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사실을 알렸다”고 적혀 있다.

또 대진침대 내부 직원 진술조서에도 B 베드산업에게 보고받아 내부에서 업무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공동소송단은 “관련자들 진술에 따르면 대진침대는 상품 기획 및 개발단계부터 음이온 파우더에서 방사선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 제작 및 판매를 강행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음이온·은나노 마케팅 광풍이 불던 시기 대진침대는 한 백화점에서 매출이 저조해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B 베드산업 개발 책임자의 전언”이라며 “그는 진술조서에서 ‘대진침대가 당시 경쟁사에 비해 판매가 저조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토로했다’”고 덧붙였다. 

공동소송단은 대진침대 측이 “위기를 모면할 심산으로 음이온 매트리스 판매를 강행했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방출 위기에 처해있던 대진침대는 라돈이 검출된 음이온 매트리스의 판매고 덕에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의혹이 모두 사실로 판명된다면, 판세를 뒤집을만한 핵심 증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근거로 앞선 판결서 인정되지 않았던 대진침대의 과실과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소송 담당 변호사는 지난달 해당 진술조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대진침대 측은 증거 제출 이후로도 별다른 대응을 취하지 않고 있다.

새 증거로
뒤집을까

담당 변호사는 “검찰 측 자료인 만큼 증거의 신빙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며 “다만 증거력은 재판부가 자유로운 심증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재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고 부연했다. 본 재판은 다음 달부터 다시 속행될 예정이다. 빠르면 올해 안에 1심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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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