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끝? ‘라돈 침대’ 집단소송전 현주소

4년 기다리고 ‘쓴맛’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사람이 하루 8시간씩 맞닿아 있는 곳. 바로 침대다. 건강을 위해 웃돈을 주고 샀던 침대에는 알고 보니 발암물질이 가득했다. 충격에 빠진 소비자들은 앞다퉈 소송에 나섰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4년을 끌어온 소송전. 소비자 70여명은 이미 패소의 쓴맛을 봤다. 그리고 또 다른 판결을 기다리는 소비자는 5886명. 과연 이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아낼 수 있을까. 

‘고진감래’를 기대했건만, 현실은 달랐다. 4년 만에 처음 나온 ‘라돈 침대’ 손해배상소송 판결에서 소비자가 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06단독 장원지 판사는 지난 9일 소비자 69명이 대진침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건강 대신
모나자이트

라돈 침대 사건의 발단은 201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대진침대가 생산한 침대 매트리스에서 방사성물질 ‘라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라돈은 호흡기를 통해 몸속에 축적돼 폐암을 유발하는 방사성 기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센터(IARC)는 라돈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한때 불었던 ‘음이온’ 열풍이 화근이었다. 라돈은 대진침대가 매트리스에 도포한 음이온 파우더 원료 ‘모나자이트(Monazite)’에서 검출됐다. 애초에 모나자이트 자체가 소량의 우라늄과 토륨을 포함한 방사성물질이다. 하지만 당시 세간에선 모나자이트의 위험성보다 ‘음이온을 발산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이 이목을 끌었다.


그 결과 모나자이트는 수년간 별다른 제지 없이 각종 생활용품에 활용됐다.

이 중 상당 비율이 대진침대를 거쳐 라돈 침대로 유통됐다. 2019년 MBC 보도에 따르면 이전 6년간 국내 유통된 모나자이트는 총 40톤. 그중 7%가 넘는 2.9톤이 대진침대에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진침대는 2005년부터 꾸준히 관련 제품을 판매했다.

이를 고려하면 실제로 대진 침대를 통해 시중에 풀린 모나자이트는 이보다 많을 것이 확실시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조사 끝에 “대진침대 매트리스에서 방사선 피폭선량이 기준치를 최고 9.3배 초과했다”고 발표했다.

대진침대 측은 최초 보도 후 닷새 만에 전량 회수 및 리콜을 결정했다. 라돈이 검출된 매트리스 4종이 그 대상이었다. 이는 추후 7종까지 늘어났다. 대진침대는 2010년 이후 해당 제품들을 총 6만1406개 생산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줄곧 법적 대응을 시사했던 소비자들이 결국 칼을 빼들었다. 대진침대 소비자들은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천명이 모여 공동소송을 개시했다. 

예컨대 소비자 69명은 2018년 7월 대진침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들은 인당 200만원, 총 1억3800만원을 위자료로 책정했다. 


발암물질 침대 소비자 위자료 청구서 패소  
유사한 재판 줄지어 대기 중…영향 미칠까?

이들은 재판에서 “대진침대는 안전기준에 어긋나는 침대를 제조·판매하는 위법행위를 해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침대를 사용함에 따라 소비자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진침대 측은 라돈 검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2018년 5월14일 안전기준이 변경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만 해도 관련 사건 약 10건이 계류 중이다. 이 중 대부분이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인 것으로 알려졌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론이 난 사건은 거의 없다. 앞서 제기된 소송 결과를 기다리는 등 외적 지연 요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20년 1월 대진침대 대표와 납품업체 관계자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라돈 침대 사용과 폐암 발생 간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물건값’에 대한 보상 여부도 정리됐다. 지난해 12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대진침대가 사건 당시 소비자들에게 교환·환불을 약속하고도 장기간 이행하지 않아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며 “매트리스 교환 가치에 상응하는 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물건값 배상과 위자료 지급은 다른 문제다. 법원은 위자료 청구 소송의 첫 판결에서 대진침대 손을 들어줬다.

장 판사는 “대진침대가 소비자들에게 침대를 제조·판매한 것이 생활방사선법을 위반한 제품을 판매한 것으로서 불완전 이행에 해당한다거나, 당시 대진침대가 음이온을 배출한다고 알려진 모나자이트가 라돈을 방출하고 이로 인해 인체에 피폭되는 방사선이 해로울 수 있음을 알았다거나 알지 못한 데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연쇄작용?
일단 미지수

이어 “가공제품의 연간 피폭방사선량에 관한 기준을 규정한 생활방사선법이 2011년 7월 제정돼 2012년 7월 시행됐다”며 “원자력안전위원회의 2018년 5월자 라돈 검출 침대 조사 중간결과에 따르면 대진침대가 2015년과 2016년에 생산한 매트리스 속 커버 제품 2개에 대한 외부 피폭선량이 생활방사선법상 가공제품 안전기준인 연간 피폭선량 1mSv에 못 미치는 0.05mSv 내지 0.15mSv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또 “신체 외부 및 내부에 피폭하는 양을 모두 합해 가공제품의 연간 피폭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제품에 첨가하는 것이 금지되는 원료물질에 라돈이 추가된 생활방사선법 개정은 2019년 1월 비로소 이뤄지고 같은 해 7월 시행됐다”며 “가공제품 피폭 방사선량 한도인 1mSv는 유해 기준이 아니라 안전 관리기준에 해당하고, 라돈 침대의 사용과 폐암 등 질병 발병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소비자는 이번 재판 결과의 ‘연쇄작용’을 우려한다. 순차적으로 진행될 다른 재판 판결들이 ‘선례’를 따라가지 않겠냐는 걱정이다.


반면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다른 재판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판결과 다르게 통상 지방법원의 1심 판결은 기속력이 없다.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건을 대법원 전원협의체 판결로 정리한다.

이후 결정되는 유사 사건 판결은 앞선 대법원판결 법리를 따르게 된다. 이것이 ‘기속력’이다. 반면 지방법원 1심 판결에는 이 같은 권위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전면 배제할 수는 없다. 피고인 대진침대가 각 재판에서 동일한 변호인을 고용했다면, 이번 판결을 활용해 유사한 판결을 유도할 수 있다. 재판부에 이번 판결을 참고해달라고 요청해 ‘인용 판결’을 노리는 전략이다.

어느 방향이든 사건의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에서 모인 소비자들이 제기한 소는 여전히 재판이 한창이다. 이 인원만 해도 5886명에 달한다.

인원뿐만 아니라 청구 금액 규모도 훨씬 크다. 위자료 명목으로만 1인당 1000만원을 책정했다. 치료비 등은 별개다. 소송 인원 모집 당시 예상 청구액은 1인당 3000만원을 넘겼다. 

알면서도
판매 강행?


이들은 앞선 재판보다 세부적인 근거를 제시해 인과관계를 인정받겠다는 계획이다. 공동소송 담당 변호사는 “대진침대의 일부 모델에서 라돈이 검출된 점, 라돈이 발암물질이고 인체에 유해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잠복기가 길어 언제 증상이 발현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일단 라돈이 검출된 침대를 구매해서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적인 손해는 발생했다고 본다”며 “침대 때문에 혹시나 나에게 건강상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지,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소송단은 본 사건의 입증 책임이 대진침대 측에 있다고 주장한다.

담당 변호사는 “실제로 진단서상 드러나는 질환이 있다면 그 신체상 손해를 계산해서 배상을 청구하겠지만, 이 부분은 인과관계의 입증이 굉장히 까다롭다”면서 “다만 라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은 이미 공지된 사실이므로, 만약 대진침대를 사용한 소비자 집단의 발병률이 일반적인 한국인 집단보다 더 높다면 이는 라돈 침대로 인한 영향일 것이라고 보아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따라 대진침대에서 검출된 라돈으로 인해서 발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대진침대 쪽에서 입증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상 타당하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공동소송 참여자 중 일부는 원자력 병원에서 전문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증거로 제출했다. 담당 변호사는 “검사 결과, 이들은 유전자 파괴 정도가 일반인에 비해 심했다”며 “충분히 유의미한 수치를 얻었다고 판단해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공동소송단은 대진침대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을 확보해 분석했다. 변호사는 이를 통해 대진침대가 침대 판매 전부터 그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판매를 강행한 정황을 발견했다. 수사기록대로라면 당초 음이온 파우더 상품화는 ‘A테크’ 설립자인 김모씨 제안에서 시작됐다.

5900명 뭉친 ‘본 게임’ 남았다
뒤집기 성공할까…추가 쟁점은?

대진침대는 제안을 받아들여 음이온 파우더 활용 상품을 ‘B 베드산업’이 개발하게 했다. 

김씨는 “대진침대·B 베드산업과 매트리스를 공동으로 기획·개발하다 중도 이탈했다”고 진술했다. 이를 기점으로 두 업체가 라돈 검출 매트리스의 기획·제작·판매의 주축이 됐다는 주장이다.

검찰 측이 공개한 김씨 진술조서에는 “2004년 하반기에 위 요업기술원의 성분분석을 통해 음이온 파우더에서 방사선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사실을 B 베드산업을 방문해 성분분석서와 함께 토륨·우라늄 등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사실을 알렸다”고 적혀 있다.

또 대진침대 내부 직원 진술조서에도 B 베드산업에게 보고받아 내부에서 업무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공동소송단은 “관련자들 진술에 따르면 대진침대는 상품 기획 및 개발단계부터 음이온 파우더에서 방사선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 제작 및 판매를 강행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음이온·은나노 마케팅 광풍이 불던 시기 대진침대는 한 백화점에서 매출이 저조해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B 베드산업 개발 책임자의 전언”이라며 “그는 진술조서에서 ‘대진침대가 당시 경쟁사에 비해 판매가 저조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토로했다’”고 덧붙였다. 

공동소송단은 대진침대 측이 “위기를 모면할 심산으로 음이온 매트리스 판매를 강행했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방출 위기에 처해있던 대진침대는 라돈이 검출된 음이온 매트리스의 판매고 덕에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의혹이 모두 사실로 판명된다면, 판세를 뒤집을만한 핵심 증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근거로 앞선 판결서 인정되지 않았던 대진침대의 과실과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소송 담당 변호사는 지난달 해당 진술조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대진침대 측은 증거 제출 이후로도 별다른 대응을 취하지 않고 있다.

새 증거로
뒤집을까

담당 변호사는 “검찰 측 자료인 만큼 증거의 신빙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며 “다만 증거력은 재판부가 자유로운 심증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재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고 부연했다. 본 재판은 다음 달부터 다시 속행될 예정이다. 빠르면 올해 안에 1심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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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